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erwegs zur Theolo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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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전 철





쥴리아 크리스테바 | 사랑의 역사



 


 
1. 사랑의 찬가

1.1.사랑의 언어활동은 문학이다.

1.2.사랑의 체험이란 이동되고 다시 시작되고 되풀이되면서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완전히 죽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되살아나는 조 건이 되어 분석받는 자의 일생 한가운데 조용히 자리잡는 것이다.

1.3.욕망과 갈망을 모두 소모하고 희생시키는 사랑의 감정으로, 우리는 너무 아픈 우리의 고뇌를 타자에게 지불해야 되는 것은 아닐 까?

1.4.사랑이란 그 의미가 끊임없이 이동하고 방황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1.5.사랑의 실현은 언어활동의 실현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1.6.사랑이란 지나고 난 후에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대격변이다. 일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다.

1.7.사랑이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지난 일이라 할 지라도 이러한 상처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1.8.행복하고 조화로운 이상적인 사회를 꿈꿀 때는 사랑을 바탕으로 그런 사회를 세운다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나 를 흥분시키고 동시에 나를 초월하며 나의 권한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1.9.사랑이란 <나>가 예외적으로 굉장한 것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지닐 수 있는 시간이며 장소이다.

1.10.<내가 완전히 나의 리비도를 극복했을 때, 나는 '인간들의 사랑의 생'에 대해서 쓸 것이다.>

1.11.사랑은 우리 리비도의 실현이며 실패이고, 또한 가장 부조리하며 가장 숭고한 것이다.

1.12.타자를 향해서 문을 연다는 것은 종espeoes의 진보와 각 세대의 성숙과 각 개인의 역사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주목한 바 있다.

1.13.정신현상은 타자와 연결된 열린 체계이며, 정신활동은 이러한 조건 아래서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

1.14.사랑의 결과는 재생이며 부활이다.
 

2.프로이트와 사랑, 치료중의 불안감
2.1.<인간의 자아는 상상적 연관을 토대로 형성된다>고 라깡은 말한다.

2.2.사랑의 동일화, 감정이입Einfuhrung(타자의 감정들과의 동화)은 프로이트의 매서운 명철성 앞에서는 광기와 같은 것으로 나타난 다. 다시 말하면 자기 고유한 판단력을 포기하는 무리들의 집단적 히스테리의 요인으로,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자아의 이상에 떠맡겼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그 현실 인식을 잃어버리게 하는 최면상태로 나타난다.

2.3.눈 먼 사랑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 대상은 자아의 이상이었던 것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2.4.문학작품은 정신분석이 말하는 우울증이며, 우울증 상태에서 일어나는 정신현상의 쇠퇴와 싸우는 증거이다.

2.5.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체의 활동이 아니라 자아의 본질적 활동이다.

2.6.감정전이는 치료중에 교환된 언어의 기표signifiant에 이질적이고 충동적인 차원을 새겨놓는다. 감정전이는 표현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것을 기표에 떠맡기고 담론의 가장 정확한 접합 행위articulations(문체, 문법, 음성학)를 고려하면서, 환각과 밝혀낸 모든 이야 기를 그리고 담론의 비정상적인 것(과오, 부조리)들이 가르쳐주는,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가로질러 가면서 기표를 해독하도 록 요구한다.

2.7.사랑의 대상은 주체의 은유이다. 다시 말하면 주체를 형성하는 은유, 주체의 <일체가 되는 모습>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자의 극 히 사랑스러운 부분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그 모습이 담겨진 상징적 약호 속에 이미 주체를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2.8.미안하지만 라캉의 이론은 사양한다!

2.9.욕망의 환유적 대상, 사랑의 은유적 대상, 욕망의 환유적 metonymique 대상은 환상적 이야기를 지배한다. 사랑의 은유적 대상은 환각의 결정 현상을 그리며 사랑의 담론을 미화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

2.10.주체sujet는 말하는 타자, 화자로서의 타자인 이상적인 대상과 동일화될 때만 존재한다.

2.11.<줄리엣은 태양이다>라고 로미오는 말한다. 그리고 이 사랑의 은유는 로미오가 정확히 그의 사랑으로 다시 구성시킨 타자들의 상징적 공동체 속에 영원히 있기 위해, 그의 육체를 죽음으로 바치는 사랑의 상태 속에서 본 눈부신 아름다움을 줄리엣에게로 이동 시킨다.

