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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동시성 현상

어제 토요일은 마리아의 생일이었다. 독일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생일인지라 준비하는 마리아도, 그리고 생일초대를 받은 친구들도 모종의 표현못할 긴장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겁게 마리아의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같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우연히 만난 다른 친구들과도 반갑게 안부를 나누었다. 그리고 토요일은 1년에 두세번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리는 불꽃놀이의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 10시경부터 진행이 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하여 바로 기숙사 옆에 있는 테라스로 나아갔다. 네카강을 건너서 성과 오래된 다리가 직접 보이는 전망좋은 테라스였다. 이미 저녁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네카강 주변에서 진을 친 수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저 테라스로만 나가서 높은 자리에서 전망좋게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자유까페 배경화면 왼쪽에는 하이델베르크 성이 은은하고 고운 붉은 조명으로 채색되었는데 한 10여분간 저 붉은 조명보다 훨씬 더 붉고 진한 조명으로 온 성이 타고 있었다. 만약 누가 조명의 트릭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저 거대한 성이 바알갛게 타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화염에 휩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진행되는 불꽃놀이는 갖가지의 화려한 색조와 무늬로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현기증이 돌 정도로 그 불꽃놀이는 대단히 아름다웠다. 불과 열과 공기와 바람 사이의 마찰과 긴장이 빚어내는 그 색조의 변화와 운동들 앞에서 그 풍경을 쳐다보는 수많은 군중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마리아를 위한 불꽃놀이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고, 수백만원 수천만원짜리 훌륭한 작품보다 더 멋진 불꽃놀이 덕분에 마리아의 생일파티는 더욱 흥이 들었다. 모든 불꽃놀이가 끝나니 넥카강에 모인 10여 척의 유람선은 일제히 경적을 울리면서 다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들였다. 이 축제를 전후로 많은 관광객들이 벌써 하이델베르크에 방문하였고 또한 이 불꽃놀이를 위하여 유람선은 나름대로의 채비와 준비와 액션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실바나는 다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리아 생일파티 도중에 나누었다. 실바나는 빈에서도 공부하였는데 그 주제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테마를 담고 있었다. 그에 관한 석사논문도 작성하였고. 나도 그 종교다원의 문제가 어떠한 시스템 하에서 운용되는가 하는 일말의 관심이 있기에 그와 나름대로의 관련성이 있는 테마인 Kreativitaet로 학위논문의 주제들을 하나 잡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첫학기 개강모임에 만난, 벌써 몇개월전의 만남이 되어버린 그리이스에서 온 카테리나와 마리아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오랫동안 나누지 못한 안부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시간이 늦어서 기숙사로 조금씩 떨어지는 비를 맞으면서 돌아왔다. 오늘은 마리아가 다시 기숙사에 방문하였다. 어제의 생일파티 준비에 긴장하였다가 긴장도 풀리고 피곤하여서 그랬는지 바람을 쐬러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기숙사로 놀러왔다. 마리아에게는 아주 오래된 컴퓨터가 있다. 그것도 마리아 것이 아니라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돌려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잠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인데 내가 혹시 너 독일어 사전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하니 하고 물어보니 필요하다고 하여서 같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마리아의 기숙사에 들어가서 그것을 깔아주었다. 물론 하드도 그렇고 386 정도의 컴퓨터라 너무나도 버거웠는데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을 듯 하여서 인스탈하니 겨우 작동은 되는 것이었다. 너무 좋다고 연발하는 소리에 나도 기뻐서 복사해준다고 약속하고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몇가지 인상적으로 내 마음에 남는 대화는 그것이었다. 마리아는 분명 삶이 다 하여도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영혼Seele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몇년전에 어떤 책을 읽다가 영혼이라는 가설이 인류가 품고 있는 스콜라주의의 잔재라는 한 지성인의 지적을 보고 한 며칠을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마리아에게 이야기하였고, 성경에서도 저 문제에 대해서는 똑떨어지게 대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부 1학년때 발견하여 매우 힘들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바로 그 잘 해명이 안되는 지점을 보기 위해서 Geist와 Seele에 대한 나름대로의 독법을 갖고 있는 이 독일에까지 내가 굴러온 것인지도 모른다. "강철과 쇠가 녹쓸지라도 우리들의 사랑은 영원하리라" 하는 본회퍼의 아름다운 문장을 생일카드에 적었는데 같이 전한 보온 전용 스테인레스 커피 컵 생일선물에도 그 강철, 쇠라는 단어가 씌어 있다는 것을 마리아가 발견하면서 즐겁게 웃게 되었다. 