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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과 절기에 따른 구약설교집


전 철


장일선| 교회력과 절기에 따른 구약설교집


브니엘의 아침햇살
우리는 새해를 맞아 앞으로 남은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새해 첫 주일에 비취는 태양의 밝음과 따스함은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고뇌의 깊은 밤에서 야곱을 일깨워 주신 여호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 신다.

생명의 길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아의 법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사는 길이었다. 그러나 우리 기독 교인은 말슴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왜냐하 면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가 세상에 오신 것 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감격의 장소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 교우귿?에게 처음 행위를 잊지 말고 되찾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우리 역시 각자 벧엘의 감격을 잊지 말고 예배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다 시 찾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조직이나 관습, 심지어는 제의 속에 갇혀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여호아 홀로그램

구약성서에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으로 계시하신 여호아 하나님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 역사 위에 분명히 계시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 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복을 받을 수 있듯이 우리 기독교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말씀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수 강

주현절은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을 음미해 보는 계절이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사막과 같은 척박한 우리 의 삶이 살아나게 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주현절은 우리에게 선교의 사명을 일깨워준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부패하고 썩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새로운 생명을 움트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순절과 한국교회

이스라엘 백성의 40일 광야생활은 예수님의 40일 광야 시험기간과도 같다. 구약의 이스 라엘 백성 과양 이미지와 신약의 예수님 광야 이미지가 포개지면서 광야 시련의 의미를 부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광야의 시련도 이기셨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는 주님의 말씀을 믿기에 우리 역시 이 40일 동안의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시험과 수난 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이 기간 중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 를 따르는 이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부활에 함께 거할 수 있을 것이다.

허무의 극복

사순절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 받으시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고민하신 때를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떡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 도리임을 보여 주셨다. 우리 각자의 인 생에 많은 기폭이 있지만 밤하늘의 별을 우러러보며,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 고, 길 옆에 핀 민들레의 솜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한, 삶 자체가 결코 허무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먼데 계시는 하나님

예레미아의 소명은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였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이같은 예레미아의 소명을 다짐하며 먼데 계시 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하겠다.

하나님의 두 얼굴

인간은 비록 신 앞에서 지렁이와 같은 존재일지라도 결코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냐하면 우리의 고통이 그칠 날이 언젠가는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 님의 절규는 곧 우리 모두의 절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에수님의 수난을 통해 하나 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고난의 종

십자가는 예수 고난의 상징이며 동시에 우리 구원의 징표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만인 앞에 십자가를 높이 들어 보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임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라는 결단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

고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것을 기념하는 때이다.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당시 악이 판치는 사회에서 종말의 시간을 고대하며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당했 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그들은 비로소 악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동틀 것이라고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누룩 비유나 빛의 비유처럼 이땅에 임한 하나님 나 라에서는 지금 조그맣게 그같은 일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비록 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한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세워지기까지 우리는 그 날을 내다 보며 신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친 영생이기에 우리는 죽으나 사나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땅에서 결코 멸 절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그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온 세계 인류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할렐루야. 예수다시 오셨네.

공동체의 희생

우리 기독교인은 이같은 공동체 희생이 어떤 정치적인 구조나 사회 집단의 운동으로 일 어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슴에 믿는 각자의 믿음 안에서 이루 어지리라고 믿는다. 절망에 빠진 포로공동체를 궁휼히 여겨 내가 너희로 살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여호아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에수 그리스도를 보내 죽음의 권세에서 살려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활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복하며, 우리 역시 그 삶을 이어받는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치유의 기원

상처받은 공동체는 치유를 원한다. 호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감싸 주시고 그들을 죽음의 자리에서 살려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왜냐하면 여호아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고, 그들은 여호아가 요구하는 제의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여호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형식치레의 제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인애임을 보여 주었다. 오늘의 기독교인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부활이 될 것 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십자가가 없는 빈 무덤과 금면류관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 른다.

전통의 수립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가정에서의 종교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살펴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오늘가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는 것도 바로 이같은 신앙 전통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조상에게서 물려 받은 신앙을 후손에게 잘 물려줌으로써 좋은 신앙의 전통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나라사랑

역사 중에 나라의 힘이 없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외국인에게 짓밟혔던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이 시점에서 교회 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의 교회는 에스더처럼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잠잠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어려움과 희생을 각오해서라도 공동체를 살 리는 일을 위해 과감히 나서야 할 것이다.

