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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스베르거 | 토마스 아퀴나스


전 철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도교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
Johannes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I, pp.540-607.





A. 인식

a) 자연의 빛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앙에 대해, 자연적인 지식을 새로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당장 알 수 있다.

b) 인식의 원천

아우구수티누스 반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지
토마스는 어거스틴과 학설, 즉 우리들은 영원한 근원 안에서 모든 것들을 인식한다는 학설과 대결한다. 인식은 영원한 근거들 안에 있다고 하는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신을 맨 먼저 알려지는 자라고 하는 명제는 분명하게 거절된다.

추상의 여러 단계
토마스는 우리들의 모든 지식이 생기는 데는 세 가지의 단계가 있다고 본다. 첫째 감각적인 지각의 세계, 둘째 수학의 세계, 셋째 형이상학의 세계가 생긴다.

원리들
모든 지식 전체의 보편적인 원리들은 존재개념을 인식하는 데서, 직접적, 직관적으로 밝혀지게 된다.

후천적인 것의 원인들
우리들의 사고는 개별적인 것으로부터 보편적인 것을 찾아낸다. 그런데 이 개별적인 것은 감각적인 인식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토마스에 있어서의 선천적인 것
이 모든 것들은 매우 경험주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험주의가 아니다. 토마스는, 감각적인 인식이 정신적인 인식의 유일하고 완전한 원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정신적인 인식이 감각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보고 놀랄 필요는 조금도 없다. 이러한 경험을 넘어서는 걸음은 능동intellectus agens이며, 이는 그의 인식론의 선천적인 계기이다.

토마스와 보나벤투라
보나벤투라에 의하면 인식과정의 맨 처음에 영원한 근거들이 있으나, 토마스에 의하면, 이 영원한 근거들은 인식과정의 맨 끝에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보자면 아무런 차이도 없다. 진리는 이 둘에 의하면 그 근거가 경험 자체 속에 있지않고 우리들에게 밝혀지는 본질연관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판단과 판단의 진리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종하고 있는 토마스에서 인식은 본질파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판단으로서 완성된다. 이는 사고와 존재의 일치veritas est adaequatio rei et intellectus를 의미한다.
그에 의하면 신의 정신은 이와 같이 규정을 하는 것이지,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재적인 사물들은 규정을 하는 것이요,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정신은 항상 규정되는 것이요, 규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정신은 예술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토마스에 있어서는 선천적 종합판단이라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토마스에 의하면 실체가 있고 우리는 실체를 안다. 즉 세계와 사물들이 그대로 감각적 및 정신적으로 통찰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모든 인식이 관조가 된다.

B. 존재

a) 실재적인 것(실재성)

미리 발견되는 것
존재가 정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정신에 의해 미리 발견된다고 하는 사실은, 고대와 중세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여기에서는 존재는 주관을 넘어선 것이어야 하며, 이런 전제에서는 실재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있으며 또 진리도 있는 것이다. 사물들이 정신을 규정하는 것일 뿐이다.

시간 공간적인 현실
토마스의 실재개념의 특색이란 구체적 개별적인 존재자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것, 토마스에게 있어서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뜻의 존재를 나타내는 제일실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형이상학적인 실체
토마스의 실재적인것에관한 파악이 결국은 이념의 입장에서 이해된 것이며 또 이렇게 됨으로써 존재에 관한 학문이 형이상학이 비감각적인 것에 관한 학문이라고 규정되기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 존재의 상태

창조된 존재
토마스에 있어서 창조는 다음과 같다. "보편적인 원인에서 전 존재가 흘러나오는 것"emanatio totius entis a causa universali이 있고 "그리고 우리는 이 유출을 창조라는 이름으로 나타낸다"et hanc quidem emanationem designemus nomine creations.
토마스에 의하면 사물의 본래적인 본질은 "가장 먼저 있는 것"per prius 안에, 즉 신 안에 있다.

관여
관여의 사상은 세계와 사물을 한 가지의 앞서 있는 것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려는 사고이다. 이 앞서 있는 것이란, 전체적인 것, 완전한 것, 사물들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으로서, 사물에 뿌리박고 있다. 즉 모든 존재자들은 반드시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인 것이다. 신은 그 자체에 의해서 있게 되는 존재 그 자체다.

초월자
존재 자체에 귀속하는 가장 보편적인 한가지의 상태는 역시 초월자이다. 토마스는 존재를 초월적으로 규정한 것으로서 하나, 참, 선, 사물 및 어떤 것 등을 들고 있다.

범주
토마스는 범주가 단순한 진술방식이 아니라 존재의 양식이나 존재의 단계라고 받아들인다.

가치의 단계
그에 의하면 존재에는 가치의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c)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존재원리들

실체
토마스의 형이상학은 실체 형이상학이다. 실체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것per se esse이라는 점이다.

제이실체 : 제이실체란 많은 개체들 안에서 동일한 것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즉 공통적인 본성이다.

질료와 형상 : 질료는 전혀 규정되지 않은 제일질료와, 어떻게든 규정되어 있는 제이질료가 있다. 질료는 그 자체로서는 현실적이 아니며, 형성된 것으로서만 현실적이다. 이것으로써 형상이 보다 근원적인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마스는 형상이란, 질료를 일정한 존재에 제한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현실태와 가능태 : 신은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것이며, 순수현실태이다. 다른 편에는 절대적인 가능태가 있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전체적인 존재가 가능성과 현실성이 혼합된 것으로서, 또 무라는 극한에서 무한히 완전한 것의 극한에 이르기까지의 것들이 계속해서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으로서 끼여 있다.

