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 사상의 신학적 의미

 

 

 

 

 화이트헤드 사상의 신학적 의미
 

전 철
 


 

 

I. <화이트헤드와 유기체사상>

화이트헤드는 1861년에 태어나고 1947년에 죽었다. 화이트헤드가 죽은 지 10여년 후 1960년대부 터 미국에서는 화이트헤드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화이트헤드가 추구했던 철학은 < 유기체의 철학>이다.[1] 그의 철학은 <과정철학>으로 더 널리 알려졌는데, 이것은 그의 유기체의 철학의 핵심이 존재를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주저인 {Process and Reality}를 번역한 연세대학교 오영환 교수에 의하면, 미국에서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하나의 체계 를 구축한 과정철학은, 경험론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철학적 전선 가운데에서 유럽 철학전통을 향해 독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철학적 모색이라고 한다.

이후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시스템 철학>System Philosophy으로 확장되어 새롭게 전개되는 경 향이 일어난다. 시스템 철학은 인간사회와 환경을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질서 정책이나 환경문제에 대하여 대담하게 논의한다. 또한 화이트 헤드의 철학에 근거를 둔 시스템 이론은 정치학, 경영학에서 일부 수용되어 시스템 이론의 새로 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생물학, 교육철학, 생태학, 여성학, 상담학, 목회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편 화이트헤드의 지각이론은 심리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가운데도 신학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에 있어 과정신학은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의 하나로서 주 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상적인 급전환기로 이해되는 20세기 말의 상황 속에서 과정신학 은 이러한 사상적인 전환에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적 신학적 체계로서 인식되고 있다.
 

II. 유기체사상과 과정신학

화이트헤드는 성직자의 아들이었으면서도 신학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은 것 같다. 화이트 헤드는 결코 신학자가 아니었고, 실제로 신학에 대한 뱫은 호기심이 사라진 연후에는 자신이 갖 고 있던 모든 신학 서적들을 처분해 버렸고, 다시는 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화이트헤드는 직접적으로 과정신학에 대한 논의를 개진하지 않았다. 이런 의 미에서 지금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온 <과정신학>이라는 이야기가 저승에 있는 화이트헤 드의 귀까지 들린다면, 어쩌면 그는 정색을 할 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화이트헤드의 <유기 체사상>과 <과정신학> 사이에는 명백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사상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정신학의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헤드의 사상 전반에 대한 이해 없이 과정신학을 먼저 만난다면, 과정신학 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맥락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과정신학>에 나타난 화이트헤드의 아이디어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개념들이 많이 희석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정신학>의 깊은 논의를 위한 첫 수순으로서, 이 글을 통하여 화이트헤드의 사유의 핵심을 향해 먼저 접근하고자 한다. 神學은 모든 학문의 출발 점일 뿐 아니라 모든 학문이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아크로폴리스이기 때문이다.
 

III. 한국의 화이트헤드 연구상황

화이트헤드에 대한 논의를 가장 주도적으로 연구하는 곳은 클레어몬트 대학의 <과정사상 연구소 >The Center for Process Studies[2]이다. 이 연구소에서 존 캅(John B. Cobb)과 데이비드 그리 핀(David Ray Griffin)을 중심으로 화이트헤드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우 리나라는 아직은 화이트헤드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다. 그 가운데서도 클레어몬트에서 연구과정을 거치신 김경재 교수, 김상일 교수,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화이트헤드를 연구하신 연세대학교 의 오영환 교수, 이 세 분은 각각 신학, 동양철학, 서양철학을 연구하고 계시는데 각자의 영역에서 화이트헤드에 대한 논의를 점검 확산시키고 있다.

김경재 교수는 화이트헤드 사상의 신학적 수용과 비판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 김상일 교수는 화이트헤드 사상과 한국 철학을 연관시켜 <한철학>의 새로운 작업을 진행중이며,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담은 대중적 저서를 통하여 유기체적 사상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또한 한신대학교 철학과에서 화이트헤드와 관련된 강좌를 개설하여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오영환 교수는 화이트헤드의 주저인 {과정과 실재}, {과학과 근대세계}, {관념의 모험}, {열린 사고 와 철학} 등을 번역하여 한국의 철학계, 신학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특히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강좌들을 개설하여 여러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다.[3]

