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12/20 (01:39) from 203.252.17.161' of 203.252.17.161'	Article Number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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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좋은세상만들기>를 보고

학기 도중 피곤한 심신을 그래도 풀 수 있는 귀한 계기는 親友와 함께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시간이다. 고향을 떠나 이 음험한 신학대학에 나의 영혼과 육신을 맡긴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삶의 여유를 새롭게 창출하는 고상한 자구책 하나 변변하게 만들지 못하였다고 비난받아야 할 대목인가. 결코 아니다. 親友와 함께 하는 그 자리는 내가 여기에 홀로 있지만, 갈이 걸어가는 동료가 있음을 발견하는 따스한 자리인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더구나 연구소의 삶을 살아내면서 토요일을 잃어버린 지 어언 4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축복받은 시간을 親友와 같이 지내는 것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어디 있을까. 내가 좋은 세상 만들기를 만나게 된 계기는 그 親友의 집에서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었던 때였다. 친구 소유의 TV 리모콘을 빼앗을 수 없는 적자의 슬픔도 있었지만, 뾰족하게 다른 프로그램을 알지 못했던 무지가 더욱 좋은 세상 만들기를 만나게 한 우연적이고도 필연적인 계기였던 것이다. 모든 필연은 우연을 가장한 것일까. 그 프로그램은 그 때에도 인상적이었지만, 여전히 그 강렬함은 유효하다. 국가에서 생산된 인텔리 그룹이 가장 지향하는 공간이라 한다면 언론사와 방송국일 것이다. 거기에는 적당히 성실한 자에게 다소곳하게 쥐어주는 부가 있고, 의도의 유무를 떠나서 제공되는 권력도 있고, 그리고 자신의 일을 창조적으로 펼칠 수 있는 플럭서블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엄청난 지식과 축적된 문명의 이기를 공유함으로 순간 순간의 News를 반영하면서, 생산한다. 이런 이유로 방송은 끊임없이 세인들의 담론의 타켓으로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러한 메스미디어는 간혹 세련된 화면과 고상한 방식의 내용만을 담보로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지 않는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결코 세련되지 않은 쌩짜의 삶과 무늬들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이는 가히 역설적이다. 즉 고상한 TV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삶의 진솔한 리얼리티-매스미디어의 원래 정신은 여기에 있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가 그대로 TV를 통하여 방영될 때 우린 어쩔 수 없이 놀라워하는 것이다. 리얼리티를 재현해야 할 TV의 본령을 그동안 망각해 왔던 업보는 우리들을 리얼리티의 재현 앞에 당황해 하는 군상으로 조작하였다. 나는 광주민중항쟁의 처절한 장면을 TV를 보면서 놀라워 했고, 좋은 세상만들기를 보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놀라워하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한 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였다. 어느 누가 그랬던가 이론은 회색지대요 삶은 푸른 생명나무라고. 실로 삶은 어느 이론과 논변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자체의 고귀한 가치와 품격을 지니고 있다. 누구의 뜻인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 왔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을 뜨는 인간의 삶은 어쩌면 가장 모호하면서도 가장 신비로움을 간직한 그 자체의 비의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유한하다. 인간은 한 100년 살다 죽는 유한한 존재이다. 긴 밤의 촉촉함을 온 몸으로 흠뻑 품으며 지난한 시간을 보낸 후 새벽이 되어서야 한껏 자신을 드러내는 이슬 처럼,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인과 연의 엇갈림과 궤적을 통하여 고유한 삶을 연다. 그러나 그 아침 이슬의 운명이 아스라히 사라지는 운명이듯이, 수 억년의 장구한 우주의 시간 앞에 인간의 삶은 참으로 짧고 가엾은 시간을 견디다 그 어디론가 말이 없이 사라진다. 수많은 인류가 그러했고, 2년 전에 우리 할머니가 그러했고, 이번 주에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했다. 나도 그러할 것이다. 죽음은, 살아있음이 기이한 모습이듯이, 살아있음과 대극적으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죽었었고 죽고 죽을 것이다. 죽음을 인간 삶의 조건으로 볼 때, 한 평생 그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피워내려 삶을 살아오신 흔적을 겹겹히 접힌 주름살로, 어눌한 어조로, 외소한 체구로 간직한 어른들과 노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인생과 삶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흐르는 세월의 날카로운 이빨 앞에서 인간의 삶이 점점 그 탄력과 리듬이 생기를 잃어가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좋은 세상 만들기는 바로 시간 앞에 서 있는 유한한 인간의 삶의 그 운명과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떤 이는 서세원과 신은경 그리고 SBS의 감각적인 편집기획과 일본 프로그램의 꼴라쥬 행태를 꼬집기도 한다. 