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이메일을 확인하러 컴퓨터 방에 들렀다. 컴퓨터방은 차도 마실 수 있고 티브이와 탁구대가 겸해 있는 기숙사의 중요한 휴식공간이다. 툴리아와 하이두룬과 파울리노, 그리고 이전에 이곳에서 생활을 하였던 한 친구가 같이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할로 하고 인사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려고 보니 매번 켜 있는 컴퓨터가 유독 꺼져 있었다. 그래서 파워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툴리아가 침묵의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저어 켜지 말기를 조용히 부탁했다. 나는 무슨 일인고 하여 티브이를 보니 ARD 방송국에서 예배 실황을 중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 티브이를 통하여 친구들이 예배를 드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상황을 이해하였고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같이 티브이 앞에 앉아서 티브이예배를 같이 드렸다.
나는,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수글어들었지만, 독일 교회와 신학이 매우 국가적인 근간과 맥락을 갖고 탄탄한 국민적 정서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하였고, 더욱 놀랐던 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교인들, 즉 종교세만 내는 교인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는 형은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교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매우 진지한 고민덩어리를 마음에 품고 있고 나에게도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나도 아직 답은 잘 모르겠다.
우리 기숙사에 있는 신학 동료들도 일요일 교회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없는 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앙이 없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다들 보이지 않은 신앙을 마음에 가슴 깊이 품고 있고 그들의 눈과 행동과 삶의 모습들을 보면 거품많은 신앙인들보다는 훨씬 진지하고 경건하고 열려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기숙사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꼬박꼬박 예배를 드리니, 예배에 대한 형식적 강박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는 모습 같기도 하여서 그들을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 큰 불만은 없다. 예배 백날 잘 드리는 김영삼 장로의 그 4년간의 역사적인 헤프닝보다는 훨씬 건강하다고 보인다.
여하간, 일요일 오전에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여느 예배실황을 보면서 주일을 맞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저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 익숙한 얼굴을 한 머리 허연 분이 나오시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그가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두달 전에 기숙사에서 매주 열리는 "명사와의 대화" 시간에 한 번 왔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WCC로, 독일어로는 ORK, 즉 Oekumenischer Rat der Kirchen의 총무인 콘라드 라이저이다. 그리고
깨진교회라고 불리우는
베를린 회상교회 신 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내가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이곳을 들러보았기 때문에 익숙하였다. 또한 현재 기숙사 빅브라더 엔스 형님이 이곳에 없고 베를린의 ORK 회의에 가 있다는 모든 상황을 전체적으로 헤아려 볼때 방영되는 예배는
WCC의 2주 동안의 중앙회의의 정점에서 드리는 일요 예배로 판단되었다. 당연히 우리 빅브라더가 안보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흐르는 화면을 예의주시하게 보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노르웨이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여식을 이곳에서도 놓치지 않고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 수많은 객석에서 콘라드 라이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눈은 나쁘지만 그래도 눈은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고 그에 마음따라 기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여하간 그런 행운을 이 예배시간에 다시 콘라드 라이저를 보고 얻게 되었고 또 우리 형님이 나타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전 세계 각지의 대표가 나와서 신앙고백문을 읽는 시간에 아프리카와 동유럽과 아시아 쪽의 신앙고백을 읽고 아주 순간적으로 우리의 눈에 너무 익숙한 엔스 형님!이 멋진 양복을 입고 하하! 머리에 기름도 바른 것 같은데 :)) 멋지게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뭐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 후보가 권력을 장악한 멋진 소식을 들을 때의 환호성보다는 크지 않았지만 손을 들면서 몇 안되는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박수치고 좋아했다.
WCC Central Committee Potsdam, 28 January. Opening Worship St. Nikolai-Kirche, Potsdam.
밑에 자막에는 Dr. Fernanndo Enns 하면서 박사라는 칭호가 붙었다. 사실 박사학위는, 논문통과와 구술시험까지 모두 해서 한 3주전에 합격하였기에 받은거나 다름 없지만 박사학위 수여식은 2월달에 열리니, 아직 서류문서상 박사는 아니지만, 이렇게 세심하고 신속하게 신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으니 기분 흐뭇했다. 페르난도 앤스는 이렇게 전국각지와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평화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실천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형님이기에 그 학문과 인품에 있어서는 많은 존경을 많은 이들에게 받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는 2월 엔스 형님의 박사학위수여식이
진행되는 Heidelberg Alte Uni.
