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erwegs zur Theologie








설교자를 위한 선포주석 - 마태복음



전 철





제1장 마태의 이해를 위하여

1. 역사전기적 연구방법

지난 세기와 금세기 초엽에 유행했던 역사관은 본질상 "실증주의적"이었다. 신약성서 연구의 영역에서 학자들의 주요한 관심 중의 하나는 역사적 예수의 문제였다. 그 목표는 예수의 선교의 윤곽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정립하 고 예수가 자신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그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하여 복음서의 내용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예수의 수학시절, 지적발달, 성격 형성에 관해서는 전혀 오 리무중의 상태에 놓여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 있는 전기적 세부 사항을 포괄해 보면 그것이 예수의 삶에 대한 역사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태는 과거를 매우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 시대의 교회를 위해 저술하는 신학자였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마태가 복음서를 저작했을 때 십자가 처형 이전의 예수시대를 재연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활절 이후의 신앙 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의 품격, 선교, 수난에 관해 말해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2. 편집비평적 연구방법

양식비평학의 주된 공헌 중의 하나는 복음서 전승의 보존과 발전에 있어서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지니는 주요성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이었다. 첫째는 지상의 예수시대와 관련된 것이었다. 두번 째 삶의 자리는 교회 가 생겨나고 예수의 임박한 재림의 기대 속에서 교회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서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 다음에는 이방인들에게 선포하였던 부활절 직후의 시대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세 번째 삶의 자리는 복음서 기자들의 시대와 관련된다. 편집비평학자들은 복음서 자체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태, 마가, 누 가 즉 소위 공관복음서에 관해서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이들 사이에는 구성이나 어휘에 있어서 근본적인 유사성 과 차이점들이 있음이 드러난다.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를 정리한 도식적 방법은 시종일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음서의 배열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그리스도교 개종자들을 위한 교훈이나 교회의 예배를 위한 성서의 구절들을 제공하려는 목적 을 지닌 독서성구집이나 교리문답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마태는 많은 문학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전승 사료들을 조심스럽게 편집함으로써 그 자료들을 해석할 수 있었다. 이들 문학적 장치들로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로, 마태는 마가의 윤곽을 기초로 그것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료들을 배열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로, 마태는 자신의 자료들을 재배열하고 있다. 세째로, 마태는 자신 의 자료들을 단축시키고 있다. 네째, 마태는 자기의 자료들을 명료히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태는 자기의 자료 들에서부터 자료를 생략하거나 한 전승단편을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마태복음에 대한 편집비 평적 접근은 무엇보다도 마태복음의 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편집비평적 연구방법 개요

우리가 계속 추구하고 있는 문제는 마태복음의 성격과 목적에 관한 문제이다. 마태 자신이 그 문제가 어떻게 정 의되어야 할 것인가를 암시해 주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삶의 윤 곽을 가종한다. 이 역사상의 마태가 단순히 자기 교회의 설교의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그것을 의도한다는 좁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이 공동체에게 예수의 품격과 그의 가르침, 설교, 병고침의 선교 활동과 그의, 고난, 죽 음, 부활에 관해 알려준다는 넓은 의미에서 "케리그마적"이다. 그의 구원사 개념에 있어서 마태는 예수의 때 내에 서 요한의 이스라엘 선교, 지상의 예수의 전교, 제자들의 선교, 부활 이후 교회의 이방인 선교를 지적한다. 그러므 로 마태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구원 아니면 정죄하는 소식에 결정적을 직면해 있고 이 소식은 더욱 더 이방인에게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2장 마태의 그리스도 이해

1. 메시아이신 예수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맨 처음의 교회가 예수에게 적용하였던 최초의 기독론적 칭호들 가운데 하나이 다. 마태는 자기 입장에서 이 용어를 동시에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한다. 마태의 관점에서 매시아로서의 예수는 예언자적 인물이 아니라 제왕적 인물이다. 다윗의 집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 역사가 그분 안에서 절정에 달하며, 그리고 그분은 백성에게는 구원, 아니면 저주를 의미한다. 유대인의 왕으로서 그의 품격에 대한 일반군중의 관점 은 그가 정치적 왕위 참칭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백성을 대신해서 고난받는다는 의미에서 그의 백 성의 왕이다.