우연 치고는 참 즐거운 우연이었다. 거기에 씌인 영원함에 대한 우연한 단어 때문에 시작한 삶의 영원성에 대한 물음은 이렇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고, 마리아는 분명 우리들의 삶은 또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에 비해서는 조금은 자조적인 자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지식과 성과보다 더욱 힘이 있고 고귀한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신화적 환상과 주관적 독백과 신앙이 아닌가. 네카강을 건너서 우뚝 높게 서 있는 성령교회와 뒤의 푸른 산등성이에는 붉은 노을이 벌써 소리도 없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는 즈음에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여 모든 친구들이 궁금해 하였던 체코에서 온 미르카라는 친구의 기숙사를 잠시 들렀다. 1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무슨 이유였는지 이번학기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하여 버튼을 눌렀더니 문을 열어주어서 기숙사에 들어가서 미르카와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디지탈카메라를 베를린에서 환불하였던 것을 가끔 후회하곤 한다. 돈으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계속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사라져간 소중한 풍경, 얼굴들에 대한 아쉬움을 한탄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안위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나는 미르카의 그 특유의 환한 웃음은 정말로 카메라에 꼭 담고 싶은 마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나는 요즘 조금씩 독일인의 특유의 정서와 멘탈리티를 발견하곤 한다. 처음에는 그네들의 양과 같이 순박하고 투박한 면들이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너무 사회가 발달되어서 그런지 매우 개인적이며 그래서 어느 일면에서 그들은 적당히 열려 있고 적당히 닫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여하간의 중요한 모토는 관계 보다는 개인 그 자체이기에. 이는 네덜란드에 가서 그네들의 멘탈리티에 대한 경험 그리고 이전부터 교감하였던 동구권 친구들과 아프리카 친구들과의 자연스러운 비교 속에서 들게되는 어쩔 수 없는 비교의식인 것 같다. 동구권의 얼굴은 분명 선진국을 주름잡는 몇몇 얼굴과는 다른 면모와 혼을 갖고 있었다. 나와 같이 학업을 시작한 미르카는 벌써 독일에서의 두학기를 정리해야 할 상황에 와 있었다. 친구는 독일에서의 학업이 자신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사실은 이는 미르카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간판중심의 사회이기에 개인의 노력과 성과보다는 간판이 더욱 무게중심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미르카는 두학기만 끝나고 다시 프라하 대학으로 돌아가야할 교환학생의 운명이기에 직접의 비교는 될수 없지만, 그가 이야기한 솔직한 말, 독일에서의 학업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면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주조된 정서로 보아서는 조금은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간의 의미보다는 그 시간이 주는 성과와 간판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기에 그저 죽어지내면서 언젠가는 손에 쥐을 수 있는 간판 하나로 외국에서 보내는 그 중세와 같은 시간들을 합리화 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코미디와 같은 면이 있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경험하는 유학에 대한 풍경은 한국과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마치 수도원안에서 비밀리에 유지되는 마법의 전수와 같이 그저 아는 사람만 알게 되고 모르는 사람은 죽어도 모르는 아주 이질적인 벽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은 왜 유학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 것일까. 유럽과 미국에서는 쎄고 쌘 것이 장학생인데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도 장학생 따기가 어려운 것일까. 왜 한국에서는 박사가 그렇게 가치 이상으로 격상되어 평가되는 것일까. 정말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논문 하나로 일관되게 정리하고 그 논문에 찌부려트려도 될 만한 형식논리학의 세상일까. 학문도, 대학도 카스트마냥 일열횡대로 줄이 서 있거나 이상한 파시즘적 학파주의와 집단주의에 물들어 있고 그 허상의 카스트와 파시즘적 집단주의의 몽상 안에서 평생 평안히 살다가 그저 죽어가고, 그리고 우리도 거기에 그저 평안히 살 생각이나 하고 있고. 