본질과 존재 : 신은 존재이나 피조물은 존재를 갖는다. Deus ist summ esse nulla creatura est suum esse sed habens esse. 신에게 있어서는 본질과 존재가 일치되고 피조물에 있어서는 본질과 존재가 분리되어 있다.

인과관계
토마스는 능동인들을 본래적인 원인causa per se과 우연적인 원인causa per accidens으로 구분한다.

목적론
목적은 능동인을 위한 원인이다. 왜냐하면 작용하는 것으로 하여금 작용케 하는 것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 목적은 진료는 질료이게 하고 형상은 형상이게 한다. 왜냐하면, 질료는 형상을 스스로의 목표라고 인정하고, 형상은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만 질료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세계 전체는 신의 모상이다. 이럼으로 모든 존재의 완전한 질서가 생겨난다. 질서사상이 토마스의 철학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C. 신

a) 신증명

운동에 의한 증명 : 운동은 경험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첫번째로 움직이게 하는 자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이며 이것은 신이다.

능동인에 의한 증명 : 아무것도 스스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이라고 부르는 맨 마지막 원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성에 의한 증명 : 모든 존재는 가능성의 존재이다. 그러나 우연적인 존재만 있다면 지금은 아무것도 없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존재한다. 결국 존재를 필연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신이다.

완전성의 단계에 의한 증명 : 보다 덜 완전한 것의 배후에서 최고로 완전한 것을 꿰뚫어 본다. 이 완전한 자는 <보다 많이> <보다 적게>라고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전제가 되는 척도이다.

세계 질서에 의한 증명 : 세계에는 질서가 있고 목표를 달성하게 하려는 노력이 있다. 이 합목적성을 설명할 수 있을 그런 최고의 지성이 있어야만 한다.

b) 신의 본질

신의 속성
신은 자립적이며, 모든 존재들 위의 존재, 절대적으로 필연적이고 완전한 존재이다.

존재 자체
신에게 있어서는 존재 자체가 그의 본질이다.

신개념에 관한 진술
토마스도 부정의 길을 통하여 신을 진술해야 하고, 신과 세계 사이의 공통을 유추하는 유비적인 신 인식이 진술의 요건이다. 그럼에도 유비는 이데아론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c) 신과 세계

무로부터의 창조
신 이외에 영원한 질료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신은 모든 것들의 원인일 수가 없다.

세계의 보존
세계는 처음만이 아니라 항상 신에게 의존하고 있다.

세계 통치
신의 개념으로부터 세계의 통치와 질서라는 개념이 나온다. 순수현실태로서의 신은 형상이며, 형상으 이데아이며, 이데아는 살아있는 정신이다.

세계 창조의 영원성
토마스는 세계가 영원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창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D. 영혼

a) 영혼의 존재

살아있는 물체에는 단순한 물체에 주어져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주어져 있음에 틀림없다.

b) 인간 영혼의 본성

토마스에 의하면, 영혼은 비물질적이다. 영혼은 하나의 실체여야만 한다. 영혼은 불멸한다.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다. 영혼과 신체라는 이 두가지 것으로부터 실체적인 통일이 생겨난다.

c) 영혼의 능력

토마스는 영혼의 여러 능력들을 영혼의 실체와는 실제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본다. 영혼의 능력들이란 인식과 욕구를 통해 영혼 밖에 있는 세계와 접촉하게 되고 이 세계와 영혼을 결합시켜 주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d) 인식의 심리학

토마스는 인간의 영혼 능력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은 이성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의지에 비해 지성이 우위에 있다고 본다. 토마스에게는 일종의 주지주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 영혼의 기원

토마스는 전이설과 출생설을 반대한다. 영혼의 자존성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영혼이 그 본질에 있어서 육체와 원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 한다면, 이 영혼이 육체에서 그 기원을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신이 영혼을 하나씩 창조하는 가능성 밖에 남지 않는다.

E. 윤리

a) 존재와 가치

선은 존재와 더불어 나타난다. 선은 존재와 동일하다. 즉 존재와 선은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인간도 이 존재에 속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의 선은 하나하나의 인간이 인간의 본성과 이념에 알맞게금 존재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다. 신은 우리들이 현제대로 있게 되는 그런 존재요, 우리들의 존재이며 우리들의 선이다.

b) 인격적인 선

근원적인 윤리의 원리는 인간성의 이성과 이 이성의 올바름 안에 있으며, 이성에 새겨져 있으며, 모든 인간들에게 알려져 있고 신의 가치와 진리에 참여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법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c) 행복

행복을 진리의 관조와 동일시하는 점, 즉 토마스는 신을 직관하는 것을 완전한 기쁨이라고 여긴다. 이 행복이라 하는 것도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높은 가치, 즉 윤리적인 가치 자체를 전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F. 법과 국가

a) 법

인간의 모든 법률은 그것이 진정으로 정의로우며 단순한 강제처분이 안되려면 자연법칙에서 이끌어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법칙은 이성의 첫번째 규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의 실증법은 자연법을 해석해 놓은 것이다. 실로 법률의 정의도 <법률이란 공동선을 위해 사회를 옹호하는 자가 공포한 일종의 이성의 질서다>.

b) 국가

토마스에 의하면, 국가의 기원은 인간의 본성에 있다. 그는 군주제를 가장 좋은 국가형태로 보나, 귀족제와 민주제의 여러 요소들을 뒤섞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가장 나쁜 정치 형태는 참주제이다. 또한 국가의 목적은 평화이다. 국가의 최고 목적은 인간의 영원한 목표 즉 신 곁에서의 정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국가보다 교회를 우위로 논다. 그리고 토마스에 있어서 국제법은 근본적으로 자연법이다.

cf. 토마스 아퀴나스 인간 / 영혼이해에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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