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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사회학 입문


전 철


신약성서사회학 입문



 
1. 문제와 관점

1.1.사회학은 분명히 사회 내부에서 훈련된 방법으로 사회와 사회관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한 시도이다.

1.2.사회학자는 그가 숙고하고 있는 사회적 행동에 관련된 것을 실제로 이해하기 위하여 사회 관계의 표면 아 래를 면밀히 조사하여 왔다.

1.3.사회학자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서, 곧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상황과의 관계에서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 며 또 어떻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해석하는가를 관찰한다. 사회학자는 이것을 실재에 대한 인간의 사회 적 구성이라고 한다.

1.4.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다른 사람이 거의 공감하지 않고 또 우리 자신도 그것을 점점 더 믿지 않게 될 때이다.

1.5.스미스(Jonatian Smith)는, 1973년에 시카고에서 발행된 영향력이 있는 한 논문에서, 신약성서에 관해 사회 학이 설명할 수 있는 네 가지 분야를 간략히 설명하였다. 첫째로, 사회학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사실을 서술할 수 있고 또 초대 그리스도교를 그것의 사회적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둘째로, 사회학은 그리스도교의 사 회사를 구성할 수 있다. 셋째로, 사회학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이끈 사회적 힘과 그리스도교의 기초에서 유 래한 사회제도를 조사할 수 있다. 넷째로, 사회학은,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세계관을 창출하였으며 실재를 사회 적으로 구성하였는지, 그리고 그 세계관을 설득력 있게 유지시켜 준 구조는 무엇인지를 연구할 수 있다.

1.6.사회학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장과 발전을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이해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보여 준 권위의 유형, 그리스도교가 이끈 사회 계급 그리고 그리스도 교가 구체화한 사회의 구조와 이것이 미친 사회적 영향을 유념하게 될 것이다. 클리포드 힐이 지적한 것과 같 이,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지식에 또 하나의 차원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림을 새로운 빛에서보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2차원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3차원의 관점으로 나아가야 한다.

1.7.우리가 신약성서 전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신약성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1.8.하느님은, 세상을 초월해 계시지만 그분이 지으신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다.

1.9.뒤르껭은 종교를 어떤 실재하는 것에 대한 예배로서 취급한, 얼마 안되는 초기의 사회학자들 가운데 한 사 람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사람은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정신을 재창조한다 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뒤르껭까지도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하느님이 들어설 어떠한 여지도 남겨 두지 않 았다.

1.10.사회학의 진정한 주제는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다.

1.11.사회학자가 된다는 것은 두가지 다른 뜻을 가진다. 첫째로, 사회학자의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시 도하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학의 관심은 어떤 특정한 신념이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유효한지 무효한지, 사 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12.사회학은 인간의 행동에 대한 모든 설명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어떤 한 관점에서 정당한 설명을 제공한다.

1.13.모든 학문은 시험적이며 어제 발견한 것은 오늘에 와서는 흔히 거부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개정된다.

1.14.사회학은 여러 가지 운동들 사이에서 공통되는 줄기를 찾으려는 경항을 가지고 있다.

1.15.사회학자는 언제나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의 유형을 발견하는 것에 흥미를 갖는다.

2. 예수운동의 성격

2.1.그리스도교의 확장은 결국에 가서는 그리스도교가 로마황제의 종교로 채택되도록 하였다.

2.2.그리스도교는 그 뿌리를 갈릴래아에 두고 있다.

2.3.게이저는 사회학을 신약성서를 이해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게이저는 복음서들 을 분석해 가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에수의 약속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수의 추종자들이 반응 한 그 방식을 탐구한다.

2.4."인간만이 천년왕국을 위해 수고한다. 그것은 그가 인간, 즉 때가 이르면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 이다"(Kenelm Burridge)

2.5.사람들은 더 이상 불특정한 미래 속에서 어떤 천년왕국을 기다리려고 하지 않고 그것이 현재 속에서 동터 오기를 갈망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래에 평화를 가져올 천년왕국 운동들보다는 오늘의 기적 활 동과 결합된 천년왕국 운동들을 보다 더 기꺼이 환영한다. 대체로 천년왕국 운동은 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 속에서 또는 사람들이 그들의 현재 사회 질서에 만족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은 하늘의 가능성을 지상에서 약속한다. 이러한 약속은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조하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가설들과 태도들을 만들어내고 인간의 사회생활의 다른 모든 측면들을 새롭게 함으로써 나타나게 된 다. 이러한 새 질서는 현재의 질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운동을 이끄는 사람은 예언자이며, 그는 사람들의 열망을 분명히 말하고 스스로 새로운 체계에 따라서 살며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도록 돕는 사람이다.

