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2 (02:09)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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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디에이터와 콘텍트

신정 구정보다는 크리스마스가, 그리고 교회만의 행사로 자칫 여겨지는 부활절이 이들에게는 이렇게 큰 의미였는지 새삼 알았다. 금요일, 그리고 월요일까지 부활절 연휴로 교회는 계속 예배가 있으면서, 전국적으로는 조용하게 연휴를 맞이하고 보내고 있다. 오늘은 티브이에서도 교회실황 예배가 많이 방영되었고, 신학자들도 나와서 부활에 대해, 그리고 여러 흥미진진한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기도 하였다. 이곳의 문화는 기독교와 아주 긴밀하게 서로 맞물려 돌아간 이력이 있고 그 역사는 미약하나마 지금도 계속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면이기도 하다. 토요일 비스마르크 옆에 있는 컴퓨터 상가에서 모니터를 교환하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교환해 주는 것은 사뭇 인상적이다. 내가 구입한 엘지 플레트론의 4년의 에이에스 기간은 무엇을 말하는가. 좋은 제품인데 네임벨류가 떨어지니 값싼 가격과 질좋은 경쟁력으로 유수의 이름있는 제품과 경쟁하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컴퓨터 모니터 잘 돌아가나 확인할 겸 하여 DVD를 비디오가게에서 빌렸다. 글라디에이터라는 영화였다. 한국에서 감동적으로 보았던 영화이다. "권력"이라는, 약간은 지나친 추상적 관념으로 보이는, 저 실체를 둘러싼 한 로마시대의 음울한 역사를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다. 글라디에이터, 군중심리, 노예, 영웅, 가족, 로마사, 삶과 인생의 무상함 등등,, 이런 것들이 내 머리에 키워드로 들어왔다. 인간에는 숭고함, 장중함, 웅장함 앞에 감동되고 경이로움을 느끼는 정서가 있다. 이는 잘 짜여진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는 우리시대에서는 더욱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정서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책을 보면서 늦은 밤에 보면서 가졌던 삶에 대한 드넓은 스케일, 숭고함, 장중함, 그리고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DVD이기에 영화의 뒷이야기 그리고 여러 정보들, 특히 한스 짐머의 인터뷰를 한 30분 정도 볼 수 있었다. 한스짐머는 생각보다 젊고, 정열적인 음악가였다. 그는 이 영화와 작업한 것에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즐거웁게 생각한 표정이 역력하다. 음악은 매우 듣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나 정보를 잘 몰라서 어물쩡거리다 영진이 형이 음악파일을 예술까페에 올려놓아서 덕분에 잘 듣게 되었다. 오늘은 부활절 덕분에 티브이에서 많은 방송을 서로 경합하면서 제공해 주고 있다. ZDF에서는 콘텍트를 방송한다기에 그곳에 채널을 돌려서 금방 보았다. 콘택트는 남중이와 영은이 집에서 같이 늦게까지 비디오로 보고 그 감동에 취해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나눈 기억이 있다. 콘텍트도 참 훌륭한 영화이다. 신학이 노골적으로 튀어나고 신학자가 조디포스터 주인공의 중요한 파트너로 나오고, 종교와 과학과 우주의 근본적인 문제가 아주 본격적으로 연결되어 우리의 상상력을 건드는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칼 세이건을 알게 되었고, 우주의 메시지를 독해하는 NASA의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엘리 애로위의 강인한 여성적인 아름다움에 반해버려 예전에 조디포스터만 '볼모'로 짝사랑하게 만들었던 영화이다. 그녀는 말했다. "이 우주에 우리만 산다면, 우린 너무 많은 공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서도 실질적으로 건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국가와 정책자들에게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그 전혀 따른 세상을 증명할 수 없어서 눈물로 하소연 혹은 대변하였다. 남은 것은 18시간의 아무것도 녹화되지 않은 테잎이었고, 남은 것은 어느 누구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놀라운 경험들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의 귀에 단 한번 강하게 들린 단어는 Vision이었다. 비젼. 이에 대해서 영어와 독일어는 적어도 같이 쓰이는... 그녀는 비전을 보았고, 그 비전은 정부에게는 의미없는 것이었지만, 백악관을 나오는 그녀를 보고 수십만명에게는 소중한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특히 잠시 스쳐 지나갔던 그 장애아이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희망을 얻고, 몇개월 후,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녀의 가이드를 통하여 우주, 그리고 삶에 대한 꿈과 상상과 희망을 얻고... 어쩌면 꿈과 비전은 이렇게 거친 현실에 그리 저항력이 별로 없는 비눗방울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답긴 하지만 여타의 자극에 쉽사리 자신이 상실되는.. 그래서 우리는 어느덧 꿈과 비전을 꾸고 보기보다는 거친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콘텍트... 세상과 접속하고, 희망과 대면하고, 상상과 조우하고, 그리고 비전을 보는, 적어도 신학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고, 삶의 진중한 성찰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면, 그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비전을 가슴에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열정과 비전이 없는 신학의 삶은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현실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저렇게 연어의 속살 처럼 약하디 약한 것들,, 희망, 꿈, 비전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힘이 들지만, 외롭지만, 그 자신은 고통스럽지만.. 그녀의 열정, 그녀의 진지함, 그녀의 외로움, 그녀가 본 놀라운 세계, 이런 것들은 정말 감동과 찬사를 금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로 보였다. 어쩌면 삶은 저렇게 각자가 본 것들을 가지고 살다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어느 지점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를 만날 수 없는, 볼 수 없는 그런 것들... 신학자는 초기에 과학에 찌들었던 그녀에게 물어본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세상은 증명이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세상은 밑으로도 열려 있지만, 위로도 무한히 열려 있다는 것이리라. 우리가 한없이 악해진다면 끝도 없이 악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선함, 고귀함, 사랑, 이런 매우 매우 추상적이면서도, 인간이 잘 해명하지 못하는 영역의 것들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그 길은 평생 이룩해도 끝이 없는 그런 무한한 것들인지도 모른다. 간혹 정신적인 것의 추상성을 그저 가장 구체적으로 바꾸어놓아버리는 성인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중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이 밤에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으리라. 큰 밤하늘의 웅장함 안에 놓여있는 우리의 미약함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그 무한과 닿아있는 인간의 가치의 개간을 위하여 의지와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그것은 바벨탑의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꿈의 실현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의 미래가 열리고 자연과 우주와 신 앞에 있는 인간의 자리와 과제가 분명하게 열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콘텍트를 보면서 든 생각. 나는 쌍동이 역설을 인정하면서도 사실 광속을 통하여 경험한 그녀의 18시간이, 어떻게 일상적인 시간의 세상에서 18시간 동일하게 테잎으로 녹음되었다는 현실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다. 이는 동시적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파악이 가능한 지속(Duration)의 신적 영역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 사실 그녀의 18시간의 경험은 그녀에게만 유효한 것이고, 오히려 그녀와 타자를 연결하는 매개인 테잎에서는 180시간 혹은 18분이 되어야 진정한 쌍동이 역설의 논리형식이 유지되지 않을까. 부디 우리의 영혼에 생생한 꿈과 비전들이 가득 빛나기를 바라며.... 2001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