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2 (02:17)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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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길들이기

컴 덕분에 밤 잘 샜다. 솔직히 컴퓨터 없이는 공부를 못한다. 리포트를 어떻게 쓰나. 독서정리를 어떻게 하나. 요즘에도 한국에서 손으로 리포트 쓰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여기는 백프로 의무이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손으로 쓴 글씨는 개판 오분전이기 때문에.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예술적 감각은 손글씨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내가 몇번 친구들 글쓰는 것을 보았지만 거의 오징어다리, 말미잘, 콩나물을 옆으로 비벼놓은 것 같은 필치에, 더구나 알파벳 외국어에, 여러모로 피곤한 경향이 있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신문도 보고, 잡지도 보고, 또 방송도 보고, 자료도 찾고, 그리고 요즘에는 책이 시디로 많이 나온다. 여기에는 사전류, 그리고 어학공부, 그리고 전집이 시디로 많이 나와 있는 것 같다. 또 논문 쓰자면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독일어 교정 프로그램이 돌아가야 하고, 그리고 시디구할 돈 없으면 시디 레코딩하고... 그리고 고전어성경이나 사전 주석 이런 것들이 그저 한줄로 쫘악 나오고... 컴퓨터 예찬이 아니라 어찌 이렇게 인간이 컴퓨터와 달라붙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배부른 고민일 수 있다. 하루 8시간 모니터 앞에서 의지와는 무관하게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여하간, 오늘 포메팅, 파티션, 윈도우 깔고 이런 것을 몇시간 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머님은 컴퓨터를 줄이라고 매번 메일로 말씀하시는데.. 몇가지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어제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리된 생각도 몇개 있고.... 1. 컴퓨터를 자료축적의 확실한 툴로 잡아두자. 어짜피 논문은 자기의 읽은 것을 최종적으로 종합하고 모으고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니 책을 읽든 생각을 하든 기억에 의존하지 못하면 컴퓨터에 저장을 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옛날에는 박사학위를 위해서는 논문의 단행본출판이 의무가 되엇는데 요즘에는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단행본 출판과 동등한 의미로 평가되고 도서관에는 시디로 논문을 주고 하는 분위기가 점점 일고 있다고 한다. 2. 양질의 방송은 꼭 감상하자. 독일은 잘만들어진 고급 문화예술방송이 많이 제공된다. 그런 것들은 시간을 내서라도 꼭 챙겨 봐야겠다. 그리고 뉴스도 적극적으로 봐야겠다. 퓌닉스나 아알디 뉴스나 다큐는 의식적으로... 다음주에는 컴퓨터를 통하여 티브이를 보는 카드가 싸게 나오니, 어학공부 문화공부 예술공부 역사 공부한다는 핑계로 컴퓨터 티브이를 적극적으로 봐야겠다. 3. 조금 더 창조적으로 구체적으로 생각을 뿌리내리자.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심화하고 방법론화 하고 조직화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는 형과의 대화에서 형은 나에게 그런 조언을 해주었다. 조금은 생각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굴리고 구체적으로 현실과의 맥락들을 되새김질하고, 논문이나 책들을 조금은 내가 그와 관련된 다른 견해가 있다면 비판적으로 봐야 하겠다. 4. 미디어를 잘 이용하자. 디지탈카메라는 조만간 구입해야겠다. 지금 바이마르에서 찍은 루터 바흐 괴테의 생가와 유적을 사진으로 찍었지만, 사진은 역시 나만 보고 끝나는 경향이 강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조금 어렵고, 관리도 귀찮은 면이 있다. 역시 루터가 번역했던 그 성의 책상을 어루만지는 것은 문자로만 만난 루터와는 너무나도 다른 경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이나 파일은 나중에 귀한 신학적 자료가 되니 그것도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찍을 것이 많다는 것은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는 찍을 것이 많다 하더라도 다른이들이 그 삶과 역사의 흔적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의 보고들이라면, 당연히 담아내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는 편지 일일히 답장을 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힘이 들기도 하다. 예전과는 달리, 이곳에 관련한 정보와 여러 자료를 요구하는 부탁이나, 리포트를 위한 부탁이 많아져가고 있다. 노력은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그리고, 여기에 자료가 엄청 많다. 특히 시디나 신학자료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디지탈화 되었다. 그래서 이런 자료를 핫라인을 통하여 한국의 신학동료들에게 건네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봐야겠다. 비행기로 보낼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날리면 되는데 별 뾰족한 수가 없나. 독일어 윈도우, 독일어 어학 시디, 소설시디, 사전시디, 전집시디 등등... 조만간 어린왕자 독일어 음성은 예술까페에 올려버려서 한국에서 다운받아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콘라드 라이저의 강의도 파일로 만들어서 들을 수 있도록 하고. 내가 이런 짓 하는 것은 시간이 철철 남아서가 아니다. 이런 자료나 유산은 철저히 같이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그랬다. 도대체 마이크로소프트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먹으려고 그렇게 불법사용에 이를 갈고 있냐고. 그만큼 벌었으면 되었지, 더 벌으려고 하면 인간도 아니야! 하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여하간, 어정쩡하게 컴퓨터를 대하다간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대하고, 학문의 과정에서 그것의 의미와 한계를 분명히 긋고 접근하면 매우 생산적인 상호관계가 될 것으로 생각이 든다. 심각한 것 고상한 것, 인생의 여러 놀라운 경험들... 이런 디지탈로 환원 불가능한 것들을 논외로 하고 우리가 학업하고 공부하는 것들을 디지탈 자료로만 따지면 도대체 시디 한장의 내용이나 될까 그게 궁금하였다. 컴퓨터가 뭐길래.. 컴퓨터는 그저 컴퓨터일 뿐이지... 오래간만에 컴퓨터에 잠을 뺐겼으니 조금있다가 한숨 길게 자야겠다. 퓨터야 너도 고생 많이 했다. 형님 휴식을 틈타 너도 조금 쉬거라. 2001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