과정철학의 기본 개념

 

 

 

 

 

 

과정철학의 기본 개념

Basic Concepts of Process Philosophy
Cobb/Griffin의 Process Theology를 중심으로

전  철


1. Process

1.1. 우리는 과정사상의 정신을 "실재는 과정이다"(Reality is Process)라는 말로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정과는 유리되지 않는 실재, 과정을 통한 실재, 더욱 더 나아가서 과정으로서의 실재를 의미한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착상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과정, 즉 경험과 삶과 역사와 유리된 모든 종교적 대상, 종교적 내용, 종교적 욕구는 도피와, 방관이나, 도리어 불신앙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재를 과정으로 보는 경향은 히브리 전통의 고유한 특성이기도 한 것이다.

1.2.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과정을 합생과 이행으로 구분하였다. 개별적인 존재자의 실재적인 내적 구조를 합생(concrescence)이라 칭하고, 개별적인 존재자로부터 개별적인 존재자로 넘어감을 이행(transition)으로 칭했다. 이러한 두 가지는 종교적인 체험들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이행은 누적적인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된다. 이는 시간의식과 역사에 단단하게 각인된 종교 체험과 종교 출현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보증한다. 합생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합생은 무시간적이다. 언제나 영원한 현재이다. '합생'은 종교의 근원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원성에 대한 직시와 영원한 현재에 대한 경험을 보증하는 가설이 된다. '합생'을 통하여 현재 혹은 순간에 대한 종교적 체험과 이에 대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2. Enjoyment

 2.1. 화이트헤드는 향유를 욕구와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욕구의 뿌리는 정신적 극이며, 향유의 뿌리는 물리적 극이다. 욕구는 무한하고 향유는 배타적이다. 욕구는 결여되어 있기에 가능하며 향유는 충만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신의 원초적 본성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물리적 극을 본성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새로운 자기형성의 과정 가운데 이전의 자기를 경험하면서 향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의 경험은 곧 향유이다.

2.2. 화이트헤드의 <경험>은 의식적인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에서 의식이 나오지 의식에서 경험이 나오지 않는다. 의식은 소수의 살아남은 경험들의 사회이다. 의식은 매우 희귀하게 출현하는 우연하면서 고상한 기능이다.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다. 또한 의식의 특징은 특정한 부분을 잘라냄, 곧 집중이다. 고등의 유기체는 의식을 통하여 물리적인 향유의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화하며 증대시킬 수 있다. 인간은 밥을 먹으면서 예술을 엿본다. 인간은 겨울밤 하염없이 쌓이는 눈을 보면서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종교는 유동적인 세계에 깃든 영속적인 진리를 파악하고 향유하도록 유인하는 세계의 요정이다.

3. Essential Relatedness

3.1. 향유의 실재성과 과정의 실재성은 상호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시간을 넘어서는 향유의 영역과 시간을 창조하는 과정의 영역은 서로 대립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전자는 현실적 사태의 본질을 정적인 실체성으로, 후자는 동적인 관계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시한다. 따지자면 인류의 사고는 이 둘 중의 하나에 잇댄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전자에 사고를 잇대면 관계는 부차적이고 이차적인 차원으로 추락하게 된다. 후자에 사고를 잇대면 사태의 본질이 어떻게 변하지 않는가를 해명하기 어려워진다.

3.2.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를 철저한 개별적 사건이라고 본다. 현실적 존재는 시간속에서 존속하지 않는다. 현실적 존재는 시간적이지 않고 순간적이다. 그 현실적 존재는 과거의 다수의 경험들을 파악한다. 과거의 데이타가 파악이 되는 순간 과거에 열려 있는 현실적 존재의 창은 닫힌다. 그 창이 닫히면서 현실적 존재는 영원과 직면하게 된다. 과거로부터 유입해 들어오는 누적적 시간과는 달리 이러한 현실적 존재의 내적 시간을 화이트헤드는 자연을 넘어서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카이로스적인 영원한 현재의 시간이다. 다시 현실적 존재는 창을 열고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다양하게 넘겨준다.

3.3. 향유와 과정의 대립적 국면을 포섭하려는 화이트헤드의 저 시도는,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의미에서 무게를 더 둔 듯한 존재의 독립(independence)의 성격보다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의 성격을 강하게 옹호한다. 그에 의하면 상호의존은 애시당초 존재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상호의존 자체를 우리는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성서적 전통은 서구의 인격적 개인의식이 발흥하게 된 유산이다. 그러나 성서적 전통은 서구현대의 극단적 이기주의까지 옹호하지는 않는다. 과정사상은 바로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의 문제를 새롭게 복원해 내며 피폐화된 극단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게 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4. Incarnation

실재는 과정이고 존재는 관계이다. 이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사건도 그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현재는 과거를 그냥 받아내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취사선택 한다. 미래의 존재들도 현재를 그저 동일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는 끊임없이 시공을 거치며 사라지지 않는다. 주체적으로는 소멸하지만 객체적으로는 불멸한다. 객체적 불멸성(objective immortality)는, 존재는 냉혹하리만치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에 화육되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세계는 태고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화육된 결정적 사태이다. 현재는 순간이며, 과거의 변모된 화육이다.

