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한겨레에서 잠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과학자들도 잠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
그리고 몸은 잠자도 뇌는 활동한다는 것,
그리고 11시와 12시 사이에 우리에게 중요한
뇌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제밤에는 9시부터 그냥 침대에 들어갔다.
한번 시험해 볼려구.
그런데 (당구의 '갬생이'라는 표현을
몇년전 재미있게 들었는데..)
잠을 청하던 도중 갬생이들이 출현하였다.
다행히 깊은 잠이 들지 않아서
참을만 했지만....
옆 기숙사에 사는 마리아가 토요일 자신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하여
방문을 하였고, 공동전화기에
전화가 울려서 내가 받았다.
여하간 간단히 갬생이들을 격파? 처리?하고
일찍 잠에 들고 그 다음날 일찍 일어났는데
그동안 쐬지 않았던 11시와 12시 사이의
뇌파를 한꺼번에 수혈 받은 덕분인지
시력이 단번에 1.5에서 2.0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눈이 맑고 몸이 개운하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11시 정도에 잠을 청할 생각이다.
몇년동안 11시 12시 사이의 뇌파를 그냥
무방비상태에서 쐬지도 못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한겨레신문에서 이 정보를 찾으러 서치기능으로
들어갔는데, 개인정보등록을 요구하더군.
그래서 그냥 포기하였다.
하루종일 그 덕분인지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꽉 찼다.
옆 친구들은 오후수업에 다들 피곤한
기색이었는데 나는 거뜬히 하루를
한 구석의 피로도 느끼지 않고
잘 버텨냈다.
피곤한 친구들에게 내 생기를
조금 나누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
하지만 어제 밤은 도루묵이었다.
왜냐하면 금요일 밤이니.
아무런 부담없는 금요일 밤.
그래서 늦게까지 보고싶은 티브이도 보고
책도 보고 그랬다.
그 덕분이었나?
오늘 아침에 꿈을 참 많이 꾸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1. 키르헨탁, 교회의 날 꿈을 꾸었다. 다음주이면 이 행사가
프랑크프르트에서 열린다. 독일 혹은 세계 각지 수십만명이
군집하는 2년만에 한번씩 열리는 큰 행사이다.
이 행사에 부모님, 고향친구, 학교 친구, 선생님, 교회 등등
할 것 없이 모조리 그 행사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의 고향친구와 학교친구는 그들끼리는
서로 잘 모르는데 왜 꿈에서는 그렇게 잘 아는 이들처럼
이리저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현실에서는 조금 불가능한 구석들이다.
2. 꿈 안에서 내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깨어나서 (꿈 안에서) 그 꿈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하였다. 기가 막힌 꿈이라고.
이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5번도 안되는 경험.
연거푸 꿈 안에서 꿈을 꾸고, 꿈을 깨고, 다시 꿈을 깨고.
3. 처음으로 독일어를 구사하는 꿈을 꾸었다.
사실 꿈이라는 것이 깨어나면
기억에는 1프로도 제대로 남지 않는 구석이 있기에
독일어를 구사하는 꿈을 예전에 꾸었는지 안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는 동유럽 친구들이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데
무슨 한탄이냐면, 요즘 서유럽에서 동유럽 국가를
EU 편입시키는데 자꾸 안티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이 편입되면 서유럽에 제공되는 EU 지분이
가난한 동유럽으로 다시금 몰릴 것은 뻔한 이유에
매우 이기주의적인 발상 하에 EU편입에 대한
아주 수동적인 자세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한탄을 동유럽 친구들이 하고 있는데
내가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는 이야기를
그 이후에 한 것 같았다.
아시아는 더 엉망진창이라고.
매우 몰상식한 자존심과 곤조만 존재하는
일본, 섬중에 섬인 일본,
그리고 3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위에는 북한이 존재하는 한국도
여간 닫혀 있는 나라라고.
유럽은 다르지 않냐고.
서로 경계가 별로 없고
몇 시간만 신나게 달리면 여러 나라와
내통할 수 있는 그런 열린 구석이
너희들에게는 있지 않느냐 하는
핀트가 안맞는 대답과 주장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고 몇가지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 꿈에서 구사하는 독일어는 내가 지금 구사하는
수위의 독일어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비슷하거나 혹은 낮은.
이는 꿈과 현실에서의 독일어 뿐만이 아니라
독일어와 한국어의 함수에와도 닿아 있다.
요는 뭐냐면 한국어를 못하면 독일어도 못하는 것이고
한국어의 어법과 문법과 활용의 풀장 안에서
독일어가 작동한다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에 관련한 것이다.
이는 나의 그냥 가설일 뿐이니 확인해 봐야 할 것들이지만.
예를 들어서 한국어에서 주부술부를 분명히 배치하지 못하는
어법을 갖고 있는 자라면 독일어도 그럴 것이고
형용사를 잘 구사하는 탁월한 기술이 특히 있다면
어떤 외국어이든 그 특성은 결코 어디 가지 않고
활용된다는 것이다.
둘째, 분명 내가 구사한 몇분의 꿈에서의 독일어는 머리통 안에서
의식적으로 한국어를 번역해서 독일어를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약간 꿈과 관련해서 복잡한 구석이 있는데, 꿈의 표상이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인지, 아니면 꿈 앞에서 우리의 의식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인지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꿈에서 내가 독일어를 하다가 실수로 단어를 잘 못 말했는데
그 순간 한국어로 '어 실수했네'라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며칠전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의식적으로 독일어로만 얼마나 생각할 수 있는지 한번
머리통에서 실험해 보았다.
