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1/08 (01:06) from 203.252.17.161' of 203.252.17.161'	Article Number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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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죽음의 고비를 넘어

땅끝 진도의 바람을 쐬기 위하여 우리는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1월 4일과 5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짬을 내어 우리는 방학의 여유를 꿈꾸었던 것이다. 실은 진도에 과학생회장 부모님이 회집을 한다는 반가운 정보를 얻고 우리는 겸사겸사 해서 진도행을 준비했던 것이다. 진도는 전남 땅끝보다 더 땅끝이다. 도대체 몇 시간이 걸릴 지 모르는 아주 기나긴 거리이다. 그런 먼 곳을 1박 2일 코스로 다녀온다는 것이 일단의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산을 떨었던 새벽부터 봉고를 빌려 학교에서 출발하여 그 진도 횟집에 몇 시에 도착할 지는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쌩쌩 달리는 봉고를 타고 저 드넓은 남도의 바다와 바람을 만날 수 있다는 그 희망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흥쾌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그 의지 하나만으로 우리의 기나긴 남도행을 커버하기에는 너무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기나긴 남도행에 일조를 가한 이유는 우리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늦게 합류하였고, 또한 경찰의 초기진압에 말려들어 운전한 지 두시간이 되지 않아 오만원 짜리 거금의 딱지를 띠게 된 요인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치명적인 딱지를 먹은 우리 운전수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경찰차 비슷한 차량 색깔만 봐도 가슴이 뜨끔거렸을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하간, 경기도를 떠나서 충청도를 거쳐서 전라도를 통과하고 땅끝 해남에까지 어스름한 저녁에 도착했지만, 그곳이 종착역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우리는 그 여정을 몸소 맨발로 걸어가지도 않았지만 다리와 발바닥이 지레 아파올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가 죽음의 고비를 맞이한 때는 아마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이제 주위는 어슴프레 어둠이 점차 밀려오고 봉고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아침 점심 저녁을 단식하면서 까지도 배가 고프지 않다며,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쇠뇌했던 그 맛있는 회가 몇 키로미터 전방에 차려 있으리라는 희망에 나는 사기 충천하였을 때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피곤한 나머지 나른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고비는 국도의 커어브 길을 봉고가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속도를 줄이고 왼쪽으로 꺾인 커어브를 봉고가 돌아가는 순간 봉고가 횡 하니 중심을 잃고 급격하게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었다. 즉 봉고의 운전석 쪽은 이미 오른쪽 차선을 넘어서서 질주하고 있었다. 이렇게 방향이 왼쪽으로 확 돌아간 순간 이제는 봉고가 오른쪽으로 또 방향을 트는 것이었다. 이때 차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간 퍼떡 깨면서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봉고가 이제는 또 다시 왼쪽으로 급격하게 커브를 도는 것이었다. 꼭 왼쪽 바퀴는 땅에서 붕 떠 있었고 상대적으로 오른쪽은 거의 지면에 닿아 차체가 오른쪽으로 넘어질 듯한 점입가경의 순간이었다. 결국 봉고가 춤을 추듯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에스자로 급격하게 방향을 못잡다가 한 바퀴를 크게 그리며 중앙선을 넘어 "키익" 하는 괴성을 내며 차가 철커덕 하고 멈추게 되었다. 형세는 이미, 중앙선을 중심으로 봉고는 단단히 널부러져 있었고, 틀림없이 우리는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달려 왔는데 운전석의 방향은 북쪽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매우 커다란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차량 자체가 넘어지리라는 예감이 아니라 중앙선을 가로질러 봉고가 서 버렸는데 이렇게 정신을 못차리고 멍하니 모두가 앉아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거기는 엄연히 국도이고 화물차나 일반 차량이 쌩쌩 거리면서 달리는 도로였기 때문이다. 순간 운전석 근방에서 사람들을 향해 차 밖으로 빨리 내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웅성 거리면서 차 밖으로 정신없이 하나 둘씩 빠져 나왔다. 마치 차가 폭파라도 할 것 같은 예측을 다 마음 속에 가진듯이 말이다. 차 밖을 보니 봉고는 중앙선을 가로질러 꺼꾸로 있었고 마치 하얀 종이에 연필로 곡선을 낙서하듯 진한 타이어 자욱들이 아스팔트에 인상적으로 묻어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아스팔트 위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뒤의 타이어는 완전이 형체가 사라진 채 쪼글쪼글하게 쇠바퀴 주위에 지탱하여 엉켜 있었고 미세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몇 십 키로의 속도로 국도 커브를 돌던 중에 타이어가 빵구가 났었던 것이다. 