2.6.시간에 대한 태도는 모든 천년왕국 운동들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적 요소이다. 곧 '천년왕국은 초역사적 미래를 상징하며 그 미래의 세상에는 인간 실존의 모든 한계들로부터 해방되고, 고통과 덧없음, 넘어 지기 쉬움과 죄에서 구속된 어떤 인류가 살며, 그리하여 그 세상은 단번에 완벽하게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2.7.천년왕국설은 어떤 사회 안이나 사회의 내부 구석구석에서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욕구가 있을 때 나타난 다.

2.8.천년왕국 운동이 가지는 본질적 요소는 그것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틀을 제공해서 그들이 그 속에서 그들의 사회적 경험을 이해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사회적 경험을 새로운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지상에서 아무 희망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희망이 제공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부유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2.9.예언자는 안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분명하게 말로 표현한다. 그는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들을 전혀 새로운 빛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렌즈를 제공한다. 예언자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또는 전혀 하느님과 접촉하지 못할 때에 하느님과 접촉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하느님께 부름받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2.10.예수의 사역은 성실성과 통차력 있는 가르침 그리고 온갖 종류의 기적들을 행하는 능력에서 확증되었다.

2.11.알버트 슈바이처는 예수를 하느님 나라가 긴급히 지상에 올 것으로 기대한 '미혹된 몽상가'로 보았다. 그 러나 예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그의 선교의 실패를 의미하는 에기치 못한 실수였다.

2.12.예수운동은 천년왕국운동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새로운 왕국의 도래를 급진적으로 선포한 메시아적 인 물이다.

3. 예수운동의 성장

3.1.예수운동은 초기에는 유다교 안의 갱신운동으로서 성공하였다.

3.2.사람들은 그들의 처지에서 불만을 품었고 그리하여 공격을 하려고 하였는데, 아마 하느님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하였을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공격적 느낌을 정반대의 감정으로 바꾸도록 그들을 가르쳤고 미워하는 대 신에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또한 그들에게 그들의 공격에 대한 대상(代償)을 제공하였다.

3.3.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팔레스틴 안에서 번창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에 그들은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들 에거, 전혀 다른 사회문화 속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헬레니즘 사회는 그들을 환영하였다. 그들이 헬레니즘 의 사회 풍조에 맞는 메시지를 갖고 있엇기 때문이다. 그곳은 평화로웠으며 점점 더 번영하고 있었고 문명이 번창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시대에 뒤진, 민족적 또는 사회적 차별들을 극복하는 새로운 힘들이 작용하고 있 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다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차별이 없다고 하는 복음의 내용은 그곳의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 것이었다.

3.4.예수는 단순히 그 자신의 특별한 개인적 자질 때문만으로 메시아적 인물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자 질과 그리고 그가 살고 있던 사회의 상황 때문에 메시아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의 새 로운 의미와 새로운 유형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마태기자가 '예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 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9,36)라고 기록한 바와 같다. 예수는 새 이스라엘의 참 목자가 되었 다.

4.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4.1.공동체의 생활은 수많은 기능을 한다. 공동체는 적어도 짧은 기간 동안은, 그 구성원들을 충분히 부양한다 고 보장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다 더 넓은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됨 을 확실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의 집단응집력은 그 집단의 믿음을 강렬하게 보강하는 동인으로 작 용한다. 또한 그 집단은 의식적으로 자신들이 하늘의 삶을 미리 맛보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상향적 종파 는 흔히 종말론을 매우 강조하며 자신들이 새 세상에 도래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4.2.베버는 세 가지 순수한 형태의 지배유형을 구별하였다. 첫째로, 카리스마적 지배유형이 있다. 우리는 이미 예수의 삶과 관련해서 이 유형에 관해 언급하였다. 둘째로, 전통적 지배가 있다. 이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고대의 족장들에게서 볼 수 있다. 셋째로, 합법적 지배라고 불리는 후대의 지배형태가 있다. 이것은 법률에 근 거한다.