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에서 단지 지상적 예수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칭호인 다윗의 아들로서 예수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이 아 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부활 이후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다윗의 아들이란 칭호를 대신하게 된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우시의 자손 요셉에 의한 양육은 성령으로 인한 잉태와 비교될 수 없다. 에수는 하나님에게 그 기원 을 두고 있고 하나님의 종말적 백성을 돌보기 위해 선택된 분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해 메시아적 선교를 위한 힘을 부여받는 그는 사탄과 대결하여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자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가르치고, 설교하고, 병고치는 분으로서의 하나님 아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아들로서 묘사함으로써 지작하는데 이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그의 종말적 지배권을 가지고 가까이 오셔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 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관계로 말미암아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적 권위를 맡기신다. 결국 아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 위에서 말하 여지고 행하여진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나님 자신이 아들의 메시아적 선교 속에서 완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 이다.

4. 하나님의 아들의 설교

마태복음의 주제별 개요 가운데 두 번?와 세 번째 주요 부분은 예수 메시아의 공적 활동과그의 고난, 죽음 그리 고 부활과 관련된다.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은 설교와 가르침과 병고침의 선교를 이스라엘을 서?대로 행한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마태의 초상화의 전모를 샅샅이 포착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우 리는 4장 17 - 28장 20절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마태의 스케치를 대담한 필법으로 추적 해 나갈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에 의해 세례요한의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된 후에 그리고 자신이 아버 지의뜻에 완전히 순종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 후에 가버나움에 거주를 정하고 이스라엘 대한 자신의 공적 설교 를 시작하신다.

복음서 이야기는 죽음이 아닌 부활로 끝나고 있다. 하나님에 의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 보다 높게 들리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추총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들로 삼으라고 부탁한다. 그 들은 이 사명을 극히 과감하게 수행할 수 있다. 그들은 그가 마지막 때에 그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을 믿을 수 있 기 때문이다.

5. 다윗의 아들로서의 예수

마태가 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묘사하고 있다면 그가 제시하고 있는 다윗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범위가 더욱 좁고 제한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사실이 그렇다 더구나 이 두 칭호들이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앗듯이 마태가 다윗의 집과 관련해서 메 시아 대망을 정확하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에게 당연한 것처럼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는 예수를 다윗 의 아들로서, 즉 다윗의 자손 요셉을 통하여 다윗의 혈통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파겨된 제왕적 메시아로서 제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음은 확실해진다. 그러나 마태는 이 칭호의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 하여 그의 복음서의 주요한 기독론적 범주 아래로 포함시킴으로써 이 칭호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더 욱 부각시키고 있다.

6. 주님으로서의 예수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대개 검증되지 않은 근거를 위해서 마태가 사용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는 주 즉 퀴리오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래에서와 같이 면밀한 검토에 의해 드러나는 증거에따르면 이 칭호가 그 렇게 두두러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퀴리오스라는 칭호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즉 이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자들은 예수,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다윗의 아들, 또는 사람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지닌 예수가 하나님께서 신적 권위를 부여한 높이 들리우신 지위에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 능을 지니고 있다.

7. 사람의 아들(人自)로서의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와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에 대한 색인 연구를 통하여 드러난 사실은 예수의 권위를 지니심, 남을 위해 자신의 목슴을 내어 주심, 조롱과 멸시를 견디심, 죽으심, 부활하심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지 배권을 위임받으심 등의 여러 문제들에 있어서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에 대한 마태의 묘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의 예수에 대한 마태의 묘사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에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는 공적인 칭호라고 할 수 있다. 믿음 없는 무리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그 리고 마태 시대의 교회 밖에 있는 이방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그들 즉 세상은 사람의 아들로서의 지상적인 또는 들리우신 예수와 상호 작용한다. 마태는 재림 이전의 예수는 무엇보 다도 하나님의 아들 매시아로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계시로 인해 생겨난 통찰력은 순전히 인간적 관 찰력만으로 생겨난 통찰조직을 초월한다(16:17).