2.12.플로티누스 이후, 이론적 사고는 빈 지대를 주제로 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재현되고 있는 빛의 원천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들었 다.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고 이상화에서 이상화로, 완성에서 완성으로 치달으면서 우리가 빛과 대등해지기를 갈망하는 그 빛을 향해 서 달려들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빛을 바라보면서 숙고한다(In Lumine tuo vudebimus lumen). 이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 정 신병 환자들은 우리가 구축하고 말하고 믿게 하는 표현체계들이 이 빈 지대 위에 자리잡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다. 재현 할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인 제3자의 덕택임을 알지 못하고 또, 비어 있다는 고통 때문에 죽음의 애도를 표한다. 그러면 그 옛날에 죽은 어머니에게 사로잡혀 있는 이 환자들은 가장 과격한 무신론자들인가?

2.13.나르시시즘과 그 이면인 빈 지대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허약하고, 가장 원초적인 죽음에 대한 충동의 교묘한 형성이다.

3.남성 성욕의 편집광적인 에로스, 숭고한 에로스
3.1.각자는 자기가 새겨진 조각tessere을, 보충해 줄 부분을 계속 찾고 있는 것이다.

3.2.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사랑할 것이다. 즉 그 사랑의 대상은 결핍된 대상이다. 그러면 이 대상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아 름다움이다. 아니, 아름다움에 의해서 창조되는 힘이다. 사랑은 창조하는 다이몬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와 작품의 결여를 느끼고, 이 것들을 찾고 있는 철학자는 그가 창조자인 한 사랑하는 자이다.

3.3.웃음이란 남성 성욕이 체험하는 두 지대의 합synthese이다.

3.4.근본적으로 원래 여성적이라고 하는 마조히즘은 사랑과 증오가 동화되는 자가 잘 알고 있는 남성상에 대한 복종이며, 또한 자기 의 어머니가 아닌 <진정한> 여인 - 수동적이고 거세되고 남근상이 아닌 - 이 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남근상에 복종하는 것이다.

3.5.연극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해결될 수 없는 우리의 사랑들은 소위 짓궂은 해결책만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추악한 것이 숭고한 것 으로 변하고 고통과 감미로움의 전 지대를 체험한다. 적에 대항하는 최고의 보장을 .

4.신성의 광기, 그 여자와 남자

4.1.사랑은 재현될 수 없는 것을 상관물로 지닌다.

4.2.하나의 은유, 그리고 단순한 환기, 말의 몸짓은 전체의 의미론적 힘을 지닌다.

4.3.사랑이란 어휘는 욕망과 신의 결합을 신성시한다.

5.나르시스, 새로운 정신착란

5.1.연금술의 자료집들과 신비 철학자들은, 감각세계란 나르시스적인 오판에서 결과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 오판으로 인간의 원 형인 자가 자기자신의 반영에 몰두되어, 결국은 자기의 그림자 속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5.2.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사물들을 향한 영혼의 눈이다.

5.3.사랑으로 정의되는 것, 그것은 빛의 확산이며 영혼이 바라보고 사랑하는 하나로부터 비쳐지는 반사이다.

5.4.자기 자신이 지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응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5.5.나는 내 속에 있는 신적인 것을 우주 속에 있는 신적인 것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5.6.이미 이성으로 충만한 현자는 타자들에게서 발견한 것을 자기자신으로부터 끌어낸다. 그의 응시는 자기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는 외부의 사물들과 합체되고 분리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으로 향하고 자기 속에서 모든 사물들을 찾는다.

6.우리의 종교, 유사체
6.1.나르시스는 사랑의 원동력이자 울타리이다.

6.2.사랑이란 다시 회복하고 불러일으키고 끊임없이 활기를 불어넣는 데 필요한 유사체이다. 나를 닮은 자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대상이 밑바닥까지, 증오가 표면으로 드러날 때까지 그 대상을 애체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사랑의 증오화를 본다. 이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믿는 자도, 우상숭배자도, [주의, 학설의] 대가도, 신자들도, 환멸에 젖은 자들도 아니다. 나와 나의 유사체와의 대결(monos pros monon)인 나르시스는 자신을 초월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괴로워하지 않고 나르시스는 일시적인 거미줄같은 투명한 사랑의 집을 짓는다. 만일 나르시스가 격정이나 황홀을 체험한다 해도 나르시스는 낭만적인 극적 감흥 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흥분에 들뜨는 포르노도 아니며 불행하게 실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환멸을 느꼈지만 의기소침해지지는 않는 나르시스는, 프로이트 이후로 자신을 어떤 과오나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즉 자신을 무한에 대한 이정표로 삼는다. 무매개 적인 상징적 관능성이 그 이정표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전자비디오의 화면에서처럼 구성-분해로 이루어지는 영상인 사랑은 순간적이지만 영원한 것이다. 종교적 사랑의 종말일까? 심미적 사랑의 회복인가, 심미적 사랑의 개방인가?