그런데 아주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앤스가 신앙고백문을 쭉 거의 다 읽는 순간에 우리 귀에서는 어떤 잡음 같은 것이 들렸다. 내용은 정확하게 파악은 못했으나 "쓸데 없는 소리! 그것은 틀렸어!" 하는 식의 딴지를 거는 사람이 앞자리에 앉아서 말을 했던 것이다. 순간 같이 방송을 보았던 우리 기숙사 식구들은 놀라워 하며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이게 뭔소리다냐?" 하면서 놀랐다. 당혹스러워 하는 엔스의 얼굴을 카메라는 아둔하게도 오랫동안 잡아버리고, 분위기를 파악한 성가대원들과 진행진들은 바로 성가를 진행하고 이제야 정신을 차린 방송팀은 빨리 다른 곳의 장면으로 돌려버렸다. 잠깐의 성가가 끝나고 다시 엔스는 후반부의 신앙고백서를 다시 읽고 다행이 모든 것이 잘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내용에는 베를린교회주의 비숍인 볼프강 후버의 얼굴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베를린 깨진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인지라, 비숍 또한 나와서 몇 마디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후버의 책은 이미 한국에도 번역이 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모든 예배는 다 끝났고 자막이 올라가면서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Dr Johannes Rau, President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address the Central Committee. from left to right: Bishop Prof Dr Wolfgang Huber, Dr Johannes Rau, H.H. Aram I, Dr Konrad Raiser.
티브이를 보고 있었던 식구들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티브이를 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해프닝이 자주 일어나느냐고 하이두룬에게 물어보았더니 키르헨탁Kirchentag에서도 이런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단다. 삐라를 뿌리고 이렇게 예배를 훼방하는 부류가 적지않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수적인 신학적 시각을 가진 훼방꾼들의 행위인가 하고 물어보니 그럴 수도 있고 혹은 그냥 잡배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
1월 29일부터 2월 6일까지 포츠담서과 베를린에서 열리는 회의의 명칭은 WCC Central Committee이다. 물론 WCC의 전반적인 논의와 더불어서 아마도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인 동구권과 유럽과의 관계회복 혹은 정교회 전통과 개신교 전통 사이의 에큐메니칼한 교류와 증진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번 회의에서는 WCC의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의 숙원사업인 Dekade zur Ueberwindung von Gewalt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이 든다.
두달 전에도 폭력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하이델베르크 신학부에서는 블럭세미나가 진행이 되었다. 이러한 주제 하에 세미나와 심포지움과 여러 토론들이 며칠 진행이 되어서 콘라드 라이저 및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엔스의 사회로 토론도 하고 그리고 여러 내용을 공유한 시간이 있었다.
며칠전에 엔스 사모님이신 레나테 엔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바로 이러한 폭력을 넘어서!라는 주제와 방향을 바로 엔스 형님이 초안을 잡았고 그러한 내용들이 WCC에서 공유가 되어서 10년간의 숙원사업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번학기 하이델베르크 신학부에는 저 주제로 세미나를 형님이 직접 열고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멋진 형님이시다. 나는 왜 형님이 이렇게 마음에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 많이 맞고 자란 형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형님은 제세례파의 계보에 서 있다 하는데 이에 신학적으로도 제세례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되었지만, 무엇이 형을 이렇게 괴롭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친구 마리아와 긴 시간을 보냈다. 마리아는 불가리아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정교회 전통에 서 있는 친구이다. 마리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처음 노이에네텔스라우에서 열린 장학회의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사실은 여러 친구들이 자기네들의 혼이 담긴 민속음악과 가곡을 듣고 책으로 지식으로 도달하지 못할 그들의 슬픔과 가난과 긴 고난의 역정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었는데, 그가운데에서도 마리아가 부른 민요를 들으면서 마음이 너무 슬펐다.
그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못살고 어렵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들,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의 긴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현재 이데올로기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혼란과 과도기에 서 있는 동구권의 여러 상황에 조금 눈을 뜨게 되었다. 지금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 세상에 이렇게 소스라게 놓여 있는 갈등과 가난과 소외에 조그마한 눈을 뜨게 된 그 시간과 기억들을 헤아리면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하고 마음이 많이 속상해진다. 코소보의 전쟁의 아픔과 기억이 가시지 않은 그 시점에서 그곳에서 온 친구를 만서 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자체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실로 그 1주일간의 회의는 나를 정말 많이 바꾸게 한,소위 터닝포인트의 시간이었다고 지금도 생각이 든다.
마리아는 자기네 나라 및 발칸 반도 그리고 여러 동구권의 나라의 가난한,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을 화보와 책과 더불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자기가 공부하는 독일의 법에 대한 여러 유익한 점을 배워서 모국에 돌아가서 활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마리아는 총명한 엘리트이면서도 자신의 조국을 위하여 갖는 마음의 씀씀이는 어느 누구보다 깊고 크다.
