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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카렐의 인간론


전 철





Ⅰ. 들어가며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을 던지는 자리에서 우리는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 1873-1944)을 만난다. 우선 알렉시스 카렐은 철학자도 신학자도 아닌, 대 의학자임 을 주목해야 한다. 카렐은 당대에 혈관봉합과 장기이식의 발견으로 의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고, 1912년에 노 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이다. 그리고 그의 종합적 인간론이 구현된 저서 "인간, 이 미지의 존재"(Man, the Unknown, 1935)는 카렐이 각 분야의 생리학적, 의학적 지식을 종합하여 복잡한 인간 현상을 총체적으로 해부한 노작이다. 여기에서는 알렉시스 카렐의 인간론을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생리학적인 관점 속에서 인간 현상과 정신 현상을 카렐은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주목하려 한다. 우선 알렉시스 카렐의 해석학적 관점을 살펴보고(Ⅱ) 그의 인간론을 해명하며(Ⅲ)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평가로 마감하려 한다(Ⅳ).

Ⅱ. 알렉시스 카렐의 관점

첫째, 카렐은 과학자, 전문적인 생리학자로서 인간 생명의 현상을 생리학적인 차원에서 관찰한다. 특히 인간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차원인 정신 현상이, 생리학적인 활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생리학(Physiology)이란 원래 살아있는 생명의 화학적이고도 물리적인 매카니즘을 연구하는 방법론이다. 카렐은 이러 한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인간 현상을 해명하려 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신학적, 형이상학적 해석과는 매우 상이한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리학적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현상의 총체적인 차원을 해명하려는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의학자로서의 성실한 관점을 저자는 책 전 체를 통하여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보기 드문 인간에 대한 과학적 실증적 해부를 시도한 역저라고 하 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둘째, 카렐의 관점은 비합리주의, 신비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물론 카렐은 당대에 이미 과학자로서의 위용을 널리 떨쳤다. 그러나 카렐은 과학이 함의하고 있는 가설적 성격과 그 작업영역의 한계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현상이 그의 가설 체계에서 설명되지 않을 때는, 내성(內省)을 통하여 대담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도구 없이 직관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갖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카렐을 자연과학자로서만 규정할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오히려 과학은 인간 현상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한다는 관점이 그의 사상의 기저에 깔려 있다. 어쩌면 인류 사상에서 전개되는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양 계보에서 카렐은 비합리주의, 신비주의의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과학의 깊은 면을 직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실로 해명 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라고 이해하면서 근대 이후에 등장한 융(C.G. Jung, 1875-1961), 베이트슨(Gregory Bateson, 1904-1980), 케슬러(A. Koestler, 1905-1983)의 경향과 유사하게 카렐은 서 있다. 이들 모두 그 당시 사상 의 기본적인 주조음을 거슬렀기 때문에, 당대에는 강단이나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이단시 되는 시련 을 겪게 된다.

Ⅲ. 알렉시스 카렐의 "창조하는 정신"

카렐은 그의 역저 "인간, 이 미지의 존재"의 제4장 "창조하는 정신"에서 도대체 인간의 정신활동이 무엇인지를 해명하 려 한다. 우선 카렐에 의하면 "정신은 인간의 일면이긴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질에 특유한 것이며, 인간을 다 른 동물과 구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정신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거의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정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인 정신 현상을 인류가 해명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신 현상에 대한 관찰'과 '생리학적 활동'과의 관계를 동시에 주의깊게 연구해야 한 다고 카렐은 강조한다.

또한 그는 정신보다 물질이 더욱 진정한 차원이라고 간주하는 물질중시의 과학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물질이 정신보다 더욱 진실이라고 간주하는 입장에서는, 의식의 갖가지 측면이나 정신의 양태에 대한 연구를 소흘히 하게 된다. 과학은 없는 것은 다루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물리학자, 경제학자, 생리학자, 심지어 의사들 조차 정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카렐에 의하면, 정신은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힘이다. 그 래서 그는 바깥쪽에서 인간을 고찰하는 차원만을 강조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바깥에서 인간을 고찰하는 차원 과, 안에서 인간을 고찰하는 차원 즉, 내성(內省)이 동시에 중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의 전체적인 정신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정신의 양태(樣態)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 즉 지적, 도덕적, 미적, 종교적인 면으로 이해한다. 지적 능력은 정신의 관찰에 있어서의 첫번째 사실이다. 그리 고 지고의 도덕적 차원이 인간 정신 안에서 발현된다. 또한 미적 관념이 인간의 정신활동에 보편적으로 발현된 다. 그리고 매우 드문 국면이지만, 매우 심오한 종교적인 차원이 열린다. 그럼 우선 그가 나눈 인간 정신의 네 가지 양태에 대하여 일별하고, 정신활동과 육체활동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인류 문명에 대한 진단을 정리해보자.

