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2 (01:46)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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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와서

오기전 이틀간이었나 마음이 슬펐다. 더 이상 푸른 하늘과 그리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없기에. 몸은 더 예민했나보다. 피도 몸에 별로 없는데 코피도 흐르고. 공항에서 3시에 비행기를 타고 여기 도착하니 금요일 6시가 되었다. 약 11시간 걸렸나. 다행히 옆에 계신 분이 문학작가여서 기내에서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고 왔다. 한국은 새벽 6시쯤 되었을까. 지금이 9시이니, 한국은 새벽기도 할 시간이다. 기내에서 한국에서 구입해온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라는 기도집을 읽었다. 앞으로는 지금 보다 더욱 가까이 열심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잠시 눈물이 났지만 몇 주 후 다시 만나는 프랑크프르트 상공을 보다보니 마음이 다시 상쾌해졌다. 공기는 여전히 맑고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하였다. 공항버스를 탔다. 약간의 감기기운 덕분에 기침을 하니 "게준트하이트(건강해!)" 하면서 여자 운전사가 건강을 빈다. 1시간여 끝에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 짐이 많아 택시를 타고 기숙사에 도착했다. 독일의 친구, 선배님들의 부탁도 있고 내가 필요한 책 및 여러 잡것들도 있고 해서 가방을 꽉 채웠다. 3만원 주고 산 40키로짜리 이민가방, 김종남 선생님이 선물한 007가방, 윈도우는 안되지만 없어서는 안될 아이넥스 노트북, 그리고 여권 비자가 있는 자그만 손가방. 아직 풀지는 않았다. 열쇠도 없는 나를 기숙사에서 처음 맞이한 친구는 아랍에서 온 라미아라는 친구였다. 같은 방 친구 라파엘도 보았다. 껴안고 반갑게 인사하였다. 라파엘은 감기에 걸렸구나. 기숙사에 와보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이 방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선한 소식은 다음학기에 이곳에 레오나르도 보프와 도르테 죌레가 와서 명사와의 만남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저번학기에는 WCC 총무 콘라드 라이저를 볼 행운을 얻었는데, 이곳 참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다음 주이면 WCC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모레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독일지역 교회 및 문화 탐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일 독일어 분반시험을 시작으로 한달동안 독일어 인텐시브가 막스베버에서 열린다. 그리고 5월 말에 기숙사에서 암스테르담 유트레이트 여행을 가게 된다. 솔직히 그렇다. 눈에 아무리 좋은 것 입에 아무리 맛이 있는 것, 삶이 아무리 바쁘고 즐거워도, 그것이 있어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제는 하나님과 그리고 신음하는 피조물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나의 내밀한 시간이 더욱 나에게는 그립고 귀한 듯 하다. 내가 가장 보고싶었던 독일의 친구들은, 정작, 동구권에서 온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자신들의 민족과 교회에 대한 깊은 신앙과 씀씀이와 열정을 갖고 있는 마리아, 이리나, 실바나, 라파엘 등등이다. 세상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신음하는 세상을 구원하려 지금도 우리에게 미세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신다. 우리의 영혼에 기름이 끼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비워있을 때 겨우 들릴만한 아주 작은 목소리. 하나님께 우리를 써달라고 우리의 영혼이 당신의 뜻에 가도록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뜻이 고이도록 소망해야 하겠다. 한국에서 눈물날 정도로 간절한 4주동안의 놀라운 경험들을 그저 망망한 과거에 묻지 않고 생은 아름답지만, 삶은 고통스럽다는 이 역설스러운 두 고리를 엮어내고 이어내는, 영원한 기억의 질료로 삼아야겠다.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절실한 과제. 내가 아픈 것보다 훨씬 더 아픔을 느끼고 아픔과 함께 부디끼며 살아가는 이웃과 백성들과 민족들 헤아리는 것. 그리고 그들과 오리 십리 백리를 같이 가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삶을 기꺼이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 소망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열정을 낳는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보고, 확신을 갖고 이 세상이 다 질 때까지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불러 일으키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그 분과 함께 호흡하면서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다. 세상 가운데 잠시 드러나다 사라지는 그 진리의 아스라한 빛을 찾고 발견하고 해석하고 학문적으로 조직하는 데에도 게으르지 말기를. 빵의 문제로 고민하는 피조세계의 엄연한 현실을 도외시 하지 말고 생명을 향한, 평화를 향한 노력을 망실하지 말기를. 스물 네시간 나의 신학의 혼이 깨어있을 수는 없지만, 타성에 물들지 말고 신학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아가기를, 타락하지 말기를.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하심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깨달아 생명과,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어둠의 세력 앞에서도 생명과 삶에 대한 단호한 긍정과 여유를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나의 가슴에 이렇게 귀하게 남아 있는 가족, 친구들, 선후배, 선생님들, 또한 혈육처럼 가깝고 소중한 가족, 교회, 신앙공동체들. 그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기리면서 진실하고 값지게 삶을 살아가기를 빈다. 3월 9일 금요일 밤 9시 59분 다시 기숙사에 돌아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