동구권, 그리고 정교회 전통에 서 있는 마리아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계기는 바로 WCC의 동구권과의 협력, 그리고 정교회와 개신교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넘어선 협력이라는 커다란 10여년간의 주제와 기획 속에서 열린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WCC 장학생의 대부분이 동구권에서 온 친구들이고 대부분이 정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나는 확인하였고, 또한 내가 하도 궁금해서 1주일간의 그 회의 중에 담당자를 찾아뵈어 WCC의 방향과 정책에 대해서 물어보니, 10여년간은 여하간 동구권 그리고 정교회와의 관계회복을 위하여 방향을 잡고 나아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프리카 친구도 겨우 두명이고 아시아도 그때 나 혼자밖에 없었다는 사실 속에서 한 방향과 정책을 그저 묵묵하지만 과감하고 진지하게 시도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고 참 느낀 것이 많았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우리나라의 국가정책을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Erzbischof Anastasios Autokephalen Orthodoxen Kirchen von Albanien
여하간 마리아와의 만남의 뿌리에는 이미 페르난도 엔스와 WCC의 소망과 바램과 정책이 있었고, 더군다나 하이델베르크에 와서, 에큐메니칼 연구소 및 기숙사와의 만남을 통하여 페르난도 엔스를 알게 된 것은 참 우연치고는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이래저래 뜻 깊은 인연과 시간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인상적으로 한 광고를 기억하고 있다. 전쟁의 분진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폐허에서 피아노를 치며 평화를 소망하는 한 어린 꼬마의 그 아름다운 장면과 의미들,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전쟁이 이렇게도 무서운 것인줄 몰랐고 가난이 이렇게 끔찍하고 속상한 것인줄 몰랐다. 이렇게 우리 친구들을 통하여 헤아리게 되는 동구권의 여러 열악한 상황, 그리고 높은 산과 그에 대비되는 깊은 숲과 골의 여러 음영들을 헤아리듯이,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그리고 문화 문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갈등과 반목을 넘어서는 평화와, 하나님나라 등등의 것들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알게 된다.
Balkans
요즈음 김우중이라고 하는 희대의 경제사기꾼이 그동안 종횡무진 말아먹었던 코메디같은 진실이 한국의 온천하에 폭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참 마음이 착잡하다. IMF를 극복하기 위하여 금팔고 몸팔고 직업포기하면서까지 어렵게 어렵게 왔거늘, 그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과는 오히려 악화되는 이유를 이렇게 뚜껑을 열어 살펴보니 수십조에 해당하는 그 엄청난 돈을 착복하고 사기치는 꼴이라니.
가난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한 문제이다. 개인적인 가난의 문제는 가장 고도의 종교적인 수위인 고난의 문제와 닿아 있으니 더욱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가난 더 나아가, 사회적, 국가적 가난은 여러 정치 사회적 복지 및 가치의 불평등과 닿아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곳에서는 배고파 죽고, 한곳에서는 배불러 죽는 이 현실이 동화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 지구촌의 현실이며, 더군다나 우리 한국의 처절한 현실인 것이다.
루마니아에서 온 실바나와 이리나, 불가리아에서 온 마리아, 그리고 체코에서 온 메리카, 그리고 그 이외에 이름을 헤아릴 수 없는 동구권들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보면,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발견하게 되는 그들 민족의 현실을 보면, 왜 WCC가 이렇게 동구권과의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인 이데올로기인 정교회와의 긴밀한 관계와 협력 속에서 10년이라는 장기적인 계획과 전망을 가지고 에큐메니칼한 운동을 하고자 하는지 양으로 음으로 깨닫게 된다.
WCC의 본부는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다. 이번 3월에 열리는 장학생 모임이 여기에서 열리는데 특별히 정교회 전통의 친구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모임이다. 나도 WCC의 현장과 그 부산한 움직임, 그리고 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정교회 친구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있는 이유도 있고, 또 시간도 안되고 하여 1주일 후에 모이는 독일지역문화 혹은 교회 순방 프로그램을 선택하였다.
이번 기숙사에도 3월에는 큰 여행을 준비한다. 여기에서 기숙사에 모든 회의는 소수의 결정이 아니라 일일히 여행할 곳이나 자료를 일일히 준비하고 발표하고 거기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3주전부터 이에 대해 친구들이 많은 장소를 알아보고 여러군데 추천지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중에서 3곳의 추천지가 현재 물망에 오르게 되었는데 유트레이트와 암스테르담,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빈, 그리고 바로 마지막 추천지가 제네바이다. 이제 조만간 여기에서 최종 여행할 곳이 선택이 될 것인데 이때 제네바가 되면 WCC의 본산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하여도 이곳에서 매우 가까우니 꼭 가서 그간 전세계 교회를 대표하고 리더쉽을 통하여 세계 평화를 위하여 움직여온 산 역사를 고스란히 보고싶은 마음이 있다. 더군다나 2월 말에 동기 윤정이가 이곳에 와서 잠시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 기뻤다.