6.3.감미로운 이 순간 이전에 나는 나를 몰랐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할 줄도, 나를 만날 줄도 몰랐다!

6.4.나는 나의 본질에 대해서만 흥미롭다. 다른 모든 것은 부재일 뿐이다.

6.5.글쓰기는 덧없는 것이지만 간절한 자유의 외침이다.

6.6.시인은 나르시스의 허울을 통해 본질적이고 안정되며 조화를 이룬 진짜 형태를 보는 능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천국을 손에 쥐 고 있는 사람이다. 파렴치하지만 단호하다. 눈에 비핀 표면에 몰두되지만, 또한 진실에도 몰두된다.

7.신은 아가페다
7.1.아가페는 대가를 치르지 않으며, 선택이라기보다는 관대한 아량이며, 엄하지 않으면서 가정적이고 불을 밝혀주는 아버지의 자격 을 갖춘다. 부도덕한 자들을 위한 사랑이야말로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7.2.내 육신이라는 덮게로부터 벗어난 후에 양자로 삼아 준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는 통합된 자기를 영광되게 함으로써, 아가페는 통합된 주체의 복합공간으로서 정신공간을 구축한다.

8.사랑하는 자아는 존재한다.

8.1.나의 말들이 당신들을 즐겁게 해준다고 생각한다.(성 베르나르)

8.2.본능적 사랑은 우리를 신과 대등하게 하고 우리의 위대함을 깨닫는 가운데 우리 자신을 알게 해준다.

8.3.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는 자이다.

8.4.사랑은 아픔이다.

8.5.affect란 즉흥적인 성향, 어떤 자에 대한 마음의 상태 그대로를 의미한다.

8.6.인간들이 빠지게 되는 가장 나쁜 악들 중에서, 사도가 뽑고 있는 것은 사랑하는 행위의 결핍이다.

8.7.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들의 원인은 인간 밖에 있다. Ipse dat occasionem, Ipse creat affectionem. (12세기)

8.8.사랑의 행위들은, 간단히 말해 선천적으로 우리들 속에 있다. 이것들은 우리 고유의 본성으로부터 오고, 이것들을 완성시키는 것 은 은총으로부터 온다. 은총은 창조행위가 우리에게 준 것 이외의 것은 조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망이란 조정된 사랑의 행위들일 뿐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8.9.이 네가지의 행위, 사랑, 기쁨, 무서움, 슬픔이 없는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자들에게는 이것이 수치이고, 어떤 자들에게는 영광이다. 결국 사랑의 행위가 잘 정화되고 정돈되면 덕행의 왕관을 쓰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혼란해지면 난잡하고 타락이며 치욕이 된다.

8.10.<욕망이란 갖지 못한 것을 탐욕하는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rerum absentium concupiscentia)

8.11.황홀경ravissement이라는 어휘는 육체를 떠나는 영혼의 이동을 의미하고, 또한 난폭하고도 모순된 흥분의 집요한 힘처럼 동요가 이는 육체가 짊어져야 되는 무거운 짐을 가리킨다.

8.12.<어쨌든 우리는 육체로 만들어졌고 또한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정욕이나 사랑이 육체에 의해 시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베르나르)

8.13.베르나르는 신의 사랑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가진 감각으로써 시각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킨다.

8.14.<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아니면 누구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베르나르)

8.15.<얼마나 난폭하고 탐욕스럽고 격렬한 사랑인가! 사랑은 자기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모든 것에는 관심이 없으며 모든 것을 경 멸하고 자기자신에 만족한다! 사랑은 질서를 뒤흔들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만족, 이성, 순수, 조심성, 분별은 꼼짝없이 복종하고 굴복당한다.> (베르나르)

8.16.<인간의 존재는 사랑의 존재이다> (시토 수도회)

8.17.사랑은 선 속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용서되고 허용된,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힘의 발현이다.

8.18.에고는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존재할 수가 없다 .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8.19.사랑하는 자아는 존재한다.

8.20.<내 말들에 너희들이 매료되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성 베르나르).