내가 한국에서 몇몇 분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 정체모를 이상한 물음들과 궁금증들이 여기에 와서 많이 풀렸고, 또 내가 알고 있는 정말 소신이 있는 학자와 선생님들의 가치가 그렇게 고귀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많이 확인하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남에게 어떠한 섯부른 판단과 생각을 하는 것도 되려 나를 지키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저 나 자신을 향하여 "제발 똥폼은 잡지 말자"는 주문을 몇번씩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정말 넓고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그 무한의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는 "너 자신을 알라", "너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 아는것이다"라는 선현들의 놀라운 지혜를 교묘하게 접속시켜 은근히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근거없이 순간 순간 느끼는 정서와 감정들인 것이다. 그것은 모종의 컴플랙스도, 그리고 무의식적인 교만도 아닌 국적 불명의 생생한 정서들인 것이다. 소신있는 미르카는 자신의 독일생활을 깔끔하게 벌써 정리하고 있었다. 수업도 특별히 듣지 않고 오히려 불어문서 번역에 종일 시간을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8월이면 다시 체코로 돌아간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그리고 자신의 조국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동구권이면 다 같은 동구권으로 착각하였던 나의 오해를 새롭게 덜어내게 한 시간들이었는데 루마니아의 상황은 정말 체코에서 온 미르카의 시선에서 보아도 안타까운 상황이었음을 늦게나마 발견하게 되었다. 미르카는 몇년전에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거쳐 아랍으로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자생적으로 나름대로 사회시스템을 운영하고 보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루마니아가 가장 열악한 상황이며 불가리아 그리고 폴란드 그리고 체코와 헝가리가 순서대로 나름대로 끊임없이 그들의 길을 열어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며칠전에 네덜란드 여행에서 실바나가 자신의 조국의 경제사정에 대한 안타까움이 섞인 한탄을 하였는데, 그냥 듣고만 있기기가 겸연쩍어서 한국도 마찬가지이라고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정확하지 않은 나의 답변이였고, 그렇게 대답하기에 그들의 상황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으로 느껴졌다. 실바나의 고민은 너무나 진지한 생의 고민이었고 나의 대답은 순간적인 치기에서 나온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메리카는 분명 유럽의 지형을 잘 읽고 있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핀란드나 네덜란드 그리고 덴마아크는 다들 독일과 비슷한 수위로 메리카는 판단하였고 프랑스에 대해서는 독일에 비해 별로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네들의 유산은 풍부한 자연의 환경과 혜택일 뿐 독일만큼의 공업과 산업의 발달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진단이었다. 이는 한번 들춰봐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영국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보다는 훨썬 적극적으로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결코 동유럽은 이 서유럽의 세세한 차이보다 훨씬 더 큰 보폭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는 극복하지 못할, 절대 극복하지 못할 지경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체코는 2004년에 EU에 가입 예정이고 이후에 여러 동구권이 EU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데 서유럽 가운데에서도 조금 열악한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중심으로 체코 및 동구권 EU 가입을 극구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메리카는 지적하였다. 당연히 동구로 들어갈 엄청난 지원금에 대한 경계심에 기인한 매우 정치적이고 계산적인 반대인 것이다. 나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동구에서 온 우리 순박하고 착한 메리카가 직접 잘사는 서유럽의 몇 나라의 이기적인 발상 때문에 동유럽의 EU 가입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하소연을 직접 들으니 내 마음을 울리는 고통의 공명을 견디기 지극히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주에 진행이 될 교회의 날Kirchentag에 대한 2년전의 자신의 경험을 미르카는 말하였다. 전 세계에서 대단히 많은 이들이 군집하고, 바로 그 행사는 정치적 맥락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미르카는 독해했다. 독일은 이렇게 열려 있다. 그리고 이렇게 운동한다. 친구는 다시 침묵으로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정말 독일은 열려 있나? 정말 독일은 운동을 하는가? 