일면 타당성은 있으나 우리는 세월의 시름이 겹겹히 쌓인 우리네의 어른들의 주름을 보면서, 그리고 그 분들의 어린아이와 같은 소박함을 보면서, 더 나아가서 삶 보다 더 가까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그 어른들의 시선을 보면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왔던 수많은 삶의 진정성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된다. 그것이면 족하다. 삶의 진정성은 애시당초 편집의 영악함을 넘어선다. 백년의 삶에 걸맞는 영화는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잉으로 영화와 권력을 옹호한다. 백년의 삶에 걸맛지 않은 권력과 물질과 욕심에 우리시대의 정신은, 아니 나 자신은, 깊이 침윤되어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그렇다고 인간은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을 넘는 영원한 삶은 아쉽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욕심과 타락은 인간이 죽음의 운명을 넘어설 수 있다고 착각할 때 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일찌기 감염되어 버려 동일하게 꿈꾸고 동일하게 추구하는 공룡과 같은 도시의 권력의 하이어라키를 돌파하며 통쾌하게 쏟아져 나오는 노인들의 삶의 언어들을 직시하고 나면 우리의 언어와 꿈이 얼마나 노리끼리하게 오염이 되어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저번 주와 이번주 프로그램은 가까이서 촘촘히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상반기 하반기 결산인가 하는 인상적인 내용들만 모여 있었다. 그 내용 가운데 한 노인 부부의 이야기는 매우 슬펐다. 내용인 즉 할머니가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하여 고생하시다가 풍이 걸리셨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세상을 떠난다면 나도 같이 떠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절규이다. 실로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렬하다. 한 인간의 길쌈과 수고는 어쩌면 자신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일까. 그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희생은 인생의 자명한 이치인가. 진정으로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기이한 우주적 희생의 깊이를 애초부터 역마살로 간직한 것일까. 또한 모든 부모는 자식을 위한 희생이 그의 무의식의 혈액에 잔잔하게 관류하는 것일까. 온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와, 당신이 없이는 이 세상은 의미가 없다고 어눌하게 고백하시는 할아버지의 그 모습과 인간애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남은 여생을 평안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죽음은 예고가 없다. 마치 새 생명의 탄생이 예고가 없듯이 말이다. 몇 주일 전에도 생생한 얼굴로 나오셨다던 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신은경은 마지막에 전한다. 신은경도,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실로 한 인생이 마감되었다는 소식은 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나 결코 익숙하지 않은 낯선 저편의 메시지인 것이다. 거역할 수 없이 흐르는 세월에 대한 사유는 인간에 있어서도 가장 놀라운 체험이고 신묘한 체험이라고 어느 지성인은 술회하고 있다. 기고만장한 세월이 다 지난 후에야 삶의 유한성과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기 보다, 우리는 세월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른들을 더욱 가까이 만나고 그의 언어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물질도 더 이상의 권력도 더 이상의 향유도 의미가 없어지는 그 경지를 깨닫는 것, 이보다 더 큰 지혜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선물Gabe이다. 그 누가 주신 선물이다. 수 백만년의 그 꿈과 열정이 만들어낸, 화려하게 만개한 청초로운 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나의 인생이 이렇게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선물로서 쥐어져 있으니, 그러나, 동시에, 나의 의지하고는 무관하게 유한한 시간 안에 쥐어져 있으니, 이제는 나만을 위한 삶을 넘어서서 선물 위에서auf 책임Aufgabe의 삶을 사는 것만이 빛진 인생을 값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문명이 피워낸 바벨탑의 축조물은 화려한 듯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삶의 유한한 시간성 안에서 시간을 노래하다 시간을 넘어서려는 가혹하리만치 아름다운 기록인 것 뿐이다. 인류의 문명의 행간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고 인류의 문명은 새롭게 출현하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건한 자세와 그 생명에 대한 경외를 은밀하게 의도한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선물의 삶을 미래를 향해 책임있게 직조해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인간의 최상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열릴 것이다. 아참, 서세원과 신은경이 참으로 부럽다. 가까이서 느끼고 배우는 바가 얼마나 많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