4.3.인지적 부조화 이론은 우리가 믿는 어떤 것이 잘못되었음이 입증될 때 우리는 불안이나 부조화의 느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그 믿음을 포기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가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략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또 더욱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믿 음에 함께 하면 결국 그것은 옳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고이다.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우리 가 느끼는 불안을 덜어준다.

4.4.인지적 부조화 이론은 두 가지 방법으로 신약성서에 적용되었다. 그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적용한 방법이다. 흔히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땅 위에 곧 오리라고 철저하게 기대하였다고 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지 않았을 때에, 그들은 예수는 메시아다 라는 믿음을 - 이 믿음은 이전에 예수가 뜻밖에 사형을 당하였을 때에 이미 흔들린 적이 있다고 한다 - 포기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도 역시 믿도록 설득하려 는 시도에서 치열한 선교활동에 뛰어들었다.

4.5.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처음에는 단지 작고 하찮은 집단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적 인 집단은 아니었다. 그들이 초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동안에, 현실의 인간 세상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인들 이 살고 있는 사회적 네트웍을 사용해서 복음이 더욱더 퍼져 나가게 했다. 그들은 내향주의적인 갈릴래아 사 람의 종파이기를 그만두고 그 대신에 국제적인 개종주의적 종파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공유해야 했던 기쁜 소식 때문에 그리고 그들에게 닥친 반대 때문에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이방세계의 아주 다른 토양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5. 이방적 환경과 그리스도교 복음

5.1.로마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황제숭배는 종교적인 문제였다기보다는 시민의 의무였다. 황제는 로마제국의 일 치를 상징하였고, 따라서 그를 숭배하는 것은 종교적 제의의 형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복종을 표현하는 것이었 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 이상의 어떤 것 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국가신에 대한 그러한 공동의 숭배에서는 개인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 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정책은 개인주의가 성장하도록 만들었고, 그러자 또한 종교적 특성에 부합되는 개인적 요구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많은 다른 신들과 종교단체드이 늘어났고 , 그들이 정치적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그 들의 활동은 허용되었다.

5.2.그리스도가 한 일은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었다. 자유는 바울로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고 그것 은 그가 살고 있던 세계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많은 노예들은 그의 주인에게서 자유하게 되기를갈망하였으 며 그 자유를 획득하려고 열심히 일하였다. 그리스도의 일은 어쩌면 그 자유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 게 해방을 안겨 주는 일이었다.

5.3.변화는 복음의 본질적 핵심을 표현하느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이 함축하는 윤리적 의미에서 나타났 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것과 똑같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긴장이 계속 되었다. 복음을 믿는 데 필요한 조건은 현재의 사회질서를 전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급진적인 것이었다.

5.4.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고대 세계에 성공적으로 전파된 것에 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이유 들을 제시하였다. 사회학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성공하도록 만든 한 가지 전체적인 이유는 그 메시지가 이방적 환경의 성격과 필요에 아주 적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적합성의 네 가지 독특한 특징을 통찰력 있게 밝힌 학자로서 닷즈(E.R.Dodds)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배타성은 힘의 한 근원이었다. 둘?로, 역 설적으로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었다. 셋째로, 그것은 상속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세상에서 보다 나은 것을 상속받는다고 하는 조건부 약속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이익을 제공하 였다.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가족을 제공하였고 다른 종교들보다 더 깊은 공동체 생활을 제공하였다. 그것은 이 교적이고 개인화된 이방사람들의 필요에 들어맞았고, 따라서 매력적이었다. 그리하여 예수운동이 일어난 유다 적 환경, 시골의 환경으로부터 로마라는 이방적이고 도시적인 세계로의 변천이 이루어졌다. 신약성서에서 보면 예루살렘과 유다인들은 결코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로마 9.11). 그러나 그들은 이제 이교도의 도 시들 속에 사는,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보아도 서로 다른, 이방의 회중들과 활동의 무대를 함께 한다.

6. 로마의 사회제도와 초대교회

6.1.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존재이다. 성서에 따르면 사람은 처음부터 고립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하면 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창세 2.18). 사람의 본성이 이러한 사회적 측면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은 소외되거나 정서적으로 메마르지 않고 만족할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과 교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 그가 만나는 모 든 사람과 똑같은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현명한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 은 그의 다양한 요구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사회제도를 만들어 내거나 적어도 그러한 것에 참여한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가장 사적인 것은 결혼이고 가장 공적인 것은 국제사회이다.