그리고 위에 언급한 세 분의 화이트헤드 논의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화이트헤드에 대한 관심 을 갖고 있는 이는 김용옥이다. 김용옥은 화이트헤드에 관한 독자적인 논문이나 저서를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성의 기능에 대한 번안을 하였다. 도올의 기철학(氣哲學) 사상[4] 속에서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사상과 교감 가능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5]

또한 한국 화이트헤드 연구에 획기적이라 할 만한 사건은 국지적으로 화이트헤드를 공부하던 한국의 화이트헤드 연구자들이 서로 한데 모여서 같이 연구를 할 수 있는, 한국 화이트헤드학회가 설립되었다는 점이다. 1997년 3월에 연세대학교 교수인 오영환 박사를 중심으로 학회가 창립되고,명실상부하게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깊이 심화시킬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게 되었다.이 학회의 특징적인 면은 철학,신학,과학,예술,법학,수학, 공학등등 다양한분야에 임하는 화이트헤드 연구가들이 포진되어 있다는 점이다.이는 화이트헤드의 사상 자체가 총체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면을 그 안에 충분히 담보하고 있다는 것에 기인할 것이다.이 학회는 정기적으로 원전 강독과 논문발표를 하며,특히 창립년도 후반기에는 <창조성의 형이상학>이라는 주제로 대구효성카톨릭대학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또한 1998년 클레어몬트에서 열린 세계 화이트헤드 학술대회에 한국을 대표하여 참가하고 논문을 발표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앞으로 도 화이트헤드 연구에 있어서 많은 성과가 이 한국화이트헤드학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리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IV. 화이트헤드의 언어세계와 신조어

화이트헤드는 철저하게 언어에 대하여서 관념론의 전통과는 결별한 듯이 보인다. 언어는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들 우리는 흔히 이해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그러한 입장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그에 의하면 이는 주술에 다름아니라고 평가한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을 <제한된 언어를 가지고 무한한 우주를 표현하는 시도>라 말한 바 있다. 이는 존재의 그 생생함 앞에 언어는 언제나 제약성을 지니며 또한 그 제약성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저 육박하는 세계의 스펙트럼을 담아낼 수 있는가에 언어의 관건이 달려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는 이전의 언어가 가지고 있었던 타성,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구상하는 세계관을 더욱 정확하고 차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하여 자신의 언어를 새롭게 설계하는 대담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정과 실재에는 이렇게 새롭게 설계된 그만의 고유한 언어가 제시되고 있다. 화이트헤드 당시에 prehension 파악이라는 단어는 아예 옥스퍼드 사전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한다. 또한 새로운 신조어 뿐만이 아니라 일상용어의 적용영역을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초점을 맞추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Society라는 관념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사회라는 관념을 포함하여 대단히 미시적인 적용영역까지도 화이트헤드의 개념구상 안에서는 포괄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언어는 사유의 내부에서 약동하고 있는 언어이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개념은 시간을 공간화, 시간에 대한 기술을 공관적 관념속에 끌어들여서 설명하고 있기에 대단히 고려하고 검토해야 할 요소가 많다. 그러나 이해해 가면 갈수록 이전의 언어관에서 보지 못한 아주 새롭고 역동적인 실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는 죽은 언어로 생생한 세계를 구유해 내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화이트헤드의 언어를 따라 가다 보면, 다른 언어를 통하여 볼 수 없는 선명한 그림들이 언어를 통하여 그려진다. 화이트헤드 의 언어는 마치 현미경으로 세계의 미세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듯한이다. 추상에 추상을 거듭하여 언어의 착종현상을 일으켜 나중에는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버리는 차원과는 달리, 화이트헤드의 언어는 분명히 사변적으로 <본 것을> 공간적으로 명료하게 기술하는 언어구상들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자신의 사유에서 섬광과 같이 나타나다 어느덧 사라지는 총천연색 그림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있 어서 단어의 부적절함이나 단어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하여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독창적인 신조어 를 만들어 낸다. actual entity, eternal object, feeling, prehension, superject 등은 화이트헤드의 특유한 신조어이다. prehension, superject와 같은 단어는 아예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경한 단어이다. 화이트헤드의 특유한 신조어 때문에, 화이트헤드 개념에 대한 우리나라 번역 또한 아직 통일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actual entity는 현실적 존재(오영환), 현실재(김경재), 사실존재(김상일)로 번역되었다. eternal obeject는 영원적 객체(오영환), 영원한 이데아적 형상(김경재), 영원 대상(김상일), 영속적 대상(이상직)으로 번역되었다. prehension은 파악(김경재, 오영환), 파지(김상일)로 각기 독자적으로 번역되어 있는 실정이다. 과정과 실재를 번역한 오영환 교수의 번역어로 전반적으로 통일화 되어가는 입장에 있긴 하지만, 화이트헤드의 사상의 독창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일관된 번역이 나오기 위해서는 화이트헤드 사상에 대한 활발한 학술적 논의가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요청된다.
 