5. Creative Self-Determination

신학을 포함하여 전통적으로 자율보다는 의존에, 작용인보다는 목적인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과정 사상은 주체의 창조적인 자기 결단과, 그 결단의 연쇄적인 작용에 더욱 무게를 둔다.

5.1.  현재는 철저하게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출현한다. 그러나 그 받아들임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주체의 창조적인 결단에 의하여 진행이 된다. 화이트헤드가 강조하는 창조적 자기결단 또한 모든 존재의 질료적 본성이다. 현재는 결코 과거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는 그 순간이 현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는 영원과 직면한 창조적 자기결단의 영역들의 켜이다.

5.2. 과거의 요소에 의해 현재가 새롭게 재편이 되고 현재의 전망 가운데에서 미래가 현실화 된다는 작용인의 강조는, 세계와 하나님의 관계를 성찰할 때에도 양가적인 측면을 제시한다. 즉 한편으로는 현재와 유리된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하나님은 유인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인내하시고 신음하신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세계의 제한적인 전망 가운데에서 더욱 풍부한 가능성을 향해 하나님은 더욱 가깝고 동정심 있게 세계를 유인한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폭력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계의 어머니이자 시인이자 유혹이다.

6. Creative Self-Expression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표현은 표현자의 경험에 최초로 영입된 어떤 것을 주변 환경에다 유포시키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만이 지니고 있는 느낌들의 표현에 대한 기록이다(MT). 이렇듯 표현은 유한자의 유한한 계기에 기초해 있지만, 그가 영속적인 것과 무한한 것으로 유입되는 계기에서 표현의 의미가 발휘되는 것이다. 결코 표현은 사적이지 않다. 이는 어떠한 이기주의도 존재론적으로 제외됨을 지시한다. 또한 관심과 표현의 변화는 하나님의 목적의 실현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유한한 존재는 표현을 통하여 무한성을 바탕으로 하여 출현하는 전체적인 균형과 전망을 획득하게 된다. 표현의 가장 문명화된 방식이 언어이며, 언어는 인간이 영혼으로 익어가는 길을 열었다.

7. Novelty

 7.1. 새로움은 창조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이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의 백미는 아무래도 창조성(Creativity)일 것이다. 그는 창조성을 새로움의 원리로 이해한다. 과거의 사태가 현재에 재생되는 사건 자체는 단순반복이 아니라 새로움의 출현인 것이다. 이미 그 사태는 시공의 계기를 관통하는 사태가 아니라 시공의 한 계기에서 다음 계기의 상당한 이행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지속하여 새롭게 출현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 가운데 새롭게 구성한, 과거에 대한 창조행위이다. '차가운 책상'에 대한 손끝의 물리적 느낌에서 '차가움'이라는 정신적 느낌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추출해 내지만 단지 이 연쇄적인 짧은 계기에도 복잡다단한 새로움과 창조성이 진행되는 것이다.

7.2. 이러한 과거에 기반한 새로움과 동시에 과거에 기반하지 않은 전혀 극단적인 새로움이 있다. 이 새로움이 바로 신의 원초적 본성이다. 신의 원초적 본성에는 과거가 없다. 오직 영원적 객체의 전체에 대한 무제약적인 가치판단이며, 무한한 창조성을 제약하는 사건이다. 이러한 순수한 가능성, 순수한 새로움, 순수한 창조성은 세계의 새로움과 세계의 향유와 세계의 현실화를 촉진하는 궁극적 기능이자 궁극적 근거가 된다.

8. God-Relatedness

 8.1. 시간적인 존재는 그저 무작정 피어오르지 않는다. 시간적인 존재는 영속성 가운데에서 자신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 영속성의 본질인 신은 시간적인 존재들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적인 존재들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퇴락으로부터 끊임없이 그들을 구출해 낸다. 그러기에 창조적 변화는 다름이 아닌 사물의 본성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안주하려는 순수한 보수주의자는 결국 거역할 수 없이 창조적으로 변화하면서 유유히 흐르는 저 우주의 본질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유한한 지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는 새로워지고 인간은 의로워지며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1999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