제3장 마태의 하나님 이해

1. 하늘나라

구약성서의 하늘나라라는 표현이 하나의 고정된 어귀로서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개념상으로 그 연원은 구약성서에서부터 생겨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즉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사상은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신념들 중의 하나이다. 종말론적 이미지의 문제와 관련하여마태가 대단히 좋아하는 단어는 미래의 빛에서 현재를 묘사하고 있으며 따라서 마태의 하나님의 지배에 대한 이해 안에 있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관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통치 영역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부여해 주시어 구원에동참하는 사람들로부터 샘솟듯 솟아나는 독특한 종교적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라는 점에서 하늘나라를 현재적 실재로서 강력히 증거하고 있다.

하늘나라의 윤리적 또는 인격적 차원에 대한 마태의 이해를 이렇게 개관해 봄으로써 우리는 마태의 하늘 나라 개 념을 대체로 다루어 본 셈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그 나라가 각각 사탄의 날, 이스라엘과 민족들 그리고 (다음 장에서) 교회와 관련되 때의 모습에 관해 토론해 보는 데 있다.

2. 하늘나라와 사탄의 나라

마태는 하늘나라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 안에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고 말하고 있기 땜분에, 마 태복음 안에서 예수 자신이 사탄의 일차적 목표물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탄이 처음으로 직접 언급되고 있는 귀절도 사탄이 예수를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유혹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뺏으려고 했다는 것과 관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험에 직면하여 예수는 자신이 사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 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사탄론을 취급함에 있어서 우리들은 사탄론이 마태의 그리스도론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예수의 지상적 전교와 이스라엘과 교회라는 컨텍스트 속에서는 마태가 사탄을 지상 적 그리고 들리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적대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세상과 재림이라는 컨텍스트에는 사탄을 사람의 아들 에수의 적대자로 묘사하고 있다.

3. 하늘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민족들

우리들은 방금 마태가 하늘 나라의 가까움을 사탄의 지배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 다. 더구나 이와 마찬가지로 마태는 사탄이 자신의 약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세상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 나라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반대에 직면하여서도 지상에 설립되어야만 한다 는 마태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4장 마태의 교회 이해

1. 제자들의 본질

마태가 그리고 있는 에수의 초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예수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독특한 관계이다. 하나님은 다른 인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방식으로 예수의 아버지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는 그 어떤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관계이다. 하나님은 다른 인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방식으로 예수의 아버지이다. 마태는 자신 의 복음서 전체에 걸쳐서 제자들과 상호 작용하는 분으로서 예수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의 독특성과 그리고 서로 형제들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밀접한 관계를 동시에 강조하기 위하여 고심하고 있다.

마태는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탁월한 의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더 나은 의를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자들과 교회에게 보여주는 우수한 모범이다. 그러나 비롯 이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마태는 자 신의 예수상에 있어서 이러한 측면이 결코 예수의 유일성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2. 마태의 교회

마태는 자신의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지배가 임재해 있다고 선뜻 단정짓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이탈 된 많은 사례들을 지적해 낼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여 그는 자기 교회가 사람의 아들 예수에 의한 때의 완성과 미래적 하늘나라의 출범에 주의력을 정면으로 기울이도록 환기시키고 있다. 마태가 이해하듯이 하나 님을 들리우신 아들 예수의 교회는 그 존재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에 의해서 특징지워지는 종말론적 하나님 의 백성이다. 하지만 현재에도 교회는 예수에 의해서 수행되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살고 있으며, 민족들에게 그 나라의 복음을 선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영역에 들어오도록 그들을 초대하라고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공동체 성원들은 종말론적인 경고과 권고를 통하여 현재에 있어서 미래적 그 나라의 하나님과 직면하게 되는데, 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그들을 윤리적으로 자극시켜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할 것이며 이로써 생명의 상 속자들을 되게끔 만드실 것이다.