9.사랑하는 이성, 혹은 자기 고유한 것의 승리

9.1.<모든 사람들은 선이 자기 고유의 것이기 때문에 선을 사랑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9.2.<모든 사람은 이 사랑하는 존재를 자기 고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온 힘을 다하여 이것을 지킨다> (토마스 아퀴나스)

9.3.<나는 사랑받는 자로서 존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기 위해 사랑한다> (중세의 사색가)

9.4.우리와 타인의 유사성으로 인해 우리는 타인에게 접근할 수 있다.

9.5.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할 것이다(secut teipsum)

9.6.존재한다는 것은 선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욕망을 품는다.

9.7.자기 고유의 선으로 접근하지 않고는 신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자기사랑 없이는 신의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며, 결국은 타자들에 대한 사랑도 없다.

9.8.이성은 사랑하는 이성이다.

9.9.영혼은 타자들과는 다른 존재자를 전제로 하는 예외적인 존재이며, 그에게 모든 존재를 만나는 일이 부여되었다.

9.10.영혼 속에는 인식하는 힘과 갈구하는 힘이 있다. 존재와 지식의 일치는 진실vrai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9.11.타자를 위한 사랑의 동요는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선이어야 한다.

9.12.사랑은 될 수 있는 한 사물들의 결합을 유도한다. 이런 이유로 신의 사랑은 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인간이 자기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인생을 살도록 한다.

9.13.<신으로 향하는 사람의 지적인 사랑은 신의 사랑 그 자체이다(Mentis amor intellectualis erga Deum est ipse Dei amor)> (스 피노자)

10.돈 후안, 혹은 지배하는 힘을 사랑한다.

10.1.돈 후안의 페러독스는 중세기 말의 휴머니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 결합하는 즐거움, 애착의 결핍, 금기에 반항하 는 웃음들은 그를 휴머니즘적인 도덕에 부합되지 않는, 내재성 없는 존재로 만든다. 비록 넓은 의미에서 그에게 부여하는 무신론을 담보로 하고는 있지만, 자유분방이란 삶을 존재의 한 형태로, 놀음으로, 희열로 만들려는 갈망이 아닐까? 자유분방은 인생을 예술로 만들려는 굉장한 야망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대상도 없이 <좀 나중에, 혹은 영원히> 무한정한 실현의 몸부림으로, 일시적이고 영원 하게, 온힘을 다해 정복하는 남근적인 힘인 돈 후안의 유혹은 단지 예술의 역학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닐까?

10.2.자유란 어떤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놀이이고, 주장이라기보다는 자유로움이다.

10.3.신화 속의 숨은 의미를 밝혀내기 위한 유혹, 그것은 승화이다.

10.4.죽음의 힘으로서의 법, 죽은 자의 힘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초월할 수 없는 것이며, 공동체와 공동체의 안정, 그리고 공동체의 억압에 대한 지고의 보장이 되고 있는가를 목격하면서 실망했을 것이다.

10.5.돈 후안의 희열은 쾌감보다 우위에 있다.

10.6.자신의 아내는 꿈꾸는 여인으로 남기고, 혹은 아무도 어머니를 정복하지 못했으므로 다른 모든 여인들을 정복하도록 아버지로부 터 물려받은 아들인가?

10.7.<여자를 멀리하라고! 미친놈! 내게는 빵보다 공기보다 더 필요한 것이 여자라는 걸 모르나!> (돈 후안)

11.로미오와 줄리엣, 사랑과 증오의 한 쌍

11.1.사랑은 간통이다(드니드 루주몽).

11.2.사랑하는 한 쌍은 법 밖에 있으며, 법이란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다.

11.3.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사랑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기보다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1.4.일상을 깨는 위반행위가 사랑을 끓어오르게 하는 기본 요건이 되고 있다.

11.5.조각난 너의 사랑받은 육체로부터, 나 자신과 나만으로 이루어진, 전체를 이루는 완전한 하나, 한 쌍이 되기 위해 너의 상징적 실체를 파기시키라!

11.6.로미오, 그는 <이름이란 육체의 음란한 부분처럼 음란한 것이며, 또한 그런 이유로 이름은 욕망의 근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어느 망측한 곳에 / 내 이름자가 들어 있는 거요? 어서 말씀해 주시오. 이 밉살스런 집을 부숴버릴 테니까요. In what of theis anatomy / doth my name lodge? Tell me that I may sack / The hateful mansion"

11.7.사랑이란 가장 이성적인 광기이며, 게다가 난폭하고 거칠며 격렬하다! 사랑은 가시처럼 상처를 낸다.

