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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언제나 슬퍼.......

짧지만, 길었던 2001년 여름학기가 드디어 다 저물었다. 언제나 시간은 이렇게 유한한 의식보다 빠른 보폭으로 저 멀리 화살같이 달려나가는 것일까. 이번 여름학기에 나는 무엇을 하였을까. 괜한 강박을 가지고 지나왔던 한학기의 경험과 삶을 옥죄고자 하는 이유가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이번 한학기 내가 걸어왔던 자욱들을 한번 헤아려본다. 이번학기는 두 학기째 독일에서의 생활이었다. 세상이 힘들어서 죽어가는 이웃도 있는 판국에, 먹거리가 조금 다르다고, 언어가 조금 낫설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약간은 다른 이곳에서의 생활이지만, 한국에서 채수일 선생님과 마지막 이별을 나누었을 때, “즐기라”고 한 말씀이 이렇게 가슴에 훈훈히 남아서 그랬을까. 이곳의 삶을 되도록이면 즐겼고, 사실 즐겼다라는 표현보다는 즐기고자하는 노력을 부단히 한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루지도 못했지만. 이번 한 학기는 첫 학기의 무모한 짓, 즉 세미나와 강의를 25여 시간 듣고 헐레벌떡 강의실 사이를 뛰어다니지는 않았다. 물론 이곳에서의 새로운 정보와 신학의 다양한 젓줄을 나의 뇌에 접속시킬 의무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생각을 깊게 하고, 신학이 공허한 말놀음이 아니라 삶과 사유와 가까이 엮어지기 위해서는 더욱 침묵 가운데에서 주체적으로 세상과 사물과 나의 사유를 헤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미나와 강의 10여 학점,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막스베버 어학연구소에서 어학에 전념하는 것으로 이번학기의 계획을 짰다. 사실 여름학기 3개월은 짧기는 하지만 그리 짧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수업이 매일 있었기 때문에 까까머리 수험생의 생활은 아니었지만, 빠지지 않으려고 어줍잖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몇몇 인상적인 경험은, 아무래도 나에게는 두 번째의 외국 경험이었던 네덜란드의 여행이었다. 이국적인 낭만과 방랑과 모험이 지긋이 살아 숨쉬는 암스테르담과 유트레히트.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한국 80년대의 촌스러운 순수와 때묻지 않은 순정의 시대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을 갖게 한, 기숙사 친구들과 저녁부터 밤늦까지 풀밭에 동그랗게 모여앉아 기타에, 와인에,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기억에 선하게 떠오른다. 또한 같은 장학생에 속하면서도 별로 잘 알지 못했던 실바나와 함께 신학, 그리고 독일에서의 타향살이 삶의 이야기를 깊이 나눈 것도 큰 경험이었다. 실바나와 나, 그리고 우리와 가까이 사는 마리아와 이리나는 5월에 다시 프랑크프르트에서 모였고, 거기에서 독일교회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시간들을 체험하였다. 독일신학, 그리고 교회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곤 하였지만, 여전히 독일신학과 교회는 이 세계에서 매우 강력한 힘과 저력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선교하는 이들의 성숙된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거기에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은 내가 학부시절 그분 밑에서 공부하였으면 좋겠다고 바램을 가졌던 융엘 교수, 그리고 이전에 몇 번 독일 티브이에서 보았던 볼프강 후버 교수, 그리고 독일의 수장 슈뤠더를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두 눈으로 보려는 소망이 욕망으로까지 전이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여하간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저 수동적으로 듣는 것과는 사실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안보고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부러운 것이리라. 그리고 또 무엇이 나의 이번 학기에 나의 가슴에 남았는지. 벨커 교수와 슈베벨 교수의 수업 이외에도 특히 레오나르도 보프의 강의와 기숙사에서 들었던 강의가 가슴에 이렇게 남아 있다. 우리 시대 한 신학의 지층을 분명한 지분으로 차지하고 있는 업적과 화려함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가난에 대한, 자유에 대한, 구원에 대한, 저렇게 진실하고 진지함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하긴 어느 신학에 진지함이 서려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보프의 그 소박함과 진지함은 해방신학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얼마나 큰 오해인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해방신학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해방과 구원을 매우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기에 거기에 힘과 저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첫 학기에 컴퓨터가 없어서 너무 고생을 하였기에, 학기 초에 컴퓨터와 티브이 카드 그리고 프린터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컴퓨터 특히 티브이를 유용하게 활용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티브이 시청은, 어학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상당히 다른 사회 구석구석의 면모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유용한 채널이다. 