6.2.도시 공동체:폴리테이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치제도는 그리스 사람들에게서 가장 번성하였다. 그들은 공화정치제도를 개인과 개인을 가 장 잘 결합시켜 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 제도가 이상적으로 실행되기만 하면 그들이 사는 사회는 지상의 낙원인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제도의 이상들 가운데 하나는, 정규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회의를 열어서 시민을 도시의 업무에 아주 민주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민들을 도시의 업무에 참여 하도록 부단히 자극한, 건전한 경쟁의식은 시민의 자발성을 보장해 주었다.

6.3.가족 공동체:오이코노미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로마 사회의 두 번째 조직은 가족이다. 가족은 신약성서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주요 제도 였고 또 그 당시의 교회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 가족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약 성서의 많은 부분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의 초기 논문에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기울인 필슨(Floyd V. Filson)이 말한 것과 같이, "가정 교회의 공헌을 부단히 염두해 두지 않으면 사도 시대 의 교회는 결코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6.4.가족공동체는 어떤 것이었는가? 힐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하나의 매우 포괄적인 그리고 사회적으로 응 집된 단위"였다. 매우 실제적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사회였다. 그것은 많은 수의 가정들로 구성되었고,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때때로 중심이 되는 가정의 수장의 권위아래 한데 묶여 있는 개인들로 구성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일반적인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같은 재산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가장이 가족의 구성원들을 부양할 수만 있으면 가족의 규모는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었다.

6.5.자발적 친교:코이노니아

로마제국의 많은 구성원들은 도시국가 안에서도 가족공동체 안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안전은 흔 히 사람이 사회 속에서 어떤 분명한 지위를 가지며 또 어떤 인격적 동일성을 가질 때에 보장된다. 가족은 특 히 이러한 목적에 매우 적합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개인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하였으므로 시간이 지 남에 따라서 어떤 새로운 친교의 형식이 발달되었다. 사람들은 자발적이고도 비공식적인 이러한 친교 안에서 보다 더 깊은 욕구와 정서적인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날도 여전히 그러한 단체들을 많이 볼수 있는데, 이러한 단체들의 주요한 기능은, 때때로 그것이 공표하는 목표와는 다르게, 친교를 제공하는 것이다.

6.6.오늘날의 교회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또 사람들이 ? 자신으 lekdid한 필요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재를 할수 있도록 해줄 조직들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 이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 그 조직들의 세부적인 것들과 형식들은 분명히 초대 교회의 그것들과는 다를 것이 다. 초대교회의 그것들을 우리가 되풀이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우리의 산업하된 세계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친교의 유형들에 대해 초대 교회가 그 당시에 가진 것과 똑같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친교의 유형들은 개인에게 있어서나 교회 전체에 있어서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으며 가능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들은 필연 적으로 어떤 중요성을 갖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피할 수도 없으며 무시해서도 안된다.

7.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지위

7.1.사회적 계급이라는 개념은 현대 사회학에 있어서 주요한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분석저 도구로서 사용되며 또한 사회의 변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고대 세계에 있어서 사회적 계 급들은 분명히 오늘날의 그것들과는 매우 다르며 그 개념을 신약성서와 관련시킬 때에는 신중히 사용해야 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세계에서는 상당히 엄격한 사회적 계급 체계가 존재하였으며 로마 제국을 부흥시 키려는 아우구스투스의 정책의 일환으로 그것의 구분은 강화되었다. 그 계급 체계의 토대는 재산보다는 출생 과 법적 신분이었다. 원로원 의원은 큰 부자는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사회의 계급 체계에서 정상에 있었으며 그의 신분은 확고하였다.

7.2.바울로는 전형적인 다르소 출신이었다. 그는 문명화된 그리스 세계에 정통하였고 여러 가지 언어에 능통하 였고, 또한 로마 시민으로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출신과 환경의 이러한 측면들은 그의 시대적 배경과 결 합해 이방인들에게 유대인 메시아를 선교하는 사람으로서의 독특한 은사를 그에게 주었다.

7.3.바우로는 그의 첫 번째 선교여행을 키프로스(Cyprus) 지방의 총독이 전향한 일과 더불어서 시작하였다. 그 러나 그때부터 바울로는 잇따라서 일련의 반대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흔히 반대한 사람들은 유다인들인데, 바울로의 안티오키아 선교와 이고니온 선교 그리고 리스트라 선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은 바울로 를 자신들의 영역에서 몰아내려고 한 기존 체제의 인물들과 결합되어 있었다.