11.8.사랑의 감정 그 자체 속에 심오하게, 보다 열정적으로 내재하는 증오의 정재가 문제인 것 같다. 대상과의 관계, 타자와의 관계에 서 증오는 사랑보다 더 먼저 있었던 것 같다. 타자가 나와는 다르게 보일 때부터 타자는 내게 있어 이상한 것이고, 거부된 것이며, 혐오감을 일으키는 가증스러운 증오이다.

11.9.이성 혹은 동성의 커플은 어린이와 부모들 사이 사랑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던 그 잃어버린 천국 - 그러나 아마도 그 천국은 그 저 갈망한 것일 뿐 현실 속에서는 결코 알지 못했던 ? - 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유토피아적 놀음에 내기를 거는 것이다.

11.10.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물론 열정 속에서, 고통 속에서

11.11.사랑은 나르시시즘을 차지한다!

12.눈물 흘리는 성모
12.1.신성시된 여성성feminite의 재현이 여인의 분만가능maternite 속에 용해되는 문명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12.2.기독교는 가장 정묘한 상징적 구축물이다. 여성이 그 속에서 투명하게 비쳐지는 한, 분만력으로 권리를 확보한다.

12.3.어머니의 나라와 비유되는 평안함은 신의 사랑이 만들어지는 초석이 된다.

12.4.<죽음은 이브에게서 오지만, 삶은 성모 마리아에게서 온다> (성 제롬)

12.5.<성모 마리아에 의해 뱀은 비둘기가 되고 우리는 죽음의 쇠사슬에서 해방된다> (에러나에우스)

12.6.마리아는 인간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신의 어머니로 선언될 수 있다.

12.7.어머니란 고토의 자국을 지니며, 고통에 짓눌려 있다.

12.8.성모 마리아라는이름 아래 여인과 신이 합해져 이루어지는 완성은 죽음을 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2.9.나라는 삶과 죽음 속에서의 괴상한 생의 의식.

12.10.어떠한 어머니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 영원성과 그녀는 약속되어 있고, 이 영원성과 관계할 때 모성적 헌신이나 희생은 가소로운 것일 뿐이다.

12.11.나의 눈물을 미소로 만드는, 너의 탄생의 의미가 주는 침묵을 나와 함께 조용히 듣고 있다.

12.12.젖과 눈물은 11세기부터 서구문명에 들어와서 16세기 정상에 이르는 눈물 흘리는 성모의 전형적인 기호들이 된다.

12.13.사랑하는 자는 떠나고, 망각이 찾아오지만 성들의 향유는 남는다. 어떠한 아쉬움도 없다.

12.14.성적 충동을 억누르면서 내가 타자들에게서 품은 정욕을 절대타자에게 양도한다.

12.15.그녀가 갈망하고 때로는 앞지르기도 하는, 높은 곳을 향한 승화로부터 언어를 넘어서는 이름 없는 지대에 이르기까지, 동정녀 성모는 이곳저곳에 펼쳐지는 언어활동의 거대한 영역을 차지한다.

12.16.동정녀인 성모에 의해 전해지는 성모와 그 징표들은 예술 속에서 꽃핀다.

12.17.모성적 리비도가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죽음이라는 테마의 주변에서 그 최고조를 이룬다. 눈물 흘리는 성모는 남성의 육체에 관해서는 자기의 죽은 아들의 육체밖에는 모르며, 그녀의 유일한 감동적 표현이라고는 (젖을 먹이고 있는 마리아상들의 약간 은 방심한 듯한 부드러운 고요함과 대조를 이루는) 시체 위에 흘리는 눈물의 표현 뿐이다.

12.18.마리아의 고통의 경련은,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여성의 운명이 남자에게 면제시켜 주는 죽음을 여인의 몸 속에 지니는 시련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12.19.황홀한 어떠한 승리의 기쁨도 눈물을 뒤따르는 것이다.

12.20.불멸에 대한 모든 신념들은 여신인 어머니가 상당한 우월성을 차지하는 신화들 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12.21.헤아릴 수 없고, 규정지을 수 없는 분만하는 어머니의 육체.

12.22.여인은 떠돌이도 아니고 에로틱한 열정 속에서의 관능적인 남성적 육체도 아니다. 어머니란 끊임없는 분할이자, 한 육체의 분 리이다. 결국은 언어활동의 분리 - 언제나 항상 그렇듯.