어느 선배님의 독일방송에 대한 자상한 정보를 바탕으로 각 방송사의 유용한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까지 접속이 되었다면,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텍스트까지 접할 수 있었기에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되었을 터인데, 아쉽게 그 뜻은 이렇게 학기말이 되어서까지도 이렇게 안타깝게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가끔씩 한국과 독일의 이질적인 면들을 홈페이지에 올리다가 몇몇 인터넷 친구들의 비판 그리고 질문도 받게 되었고, 그러한 질문 또한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내가 정말 이 두 문화 사이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 나가고 있나 하며 나 자신을 향해서 자문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문보다 더욱 나의 마음을 유인하는 것들은, 분명 국가라는 관념은 생각보다는 매우 기이한 관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전혀 문제가 안되는 것이 여기에서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고, 또 그 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유교문화의 또 다른 면을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의 대학이 얼마나 카스트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파당과 집단 패거리의 문화가 상당히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곳의 대화문화와 대학평준화와 개인문화가 더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30여년 동안 어느 한 체계와 문화와 시스템에 나의 온 영혼과 삶이 익숙해져 있다가 자의건 타의건, 그저 허물 벗듯 그곳에서부터 빠져나와서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나와 내 조국의 체질검사를 시도한다는 그 경험 자체가 너무나도 기이하고 낯선 체험인 것이다. 내가 그 안에 있을 때에는 이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 조차 얻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훌쩍 그곳의 허물을 벗고 자의건 타의건 그 삶의 자욱들을 돌이켜보고 헤아리다보니 나도 모르게 전거도 없는 과거의 경험에 대한 판단과 난도질을 해대는 모습을 보았다. 30년의 경험과 영향사라는 것이 이렇게 1년도 안된 다른 경험에 쉽게 밀려날 수 있다는 것도 나의 자존심을 상당히 건드는 꺼리들이었다. 게다가 내가 믿었던 국가에 대한, 사회에 대한, 민족에 대한 방향타가 이렇게 쉽사리 난파당하고,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30년 동안 체득한 문화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이 사실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적응력의 내적인 운동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길러왔던 남루한 타성이 한순간의 새로운 외적인 변화로 인하여 탈각되고 밀려나가는 것이기에, 이는 지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결코 즐거운 나날들이 아니리라. 뼈를 깎는 아픔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라도 때가 오면 뼈를 깎는 상황까지를 염두하면서 까지 나의 변화의 폭을 조율하고 허용해야 하는 것, 결코 만만치 않은 것들이다. 특히 내 삶의 자리는 전혀 남의 나라이면서 남의 나라 정보만을 접하는 와중에, 한국의 흐름을 큰 거리를 두고, 그저 인터넷의 도움으로 십몇인치 되는 모니터를 통하여 접하게 될 때에는, 오히려 한국에서 느낀 것들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덕분에 한국에 산다고 하여 한국의 문제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가설은 한번쯤은 고려해볼 만한 의심스러운 주장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교회가 그랬고, 사회가 그랬다. 