돈이 많은 독일이라 교회의 날 행사도 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는다음 주에 그 실체를 직접 헤아리고 이에 대해 판단하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메리카는 루마니아에서 온, 나도 잘 아는 친구 이리나가 몇개월전 자기에게 귀뜸해준 이야기를 다시 전해주었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체스코의 종말이 얼마 가기기도 전에 다시 정권이 공산주의로 넘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리나는 절망하여 그래도 정서적으로 훨씬 가까운 메리카에게 그 하소연을 하며 슬퍼했다는 것이다. 독재자 차우체스코의 행각을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마치 체코의 한 어두운 역사에 일조한 집단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수많은 민중들의 삶을 저당잡아 엄청난 부와 재산을 독식한 차우체스코의 그 만행을 메리카는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메리카는 북한의 사정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북한의 어려운 사정과 그래도 상대적으로 낳은 남한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대립이 낳은 결과로 상대적 가난과 부가 경계되어진 것은 결코 아님을 표현하려고 부단히도 머리를 돌렸는데 메리카의 눈빛은 벌써 북한의 가난의 근원을 그녀가 생각하는 그 결론으로 매듭 짓고 있었다. 순간 나는 놀랍게도 이틀전에 꾸웠던 꿈이 다시 머리에 로딩되고 있었다. 내가 그 꿈을 꾸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꿈이 아니었어도 나는 그렇게 말을 했을런지 모르겠으나 우리 아시아도 문제가 많다고 말이 튀어나왔고 거의 꿈에서 구사한 독일어 단어와 유사하게 일본의 사정과 한국의 사정을 말하였다. 그것은, 결코 기쁘기만 하지 않은 꿈과 현실의 감응들이었다...... 형이상학적 추상성보다는 마이크로한 사고가 나에게는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더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오류를 범할지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 어떤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정체성 없는 집단주의와 파시즘의 정서, 그리고 작은 것에 소소한 것에 만족하는 그들의 멘탈리티는 우리 인류를 끌고갈 든든한 이념과는 거리가 먼 듯 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당연히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깡패와 같은 인간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들만 사랑하고 자신들만을 에덴동산의 축복받은 가족으로 착각하고 사는 몽상가들에 어떠한 대안이 있을 것인가. 물론 이곳에서의 학업이 끝나면 분명 그네들의 헤아리지 못할 다양한 논법을 직접 경험하기 위하여 꼭 그 실체를 직접 두 눈으로 보러 갈 생각은 하고 있기에 아직 궁극적인 판단은 섯불리 하고 싶지는 않다. 유럽도 나름대로 건강한 대안을 모색하지만 그 이기주의적인 발상들과 교묘한 방식의 배타성의 전운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특히 이번에 터진 동구권의 유럽연합가입에 관한 서유럽의 태도는 정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내가 배나와라 콩나와라 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국.... 한국..... 아직은 나에게 한국은 잘 해명 안되는 미지수의 영역이다. 좋은 것도 엄청 많고 나쁜 것도 좋은 것 이상으로 엄청 많은 시시콜콜 별것도 다 축복받은 나라. 대한민국... 단지 순간 나에게 다가온 얼굴들은 동유럽의 그 절망과 가난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동료들과 이웃들이며, 며칠전 티브이를 보다 눈시울을 적시게 한 황량한 땅에 묻혀 있는 작은 금싸라기들을 파서 빵을 바꾸어 사먹기 위한 아프리카의 소년과 청년의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빵을 먹고 싶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공부도 하고 싶고 여러 것도 하고 싶은데, 그러나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렇게 금을 찾아 땅을 파고 있다고..... 도대체 arte라는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하여 연 방송국은 어떤 이유로 그 아픔과 가난 사이에 허덕이는 그 아프리카의 처절한 현장을 카메라로 담아내고자 했는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분노가 저절로 치밀어 올랐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의 역사와 착취의 역사는 당해보지 않은 이들은 잘 이해못할 이력들인지도 모른다. 대학원에서 같이 잠시 생활했던 케냐에서 온 까부이와 응앙아 목사님의 그 유럽과 미국에 대한 하소연, 장학회의에서 마다카스카에 온 에릭이 자신의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금, 말 그래도 금덩어리를 유럽이 착취해 나아갔는지 열변하는 그 모습, 저번학기 같이 살았던, 세네갈에서 온 친구 라파엘이 말한, 유럽의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를 생생하게 말한 모습이 머리에 아프게 떠올랐다. 엄청난 금덩어리를 다 착취해 가고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그 황량한 바닥을 아프리카 소년 소녀가 하루 열시간 이상 다른 이유도 아닌, 하루 하루를 연명하기 위하여, 먹기 위하여 땅바닥을 파는 모습을 프랑스 독일방송은 찍었고, 식민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은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땀에 범벅이 되고 먼지에 뒤덮힌 채 땅 깊숙히 들어가서 돌을 깨고 모래를 모으고 있는 국민학교 중학교 후배 뻘 되는 아프리카 친구들을 보면서 식민의 역사를 간직한 유럽에서 주는 몇푼안되는 장학금을 받는 것이 그렇게도 죄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유럽의 화려한 유산은 바로 저들의 금과 유산을 착취한 핏값의 댓가이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어서 여기에까지 오게되었나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하게 한 장면들이다. 