내 의식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나 생각들을 한국어로가 아닌
독일어로 - 물론 내가 아는 제한된 단어나 개념으로만 진행되는 제약이 있지만 -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과 같은 경험을 나에게 주었다.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1-2분 정도인가 가다가 금새
뜬금없이 한국말로 생각이 떠올라 포기?하게 되었다.
설사 1-2분간 카오스적인 독일어의 단어와 이미지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식'에서의 독일어였을 뿐
'의식적으로 독일어로 생각해야겠다!'는 정체모를 의지 - 이 의지는
한국어를 뿌리로 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적을 넘어서는
순수의지인지는 잘 분간을 할 수 없었다-가 그 밑변에 있었다.
정리하자면 의식(독일어) - 의식적(독일어로 해야겠다는 의지)가
맞물리면서 의식실험은 진행되었다.
내가 궁금한 구석은
실험에 관련해서는
이 '의식적'이라는 실체에 대한 궁금함이고
꿈에 관련해서는 분명 한국어를
독일어의 번역을 거치지 않고
그냥 독일어가 튀어나왔는데
그 독일어는 단순히 머리속에 오랫동안 각인된 것들의 표출인지
아니면 정말 꿈에서 독일어만을 구사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이미지와 독일어가 연결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만약 내가 어느 순간 한국생각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나
독일어를 들을 때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짧아지거나
혹은 없어진다면 (없어지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이는 참 놀라운 메카니즘인데,
독일어의 기표가 그냥 내 안의 기의로 결합된다면
그 기의는 국적이 없는 무백색의 원초적 기의이냐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원초적 의미는 한국어의 인간이라는 기표와
독일어의 멘쉔이라는 기표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자리에 닿아 있냐는 것이다.
이는 언어기능은 모국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와도
닿아 있다. 그리고 이미 소쉬르나 언어학자들에 의하여 나름대로
답안이 나와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학부때 조금 더 자세히
그들을 들여다 보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실질적으로 독일친구들과 대화할 때 예전과는 달리 그냥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없는 듯이 보이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간단한 대화이니까 그러겠지만.
- 독일대학의 보어레중이나 세미나는 여전히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벽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높다-
다시 간단히 정리하자.
1. 꿈의 활동은 나의 의지의 산물인가.
아니면 나느 그낭 수동적 관객으로
꿈의 활동을 보고 있는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인가.
- 나는 꿈에서도 나의 의식을 강요당했고, 그 때문에
나의 자율적인 선택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다.
2. 꿈에서 활용되는 외국어는 단순한 암기의 표현일 뿐인가
아니면 자율적으로 구사되는 것들인가.
3. 꿈에서 외국어를 구사한다 하여도 그 꿈 안에서의 무의식은
모국어로 작동하는가 아니면 외국어로 작동하는가.
4. 실질적으로 외국어로 대화를 할 때 우리의 언어기능은
번역작용을 거치지 않고서도 그 뜻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번역작용이 체화되어서 우리는
그 짧은 작동의 순간들을 느끼지 못할 뿐인가.
5. 4번과 관련된 것이지만, 기의 표현하려는 것 뜻하려는 것의
진정한 핵심은 모국어와는 얼마나 관련이 있는 것들인가.
언어와 모국어와 관계.
여하간 잠과, 꿈과 관련하여 신기한 일들을 어제 오늘 많이 보았다.
혹여나 잠을 충분히 자도 찌뿌둥한 경우나 피곤한 경우는
11시나 12시에만 잠시 출현하는 그 주파수대의 세례를
받지 않아서 그럴 수 도 있으니
이 시간에는 잠을 청해서 꼭 그 창조주가 주시는
혜택을 놓치지 않고 수혜받는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잠을 자기 전이나 잠에서 깨어날 때쯤 그냥 잠자리에서
외국어로 된 방송을 듣는 것은 나름대로의 잘 확인못할
성과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의 기능이 심히 피곤해지는 시간이나
아직 의식의 갑옷을 입지 않는
말랑말랑한 시간대에 그냥 외국어를
무지막지하게 그 의식 밑변의 대지에
쏟아부어버리면 어찌 아나
신이주신 방언의 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국어가 더욱 가까이
우리의 대가리에 착상이 될지.
여하간 관심있는 사람은 한번 시도해보기를....
그건 그렇고.
한가지 잊은 것이 있다.
어제 Kirchentag 꿈에서 여러
다양한 경험의 꿈을 꾸다가
마지막에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종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확한 대답을
얻게 되었다.
"종교는 Licht이다."
왜 외국어로 빛이라는 의미가 꿈에서
표현되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논리와 엄격함과 업적의 뜻모를 정서로
어우러지는 이곳에서의 종교에 대한 이해에
찬물을 끼얹고,
종교의 근원적인 의미는 바로 빛이며
그 빛을 잘 매개하는 것이
신학하는 자의 자리 아니냐 하는
뜻으로 깨어나서 헤아려 보았다.
빛을 빛으로 드러나게 하려면
신학하는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기 때문에.
내가 죽어야만, 내가 그대로
그 빛을 드러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가 되어야만
그것이 가능하기에.
동시성에 관련한 글 :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꿈에서의 의식의 주체성에 관련한 글 : Synchronicity에 대한 한 가지 체험
2001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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