3. 마태의 상황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마태복음을 시리아의 도시 안디옥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다. 저작연대에관하여 그들은 주 후 85년 내지 90년으로 잡고 있다. 마태의 공동체가 사용한 언어는 거의 확실히 희랍어이다. 예수가 율법과 장로 들의 전통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태도는 마태가 강력한 유대적 그리스도교인 지지자들을 위해서 글을 썼다는것을 제안해 주는 또 다른 요인이다. 마태의 교회가 강력한 유대교 공동체와 가까이 있었다고 한다면, 마태의 교회는 유대교 회당연맹에 속한 "갈라져 나간 집단"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마태의 교회의 위치는 유대교 안이 아니 라 밖이었다. 몇몇 요소들이 이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우선 첫째로, 마태는 마가나 누가보다 더 철 저하게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이스라엘 군중과 그 지도자들로부터 분리된 집단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태가 그 들의 회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즉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신의 공동체를 하나의 기관으로서 그리고 기구적인 자치단체로서 힘차게 변증하고 있는것은 그의 교회가 이미 유대교와 결별하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저자 마태는 밝혀징?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아니오이다 때로는 마태복음이 한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한 학파의 산물이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한 개인의 저작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저 자가 유대교에 대해 이른바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그가 70인역 성서를 사용하고 있고 특정한 셈어 단어들 및 그 밖의 용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그리고 복음서 내에는 전승과 편집 사이의 관계가 추정되고 있다는 점 에 기초하여 이 복음서 가 이방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저작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 다수의 학자들은 저자를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며, 또 이 저자가 랍비적 훈련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그의 신학적 강조점들 중의 많은 점들과 그의 저술이 지닌 지식 체계적 구조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 로 아마도 저자 마태를 가장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는 희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만인의 구 원을 위한 선교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랍비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거의 확실하게 추정되는 그리스도 사후 제2시 대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이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 그는 동료 신도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 기 위하여 하늘나라의 복음을 기록된 형태로 선포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서 명시하고 있으며,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예수님과 관련시켜서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말해 준다. 비록 마태 자신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저서 뒤로 깊숙히 몸을 숨기고 있지 만 그가 전 세계 교회에게 남긴 선물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에로 초대받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종은 종치는 자의 힘만큼 울린다는 예술적 화두는 신학의 여정에서 매우 절실히 깨닫는 의미이다. 성서는 단순한 문자 이상이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바울이 있고 마태가 있다. 하지만 예수와 바울과 마태가 오늘의 나의 자리에서 생동하는 존재로 역동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작업은 그리 수월한 작업이 아니다. 신학은 바로 예수와 바울과 마태가 오늘의 이 자리에서 살아숨쉬게 하 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희미한 지평에 서있는 마태의 자화상을 매우 구체적으 로 그려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편집비평적 시각에서 마태의 신학적 메시지와 그를 둘러 싼 공동체와의 문제, 그리고 여러 기독론적 문제들을 점검해 나아가고 있다. 특히 마태의 하늘나라 에 대한 이해(3장)는 하나님의 통치의 경륜과 종말의 깊은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한 귀한 장이 되 었다. 또 하나는 성서비평학에서 간단하게 배웠던 편집비평의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 을 만나면서 기자의 의도에 분명한 인식을 얻게 해주는 점을 발견하게 되고, 편집비평의 방법론의 유용한 차원을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마태의 신학을 이렇게 새롭게 만났으니 앞으로 도 그의 신론 그리스도론 교회론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면서 그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야 하겠다.

1997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