느헤미야 비망록

느헤미야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와 거의 같은 시대의 사람 이다. 아테네 운명이 꽃을 피웠던 그리스 사회와는 달리 느혜미아가 다 꺼져가는 이스라 엘 민족에게 새로운 희망의 불을 붙여 주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존재 이유의 자존심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 피땀 흘리는 노력을 기울인 그때는 암흑시대였다. 그러나 이르사엘 백성이 한 민족으로 결속하게 된 원동력이 되고, 멀리는 기독교인들에게 까지 정신적인 유산으로 남게 한 느혜미아의 정신적 희생의 기록은 인류 역사의 어두움을 깨고 새로 비 취는 아침의 희망과도 같이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에 못지 않은 훌륭한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성령강림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이다. 교회 위에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율법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이방인들까지 포섭할 수 있었다. 성령은 예수 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담대하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방방곡곡에 흩어져,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 만들었다.

법궤의 오용

제헌절은 우리에게 법의 의미를 새삼 생각케 하는 절기이다. 우리는 왕의 법을 지키는 국민이면서 동시에 하늘의 법을 지키는 하늘 시민이기도 하다. 하늘의 법이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계명을 지키는 데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의 시대적 과제

엘리야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 의 음성을 들었다. 엘리아는 이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그에게 주어진 시대 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돌이키게 되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느 우리의 교회도 우 리에게 맡겨진 과제가 있을 것이다. 개인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나 혼자만의 일에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모두의 일을 위해 교회도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저울

모세가 해방의 노래에서 여호아의 구원행위를 찬미하고, 여호아가 용사시며, 또 그의 오른손으로 인도하심을 노래한 바와 같이 우리의 해방사건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약소 민족인 우리가 광복의 빛을 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바로 이 점 에 관해 해석을 달리하며 선배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지만 당대의 형편으로서는 이스라 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일본을 치시고 우리를 구해 주신 구원의 사건을 감격적으 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성서의 개혁 전통

개혁교회는 과감한 개혁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참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여호아 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며, 그 길은 과격한 모험과 개혁을 전제하는 길이다. 종교개혁주일 을 맞아 앞서 가시밭길을 헤쳐 큰 길을 뚫어 놓은 종교개혁자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광야의 시련보다는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안정희구의 타성에 채찍질을 하는 때가 되 기를 바래본다.

종교의 본질

미가나 욥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 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조건이나 흥정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은 미가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사람들에게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며, 또 욥처 럼 여호아의 이름을 찬송드리는 일이다. 종교의 본질이 단지 신으로부터 복받는 것이라는 물질적인 사고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기 대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그것은 곧 우리의 의무이며 또 특전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사

감사절은 우리 ?은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 바치며 감사해야 할 것을 요청하는 때이다. 우리는 다윗의 단순한 기도가 곧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라야 한다. 나의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줄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 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역경 속의 감사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바울 역시 감옥 속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 했을 때 그같은 말을 했다. 그러니 그 말은 위험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 가졌을 때나 갖 지 않았을 때, 남에게 무엇을 받았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를 막론하고 항상 말 그대로 범 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이같은 감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 기 위함일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행하신 하나님의 뜻이라"(살전 5:18).

주님의 오심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오신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강보 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했기에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 너희 하나님을 보라는 소리를 외칠 만큼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조상 대대로 섬겨 오던 여호아 하나님을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의 호소

이 성탄절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 시기 위함이었다. 여러 가지 위기설이 많이 나돌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약속대로 살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아모스의 책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호아의 크고 두려운 날

예수님께서는 이 어두운 세상에 의로운 태양으로 오신다. 동짓날부터 해가 길어지듯, 예수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가 태양 숭배자들의 축제일이듯이, 이제는 예수님께서 어두 움을 ?는 의로운 태양으로 우리들을 찾아오신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하듯 흑 암에 행하는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그가 여호아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에 그의 백성을 찾아와 화해와 평강의 복음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럼으 로써 우리는 그 크고 두려운 역사의 심판날이 임하기 전에 흩어진 마음을 바로잡고 여호 아의 이름을 경배하는 의로운 백성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복

에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단지 신약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창세기로부터 시작된 아브라함 후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마태복음의 족보는 곧 구약과 신약을 하나로 묶어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은 아담을 통해서, 노아를 통해서, 그리고 심지어는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새 창조 역 사를 이룩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새 시대의 도래

우리는 아직 옛 하늘과 옛 땅 즉 과거의 질서 체계 속에 묶여 있다. 세상의 지배자와 어두움의 권세를 쥔 자들이 주관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빛으로 이땅에 오시는 새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 스도를 따르는 기독교인들도 이땅에 어두움을 물리치는 작은 등불이 되어야 한다. 나는 비록 어두어도 아침이 올 것을 믿는다는 신념은 언젠가는 어두움의 세계가 완전히 걷히는 새로운 역사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기대하게 한다.