빵 하는 소리가 나지 않은 것은 아마 이전부터 빵꾸가 난 타이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우리가 모두 나와서 밖에서 타이어가 빵구 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옆의 터로 차를 대고, 몇몇 동료들은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차들에 손짓으로 속도를 줄이라는 표시를 하러 저 멀리까지 달려 나갔다. 가까스로 빵구난 봉고를 길목에다 대니 엄청나게 큰 화물차들이 쌩쌩 거리면서 왔다 갔다 하는 국도임을 뒤늣게나마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국도가 그렇지만 그 도로는 차가 없는 한적한 도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봉고가 휘청거리면서 제 정신을 잃고 결국 횡 하니 돌다 멈추고, 그리고 차 안에서 차 밖으로 나오는 그 20여초의 순간 동안, 뒤따라 오거나 앞에서 질주한 차가 없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이롭다고 여길 만큼 트럭부터 택시에 이르기까지 그곳은 많은 차가 통과하는 도로였다. 빵구난 타이어를 유심히 보니 요철이 거의 헤닳아진 완전히 낡아버린 타이어였다. 한쪽에서는 타이어를 갈고 그 옆에서 운전을 한 형의 손을 보니 떨고 있었다. 아직 공포와 두려움과 긴장이 다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그 형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운전하던 도중 차체가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짐을 느꼈고 그 순간 도로 밑의 오른쪽 논두렁으로 차를 몰아 꼬꾸라트리게 하려는 생각과, 운전대를 좌 우로 돌려서 속도를 줄이려는 생각이 동시에 교차되었는데 가까스로 후자의 방법으로 차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운전사가 초보였다면 우리는 아마 논두렁으로 곤두박칠 쳤을 것임은 뻔했던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운전사가 베테랑이었던 것도 그렇고, 또한 많은 숫자가 동석했기에 차량의 무게에 기인하여 차가 뒤집어지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차가 횡 하니 멈추었을 때 뒤따라 오는 트럭이나 차가 없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키보드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또한 영영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분의 타이어로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타이어를 교체하고 비교적 조심조심 국도를 타고 진도다리를 건너 학생회장의 집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도의 그 화려하고 맛깔스러운 회와 음식을 먹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루를 그렇게 길게 보내고 우리는 그 다음날 다시 머나먼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불상하는 일차적으로 렌트해준 곳의 정비불량이 문제였을 것이다. 또한 밤눈이 어두워서였는지, 차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렌트한 우리 일행도 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불찰 덕분에 죽음의 고비 마저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경하는 길목의 차 안에서 어떤 친구는 올라가서 렌트카 주인에게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아내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집요한 방도도 생각해 내었고, 소비자고발센터 전화번호도 확인하였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희대의 히트작인 '마피아 게임'을 잊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나는 차를 반납하는데 같이 없었지만 내심 이후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후 차를 반납할 때 우리 동료들은 큰 소리로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사실 내가 거기 있어도 충분이 그럴만한 사안인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한 아찔한 체험을 하였다면 결코 거기에서 차를 반납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은 공손한 자세로 나오셨고 주인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말을 우리에게 하며, 그 보상금을 정비사의 월급에서 깎겠다는 것이었다. 옆에는 정비사가 미안한 얼굴로 서 있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어느 정도를 보상하면 좋겠느냐는 이야기를 타진하려는 즈음에 우리 동료들은 그 젊은 정비사의 가슴에 걸려 있는 명함 옆의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한다. 정비사의 귀여운 아기 사진이었다. 마음씨 착한 동료들은 그냥 그 자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들 한다. 교통사고는 고도의 문명이 결코 감싸 안을 수 없는, 채념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적어도 나의 생각에는 교통사고의 빈도를 줄일 수는 있어도 결코 없앨 수는 없는 것이 우리 문명의 자명한 현실이다. 교통사고는 그것 자체가 비극이지 사고가 적게 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문명은 그의 속도만큼 힘이 붙는다. 그 속도의 강렬한 매혹 이면에는 힘의 균형을 상실한, 혹은 힘과 힘 사이의 긴장 속에서 빚어지는 문명의 비극이 도사려 있다. 