V. 우주론과 형이상학으로서의 유기체철학

세계는 眞 善 美로 나아간다. 세계는 형이상학에서 출발하여 윤리학을 거쳐 미학에서 종결한 다. 眞은 형이상학이다. 善은 윤리학이다. 美는 미학이다. 형이상학은 <사유>의 문제이고 윤리학 은 <의지>의 문제이고 미학은 <조화>의 문제이다. 형이상학이 없으면 윤리학이 없고, 윤리학이 없으면 미학이 없다. 또한 형이상학은 <사실>의 문제이다. 윤리학과 미학은 <가치>의 문제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우주론>과 <존재론>, 즉 형이상학의 물음이다. 화이트헤드는 우주의 眞의 문제를 다룬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그럼 화이트헤드는 眞의 문제, 형이상학의 문제, 사실의 문제만을 다룬다고 해서 善 美의 문제, 윤리학 미학의 문제, 가치의 문제는 도외시하였는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화이 트헤드는 철저하게 <있는 것>을 기술한다. 우주의 眞에 대하여 기술한다. 가치판단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가치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기술에서 파생적으로 나올 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무엇인가?"의 물음이 우선적인 문제다. "어떻게 할 것 인가?"는 윤리의 문제, 미학의 문제이다. 이 문제들은 "무엇인가?"의 물음이 있어야만 해명 가능 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근거를 화이트헤드는 철저하게 "무엇인가?"의 물음을 통해서 구상한다. 오히려 탄탄한 형이상학적 토대 위에서만 탄탄한 윤리적 미적 가치판단이 등장한다.
 

VI. 형이상학과 종교

기독교의 역사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듯이, 신비체험이 주는 강렬한 정서적 느낌들은 기독교 신 앙의 근본 사상을 종종 위태롭게 하였다. 그렇다고 신비체험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체험들은 형이상학적 체계속에서 조정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다 음과 같이 일반화하고 있다. "종교는 형이상학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종교의 권위는 종교가 유발 하는 정서들의 강도에 의해서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서들은 다소의 생생한 경험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매우 빈약한 보증밖에는 되지 못 하는 것이다."[6] 정서적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종교는 반드시 "그 정서적 가치판단이 산출되는 그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眞의 물음을 근거로 놓아야만 한다는 의미이겠다.

형이상학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근거가 되는 가치의 문제를 위한 기틀을 마련한다. 종교는 그 형이상학적 근거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현실을 보자. 오늘 우리에 게 보여지는 종교적 갈등의 원인은 <형이상학적 근거>의 부재에서 기생한 파생적인 양상이라고 화이트헤드는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형이상학을 결여한 종교는 근거를 결여한 맹 목적 강변이다.
 

VII. 화이트헤드의 신과 세계

우리는 신의 대립항을 인간으로 본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의 대립항은 인간이 아니라 세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헤드의 신과 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과정과 실재 5부 <최종적 해석>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7]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신과 세계를 이해 함에 있어서 그의 우주론적 도식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여기에서는 화이트헤 드에 있어서 우주론적 도식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가지의 범주[8] 가운데 하나인 '궁극자의 범주' 를 이해하려 한다.

궁극자의 범주는 일자, 다자, 창조성이다. 다자는 이접적(disjunctive) 방식의 우주를 의미한다. 일 자는 연접적(conjunctively) 방식의 우주를 의미한다. 창조성은 이접적 방식의 우주인 다자를 연접 적 방식의 우주인 하나의 현실적 계기로 만드는 궁극적 원리이다. 또한 다자가 일자로 전진한다 는 것은 사물의 본성에 속한다.[9] 여기에서 다자에서 일자로 전진함에 있어서 새로 등장하는 일 자는 진정 새로운 일자이다. 그 일자는 다자의 합 이상이다. 그 일자는 다자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일자이다. 이러한 다자에서 새로운 일자를 향한 끊임없는 전진이 바로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적 도 식이다.

