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초상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그 길을 나는 이제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대도 많앗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끔씩 기억하는 시가운데 하나이다. 시점을 선취하는 것은 형이상학의 놀라운 지혜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생생함이 그저 무자비하게 상실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음에도 불구하고 하릴없이 유언 비슷한 시에 공명을 얻게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온갖 학문과 철학의 깊은 시선으로도 도대체 얻어낼 수 없는 곳에 헤세의 영감은 거하고 있는 것 같다. 성실하게 걸었던 헤세도 귀하고, 잘못에 대한 지식도 귀하고, 게다가 후회하지 않는다는 술회도 귀하다. 하긴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벌써, 혹은 겨우 백일이 지나갔다. 무엇을 보았을까. 만졌을까. 느꼈을까. 시계는 백일이지만 의식은 훨씬 더 길고 깊게 시간을 보낸것 같다. 희미한 기억을 넘어 가장 분명한 것은 나는 여기서 거의 대부분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많이 깨지고 깨어진다는 것이다. 나의 신앙, 학문, 민족, 그리고 여타 그 모든 것에 대한 지독한 충격과 현기증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 어제 전화에서 사랑하는 어머님은 어려운 길이 아니길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나의 소망은 다른 곳에 있다. 흔들릴 때 흔들리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의식마저도 잊혀질 정도로. 경건에 숨어있는 그 고요한 긴장, 신앙의 비밀들, 몸과 같이가는 학문의 그 진지함, 내겐 없었으니 말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어나고, 앞으로 일어날 것 같다. 해아래 새로움은 이렇게 다양하게 피어오르거늘. 단지 저 마지막 헷세의 고백의 윗 한줄만이라도 담담하게 읊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짧지 않았던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백일의 삶, 앞으로도 더 뼈끝까지 완전히 부서지고 깨지기를 바란다. 이를 기억하며 별빛이 잔에 고이 비추이는 백일주 한잔을 간단히 취하고, 잠에 들기 전에 밤하늘에 몇 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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