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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미래
- 클라우스 베스터만, 창조, 분도출판사 -



전 철



베스터만의 창조는, 구약성서신학을 통하여 의심없이 정식화되어지는 역사적 신앙고백(historical credo)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매우 신선한 지평을 제시 하고 있다. 그리고 베스터만의 시선을 통하여 전개되는 창세기와 창조에 대한 논 의는 여타 성서신학적 논의에 스며있는 색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주고 있 다.
성서신학은 성서의 바른 메세지를 열어주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신학의 주체는 신학자가 아니라 성서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제되고 고도화 된 신학적 사유가 응집된 성서신학적 관점이, 성서본문이 전하려 하는 메세지를 제대로 건져내지 못하는 경우를 신학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곤 하였다. 자명하고 굽힐 수 없는 성서의 사실에 대하여 과도한 신학적 의미부여를 시도하거나 전개 하는 성서신학적 혹은 교의학적 작업이, 오히려 성서에 대한 건전한 발상과 상식 적인 발견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사뭇 염려하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데 베스터만의 성서에 대한 이해와 신학적 정립은, 성서본문이 말하려 하는 전체 를 매우 일관되게 조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신학과 교리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는 것은, 일단 안전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유용함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베스터만은 우리가 성서를 대함에 있어서, 교회의 가르침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니 성서 전체가 말하는 바를 엿보지 못한다고 조언 한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전개하는 성서에 대한 - 구체적으로 창조에 대한 - 전 체적인 이해와 조감을 정갈한 어조로 전해주고 있다. 베스터만은 성서의 기록에 대한 협소한 해석이나 교의신학적인 작업에 의하여 왜곡된 해석을 넘어서서 창 조의 의미를 더욱 더 넓은 전망 안에서 발견하게 한다.

베스터만에 의하면,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 앞의 존재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존 재임을 강조한다(창조, p.31).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죄라 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빚어지는 실존적인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고, 오히려 세계 전체와 의 관련성 속에서 등장하는 차원이라고 해석한다. 이럴 때 하나님의 창조를 우리 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존을 아우르는 세계 전체와의 긴밀한 끈을 놓치면 안되 리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베스터만의 창조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통하여 우리는 예전에 만나보지 못했 던 창조설화와 닿아있는 세계 전체의 문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창조 의 목적은 인간만이라는 지엽적인 시야를 극복하게 하며, 오히려 인간을 통하여 세계를 온전하게 보존하여야 할 마땅한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다(p.81). 성서에서 보여지는 창조된 인간의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러한 사명 을 감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유지를 넘어선 생성력으로서 우 리의 젓줄이 되는 것이다(p.84).

그러나, 적어도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상은 영원한 생명의 낙원을 향해 전진하 는 모티브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삶의 과정은 바로 흙과의 연관 속에서 흙의 제약을 받으며 열린다. 성서에서 고백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은 아름다운 계절을 살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 안식을 얻는다(pp.120-121). 봄 의 기운이 대지를 아름답게 적시고 있건만, 친지와 고향 어른들, 그리고 주위의 수 많은 동포들의 죽음을 경험하는 계절에 서있는 즈음,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마 음은 어두운 그늘과 같은 무상함의 정서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헬라전통과 히브리전통의 만날 수 없는 지점이라는 추상적 도식의 놀음이 아 니라, 진실로 우리의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씨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인간의 덧없는 삶(p.125), 죽음을 외면할 수 없는 서글픈 운명, 먼 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한계라는, 지극히 어둡고 가난한 정조로 다가오는 성 서의 울림을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삶의 양분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피할 수 없는 사유의 자리로 베스터만은 우리를 몰아세웠다. 어쩌면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결여된 존재이다. 인간은 삶과 동시에 심연의 죽음을 모두 안고 살아가는 온전하지 않은 존재이다. 인간은 분명한 한계의 존재이다. 그 인간의 형세를 성서에서는 깊이 엿보고 진지하게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저 언어들의 무게에, 지치고 퀭해진 시선으로 베스터만의 창조 를 게속 읽어나가면서, 홀연히 새로운 빛이 다가왔다. 바로 인간은 실존 그 자체 인 것으로서,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에게 응답하는 존재로, 당신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p.197).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 인간에 대한 축복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사역하신다는 것이다. 창조와 구속은 지 금도 피조물 인간의 중심을 향하여 전진해 들어오신다(p.200). 그렇다면 우리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근원적인 창조의 음성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축복행위가 세계 전체를 향 해 흩쁘려지고 있는 장엄한 사건을 우리는 새삼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세 계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비로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자신을 비약하는 존재도 아니 다. 베스터만은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꽃인 아름다운 피조물이면서, 세계 전체 운명을 걸머지고 새로운 미래의 창조 사역을 감당하는 존재이다. 베스터만이 진지하고 깊은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는 저 신학적 인간론은, 어둠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피조물의 은총 을 만나게 한다. 동시에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몸소 전하라는 하나님 의 미세한 소리를 듣게 한다.

1997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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