특히 요즈음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와 그를 둘러싼 언론과 야당의 모습을 보고, 지극한 패배감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언론이 이렇게 썩어 있었구나, 여당보다 못난 야당을 우리 한국은 자랑스럽게 갖고 있구나 하는 속상함에 기숙사 친구들에게 하소연하지 않으면 화병이 도질 것 같아서 기숙사의 다른 친구들을 볼모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총과 칼을 들지 않았지만 특히나 요즘 한국은 하루 하루가 전쟁이고, 쿠테타이고, 혁명을 지난하게 치루고 있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조만간 모이건 도이건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어느 쪽으로든 끝장이 나기를 나는 솔직히 바라고 있다.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은 아주 우연적인 계기를 틈타 역사에 개입하심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만큼 세상은 우리에게 그를 드러낸다. 사실 그저 그려려니 세상 에 안주하고 남의 뒷다리나 긁고 있으면 세상도 그저 조용할 뿐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여전히 어려운 운명을 간직한 민중들의 얼굴, 국민전체의 고질적인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교육문제, 그리고 분단국가의 설움, 특히 교회와 신학에 있어서는 사회의 감추어진 소금과 보석의 역할을 독특히 해야 할 교회공동체의 과제,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꿈과 대안을 명쾌하게 제시해야 할 신학의 과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잊혀져 가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관과 이념의 발굴과 계승, 그리고 1세계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3세계 앞에서 악랄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소신 있게 당당하게 우리의 정체성과 소신을 가지고 세계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과제 등등,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하지만 나의 머리통에 이렇게 숭고한 가치들을 저장할 수 있는 넉넉한 용량이 못되고 또 그런 처지도 아닐 뿐. 민족의 과제를 내가 대신 다 짊어질 수 없듯이, 내 앞에 주어진 여기에서의 과제는 또한 어느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겨울의 찬바람이 상당히 지나간 5월이었지만 이곳은 한국보다는 늦게 봄이 찾아 들어왔다. 또한 나의 다음 두 학기 장학연장신청에 대한 결과도 5월이 되었어도 통보가 되지 않아서 나는 쉽사리 포기하였다. 사실 명목상으로는 제3세계가 아닌 그 잘난 한국에서 온 신학도가 이렇게 WCC의 장학혜택을 잠시 받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이제 혼자 살 길을 알아봐야겠다고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단념하니 그때서야 이번 겨울부터 다시 시작되는 1년의 장학연장의 결과가 통보되었다. 하지만 내 앞에 주어진 과제는 결코 만만치가 않은 조건들로 꽉 차 있다. 조만간 지도교수의 도움 아래 학위논문을 구상하고 그와 동시에 고전어 및 수강해야 할 세미나들을 다 초전박살을 내야 할 처지에 있으니. 한국에서 썩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였으나, 여기의 공부는 한국보다는 체감으로는 한 3배, 그리고 실질적으로 최소한 두 배는 어려운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조금 역설적이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다 스트레스로 환원하면 당장 정신건강에 탈이 날 것이 뻔하니, 이러나 저러나 채 선생님이 아주 정확하게 지적하셨던 “즐기라”라는 조언을 받들어 즐기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정신, 육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더욱 치열하게 삶의 구석 구석에서 이 삶을 더욱 건강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그 씨알들과 민중들과 얼굴들을 헤아리면, 그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기쁘게 수혜 받은 이 시간을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꼬질꼬질 고민하고 얼굴 찡그리며 살고 싶지는 않기에 기쁘게 공부하고 생활하고 있다. 이번학기 가장 소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는 실바나, 마리아, 미르카 등등 제3세계의 밝은, 맑은, 그리고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뭇 신비할 정도로 낙관적인 그네들의 삶의 태도, 그리고 또한 그 친구들의 조국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경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동구는 하나님의 그늘진 얼굴이 있는 곳이다. 하물며 제3세계야 두말할 나위 없는 이 시대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단지 몇 년을 그저 이 타향을 잠시 거치는 나그네의 운명으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이는 나와 이곳의 관계이기도 하거니와 이곳에서 만난 나와 많은 친구들의 관계도 그 운명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또한 많이 헤어지기도 하였다. 