우리의 주위에는 교통사고 때문에, 문명의 이기 때문에 문명을 영위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수 많은 이들이 있다. 그 아픔을 우리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통사고로 부모와 자식과 혈육을 잃고 또한 잊는가. 실로 가슴 아픈 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바벨탑의 화려한 문명이 그 생존의 조건으로 이러한 교통사고나 불가항력적인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고 강변하면 나는 차라리 문명을 포기하리라. 문명은 생명의 조건일 지언정,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문명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생명을 앗아가는 문명에 저주하는 나 또한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결코 문명과 생명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교통정리가 될 관계가 아님을 예증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과 생명은 이런 의미에서 집요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어섰다는 것은 희귀한 체험이다. 그리고 강렬한 체험이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이렇게 쉽사리 기억에서 바싹 증발해 버리는가. 우리는 등어리에 흘린 그 긴장의 땀을 결코 잊지 못한다. 하지만 함박웃음으로 또 그 과거를 회상하고 그렇게, 또 그렇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또 그 형은 운전하고, 또 나는 봉고를 타고, 또 친구는 TV 뉴스에 나오는 교통사고를 그저 일상적인 뉴스로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차에 박살이 났어도 몇몇의 가족과 동료들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렇게 쳐다보고 세상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갈 것임은 뻔한 것이다. 실로 죽음에 대한 경험은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결코 강렬한 마약과 같은 체험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기억보다 더욱 숭고한 삶을 향한 약동이 우리의 혈액에 깊이 침잠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을 매 순간 망각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가련한 전략일까. 혹은 죽음에 대한 퇴락한 기억만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박약한 삶의 기억력 때문일까. 나에게도 수 많은 죽음이 나의 기억에 또아려 있다. 저 신을 향해 표효하면서 절규 속에서 사라져가는 예수의 그 처절한 죽음, 문익환 목사의 그 슬프디 슬픈 죽음, 금새라도 나의 주위에서 나를 위해 반가운 웃음과 나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우리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며칠 전의 할아버지의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나의 기억에서부터 희미해지는 그 죽음에 대한 영상들. 죽음의 고비를 넘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결국 삶과 죽음이란 이렇게 가까이, 서로가 두 어깨를 기대고 긴장 속에 관계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하였다. 우리의 삶 이면에는 죽음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죽음에 대한 강박도 어찌 보면 죽음이 우리의 삶에 아주 가까이 실핏줄과 같이 연루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펄떡거리는 나의 이 심장의 맥박을 영위하게 하는 그 순간 순간의 계기는 우주와 문명과 가깝게는 나의 피붙이의 죽음과 희생제물로 인하여 지탱되고 있음을 놀랍게도 발견한다. 그 때 사고는 나의 생명이 죽음을 향해 급격히 치달을 수 있었던 사고임을 나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사고 그 순간을 둘러싸면서 1-2초의 타임-스페이스 렙만 있었어도 나는 여기에 없었을 것임을 이제는 진실한 실상임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살았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고비를 회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저 묘한 세계의 언어와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가까이 닿아있음을 직시하고, 동시에 너에 가까이 닿아있음을 직시하고, 거기에서부터 삶의 의미와 살아있음의 의미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렇게 한 숨 쉬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경이로운 일임을 고백하며, 있을 때 잘하는 지혜, 서로를 위하여 아름답게 세상을 살다가 누군가가 주신 그 가능성을 피워낸 후 그가 우리의 생명을 거둘 때 거역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어줍잖은 권력과 물질에 영혼이 타락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짧은 인생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슴벅찬 가능성을 펼치고 살 것인지를 지혜롭게 고민하는 1999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죽음의 고비를 넘어선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회이다. 우리 모두 있을 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