1. 피조물로서의 신

기존신학은 신을 창조주로 본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은 피조물이다. 태초에는 주체 가 없다. 오직 우연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피조물이다. 화이트헤드의 목소리를 직접 듣도록 하자.

원초적으로 창조된 사실은 영원적 객체의 다양성 전체에 대한 무제약적인 개념적 가치평가이다. 이것이 신의 원초적 본성이다.[10] 또한 신은 모든 영원적 객체에 대한 완벽한 직시이다.[11]

여기에서 새롭게 등장한 <영원적 객체>eternal object는 영원히 우리에게 주체화 될 수 없는 객 체이다. 영원적 객체는 객체 그 자체이다. 또한 영원적 객체는 순수한 가능태이다.[12] 영원적 객 체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 알릴 수 없다. 내 눈 앞에 <파란> 볼펜이 있다. 저 파란 색을 파랗 게끔 하는 그것(object)이 영원적 객체[13]이다. <파랑>, <빨강>, <노랑>, 나아가서 <쇠>, <나 무>, <돌>, 더 나아가서 <아름다움>, <증오>, <기쁨>, <슬픔> 등 현실세계의 '이 모든 것들'은 불변하는 영원적 객체라는 가능성의 셋트 가운데에서 현실화된 하나의 사건(event)이다. 이 영원 적 객체는 불변의 셋트이다. 그것은 시간에 대해 독립적이다. 시간은 영원적 객체에게 아무런 영 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영원적 객체는 신적 요소가 넘볼 수 없는 불멸의 영역이다. 단지 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의 창생점, 즉 신의 탄생 이후만 알 뿐이다.

영원적 객체는 현실적 존재와 대등한 한 조(組)이다. 영원적 객체는 가능태의 영역이다. 현실적 존재는 가능태의 실현의 영역이다. 현실적 존재는 영원적 객체의 진입(ingression)을 통하여 현실 화된다. 다시 말해서 "시간적인 사물들은 영원적인 사물의 참여에 의하여 등장한다."[14] 이 두 영 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즉 현실태는 가능태를 예증하며, 가능태는 현실태를 규정한 다.[15]

그럼 신은 무엇인가? 영원적 객체의 세트에 대한 최초의 평가, 최초의 셋팅(Setting)이 신이다. 영 원적 객체의 셋트에 대한 제약없는 가치평가가, 최초에 일어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바로 신이다. 영원적 객체의 셋트에 대한 <개념적 가치 평가>의 사건인 神은 오직 '우연'[16]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본다. 영원적 객체의 개념적 가치평가가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순간, 가능한 영 원적 객체의 셋트는 결정되어 버린다.[17]

신은 영원적 객체의 다양성 전체에 대한 가치평가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가능성은 창조성에 의 하여 하나의 가능성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접적 다자의 영원적 객체는 창조성을 통하여 연접적 일자로 통일되고, 그 최초의 일자가 바로 신(神)이다. 이러한 <영원적 객체들의 비시간적 영역에 대한 개념적 파악>이 바로 신의 원초적 본성(the primordial nature of God)이다.

그러나 신은 그것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세계에 대한 신의 물 리적 파악>이 있어야 한다.[18] 이것이 신의 결과적 본성(the consequent nature of God)이다. 신 의 원초적 본성은 영원적 객체에 대한 신의 관계이고, 신의 결과적 본성은 현실세계에 대한 신의 관계이다.

영원적 객체의 무한한 이접적 가능성은 연접적 가능성으로 통일된다. 그 최초의 통일이 신이다. 세계는 이러한 신이라는 단일한 가능성 안에서 실현된다. 즉 세계는 신 안에서 객체화 (objectification)[19]된다. 원초적 본성이라는 신의 창조적 전개 속에서 세계는 현실화되고 현실화 된 세계의 창조적 통일성은 신의 결과적 본성이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과 세계는 교호적인 위치에 놓여있다.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와 비교할 때 신이 탁월하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과 비교할 때 세계가 탁월하게 현실적이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세계가 신에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이 세계에 내재한다고 말하 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이 세계를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로 참이다."