광야를 지나 약속의 새 땅으로

요단강을 건너야 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동안 그들을 인도해 왔던 지도자 모세가 여호수아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경험이 적은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해낼까 하는 의구심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새 포 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씀처럼 새 시대의 과제는 새 지도자에게 맡기셨다.

유한과 무한의 만남

욥의 이야기는 인생이 결코 허무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욥이 태풍 속에서 하나님 을 만남으로써 그 삶의 새로운 변화가 있었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유한 한 이 땅의 삶을 무한한 하늘나라의 영광으로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인생무상

시인의 기도는 절망으로부터 시작했다가 희망의 찬가로 끝나게 된다. 이것은 한 개인의 경험인 동시에 이스라엘공동체의 예배 체험이기도 하다. 시인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구원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다. 그 누가 인생이 무상하지 않다고 말하였 나? 그리고 그것을 누가 모른가? 한 해를 마치면서 우리는 세월이 유수같다는 상념에 다 시금 젖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시인은 흘러가는 강물 위에서도 닻을 내린 배는 떠내려가 지 않듯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에게 닻을 내릴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피 난처가 되심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연말을 맞아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을 갖는다면 하루하루가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며 인생이 결코 헛되다고만 여기지 않을 것이다.

1.

한국의 강단은 구약성서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주일 설교의 대부분의 본문은 주로 신 약에 국한된 듯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교회의 설교가 대부분 신약에 편중된 이유 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구약의 세계가 너무 방대하고 다양하여 감히 진지한 접근을 시도 하기가 여려워서 그런 것은 아닌가. 아니면 구약시대의 시대적 정황이 오늘을 사는 우리 들의 정황과 사뭇 다르기 때문인가. 어찌하였든 새롭게 접근하면 더욱 새로운 샘물을 발 견할 수 있는 구약의 무한한 세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강단은 구약을 외면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구약에 대하여 빈곤한 설교의 자양분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와 강단을 향하여 {구약설교 집}은 사뭇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고 하겠다. 학교 강의실에서만 맴도는 것 같았던 구약 의 이론들과, 구약본문에 대한 여러 논의가 당당하게 설교의 옷을 입고 한국 교회에 등장 하였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던져준다. 하나는 구약은 결코 오늘을 사는 우리 기독교인과 는 거리가 먼 본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구약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저 자가 오늘의 상황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포착하여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기술하였기 때문 에, 구약에 대한 가까운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교회가 구약에 대한 깊 은 이해를 통하여 설교의 풍요로움을 구약본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점이 다. 그리고 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탁월함에 기인하여, 본문에 대한 이해는 문학적 감수성 에 닿으면서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회력과 절기에 따른 설교의 배열을 통하여 신년부터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까지 일관되고 조화로운 설교 의 메세지를 얻을 수 있다. 교회력과 설교 메세지는 결코 동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우리 는 이 책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2.

{브니엘의 아침햇살}은 야곱의 얍복강가에 대한 체험을 소재로 쓰여졌다. 새해의 희망과 새로움에 잔잔하게 준비하는 우리네의 새해맞이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여호와 홀로그 램}은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현대의 과학적 사실까지 설교에 담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설교는 결코 오늘의 새로운 문제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새로 운 깨달음을 갖게 하였다. {조상탓}은 우리에게 아주 가깝게 논의되는 가족의 문제 조상 의 문제가 어떻게 구약의 전통과 맞닿을 수 있을까에 대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의 시대적 과제}는 예언자들의 소명과 교회의 역할 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오늘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는 음성에 우리 교회와 우리 기독교인에게 맡겨진 사명 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반성할 수 있었다. 설교는 설교자의 진솔한 고백이 되 어야 한다. 거기에 감동이 깃든다. 그런 의미에서 {희년 해의 선포}는, 우선 저자의 유학 생활에서의 삶의 경험을 진솔하게 느낄 수 있었다.

3.

장일선 교수의 {구약설교집}은 구약세계의 무한한 깊이를 감지할 수 있는 책이면서, 동시 에 구약의 빛이 오늘 우리의 강단에 아주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책이 다. 본인에게 있어서 {구약설교집은} 본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심오한 영성, 그리고 문학 적 감수성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 귀한 책이었다.


1995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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