7.4.초대 그리스도교를 어떤 하층 계급의 운동으로 보는 일반적인 견해르 부정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 반대 가 너무 극단적 방향으로 치닫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성격에 있어서 노동 계급의 운동 이었다기 보다는 중산 계급의 운동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고찰해 본 몇몇 이름들은 그러 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의 기술에 있어서 거듭 확인되는 것은, 이름과 행적이 기록 된 사람들은 대체로 그 당시에 중요하였거나 두드러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7.5.초대 교회의 구성원들에 관한 자료들을 신중하게 고찰해 보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혼합된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분명히 중산 계급이나 노동계급과 같은 어떤 한 계급에만 호소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사도 행전, 로마서 그리고 고린토전서는 모두 중산 계급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름이 언급되어 있으며, 그들의 도움 없었다면 바울로는 그의 순회 사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 회에는 이러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분명히 하층계급 출신도 많았는데 그들은, 노예이든 자유민이든간에, 교회 에 속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러한 사회적 혼합은, 새로워지기는 하였어도여전히 인간적이며 불완전한 교회 공 동체 안에서, 필연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직도 교회가 안고 있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적 성격은, 교회의 구성원들은 적어도 일반 사회가 세우기 좋아하는 그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적인 것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으로 남는다.

8. 초대교회의 세상에 대한 관계

8.1.신약성서 윤리라는 주제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학문분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영역으로 비껴들어가면서 다소 걱정스럽게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의 사회학적 특징을 철저하게 재검토해 보려면 신약성 서 기자들이 개인의 도덕, 사회 관계 그리고 정치적 관심이라는 주제들을 다룬 방식을 반드시 성찰해 볼 필요 가 있다. 초대 교회르 단지 그 당시 사회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어떤 유연한 공동체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적 믿음으로 말미암아 윤리적 사고와 실천을 채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몸담고 있는 그 사회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 게 되었다.

8.2.국가에 관한 신약성서의 교훈을 살펴보면 첫눈에 그 접근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행전에는 교회와 국가 사이의 대립을 말하는 곳이 있지만 또한 국가가 교회에 유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승인 하는 곳도 있다. 루가 기자는대체로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권력자들에게 그들이 교회에 대해 관대한 태도 를 취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하였으며, 그 결과 그는 '체제적 태도'라는 비난을 받았 다.

8.3.국가가 신이 부여한 그것의 역할을 훨씬 더 넘어서서 신성 그 자체를 떠맡으러 할 때 이러한 대조는 그 절 정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은 요한묵시록의 배후 상황인데, 그것은 아마도 도미티아누스의 박해가 한창일 때 쓰 여졌을 것이다. 요한묵시록에는, 국가의 통치자들이 바로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들을 두려고 하였으며 하느님을 모방함으로써 그렇게 하려고 하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8.4.국가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취할 태도에 관한 교훈이 기본적으로, 이상향적 반응이 아니라, 혁명주의적 반응 의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노예제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조종주의적 태도이다.

8.5.바울로가 초대 그리스도인 노예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라고 요청한 것은 일반적으로 알 려진 바와 같이 노예제 그 자체를,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그리 스도교의 재해석이 결국 로마 제국의 노예제를 끝장나게 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증거들을 대조해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그것이 보다 더 일반화됨에 따 라서 다분히 완화된 형식으로, 당시의 사회 구조들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으며, 그 구조들 가운데에 새로운 중 심을 형성해 주었다. 이러한 새로운 정신의 침투는 결국 당시의 낡은 구조들은 변경되지 않은 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8.6.예수 운동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 어떤 천년왕국 운동으로서 시작하였으며 처음 부터 그 제자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재산과 부로부터의 철저한 분리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사 람들은 재산에 대한 초대 교회의 교훈을 관심을 가지고 본다. 다시 우리는, 어떤 기자는 그 접근 방법의 어느 한 측면을 강조하고 다른 기자는 또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서로 다른 반응들을 찾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바탕에 깔린 기본적인 일치점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강조점들도 결국 서로 모순이 되지는 않는다.