어느 누가 만남과 헤어짐을 그저 삶의 운명이려니 하면서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빛이며 헤어짐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를 심장으로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우리네의 삶 자체가 잠시 지구라는 대지에 수십 년 뿌리를 내리다 한 시절 마감하는 나그네의 운명을 다들 가슴에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엄연한 운명을 감내하면서도, 같은 나그네의 운명으로 이곳의 삶을 나누었던 친구들은 벌써 많이 그들이 가야할 곳으로 떠났고 앞으로도 분명 헤어질 터인데 말이다. 오늘은 그 헤어짐이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만드는지를 우리 서로 종일 느꼈다. 작년 겨울학기 마지막 우리 기숙사 종강모임을 나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 여름학기 종강모임을 두학기 째가 되어서야 처음 경험하였다. 이번 학기에는 실바나, 그리고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툴리아, 그리고 토론할 때 마다 꼭 토를 다는 디안나, 물리학도 디륵, 1년동안 기숙사 대표를 했던 파울리노, 시몬느, 그리고 채박사님의 친구 딸인 베아트리체, 그리고 오늘 박사논문과 구술시험을 모두 통과한 동갑내기 Dr. 라미아 등등 10여명 이상이 이 정든 기숙사를 떠나기에 이별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기숙사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떠나는 친구 앞에서 귀한 말을 낭송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 순간이었다. 여자이지만 독일사람의 냉철하리만치 합리적이고 깐깐한 모습을 갖고 있었던 디안나가 자기를 위한 시를 듣던 도중 그냥 눈시울을 적시다 펑펑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이번학기에 이별을 하고 신학 졸업시험을 위하여 멀리 쾰른으로 다시 떠나는 툴리아도 마쿠스가 선물한 히브리어 성구를 받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친구들, 한편으로는 차갑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눈물을 흘리고, 쉽게 감정이 오르는 친구들이다. 그동안 실바나와 학위논문 및 여러 이유로 그동안 기숙사에서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라파엘은 낌새를 채고 나보러 실바나에게 카드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 내가 가장 가슴에 담아두었던 니체의 한 구절과 간단한 바램을 담았다. Wer viel einst zu verkueden hat .... Wer viel einst zu verkueden hat, schweigt viel in sich hinein. Wer einst den Blitz zu zuenden hat, muss lange ─ Wolke sein. 언젠가 많은 것을.. 언제인가 많은 것을 일러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없이 쌓는다. 언제인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liebe Silvana! Ich hoffe, dass du beim Anblick unseres Leben im Oek viele schoee Erinnerungen und etwas Freude hast. 그리고 한국에서 준비했던 금빛 호랑이 책갈피를 같이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노무 자식은 남들 펑펑 울고 있는데 입이 찢어지면서 “뽀뽀해도 되냐?”darf ich dir kuessen? 하는 농담을 하면서 나를 껴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노무 자식은 물어보기만 하고 뽀뽀는 안하더군. 너의 마음을 누가 모를까. 실바나, 너도 매우 깊은 마음 한 구석에는 이 기숙사의 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는지를 알기에 우리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을. 1년 그리고 2년 동안, 같은 집 안에서 한 식구처럼 한솥밥을 먹고, 성을 거닐고 산책하며,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슬픈 일이 있으면 서로 복돋아주고, 가끔 말싸움도 하고, 파티가 있으면 며칠은 기숙사가 뒤집어지고, 그리고 그저 하릴 없으면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밤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쏟아내다보니, 어느덧 정은 밤새 자란 기린의 목처럼 높게 그리고 이렇게 깊이 들었나보다. 