1. 인간 정신의 지적 차원

카렐에 있어서, 인간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관찰의 첫번째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지능은 선천적으로 타 고 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타고난 지능이 크든 작든, 실제로 이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하는 일과 환경상의 조건을 필요로 한다. 또한 카렐에 의하면 지능은 발달시킬 수 있다고 이해한다. 지능 을 최고로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조건'이 인간 정신에게 필요하다고 카렐은 강조한다.

다음으로 카렐은 과학의 탄생을 말한다. 그리고 과학의 탄생을 지능만의 몫으로 돌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직 관(直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과학의 발전은 논리의 몫이었지만, 과학의 발견은 직관의 몫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의 고양된 현상이 바로 투시(透視)와 정신감응(tele-pathy)이라고 카렐은 이해한다. 다 시 말해 카렐은 인간 정신의 지적인 차원으로 직관, 투시, 텔레파시를 포함한다. 오히려 이러한 신비한 차원을 통하여 얻은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하여 얻은 지식보다 확실하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러힌 신 비한 차원의 감응을 인간 정신의 지적인 차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러한 차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렐에 있어서 인간의 정신의 지적인 차원은 이성, 판단, 자발적인 주의력, 직관력, 아마도 투시까지 포함하는 매우 굉장한 활동이라고 지적하고, 단지 인간 은 그 지적인 차원의 미미한 일부만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는 인간 정신의 지적인 차원을 깊이 파 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2. 인간 정신의 도덕적 차원

그에 의하면, 도덕적 활동이란 자신에게 행동의 규칙을 부과한다거나 몇 가지 취해야 할 길 중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다거나, 자기의 방자함, 악의를 억제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도덕 관념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그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로서 증명되고 있다. 도덕관념은 천성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능과 마찬가지로 도덕관념은 교육과 훈련 및 의지의 힘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 도덕관념은 지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고의 도덕은 의지와 지성에 의해 형성되고, 도덕은 지성에 힘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카렐은 도덕관념이 지성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카렐은 도덕적인 아름다움이야 말로 과학이나 미술이나 종교적 의식보다 훨씬 문명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카렐이 지시하는 도덕적 차원은 단지 거리의 신호등을 준수하는 수위를 넘어선 매우 근원적인 차원을 지시 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만나기에는 지극히 드물고, 더군다나 그 아름다움의 모습 은 자연의 미나 과학의 미에 비하여 훨씬 강한 인상을 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도덕 관념이 주는 신성한 선물 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종의 불가사의하고 설명할 수 없는 힘을 갖는다.

카렐이 언급하는 도덕적인 힘은, 단순한 느낌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적인 리얼리티의 차원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성경의 여러 곳에는 '충만'이라고 번역되는 플레로마라는 단어가 나온다(엡 1:23 참고). 이 플레로마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능력의 실재성을 의미한다. 또한 칼 융에게 있어서도 플레로마는 태초의 우주의 충만한 기운이다. 바로 카렐은 인간 정신에 깃든 고양된 도덕적인 힘이 발현할 때, 단지 관념적인 차원을 넘어 선, 중후한 벡터량을 지니면서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정신적이고도 물리적인 실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그것은 우리시대의 도구로는 잡을 수 없는 것일 뿐,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자명 한 실재일런지도 모른다.

3. 인간 정신의 미적 차원

그는, 지성은 사라지더라도 미적인 관념은 남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미적 관념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장구한 기원을 갖고 있다고 이해한다. 미적 활동은 영감(靈感)이 이끄는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때 등장하는 활동이다. 카렐은 영감을 인간이 세계와 만나는 접촉점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한참을 이탈한 현대문명은 인간 정신의 미적 차원을 억압하고 거세시키는 음울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억압되 어버린 인간 정신의 근원적인 차원, 즉 미적인 차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요청된다고 강조한 다. 또한 그에 의하면 미는 정신의 창조하는 기쁨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 는 정신의 기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미이다.