9. 제도화의 과정

9.1.모버그는 조직이론을 철저히 익히고 미국의 교회들을 면밀히 관찰한 것을 근거로 해서 분석을 내놓았다. 첫째로 초기 조직의 단계가 있다. 이것은 교회의 가장 이른 시절, 그것이 출현한 시기를 말하는데, 교회의 구 조는 비교적 그 틀이 확실하지 않고, 그것의 생활은 강하고도 새로운 지도력에 중심을 두는 시기이며, 그것이 상당한 집단적 흥분을 일으키고 있을 때이다. 둘째로, 그것은 공적 조직의 시기로 옮겨가는데, 그 단계에서 지 도력은 그 운동에다 결속이라는 보다 큰 의미를 두려고 ?시도한다. 세 번째 단계는 최대 능률의 시기로서 나 타난다. 모버그는 이 단계를 증가하는 반응성과 관련시키는데, 그러한 반응성은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는 것, 감정주의가 보다 약화되고 안정성이 보다 확고해지는 것, 그리고 지도력이 정치가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 등으 로 나타난다. 이 단계 다음에는 제도적 단계가 따라온다. 이 단계를 따로잡지 않으면 결국 분열 떠는 쇠퇴라고 하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인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9.2.초대교회 생활의 몇 가지 면들에 관한 이러한 관찰은 제도화가 일어난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인데, 어 느 정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져 왔다. 그것은 조심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제도화에 관한 대부분의 증거 는 명시적으로 서술되기보다는 암시되었다. 어느 정도의 제도화는 명백하지만 흔히들 주장해 온 것만큼 그렇 게 명백한 것은 아니다. 제도화는 불가피하게 일어났지만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식으로 일어났으며 과거에 사 람들이 진술해 온 것보다 훨씬 더 미묘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특히 둔운 그 다양성의 정도를 과장하며, 종종 성서가 그 자체에 관해 말하도록 하지 않고 성서에다 어떤 직선적인 제도화의 틀을 부과한다. 직무와 관료제 의 성장, 예배의 고정화, 윤리의 제정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지성화가 표준화되는 신약성서 시대 직후에까지 제 도화의 과정은 멈추지 않았다. 몬타니즘이 출현한 것은 이러한 화석화의 경향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그렇지만 바울로는 특히, 제도화는위험스러운 것임을 알았으며, 장차 교회를 지도할 사람들이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격려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9.3.우리는 정기적으로 근본원칙으로 돌아가서 재검토를 함으로써만 제도화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며 우리가 얼마나 그 목표를 성취하고 있는가를 정기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장 알맞는 사람들이 지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가 성취하려고 하는 그 일에 적합한지를 정기적으 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혼합된 동기의 위험, 비현실적인 관료제도의 위험, 표준들의 감소 그리고 원칙 들의 화석화에 대해 부단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기에다 교회는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항상 깨어 있 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하느님은 그들로 말미암아 교회를 부흥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실 수 도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겸허하게 그리고 자주 생명과 활력의 근원이신 하느님 자신께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0.초대교회의 경험
10.1.스티븐슨의 말을 부연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을 회고하는데, 초대교회에 서는 그것을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로서 회고한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학자는, 이러한 믿 음을 침해하는 것 같으며, 그 믿음을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순전히 인간적인 경험으로 취급한다. 유일무이성에 대한 이러한 위협은 우리가 지식사회학의 통찰을 받아들이면 한층 더 심각한 것이 된 다. 스크록스는 지식사회학에 관해 신약성서 사회학에 관한 한 '사회학의 분야에서 유일하게 가장 중요한 접근 방법'이라면서 찬사를 보낸다.

10.2.버거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의 문화가 갖는 어떤 다른 면과도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언어, 수학, 법률 또는 그 밖의 무엇이든지 모두 인간이 기획한 것들이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 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한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세계는 혼돈의 상태가 될 것이다. 종교에 있어서 다른 점은 그것의 주제는 가장 궁극적인 문 제들에 관계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설명하며, 꿈이나 죽음과 같은, 인간 실존의 가장자 리에서 일어나느 불안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적인 매일의 생활을 우주에거 가장 궁극적인 권위와 관계 시킨다. 그것은 삶의 신성한 해석, 곧 삶에 관해 어떤 신비스러운 특성과 경외로운 힘을 갖는 어떤 해석과 관 계가 있다.

