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8/08 (09:34)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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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도서관에서

오후에 벨커교수님이, 창조성Kreativitaet에 대한 자료 및 논문을 찾고 그것들을 하나씩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셨다. 저 개념은 창조론, 창조신학, 자연신학, 그리고 자연과학 및 현대문명과의 대화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밤에 잠시 실바나와 시내 바람을 쐬고 들어와, 기분좋은 금요일 밤이라 기숙사와 같은 건물인 옆의 에큐메니칼 도서관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는데,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벨커교수, 링크교수, 슈베벨 교수 그리고 할레 교수, 등등, 창조, 창조성, 바르트신학과 과정신학의 대화 자연과학과 창조론과의 대화 등등, 관심이 가고 물음이 가는 대목 대목 곳곳에 책으로 논문으로 벌써 진을 쳐대고 있었다. 논문 책 잡기 덕분에 세시가 넘도록 잠도 설치게 되었다. 대학시절, 박정진 선생님의 독일어 강독 시간에 독일에서 다른 것 신경 안쓰고 공부만 평생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혹 들었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이렇게 나의 물음을 묻기가 무섭게 벌써 신학자들이 나름대로의 묘안을 가지고 바둥거리면서 대답들을 내놓았는데, 그것만 읽다가도 몇년은 그냥 쏜살같이 흐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주 슈베벨 교수가 기숙사 명사좌담때 신은 전지전능하신가?라는 주제로 기숙사 친구들과 집단토론을 하였는데 슈베벨 교수는 상당히 예리하고 탁월한 조직신학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신의 전지전능함의 문제가 신론, 인간론, 자연론, 신앙론의 차원에서 어떻게 불거지게 되는지, 그리고 그 대안으로는 토마스아퀴나스 모델과 루터의 모델을 들었는데, 기숙사 맴버의 3분의 1이 박사과정인데 그 친구들도 질문이 좋았고 슈베벨교수의 대답과 논리전개도 상당히 치밀하였다. 이렇게 고도의 신학적 논쟁을 경험하는 그 순간은 독일어가 나의 모국어였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할 만큼 매혹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조직적인 사유는 정말 탁월한 직관의 동양정신과 비교해볼 때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벽인가. 몇주전에는 잔 야스만이라는 이집트학의 대가라 칭하는 하이델 교수도 기숙사에 와서 강의를 하였다. 야스만은 Kirchentag에서도 강의를 하나 하였다. 기숙사 강의는, 기억에 관한 테마였는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 집단과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기억은 어느 것보다 강한 결속력과 시대를 넘어선 의미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준다는 말을 하였다. 며칠전 벨커의 저서 성찬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Was geht vor beim Abendmahl?라는 책을 보다 야스만의 논지를 벌써 인용한 것을 발견하였다. 야스만은 이미 민족과 역사의 기억과 그 의미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고, 벨커는 그것을 벌써 읽고 있었던 것이다. 특이한 것중에 하나는, 하이델의 베르거나 타이센 교수 그리고 다른 신학분과 및 다른 학과의 저작이나 논점 등등을 벨커교수는 깊이 관심을 갖고 읽는다는 것이다. 같은 대학에서 친분을 맺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으나 워낙 바쁜 학자들끼리 정말 책을 통한 만남의 전부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기숙사 건물의 에큐메니칼 연구소의 자료가 이러한데 기숙사 앞의 신학도서관, 그리고 대학도서관에, 그리고 서점 및 각 대학 도서관에 얼마나 많은 논문과 자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니, 대단함과 동시에 한숨이 나오게 되었다. 그많은 것 다 볼 능력도 없는 주제에 언제 다볼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만드니.. 다음학기 중순까지는 학위논문 테마를 정리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이렇게 방대한 자료들이 각자의 자리에 다 포진되어 있어서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논문이라는 것이 이렇게 잠시 커다란 신학의 문명을 거치며, 그 전통의 향기를 잠시 경험하고 가는 것이구나 하는 탄식 비슷한 자성이 들기도 하였다. 혹여나 한국에서는 이게 내 대학이요 하는 관념이 있었을런지 모르나, 몇백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오래된 대학이나 양피지 표지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빛바랜 장서들을 보고나면, 그저 나는 잘 어우러진 대학과 지성과 문명의 산물을 잠시 어루만지고 거쳐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대학과 지성이 단지 사적인 감각에 의하여 변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우리의 자산이요, 이웃을 위한 공동 삶의 터전이라는 새로운 감각과 관념을 갖게 하는 체험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낌없이 내 질문의 자리에 매복한 채 나 잘 만났다고 든든히 폼잡고 서 있는 여러 논문들과 책들과 지성들에 정말 대단하다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2001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