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2 (02:14)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43
Geist	Access : 8001 , Lines : 364

깻잎 한장

며칠전에 누가 나에게 깻잎 캔을 선물하였다. 물론 오랜시간 두어도 상하지는 않겠지만, 선물한 분의 마음이 잊혀질까 오늘은 날잡아서? 캔에 들어있는 깻잎과 함께 쌀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쌀에 넣어 먹으라고 정성스레 싸주신 노랑 좁쌀같은 것... 이름이 뭐지... 여하간 그것을 넣고 밥통에 쌀을 씻어서 넣고, 밥을 하였다. 밥통도 한국에서 갖고 왔고 쌀도 여기에서 한국쌀을 사먹는다. 외국인들은 한국쌀이 오돌토돌 얼마나 좋은지 다 안다. 하지만 다른 쌀에 비해 매우 비싸기 때문에 꺼려하는 경향이 있고, 품질은 그리 좋지 않지만 값이 싼 라이스밀히 이런 것들을 먹는다. 한국쌀에 완전 순도 백프로 적응이 되었나, 나는 한국쌀을 사 먹는다. 이 몇십마르크가 한국으로 몇분의 일은 들어가겠지 하는 소박한 마음도 있다. 여하간 쌀에, 노랑 좁쌀 같은 알맹이들과 함께, 밥이 멋지게 되어서, 깻잎과, 그리고 여타의 반찬과 함께 금방 점심을 먹었다. 깻잎 캔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쉽지 않듯이. 캔 커버에도 주의사항이 나와 있다. 열다가, 손조심하라고. 학부 엠티때 아는 형이 세상에 참치를 버스 안에서 따다가 그냥 하얀손에 버어건 피가 쫘악 나오면서 손이 벤 것을 생생하게 보고, 가끔 캔을 열다가 그 몇년전의 생각이 많이 나곤 한다. 여하간 조심스럽게 따서 맛있게 밥을 먹는데, 참치캔보다 더 작은 캔에 그리 많은 깻잎이 포개어져서 완전히 간장같은 것에 절여져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미묘한 차이를 말할때 "깻잎 한장 차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정말 깻잎 한장이 완전히 장에 절여져가지고, 샤프심만한 두께도 안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 많은 깻잎들이 압사?당하고 서로 숨막히면서 그 캔 안에서 몇개월동안 있다가 세상을 본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옛날에 잘 느끼지 못했던 아우라가 그 순간 깻잎을 먹으면서 다가왔다. 요는 뭐나면, 우리 할머니 어머님들이 그 깻잎들을 하나 하나 따고 포개는 그 주름진 손들과 그 소중한 손길들의 의미가 불현듯 다가왔다. 쌀은 그러지 않을까. 배추는 그러지 않을까. 다 모든 음식들은 길쌈과 수고의 산물이긴 하지만, 이렇게 리얼한 인상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쌀 한톨은 사실 어디에 떨어지거나 없어지면 줏기도 어렵고 라이트 들고 찾기도 어려운 그런면이 있지만 깻잎이라 하는 것들은 조금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한장 한장 조심스럽게 줄기에서 그 깻잎들을 떼어네고 포개고 하는 정성은 사실 먹는 정성보다는 훨씬 크고 복잡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경험이 있었다. 한국에 잠시 있을 때 어머니가 해준 빠알간 맛잇는 김치에 밥을 먹다가, 김치에 들어간 양념들, 파, 마늘, 그리고 고추가루, 깨, 젓갈 등이 따로 따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아는 형의 집에서 잡채를 먹다가 그 잡채에 들어간 당근, 버섯, 당면, 그리고 당면에 묻어있는 기름들, 시금치, 그리고 빠지지 않는 마늘들, 이런 것들이 그저 그냥 잡채로 보이지 않고 잡채라는 추상적 개념안에서 서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자질구래한 시끄러운 한 식구들로 보였던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아니 모르겠다. 그냥 말하면 우리 기숙사는 유독, 사람들이 음식을 많이 해먹고, 음식으로 뽕을 빼는 분위기가 있다. 한학기에 한번씩 모든 이들을 위해 음식을 한번 삼십명 분을 채려야 한다. 나는 한학기에 한번이라 할 지라도, 다른이들도 다 한번씩 하니까, 일주일에 화요일 저녁은 이렇게 손수 기숙사 식구가 만든 음식을 '시식'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매번 식사는 아니지만, 굳이 맨자나 식당에 가지 않고 직접 음식을 해먹거나 빵을 구워 먹거나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는 나는 기숙사에 있었을 때 기숙사에서 세끼 밥이 나왔고, 방에서 뭐 좀 해먹으려고 뭐 라면이라도 해먹으려, 버너를 갖다놓다가, 그것 걸리면 퇴사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압력과 경고를 받았던 경우와는 달리 이곳은 직접 학생들이 해먹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친구들 참 힘들겠군... 매번 음식을 해먹으니...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일정정도 나의 선입견과 착각이 작용한 것 같다. 물론 사람들마다 다르기도 하고 바쁜 경우에는 간단히 빵과 커피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음식을 해먹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정말 즐거운 시간과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어느 경우에는 직접 피자를 만들어 먹거나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빵을 직접 구워서 먹는다거나 여하간 말로 잘 표현이 안되는 접경의 것들까지도 이내들은 직접 손으로 해먹어버린다. 며칠 전에는 노라라는 친구가 음식을 하고 있었고 나도 옆에서 간단히 밥을 먹으러 준비하고 있었는데, 노라의 어머님도 오시고 해서 지금 맛있는 것 을 하니 너 같이 먹을래? 라고 꼬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다할 수도 없고, 그래! 하고 같이 밥을 먹을 준비를 하였다. 우익... 