이러한 맥락은 기독교적 역설을 생각나게 한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 "죄가 많은 곳에 은혜 가 많다.", "목숨을 버리는 자는 얻을 것이요, 목숨을 구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어진 것이 없다.", "심판 자이면서 심판받는 자" 등등 기독교는 이러한 역설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역설을 역설로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기독교를 왜곡하게 될지도 모른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과 세계는 분명히 대립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대립 때문에 세계는 다 양성과 통일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화이트헤드의 논점이다. 이러한 논점은 기독교적 역설의 구도와 비교해 볼 때 하나의 형이상학적 설명의 근거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과 세계는 대비된 대립자이며, 이 대립자에 의해서 창조성은 대립 속에 대양성을 갖는 이접적인 다수 성을, 대비 속에 다양성을 갖는 합생적 통일로 변형시키는 그 최상의 임무를 수행한다."

2. 세계와 함께 하는 신

우선 화이트헤드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한 <부동의 동자>로서의 신에 관념에 대하여 비판적 이다. 부동의 동자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임을 만드는 존재이다. 신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임을 만드는 신의 관념은 기독교 신학이 좋아하는 학설이다. 이러한 관념이 기독교 의 역사의 비극을 야기시켰다고 화이트헤드는 지적한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는 <부동의 동자> 의 낡은 개념을 버리고 무엇을 주목하였는가?

기존 신학에 있어 세계는 신의 의지의 일방적인 실현의 장소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신은 세계를 향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신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세계의 의지에 주목하는 신이다. 신에게 있어서 세계는 사귐의 대상이다. 신은 홀로 존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 아니다. 혼자만 있는 존재는 그저 존재일 뿐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세계의 신은 결코 홀로 존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세계는 서로를 넘나 든다.

즉 신은 세계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이 신은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창조적인 사랑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신과 세계는 서로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받는다. 신도 세계도 정태적인 완결에 이르지는 못한다. 이 양자는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근거, 즉 새로움을 향한 창조적 전진의 손아귀에 있다. 신과 세계는 각기 서로에게 있어서의 새로움을 위한 도구이다.[20]

그렇다면 신과 세계는 어떻게 창조적으로 새로움을 발현하는가. 우선 신은 세계를 향하여 자신의 뜻을 구상하고 세계를 향해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 이에 대하여 세계는 신의 뜻에 대한 주체적 판단을 내린다. 다시 신은 신 자신에 대한 '세계의 판단'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는 창조적 활 동을 세계를 향해 구현한다. 이렇듯 신의 창조적 활동은 신의 세계에 대한 응답에 근거한다.[21] 또한 신은 각 존재들을 향하여 최선의 존재를 위한 가능성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설득하려 한 다.[22] 이렇게 본다면, 신은 새로 태어날 존재들을 존재하는 것과 관련있도록 연결시키며, 세계를 실현의 새로운 형식으로 충만하게 이끄는 우주 안에서의 인자라고 말할 수 있다.[23] 신은 세계의 느낌을 충만함을 향하여 이끌어내는 무한한 비밀이며, 희망의 영원한 샘이다.[24] 신과 세계가 최 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극한 지점은 <세계의 신격화>[25]이다. 그때에 비로소 신과 세계의 화 해는 남김없이 현실화된다. 그 <평화의 세계>가 세계를 향한 신의 구원의 드라마가 지향하는, 영원을 향해 열려있는 <종말의 세계>이다.
 

VIII. 각주

[1]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의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으로 부른다.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The Free press, 1978), p.xi.

[2] 과정사상연구소의 인터넷 주소는 http://www.ct4process.org 이다. 그리고 과정사상에 관계된 전문 싸이트는 일본의 http://www.ashi-net.or.jp/~sn2y-tnk, 오스트레일리아의 http://www.zeta.org.au/~farleigh/aapthome.htm가 있다.

[3]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문창옥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명제이론} 연구를 심도깊게 진행하였고, 이 박사학위 논문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이해>라는 단행본으로 통나무에서 출간되었다. 이 저서는 한국의 우리말로 된 화이트헤드 연구서 가운데 매우 탁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4] 김용옥, {氣哲學散調}(서울:통나무, 1992) 혹은 동저자, {동양학이란 무엇인가}(서울:통나무, 1986).