여전히 아프리카는 고통과 가난과 에이즈라는 질병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었다. 몇몇 아프리카 나라는 프랑스어가 거의 모국어 격이다. 라파엘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이 검게 탄 아프리카 친구가 프랑스어를 하는 것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치곤 한다. 그것은 나에게 식민의 슬픈 잔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몇주전 유럽국가들 사이에 노래그랑프리가 있었다. 각 나라가 서로간에 나라 가수에 점수를 주기에 약 20여개국이 돌아가면서 유럽 각지역에서 아나운서가 자기나라를 배제한 다른 나라에게 점수를 배정한다. 그 나라 가운데 영어가 아닌 유독 자기네의 언어로 말을 한 나라가 그 잘난 프랑스였다. 왜 영어가 세계모국어로 착색되었는지 이유모를 분노, 고등학교때 잠시 배웠음에도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보다 훨씬 더 큰 분노가 프랑스어, 프랑스라는 나라에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에 그 아나운서는 한 개인으로서의 이미지로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는 메리카에게 꿈에서 이야기한 그대로 일본과 한국과 아시아에 대하여 말하게 되었다. 나의 태도는 그렇게 능동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기계적이지도 않은 감응들이었다. 융의 동시성 현상은 사실은 사실 놀라운 신비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가슴아픈 구석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르카에게 어디에서든 자연은 이렇게 다들 아름다운데 정작 인간의 삶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갈등하고 서로 물고 물리고 있는지 머리 아픈 물음만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꼭 이런 갈등과 이질적인 삶의 모순들을 없애고자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다짐 비슷한 이야기, 학회 세미나 끝나면 자비상비 다짐하는 버릇처럼, 그렇게 끝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너 컴퓨터 구입하면 내가 갖고 있는 시디 복사해서 다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체코 및 동구권은 영어에 대한 혐오감을 교육적으로 정책적으로 오랫동안 갖고 있어서 메리카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영어로 된 몇개의 백과사전과 프로그램이 너에게 매우 도움이 되겠다고 말하고 꼭 건네주기로 약속하였다. 8월이면 다시 하이델베르크보다 더 오래된 프라하대학으로 돌아가는 미르카. 꼭 같이 스파게티를 해먹자고 또 하나의 약속을 하였다. 나는 정말 소망하고 싶다. 아니 소망한다. 우리네의 삶이 그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사라지는 그런 연약한, 혹은 가련한 존재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영원과 닿아 있으며 이 세상에서 경험한 수많은 이웃들의 고난과 아픔과 갈등이 단지 순간의 눈물로 맺혀진 후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혼이 바람을 타면서 유유히 대기에 부유하는 홀씨 처럼 이 삶의 숨결이 되고 바람의 결이 되어서 더욱 더 인간다운 세상, 더욱 더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세상, 적어도 저 푸르른 하늘보다, 저 초록의 대지보다 더 아름다운 인간의 삶의 씨앗들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수많은 논리와 학문을 진지하게 검토한 그 대가의 가슴아픈 영혼에 대한 결론을 받아들이고 않고의 문제를 떠나서 나의 소망, 우리의 소망, 인간의 소망과 관계된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하늘 아래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반응보다 자아의 욕망이 더욱 중요해져버린 시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는 결코 우주 어느 행성에서 뿜어내는 색다른 대기와 공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 쉬어내고 뿜어내고 같이 섞여 있는 그 우리 모두의 것들인 것이다.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그 백만 마르크짜리 해박한 웃음, 낯선 인간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탄력성을 가지고 열려 있는 태도와 자세, 미르카를 만나고, 꿈과 현실의 감응을 다시 경험하고, 두 눈을 뜨고 제대로 직시하지 못할 정도로 놓여진 이 삶의 아포리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분노하고 불멸에 대해서 소망하고 부정의와 부조리와 불의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줄 글을 오늘 밤에는 남겼다. 분명 또한 다른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동유럽의 EU가입에 관련한 한겨레 신문 기사 : EU, 동유럽권 회원가입 딴죽 2001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