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5/12 (03:04) from 203.252.18.128' of 203.252.18.128'	Article Number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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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의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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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신비주의자들은 세상은 근원적으로 하나의 세계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신비주의자들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보지는 못하였다. 도를 닦은 사람들은 너도 없고 나도 없고 그 경계는 깨야 할 몫이라고 외치곤 한다. 도를 닦는 것, 내공을 키워내는 것, 참 의미 있는 작업이고 우리도 평생 죽을 때까지 그 길을 걸어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경계를 깨야 한다는 폭력 아닌 폭력을 만날 때에는 나는 놀라곤 한다. 그 경계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에 깔린 프로메테우스적인 욕망이 내 마음의 코드와 순간 불협화음을 일으켰기 때문일까. 하나가 된다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깬다는 것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우리 세상에 쌓인 수많은 갈등과 벽과 반목을 씻어내자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애시당초 근원적인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나와 너가 태생적으로 하나였기 때문에 그쪽으로만 세찬 마파람으로 몰아내는 방식의 어법은 매우 잔혹하리만치 폭력적일 수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근원적으로 신비주의와 내통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신비주의와 도인은, 결코 일자의 세계에 대한 지향과 근원적인 신념으로 가득찬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지독하게시리 펼쳐져 있는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청동거울 마냥 뿌옇게 만나지 않고 가슴으로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보아도, 신문을 보아도, 악은 더욱 더 창궐한다. 악은 실체라기 보다, 어쩌면 우리의 꿈과 그 꿈이 펼쳐지지 않는 현실 사이의 부조화와 같은 불편한 감정이 아닐까. 사물을 구체적으로 응시하면, 거기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섬세한 상처, 때,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우리가 세상을 구체적으로 직면하면 직면할 수록 거기에서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할 수많은 부조리 들이 실타래 처럼 얽혀있다. 어쩌면 이는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인격이 타인과 만나고 교감하고 헤어질 때 직조되는 수많은 사건과 흔적들이 세상에 부유하고 과거의 역사로 계속 편입되어 쌓인다면,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들 안에 불편함, 부조리, 아픔, 생각하기 싫은 경험은 당연지사 그 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신음하는 피조세계의 현실을 자명하지는 않더라도 바라보고 있었다면, 또 그 피조세계의 암울한 현실에 나 자신 또한 관여하고, 나 자신이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조하고 있었다면, 우리가 헤쳐 나아가야 할 우리만의 몫은 무엇일까. 그 불편한 무늬를 다 지우고 신비주의의 전리품을 얻어서는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 신비주의는 중세의 면죄부를 은밀하게 욕망하는지도 모른다. 까마득한 기억에 아스라히 박혀 있다. 아주 어린 시절에 로마 교황이 비행기에 내려 땅바닥에 키스한 장면을 우연히 TV에서 보았다. 그리고 몇 년 전에 테레사 수녀가 기아에 허덕이며 울고 있는 앙상한 어린이를 두 품으로 껴안아 주는 장면을 인상깊게 보았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다 하는 이가 불의에 가득찬 땅을 외면하지 않고, 그 땅과 접촉하려는 열망, 가난을 극복하려는 열망에서가 아니라 가난 가운데 있는 슬프고도 어린 영혼을 보듬어 안으며 쓰다듬고 있는 그 주름진 손길과 눈길. 너와 나는 태생적으로 하나였다는 불성실한 태도를 벗어나서, 타인과 접촉하고, 세상과 접촉하려는데 성실하고 싶다. 세상은 애시당초 에덴동산이었다고 말하는 이는 하나님 한 분이면 족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때를 희구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기쁜 마음으로 보기 불편한 세상을 애써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하는 것, 나도 불편하고 세상도 불편하지만. 또한 그 불편한 세상에 한 발을 디딘 상태에서 기생하고 있는 나를 다시 보는 것도 불편하지만. 이 음악을 들으면서 한동안 세상에 대한, 타자에 대한 입맞춤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흔들리는 이 시대는 신비주의자의 투명함보다 접촉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을 더욱 간절하게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