[5]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아시아나 유럽의 사상은 사실(fact)을 궁극자로 보는 반면, 인도나 중국의 사상은 과정(process)을 궁극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유기체의 철학은 서아시아나 유럽의 사상보다는 인도나 중국의 사상의 기조에 더 가깝다고 말한 다. PR., p.7.

[6] A.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New York:Macmillian Company, 1926), p.81.

[7] {과정과 실재}는 5부로 나누어진다. 1부에서는 유기체의 철학의 방법이 설명되고, 또한 우주론을 구축하게 될 여러 관념의 구도가 개 괄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2부에서는 문명 사상의 복잡한 구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관념이나 문제를 1부의 구도를 통하여 적절하 게 밝힌다. 3부와 4부에서는 우주론의 구도가 전개된다. 마지막 5부는 우주론의 문제를 고찰해야 할 궁극적 방법에 대한 최종적 해석 을 내놓는다.

[8] 화이트헤드의 네가지 범주는 궁극자의 범주(The Category of the Ultimate), 현존의 범주(Categories of Existence), 설명의 범주(Categories of Explanation), 범주적 제약(Categorical Obligations)으로 나뉘어진다.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구축한 고유한 범주를 우리의 일상세계에 주도면밀하게 적용하고 설명해 나아가면서, 그 범주의 적용가능성을 확보해 준다는 점에 있다. 화이트헤드 의 {과정과 실재}는 이 4가지의 범주를 통하여 일상세계에 대한 치밀하고 일관된 적용을 성공적으로 시도한 저서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cf. PR, pp.20-28.

[9] PR, p.21.

[10] The primordial created fact is the unconditional conceptual valuation of the entire multiplicity of eternal objects. This is the 'primordial nature' of God.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p.31.

[11] God is the complete envisagement of eternal objects. Ibid., p.44.

[12] PR, p.22.

[13] 화이트헤드의 영원적 객체(eternal object)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와 비견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영원적 객체에 두드러 진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이데아의 현상으로 이해하는 플라톤과는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4] PR, p.40.

[15] A.N. Whitehead(오영환, 문창옥 역), {열린 사고와 철학} (서울:고려원, 1992), p.88.

[16] 화이트헤드의 '과정적 실재관'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연'은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선 우연은 결단의 부재를 의미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 결단의 여지가 남아있는 영역이 우연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서 우연의 영역은 새로운 합생을 위한 조건들을 '결단해야 하는' 미결정성의 영역이다. 우연성은 미결정성이다. 만약 우연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결정성만 남아있게 된 다. 그 세계는 자유가 사라진 세계이다. 이럴 때 이 세계는 과정과 전진 자체가 불가능한 세계가 된다. 결국 미래를 향한 세계의 전진 에 있어서 우연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우연은 열린 미래와 현재의 교차지점이다. 우연은 기회이다(chance is chance). 실로 어떠한 존재이든 그 존재의 초기위상에 있어서는 궁극적인 필연성이 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기위상에서부터 후기위상으로, 혹은 작은 합 성물의 단위로부터 보다 큰 합성물로 나아감에 따라 '우연으로부터 필연으로의 변이'가 나타나게 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 기에서 언급되는 영원적 객체에 대한 제약없는 가치평가의 사건은 최초의 사건이다. 순수한 우연의 사건이다. 이 사건이 神이다. 최초 의 창생점으로서의 신은 순수와 우연을 통해서 등장한다. 태초의 창생점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현하는 '수 많은 사건들'은 불순과 필연의 성질을 간직하며 끊임없이 전개된다.

[17] 화이트헤드는, 신은 결코 형이상학적 원리들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불러들여진, 모든 형이상학적 원리들로부터의 예외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신은 형이상학적 원리들의 주요한 예증사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을 통해서 형이상학적 원리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Ibid., p.343.

[18] Ibid., p.31.

