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2 (02:36)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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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배려 - 에켈 박사를 만나고

오늘 드디어 막스베버하우스 디렉터인 발터에켈 박사님을 만나뵙는 날이다. EKD에서 추천서를 급히 써주셔서, 그 파일을 받고 프린트 하여 오늘 10시 정도에 박사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급한 일이 있어서, 오후 세시에 다시 약속을 잡았다. 벨커 강의를 듣고, 참고로 이번 벨커 보어레중은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에 대해서 진행하는 3시간짜리 강의이다. 근년에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에 대해서 강의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정말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150명에서 한 200명 정도? 오늘 약간 늦게 들어갔는데 앞에 뒤에 그 큰 강의실이 꽉 차있었다. 우리 기숙사 식구들만 해도 네명이나 그 강의를 같이 듣는다. 수업 끝나고 박사과정 선배님과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앞에 가서 선배님과 이야기 하던도중 벨커 박사님이 우리를 보시고 악수를 청하셨다. 왠 황송감사. 열심히 하라는 소리로 듣고 그 주름진 손길에 감사하며 같이 악수를 나누었다. 수업 끝나고 오후 수업은, 사실 오늘 약속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시간이 되기 전에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옷도 갈아 입고, 그리고 한신이라는 마크가 달린 초록 가방보다는 예의를 차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김종남 선생님이 쓰라고 건네주신 007 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하하하.. 007에 걸맞는 것은 자가용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 폼은 잡아야 하지. 그러나 현실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니 자전거 타고 찔찔 거리면서 한손으로는 007 가방을 들고 꾸역꾸역 막스베버 하우스로 들어갔다. 박사님은 약간 늦었다. 나는 박사님을 만났고, 정중한 매너를 언제나 갖고 계신 박사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입이 닳도록 사죄를 청하고, 나도 입이 닳도록 괜찮습니다. 하고... 너무 너무 예의가 좋으신 신사이시다. 사실 유럽에는 귀족과 신사의 문화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간간히 여전히 살아 숨쉰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신도 전달하고 준비한 나의 소개서도 전달하고 "박사학위 논문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정말 다양하게 이곳의 문화와 학문을 섭렵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 인텐시브 과정을 한학기 밟고 싶습니다." 하고 첨언 하였다. 실은 나에게 맑스베버하우스 들어가는 것은 대학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런데 고려해보자고 말씀하시고 월요일 한번 다시 오라는 이야기에 매우 기뻤다. 007 가방을 들고 온 보람, 머리깜은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강의도 듣고 한편으로는 독일어에 대한 철저한 훈련을 하는 맑스베버에서 수업도 듣고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름학기는 짧다. 약 2개월 반이면 모든 것이 후다닥 지나간다. 날씨도 좋지만, 이 하이델베르크는 3만명의 젊은이들이 진리를 위하여 학문을 위하여 도시 전체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그 분위기, 느낌이 좋다. 예의 앞에서는 예의를 철저히 지키는 것, 그리고 예의가 없는 곳에서는 예의를 느끼게끔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닥터 발터 에켈의 예의에 감명 받았고, 무엇을 하고 싶을 때 그것을 거리낌 없이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EKD 그리고 대학에 감명받았다. 우리 사회도 무엇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현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경쟁 없이, 그리고 편법과 비리가 없이, 공평하고 건강하게.. 오늘의 협상은 사실 나에게 예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닥터의 승리로 돌아간 것 같다. 한수 배웠고,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우리의 왕언니 EKD의 카세리나 오세아 언니에게 고맙다고 편지를 써야겠다. 이렇게 많이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 사랑은 어쩌면 구속일런지 모른다. 나도 나중에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르면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2001년 4월 27일 금요일 기숙사에 와서 007 가방을 다시 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