2달전 콘라드 라이저는 이 기숙사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WCC의 과제, 그리고 앞으로 동유럽과의 관계 증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 등등, 여섯척이 넘는 큰 키와 하얀 머리 그리고 경륜과 예의가 몸소 배인 얼굴과 움직임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엔스 형님과 라이저 형님 덕분에 이렇게 여러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콘라드라이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고 같이 진행이 되었던 신학부 블럭세미나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그는 어디론가 갔다. 며칠 후에는 노르웨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여식에서 보았고 오늘은 이렇게 티브이에서 보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 평화를 위하여 열심히 뛰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빅브라더들, 그리고 교회들 WCC의 움직임들의 조그만한 부분이라도 보다보니, 그리고 그간 인류가 바라지 않았던 냉전의 기류에 떠밀려와 많은 동구권 국가가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여러 사회적 과제들을 앞에서 여전히 삐걱거리고 여러 문제 앞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러한 현실 앞에서 내 신학의 과제를 새로 깁고 형성하게 되곤 한다.
East Timo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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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난 오늘 엔스 사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간 못다 한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 난 공부 마치고 내가 여력이 있으면 몇 가지 운동을 하고 싶구나. 지금은 구체적이지는 않은데. 첫째 세상이 참 잘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사는 사람, 국가, 민족은 참 못살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굶어죽고 사는 사람도 많고. 이것 대가리 열리면서 나 깊이 깊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평화 운동 교회가 해야 할 과제 이런 것들이 전체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깊이 관련되어 있으니, 꼭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고 싶다.
내가 뭘 하고자 하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 기숙사에 살면서 각지의 학생들의 자기네의 문화와 삶을 들어보면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결코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들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모잠비크에서 온 친구의 노력으로 우리들이 돈을 거두어서 모잠비크 친구들을 위하여 성경을 그곳으로 보내게 된다. 우리 한국? 한국도 조금 잘 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참 못사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부는 정말 갑부이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시스템이나 여러 복지는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 고통받고 있니. 물론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못사는 나라도 많지만 말이다만..
지구를 덮고 우주를 덢을 만큼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큰 새의 그림자에 우리들이 이렇게 어둠의 중세를 지나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루빨리 이 어둠이 개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 전쟁의 무서움을 이렇게 먼 구석에까지 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도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냐. 독일도 통일은 되었으나, 세계대전떄 완전 많은 곳들이 파괴된 참상을 보고 사진을 보면서, 전쟁이라는 것은 결코 있어서도 안될, 있어서는 안될 무서운 것이라는 걸 이렇게 깨달았다. 한국도 전쟁을 경험했지만, 그 무서움을 알 수 있도록 상기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구나.
베를린을 며칠 들르면서 전쟁의 자리들을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서... 반전운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 진의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정말 할일 많은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것 같구나. 우리의 빅브라더 패르난도는 저렇게 공부도 열심히, 그리고 더블유시시 및 모든 할 수 있는 한 모든 공간에서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가 삼십이 넘고 오십 육십이 되도록 타락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25.01.2001
Child soldier at Sinyea village in the center of Lib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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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나의 앞으로의 신학적 소망과 과제의 한 토막이다. 여기에서 학위과정이 어떻게 되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야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학위과정이 끝나고 여력이 된다면, 짧은 시간이라도 WCC라든지 아니면 디아코니아 라든지 아니면 에큐메니칼 연구소라든지 같이 구르면서 호흡하고 몸소 하나 둘씩 현실을 어루만지는 시간을 갖고 싶다. 고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가난은 참으로 귀하고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사회적 제도적 불평등에 기인한 가난은 철저하게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60정도 되어 보이는 콘라드 라이저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그리고 젊은 페르난도 엔스가 무슨 얼마나 큰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이 현실에 뛰어들어 비빌거리며 자기의 욕망을 체우려 하고자 하겠는가. 나는 아직은 이 두 빅브라더를 보고 세세한 맥락은 잘 모르고 별로 관심은 없지만 지금 나에게 보여주는 그 모습 자체만 가지고도 많은 의미와 방향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지침들을 깨닫게 된다.
콘라드라이저의 기숙사의 강의는 하이드룬의 미니디스크를 빌려서 녹음은 해놓았다.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개허락도 받았는데 컴퓨터 밑 여러 기자재 가 없어서 아직 음성은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조만간 올려서 좋은 자료로 삼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요즘에는 제3세계 특히 동구권의 가난한 현실을 보면 마음이 슬프고, 한국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속상하고 그렇다. 그러나 형님들이 이렇게 포츠담, 베를린에 번쩍, 제네바에 번쩍, 노르웨이 및 아시아에 번쩍 번쩍 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마음만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소중한 일을 위하여 이 자리에서 소소하나마 열심히 공부하고, 시간이 되고 때가 되어 하나님이 부르면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뛰는 형님들 따라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나도 열심히 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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