4. 인간 정신의 종교적 차원

그는 종교적 활동을 현세의 물질적, 정신적 형태를 초월한 힘에 의한 동경, 기도, 미술이나 과학이 갖는 아름 다움보다도 훨씬 절대적인 미의 갈구로 이해한다. 그리고 인간 정신의 종교적 차원은 여타 차원에 비하여 극히 간혹적으로 발견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이해한다. 심지어 인간의 정신활동의 형태에 대해서는 표면적인 지식 조차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장에서 신비주의에 대한 매우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철학적 사상보다도 훨씬 깊게 종교적 인스피레이션을 받는다. 하지만 현대생활에서 종교적 관념은 완전 히 모습을 감추었다고 말한다. 이유는, 바로 종교가 신비적 활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카렐은, 종교의 힘은 신 비적 활동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거기서 그 종교의 생명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 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간 정신의 종교적 차원의 정점은 신비주의이다. 물질세계에 내재하면서 끊임없이 초월 하려고 하는 인간 정신의 지향은 바로 인간 정신의 종교적 차원에 뿌리를 둔 현상인 것이다.

5. 정신과 육체의 관계

위에서 카렐은 인간 정신을 네 가지 차원으로 이해하였다. 이후 그는 정신활동과 육체활동의 함수관계를 생 리학적인 관점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정신활동은 육체활동에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정신적 활동은 생리학적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혈에 의한 혈압의 저하는 정신 현상을 모두 억제한다. 정 신 생활은 대뇌의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육체 활동 또한 정신활동에 영향을 받는다. 정신적인 자극에 의해서 신체 조직과 기관의 성분은 화학적으로 바꾸어지는 사례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독일군에 의해 죽음을 선고받은 어느 벨기에인 여성은 처형 전날밤,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순백으로 변했다. 생리학자인 그는 정신활 동의 자리를 뇌로만 보지 않고, 뇌를 포함한 모든 기관으로 주장한다. 뇌는 모든 기관과 결부되어 있다고 그는 밝힌다. 인간은 뇌와 모든 기관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정신활동과 육체활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이다. 그리고 몸 전체 가 정신적 활동의 원천이 된다. 또한 정신이 표현되기 위해서는 생체가 적절하게 통합되어 있어야 함을 강조한 다. 즉 다시 말해서, 인간은 두뇌와 기관 모든 것에 의해 생각하고 사랑하고 고뇌하고 동경하고 기도한다.

6. 해명할 수 없는 인간 정신 현상 : 기적

그는 생리학자의 자리에서 도대체 해명할 수 없는 하나의 정신 현상을 발견한다. 그것은 정신적 활동이 조직 과 기관에 기능면 뿐만 아니라 해부학적인 변화까지 초래하는 사례, 즉 기적이다. 카렐은 그 정신적 활동의 한 사례를 기도로 보여준다. 타인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드높은 형태로서 열릴 때에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나 게 됨을 카렐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은 틀림없는 사실로 현존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정황에서는 노벨상까지 수상한 과학자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주 장들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복막결핵, 한성농양, 골엽, 화농된 상처, 낭창, 암등의 병리학적 장해가 기도를 통하 여 즉석에 치유되었음을 그는 관찰하였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심리적 기능과 육체적 기능 사이에는 아직 본 질을 알 수 없는 어떤 관계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기적과 같은 심연(深淵)의 자리를 해명하는 것이 어둠에 쌓인 인간의 세계를 새롭게 여는 문이라고 전망한다.

7. 인류 문명의 진단

마지막으로 카렐은 인류 문명이 노정하고 있는 불안한 징후와 위기에 대하여 언급한다. 특히 카렐의 인간 현 상에 대한 진단은, 인간 현상이 하나의 구조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매카니즘이라는 것을 밝힌 여타의 진단과 매 우 유사하게 흐르고 있음을 놀랍게 발견하게 된다. 그럼 인간 정신 현상이 어떤 결함을 지니고 있고 그 문제의 대안을 나름대로 어떻게 제시하였나 다른 입장들을 잠시 살펴보자.

우선 융에게 있어 의식은 가장 나중에 생긴 기관이기에 아직은 시험의 단계라고 말하였다. 이런 이유로 의식 과 무의식은 해리되었고, 이것은 인류 의식의 구조적 취약점이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리고 융은 성숙한 '신앙' 을 통하여 이러한 구조적 취약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이트슨은 자연의 고차적인 패턴을 정신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연과 정신 사이의 패턴을 끊어버린 인 류의 정신분열증을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베이트슨은 패턴과 시스템에 대한 인류 의 전체적이고도 획기적인 이해가 시급히 요청된다고 이해하였다.