12.23.옛날 모계사회의 거대한 문명의 언어들은 인칭대명사를 멀리 한다.

13.사랑의 아픔, 은유의 세계

13.1.<은유적인 것은 형이상학의 경계선 내부에서만 존재한다> (하이데거)

13.2.보이지는 않지만 추억 속에 있는 어떤 이상과 닮은 것을 사람들은 사랑한다.

13.3.사랑, 그것은 말해지는 것이다. 그것밖에는 없다.

13.4.그러므로 사랑의 문체styles가 사랑하는 상태의 본질적인 은유성을 다양한 역사적 실현으로서 우리 앞에 펼쳐보일 것이다. 2000 년전부터 공식화된 사랑의 약호들 속에 기록된 사랑의 모습들을 통해서 서구의 주체가 겪었던 고민을 문체로 변형시킨 것들로써, 그 것은 생의 또 다른 이름으로 펼쳐질 것이다.

13.5.문학적 체험이란 근본적으로 사랑의 체험이며 타자를 향한 동화작업으로 자기와 같은 것을 흔들어 놓는다.

13.6.우리들은 모두 은유의 주체들이다.

14.음유시인들, 우의적인 이야기로 씌여진 기사도풍의 숭고한 노래

14.1.저 세상의 찬란함을 사랑의 영혼 속에 빛나게 하는 데 일찍이 눈을 뜬 신비의 12세기, 신의 내재성을 축하하는 잔치인 완전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의미의 예술이다.

14.2.노래는 본질적으로 즐거움의 기표이며 기의이다. 노래는 객관적인 지시대상을 의미하는 행위를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쾌감이 다.

14.3.노래는 은유가 아니라, 숨김없는 쾌락의 흔적이며 동화의 몸짓이고 감추어지는 순수한 의미의 충동에 대한 갈망이다.

14.4.은유의 모호성 속에 생명에 의한 의미의 폭발이 일어난다.

14.5.사랑의 공간은 글을 쓰는 공간이다, 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15.순수한 침묵, 잔 귀용의 완성

15.1.<그는 그녀와 정을 나누었다. 그들의 영혼은 서로를 즐겁게 하고, 숭고한 결합을 이룬다>

15.2.모든 선은 신 속에, 신을 위해서 있다. 만일 내가 어떤 만족을 지닐 수 있다면, 오! 그것은 그가 존재한다는 것, 그는 영원히 존 재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가 나를 구한다면,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공적도 없고 훌륭하지 못하므로.

15.3.인간적이고 영웅적인 사랑은 신성한 사랑의 영상이다.

15.4.<감정으로 말들을 판단한다> (보쉬에)

15.5.욕동들과 부딪치게 함으로써 환멸로 가득찬 담론에다 의미를 재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 역학은 그 기반을 이루고 있는 나르시시즘을 다시 구축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현의 빛을 잃어가는 원인의 기저에는 바로 나르시시즘의 결핍 이 놓여 있으므로.

16.보들레르, 무한, 향기와 핑크

16.1.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역학>이다.

16.2.<신이 존재하지 않아도 종교란 역시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보들레르)

16.3.<모든 것은 수이다. 수는 전체 안에 있고 개체 안에 있다> (보들레르)

16.4.왜냐하면 <예술은 수이고, 수는 공간의 표현이므로>

16.5.상징은 무한과 상실로 인해 갈라진 두 개의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선을 긋게 해줄 뿐이다. 또한 무한의 축조자는 허무의 축조자 이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심연뿐만 아니라, 행동, 꿈, 추억, 욕망, 눈길, 후회, 미, 수 등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16.6.<나는 즐거움, 영광, 힘에 지독히 목말라 있다>

16.7.<신은 죄를 짓게 하는 기회, 다시 저지르는 죄의 기회이다> (보들레르)

16.8.창작이란 사물들의 내적 비밀의 관계, 교감 그리고 유추를 상상해 내는 거의 신비스러운 능력일 것이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절 대적으로 무한과 유사한 것이다.

16.9.눈앞에 펼쳐진 자연 속에서, 영적 세계에 대한 인상과 즐거움을 특징짓는 데 필요한 예증과 은유를 찾는 것이 항상 즐겁다.

16.10.신이 이 세상을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전체라고 말한 이후 사물들은 항상 서로의 유사성에 의해 설명되었다.

16.11.빈 지대와 무한 사이에 펼쳐진 우주 속에서, 사랑 또한 유추이다.

1995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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