10.3.첫째로, 우리는 예수를 특별히 창조적인 개인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유다인으로서 받아들인 종 교적 세계관과 어느 정도 연속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것과 철저한 불연속성을 가지 고 있었다. 둘째로, 사람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럴 듯함의 구조'라는 관념을 관계시키는 것은 아주 쉬 운 일이라고 한다. 신약성서 시대가 끝날 무렵에 그러한 구조들의 중요성은 명백해졌다. 셋째로, 사람들은 흔 히 세계를 종교적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늘날 보다 신약성서 시대에 더 쉬웠으리라고 추측하는데, 초자연 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보다 더 일반화되어 있으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10.4.지식사회학이, 그것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하는 것과 같이, 종교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초대 그리스도교가 사람들이 스스로 구성한 어떤 종교적 해석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을 압도해 오는 실재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 다는 것을 의식하였다. 그들이 관여한 어떠한 구성도 그들이 무로부터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어 떤 실재에 상응하는 것을 단순히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떤 사회적 구성도 아니었으 며 어떤 인간적 발견도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계시, 곧 역사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하느님 자신의 계시에 근거한 믿음이었다. 그들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것과 같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믿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요한 1,14.18). 예수를 만나서 그들의 삶은 뒤집혔다. 그들은 정상적이며 사회적으로 인정 된 삶의 길에서 떠났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교회라고 하는 능력 있는 새 공동체가 세워졌다.






신약성서 사회학 입문을 읽고

 
I.
나에게 있어서 신학은 무엇인가. 신학은 신앙의 합리화이다. 신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신학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결코 독단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합리화는 열린 대화를 통하여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린 신학의 학적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신학이 학문으로서 존속하려면 다른 학문에 대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고, 다른 학문과의 열린 대화 안에서 합리화는 존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다른 학문과의 열린 대화에 대한 포기는, 자신의 信仰에 대한 포기와 다를 바 없겠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다른 세계와의 관련성 속에 서 합리화 해 나가는 시도가 우리에겐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과 사회학의 관련성 안에서 신약성서를 조망하려는 {신약성 서 사회학 입문}은 나에게 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하였다. 이 책은 사 회학이라는 학문적 성과들을 성서신학에 적용함으로서 성서신학에 대한 보다 풍 부하고 명료한 이해를 도모하였다. 나는, 신앙의 옷에 덧입혀진 성서에 대하여 이 책이 시도한 사회학적 조망을 통하여 성서의 메시지를 더욱 가까이 확보할 수 있 었다. 오히려 성서에 대한 해석력과 친화력을 사회학적 조망을 통하여 획득할 수 있었다.

II.

"사회학은 우리가 신약성서를 이해하는데 아주 큰 공헌을 할 수 있다. 사회학은,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발전을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 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이해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보여 준 권위의 유형, 그리스도교가 구체화한 사회의 구조와 이것이 미친 사회적 영향을 유념하게 될 것이다. 클리포드 힐이 지적한 것과 같이,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지식에 또 하나 의 차원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림을 새로운 빛에서 보도록 우리를 도와 줄 것이다"(이 책, p.16.)

저자가 클리포드를 통하여 언급하는 바와 같이 평면적이고 단순한 지평에서 운동 하는 그리스도교의 모습에서, 더욱더 생생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 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천년왕국 운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방식은 복음서 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를 더욱더 입체적으로 갖게 하였다(이 책, p.34-52.).

또한 초대교회의 운동을 단지 신앙적인 차원에서만 국한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 라 초대 교회의 구성원에 관한 자료들을 고찰함으로서, 그것은 사회적으로 혼합 된 일련의 운동의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망을 열어주었다(이 책, p.136-144.).

III.

결코 신앙은 독단적일 수 없다. 결코 신학은 폐쇄적일 수 없다. 더군다나 신앙의 선조들의 뜨거운 가슴을 오늘 이 자리에서 보듬어 안으려는 시선을 가지고, 사회 학적 성과를 통하여 그들을 이해하고자 함에 있어서 사회학적 접근은 많은 통찰 과 새로움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신학을 사회학에 환원시키는 시도가 아니다. 또 한 사회학을 신학의 시녀로 삼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다. 사회학적 조망을 통하여 신학적 지평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야심찬 시도이다. 그리고 빛바랜 초대교회와 그리스도교의 유산을 오늘날 새롭게 복원하는 돋보기로서 그 시도는 소중한 가치 로 나에게 다가왔다.

1995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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