이곳은 그저 먹고 자는 건조한 기숙사가 아니라, 그간 50여년 동안 하이델베르크의 수많은 신학도 혹은 일반학생들의 한 시절 청춘과 우정과 사랑이 이렇게 말없이 벽돌 하나에, 공간 한 곳에 스며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그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거친 이들은 하얀 머리의 노인이 되어도 이 기숙사에서의 한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서 기회가 생기고 때가 되면 이곳을 다시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젊은 시절 이렇게 소중하게 만난 인연들인데 이제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헤어지면 보고 싶고, 떠오르면 만나고 싶은 것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저 세월의 망각이라는 마취제를 영민하게 알아차린 나머지 쉽사리 과다복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도시 하이델베르크서 난 나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고백을 이곳을 거친 많은 시인들이 하였다 한다. 나에게 하이델베르크는 고풍스러운 성과 동화의 한편과 같은 마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동네꼬마들처럼 시끌벅적하게 가장 아름다운 젊음을 같이 이 곳에서 나누는 인연이 떠오르기 때문에 시인의 고백이 이렇게 공명을 일으키는가보다. 학문이라는 것이 밤새 이를 갈면서, 어떠한 목표를 향해서 땡크처럼 자신의 성취욕을 후원삼아 추구할 때 열리는 면류관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싶다. 오늘 우리가 이별을 한 이곳은 다름 아닌 에큐메니칼 기숙사이다. 우리는 어쩌면 근본적으로는 학문을 위하여 이 먼 곳에까지 오게 되었고, 이 기숙사를 거치고 있고, 또한 우리가 꿈꾸는 소중한 꿈을 키워내기 위하여 깊은 겨울잠을 이렇게 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1년이 가까이 되면서 더욱 깊이 동감을 하게 되는 구석이 있다. 만약 에큐메니칼 기숙사가, 그리고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하이델베르크 신학부가, 그리고 크게 보아 이 기숙사의 터전을 간접적으로 일군 신학, 교회공동체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심지어 종교마저도 달라도 25명의 식구들이 그저 소박하게 같이 서로 보듬으면서 살아가는 것, 공동의 선을 이루며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기도이며 학문이며 우리가 꾸는 꿈을 피워내는 진실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의 짧은 순간이지만 언어로 건져낼 수 없는 것들, 평화가 무엇인지, 우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자리에서 깊은 겨울잠을 깨고 나면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경이롭게끔 우리의 영혼에 수혈 받는 깨달음의 지성소인 것이다. 마지막 환송예배, 그리고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늦은 밤을 거쳐 새벽에까지 촛불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바나는 오늘 고전어 합격의 기쁨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였다. 학문의 고초를 그간 깊이 시름시름 앓았고, 그리고 그 고초를 뚫고 이렇게 소정의 뜻을 이룬 실바나의 환희에 감탄과 존경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학위과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기쁨의 환호성보다 더 큰 무게 앞에서 언제라도 다시 어깨가 움추러지겠지만. 기숙사에 조용하게시리 거하였던 많은 인연들이 이제 자기의 새로운 터전을 향해 도약을 준비한다. 여기는 한 대학에 오래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꼴로 여겨질 정도로 많은 친구들은 대학을 바꾸면서 학업을 진행한다. 그것도 독일 안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로. 나에게 하빌리 논문을 선물하신 크리스티네 린네만 페린 교수의 딸인 베아트리체는 다음학기에는 파리에서 학업을 한다. 아버지가 일본인인 시몬느는 영국에서, 툴리아는 퀠른에서, 그리고 여기를 떠나는 대부분의 친구는 하이델베르크를 뒤로 하고 각자의 뜻에 따라 또 다른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간다. 나도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이든 아니면 다른 낯선 곳이든, 조금은 더욱 침착하게, 그리고 사려 깊게,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여름방학의 충전을 기쁘게 만끽하고, 지금까지의 1년의 과정과는 사뭇 달리 겨울학기부터 격정적으로 진행되는 여러 학위논문 및 여러 기타 준비과정들이 쉬이 지치지도 않으며, 그리고 브레이크 없는 차처럼 맹목적으로 달리지도 않으며, 머리카락을 휘감는 바람결을 거역하지 말고, 심장의 박동에 잘 맞추어서 펄떡거리며 살아가고 싶다. 친구들이여, 모든 이별은 언제나 슬퍼. 그러나 너희들의 눈물을 보면서, 눈가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눈물이 다 마르고, 우리가 가진 저 유한한 세월이 붉게 타고 모두 소진되더라도, 이 하이델베르크 타향에서 순수와 젊음을 서로 같이 나누었던 우리의 우정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이별은 그럼에도 언제나 슬퍼! Abschied ist trotzdem immer traurig! 2001년 7월 18일 동이 트는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