[19] 현실적인 하나의 계기가 어떻게 새로운 창조에 있어서 근원적 요소가 되는가 하는 논의를 화이트헤드는 객체화론이라고 부른다. 한 현실적 존재의 자기 창조에 있어서의 다른 현실적 존재의 기능은 전자에 대한 후자의 '객체화(objectification)'이다. 객체화는 한 계기의 현실적 존재가 다음 계기의 현실적 존재들을 위한 여건으로 기능함을 의미한다. 현실세계는 객체화의 무한한 계승이다. 객체화는 현 실세계가 끊임없는 계승과 변화와 전진의 원리 안에 있음을 지시한다. 1초 전의 컵은 1초 후의 컵의 여건으로 기능한다. 객체화를 통 하여 1초 전의 컵은 1초 후의 컵의 여건으로 간직되고 계승된다. cf. PR., p.210.

[20] Ibid., p.349.

[21] John. B. Cobb, Jr & David Ray Griffin(류기종 역), {과정신학}(서울:열림), p.74.

[22] Ibid., p.74.

[23] Ibid., p.60.

[24] PR, p.344.

[25] 오영환은 <세계의 신격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가 자신 속에 신을 완전히 체현(體現)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세계의 자기형성 작용의 궁극형태로 간주된다. {과정과 실재}, p.599.
 

IX. 참 고

과정사상의 논의를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클레어몬트의 과정사상연구소는 매년마다 학술회의(Academic Conference)를 개최하고 있다. 다음은 그간 진행된 학술회의 주제들이다. 특히 1988년에는 한국의 민중 신학과 관련된 주제가 채택되기도 하였다.
 

Academic Conferences
 
Center-sponsored conferences relate process thought to a wide range of
topics in a wide range of disciplines. The Center for Process Studies seeks
to promote an interdisciplinary approach in which process philosophy acts
as the catalyst which brings various thought systems into dialogue.
 
 

* Process Thought and Modern Scienceellagio, Italy 1974

* Mahayana Buddhism and Whitehead Hawaii 1974

* Process Philosophy Physiological Psychology Claremont 1975, 1977

* Whitehead and Chinese Philosophy Colorado 1976

* Process and Praxis; Pennsylvania 1978; Colorado 1979

* Feminism and Process Thought Harvard 1977

* Whitehead and Vedanta Claremont 1978

* Aesthetics and Process Thoughtancouver, B.C. 1980

* Process Theology and the Holocaust Claremont 1980

* Whitehead and Education Claremont 1980

* Ecology, Religion, and Process Philosophy Georgia 1982

* Christian Realism, Liberation, and Process Theologies Claremont 1982

* Archetypal Process: The Self the Divine in Jung, Hillman Claremont 1983

* Roman Catholicism and Process Theology Claremont 1983

* Physics and Time: Bohm, Prigogine, and Process Philosophy Claremont 1984

* Process Spirituality Claremont 1984

* Liberation in Process Theology the Black Experience Chicago 1985

* Process and Jewish Theology New York 1986

* Eastern Orthodox and Process Theology Claremont 1986

* Economics for Community Arkansas 1987

* Toward a Postmodern World Santa Barbara 1987

* Sharing Our Stories: Process Feminist Dialogue on Post-Patriarchy Claremont 1987

* Process, Peace and Human Rights Kyoto, Japan 1987

* The Ethical Response of Business Nedlands 1987

* Minjung and Process Theology Claremont 1988

* Agriculture and Process Theology Claremont 1988

* Toward a Postmodern Presidency: Vision for a Planet in Crisi Santa Barbara 1989

* The Right to Die Claremont 1989

* Post-Patriarchal Male Sexuality Claremont 1990

* Parapsychology, Philosophy, Religion: Postmodern Perspective Santa Barbara 1990

* Christian Responsibility for Pacific Civilization Claremont 1991

* Process Thought and Psychotherapy Claremont 1992

* Higher Education for the Good of the World,1994; Washington, D.C. 1995

* Consciousness in Humans, Animals Computers Claremont 1994

* Spirituality and Business Management Theory, Sierra Madre, CA 1996

* Transpersonal Psychology and Process Philosophy salen 1996

* Spirituality in the Workplace Claremont 1996

* Mobilizing for the Human Family Pasadena CA 1996

* Women in Process: Works in Progress 1997

* The Future of Process Thought in Europe France 1997

* The Enlightenment in Evangelical and Process Perspectives 1997

* Hartshorne Centennial Celebration Austin 1997

* Whitehead and Entropy in Denmark Denmark 1997

* The Silver Anniversary International Whitehead Conference Claremont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