케슬러는, 오래된 뇌와 새로운 뇌, 즉 구피질과 신피질 사이의 부조화를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존재가 인류라 고 지적하였다. 인류는 통합경향과 자기주장의 조화가 기본적으로 망가진 존재이다. 여기에서 문명의 광기가 일 어난다. 광기의 근원은 뇌의 불완전함 때문이다. 케슬러는 홀론holon에 대한 획기적인 통찰을 하였지만, 적어도 미래를 구원하는 대안에 있어서 그의 묘안은 끔찍하게 비관적이다. 신앙과 지성을 통하여서는 이러한 뇌의 구조 적인 부조화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오로지 약물을 통한 개선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제시하였다.

양차 세계대전의 음울한 시대 한가운데 서 있었던 카렐은, 아직은 정신은 육체만큼 건강하지 못한 것임을 토 로한다. 그리고 인간은 끊임없이 신경증과 정신이상을 앓고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문명이 이렇게 정신질환의 홍역을 치룰 수 밖에 없게 된 이유는, 현대문명에 중대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결함의 궁극적인 원인은 인류의 위대한 문명을 건설한 백인이, 인간 존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에 대한 백인의 지식은 다시 재고되어야 함을 그는 강조한다. 그 진단을 더 일 반화시키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아직은 참으로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Ⅳ. 나가며

알렉시스 카렐은 생리학자, 의학자, 과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이해하였다. 그는 인간존재 의 가장 근원적인 측면을 정신으로 보았다. 그는 여느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찬란한 '정신의 창조성'이 지적, 도덕적, 미적, 종교적인 차원으로 다면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관찰하였다. 정신활동과 육체활동, 심리적 기능과 육체적 기능 사이에는 아직 알 수 없는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과학자로서 조심스럽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두 관계의 한 쪽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을 경계하였다. 또한 아직도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심령현상, 기 적, 신비주의를 엄연한 사실로 이해하고, 오히려 그 지점에 대한 해명이 미지에 쌓인 인간 정신을 이해할 수 있 는 길이라고 전망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 정신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붕괴의 위 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인간과 인간 정신에 대한 겸손하고도 새로운 이해가 열려야 함을 그는 대안으로 제 시한다.

그는 과학적인 기반 위에서 인간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인간론의 근거는 생리학, 의학, 과학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인간론은 과학적 작업 영역에 인간 현상이 환원될 수도 있 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간 정신의 다차원성, 그리고 초월성을 제시하였다. 생리학적 지평에 있어서도 인간 정신은 창조적이고, 초월과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에서 물질성과 정신성, 과학 과 신비가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카렐이 인간정신의 가장 고차적이고 심오한 차원을 종교로 본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준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단지 한 종교써클의 지도자를 꿈꾸는 자리가 아니라, 창조적인 인간 정신이 발현되어가 는 그 끝자리에 우리가 포진해 있으며, 아직도 미지에 쌓인 인간 존재의 류적(類的) 지평을 새로이 밝히는 사명 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카렐은 현대의 성직자를 대중의 욕구에 아첨하는 정치인으로 비유했다. 그만큼 심원한 종교성의 자리에 들어가기가 어려움을 반증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우리는 할 일이 많다.

문명이 신비에서 합리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이 유실되어버린 신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도되어야 함을 우리는 발견한다. 특히 인간 정신의 한계선에서 개시되는 저 신 비의 현상에 대한 명상과 이해가 열려야 할 것이다. 신비가 인간과 그 정신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신비에 대 한 이해는 인간 정신에 대한 근원적 이해의 예표인 것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신비에 대한 이해는, 인간 존재를 해명하는 신학의 과제임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 모두가 중세의 엑소시스트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신비를 파괴해버린 인간과 종교는 참으로 궁핍해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진정한 종교인의 기도는 산을 옮긴다.

정신의 창조성은, 찬란한 지성사를 열었고, 숭고한 도덕관념을 형성하였고, 위대한 미와 예술을 꽃피웠고, 심오 한 종교를 잉태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의 창조성'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가공할 만한 '파괴의 병리성'을 역사적으로 드러내었다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병리적 현상의 근원은, 카렐이 분명히 지적하였듯이, 인간 현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탄식을 면치 못할 정도로 불충분한 지식 을 갖고 있다. 미지의 안개에 쌓인 인간 현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 그리고 더욱 알 수 없는 인간 정신에 대한 올 바른 지식을 우리는 하나 둘씩 열어 나아가야 하겠다. 앞으로 인간과 인간 정신이 어떻게how 존재하는가에 대한 해명은 과학과 의학의 지평에서는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다. 그러나 미지의 인간에 대한 더욱 근원적인 질문, 즉 인간이 왜why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은 어디에서from 왔는지, 그리고 그 인간과 정신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 해to 나아가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해명은, 우리 신학적 인간학만의 고유한 과제가 될 것이다.

 

1997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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