그런데 무슨 스페인음식인가 무슨 음식인가 그것을 하는데 세상에 음식 준비만   두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7시에 시작해서 9시정도에 끝나고 그리고 짠 하고 와인에 밥을 먹는데 뭐 그리 오물조물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그러는지 밥먹는데도 한시간이 걸렸다. 물론 설겆이까지 같이 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기에 이리저리 하니까 저녁이 후다닥 가버렸다. 그런데 음식 좋아하는 민족은 정작 우리나라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경향이 있지만 나도 큰집에서 추석 등등 그저 대식구들이 모이면 하루종일 음식을 그렇게 하고 송편을 빚고 했던 경험이 눈에 선하다. 부침개, 떡 등등... 여하간, 그냥 유년시절 할머니나 어머니나 친척들이 송편이나 부침개 할때 옆에서 깔짝깔짝 쳐다만보다가 20대 기숙사에서 주는 밥만 먹다가 이곳에 와서 많이 바뀐 것 같다. 밥을 직접 해먹어보고 그리고 옆에서 이렇게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거워하고 손수 해먹으면서 어느 것보다 더욱 맛있게 생각하는 이런 것들이 다른 것보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독일에서 직접 김치를 만든 것도 옆에서 보고 잡채도 기숙사에서 형이랑 같이 만들어보고 나니, 이제는 지금 보는 김치와 잡채가 이전의 것이 아닌 것이다. 지금은 젓갈과 배추, 잡채와 버섯이 구분이 되고 따로 보이고 맛도 다 따로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외관의 차이 맛의 차이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음식을 만들때 들어가는 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조금씩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 음식을 손수 해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해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다는 것 손수 요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이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연들이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나.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일이나 음식만드는 것도 사실 음식에 대한 예의나 생각이 바뀌면 조금은 바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자들도 여자의 짐을 덜어주자 하는 강박이 아니라, 음식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즐겁게 생각하고 귀하게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조금은 바뀌어지지 않을까. 밥은 하늘입니다! 이것 참 귀한 통찰이다. 거기까지는 안가더라도 밥알이 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그 절차와 과정과 우리 땅과 태양의 섭리와 농부의 땀과, 또 다행스럽게 우리에게 이 식량이 주어진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이 감사함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 지구상에도 많은 이들이 다른 문제가 아닌 먹는 것 문제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너무나도 상하다. 나는 북한에게 독일의 소가 가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 찬성이다. 누구는 독일에서 광우병을 유발하는 소를 북한에 보내? 그것 먹고 죽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하는 생각 할 수도 있는데 안먹고 죽는 것이나 먹고 죽는 것이나 똑같은데 먹고 죽음을 피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니 독일에서도 그 많은 반대와 엄청난 운송료를 감내하고 북한을 도와주는 것 아닌가. 더 이상은 잘 모르겠다. 어제 독일에서 나온 전세계 통계 책을 보았는데 98년 한국은 8600달러 1인당 국민소득. 그런데 북한은 천달러?도 안되는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과식은 금물이다. 하지만 과식을 두려워한 나머지 창고에 오래된 쌀이 썩으면 그것은 더욱 금물이다. 가장 좋은 것은 과식과 독식을 피하는 것.. 그 줄에 잘 서는 것. 그리고 음식은 오래 오래 씹어먹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독일의 거지성자라는 책에서 보았다. 여기 나오는 거지성자는 배춧잎과 빵 한두조각을 한두시간 씹어서 완전히 위장에 넘긴다. 살 책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책 살돈이 많거나 둘중에 하나인 경우라면 저기 독일의 거지성자라는 책 읽으면 정말 후회 하지 않을 것이다. 읽고 후회하면 내가 책값 돌려줄 각오를 하고 추천하는 책, 거지성자. 혹시나 오늘 초대받은 가정의 식탁을 보면 그저 오는 밥이려니, 음식이려니 하지말고 정말 정말 그 밥에 음식에 스며있는 정성과 사랑을 감사하고, 혹시나 어머님이 차려준 하얀 쌀밥과 김치를 먹는다면, 반찬투정하지 않고 김치를 담그시면서 쏟으시는 자식에 대한 염려 사랑, 이런 것들을 회상하면서 맛잇게 한그릇 먹어 치우고, 혹시나 시간이 나서 음식을 손수 해먹는 여유가 있으면, 나에게 이런 먹거리를 주신 우리의 가족, 이웃, 농부, 자연, 우주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면서, 우리보다 더욱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밥한끼 먹고 더욱 힘내어서 그들과 같이 하자는 심정으로 헤아리고.... 그랬으면 좋겠다.. 2001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