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8/08 (09:46)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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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몇년전 뜻밖의 소식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말 그대로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요는 이렇다. 요즘 기숙사 친구들 가운데에는 좋은 앨범들을 참 많이 가지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농악이나 판소리 격인 서양음악인 클레식을 이 친구들은 자주 듣고 부르곤 한다. 특히 케롤린이나, 툴리아, 그리고 마쿠스 같은 친구들은 그저 기숙사 방에 꼽혀 있는 시디만 헤아려도 넉넉히 50장 100장 가까이 된다. 이 친구들의 음악을 듣는 입맛들도 헤아려보고, 그리고 특히 클레식을 한번 본격적으로 접해보려는 심사에 이들의 시디를 빌려서 듣곤 하였다. 그리고 귀한 작품들은 시디 레코더로 간단히 레코딩 하였다. 기숙사에 아직 레코더를 가진 이가 거의 없는 관계로, 몇몇 친구들은 자기가 복사하기 원하는 시디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복사좀 하자고 부탁을 한다. 특히 저번 주에는 많은 친구들이 대거 몰려들어서, Brenner! 말그대로 시디레코더가 활활 불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시디를 복사해준 덕분에 두통 구입한 공시디도 예상보다 일찍 동이 나서 오늘은 계획도 없던 행차를 하게 되었다. 미디어마크트라는 전자제품 전문매장에 발걸음을 돌리고 시디를 구입하고 한바퀴 돌던 중에 아주 우연히 스피커 전체의 대대적인 특별할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넉넉하게 들었던 오디오 음향과 소리의 발톱도 못따라가는, 여기에서 구입한 오디오에 원망을 할까 말까 망설이게 되었는데, 고급오디오로 교체는 아니더라도 스피커는 언젠가는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좋은 음악은 좋은 영화와 양서 한권만큼, 혹은 그 이상의 기쁨과 감동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뭐 모자르트 바르트, 신학과 음악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야기는 많은데, 그것은 신학과 음악과 관계된 것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하간, 스피커가 특별할인을 한다는 것 특히 JBL 스피커가 딱 내눈 앞에서 나를 현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담당 아저씨한테 이런 저런 것 물어보았다. 이것 덤핑 아니냐구. 왜 이렇게 싸냐구. 음질은 어떠냐구. 모든 구차한 질문을 거뜬히 받아낸 이 스피커는 말 그대로 저번 주말부터 특별할인이 진행되는 것이고 이것 다 나가면 그때는 다시 원가주고 사야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원가의 1/4 가격으로 스피커는 특별할인 되었고, 몇짝 남지도 않아서 한 5분 고민하고, 구입하였다. 에프터서비스는 5년이란다. 5년동안 도대체 저게 고장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심 이렇게 자랑하나. JBL 나랑 지금 장난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다. 내가 두개 한짝을 구입하니 거기에는 몇짝 이제 남지도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비자는 값싸게 구입하려는 바램은 한결같이 보인다. 이곳 독일은 적어도 물건구입하는 데에는 매우 합리적이며,   이것 저것 생각 이상으로 많이 따진다. 그래서 이러한 특별할인이 있거나 혹은 예를 들어 슈퍼마켓 ALDI에서 1년에 두어번 하는 매우 좋은 컴퓨터를 매우 저렴하게 파는 행사기간이 되면, 새벽부터 그것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통장생각 안하고 두눈 딱 감고 스피커를 구입한 여러 이유가 있다. 나에게 음악은 내 인생의 전부다! ..라고 말할 용기나 필요는 없지만, 특히 이곳에 와서 많은 종류의 음악을 발굴하게 되었고 그 맛과 깊이는 앞으로도 더 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으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특히 우리 은혜의 시디를 4년전인가 빌려서 듣다가 첼로연주 자크리느의 눈물이라는 곡을 듣는데, 그 챌로 해석이 너무나 탁월하고 음이 너무 깊어서 은혜에게 시디를 되돌려 준후 한참을 그 곡을 찾기 위하여 바둥바둥거린 적이 있다. 은혜의 시디에는 그 음악에 대한 정보가 제목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제목의 시디를 매장에서 몇 개월 사이 세개나 구입하였어도 그 음악이 아니어서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숨 푹푹 쉰 적이 있었다. 몇개월 후 티브이 배경음악으로 나와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몇년 지나서 잊어버렸는데 여기에 와서 몇개월 전 아는 분의 시디를 듣다가 바로 그 음악이 그 음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희귀한 음반이긴 마찬가지였다. 매장에 그 음반이 없어서 예약을 하였고 1개월 후에 그 음악을 결국 들을 수 있었다. 그게 테잎이었다면 벌써 늘어져서 다 소리가 뭉개졌을 정도로 다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실바나와 마리아가 듣는 음악은 상당히 다르다. 동구의 음악은 굉장히 처량하기도 하고 슬프다. 아랍친구들의 음악은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일단 발음이 알파벳권의 지대를 벗어난 이유로 도대체 말 자체가 색다른 외개인이나 혹은 짐승의 소리(폄하발언 아님)와 비슷하다. 그리고 음조가 매우 단조롭다. 그리고 약간 거친면이 있다. 언젠가는 실바나에게 앙드레가농과 유키 그라모토의 음악을 빌려주니 하루도 안되어서 되돌려주면서 자기하고는 영 맞지 않다는 하소연을 하였다. 독일 친구들은 뭐 여러 식성들이 있겠으나, 판소리같은 거나 다른 음악은 별로 듣지 않는 것 같고 헨델과 바흐를 유독 많이 듣고 음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주로 신학도라 그런가. 물론 미국과 거의 동시에 제공되는 팝과 댄스뮤직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긴 하다만. 우리가 판소리 듣는 것과 같은 정서를 예네들은 속으로 가지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많이 든다. 우리는 농악을 들으면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만, 저절로 흥이 겨워지듯, 예네들은 바흐나 헨델을 들으면 저절로 자기네들의 고유한 심성에 깊은 감동과 풍요로움의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뭐 내가 그네들의 대가리, 혹은 심장 안으로 들어가봐야 하겠지만. (이 대가리라는 표현이 난 참 좋다. 박근원 교수님이 자주 강의시간에 말씀하셨던 그 대갈통, 대가리.) 여하간 영화한편보다 더 싼 자주 열리는 오케스트라, 실내악 연주회를 조금씩 접하다보니, 예네들의 음악이 그리 낮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장사익은 장사익 대로, 클래식은 클래식 대로 말이다. 그래서 스피커를 힘겹게 포장하고 들고 기숙사까지 들고 왔다. 내 위장은 차라리 굶어도 내 귀는 못굶기겠다는 비장한 각오 덕분에 통장생각 안하고, 지금 오디오보다 몇배는 더 비싼 스피커가 이 집구석에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앰프가 형편없으니 스피커만 달랑 좋아봤자 무슨 꼴인가 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386 컴퓨터에 20인치 고성능 모니터를 단 것과 같은 언발란스는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래서 스피커 포장을 뜯고 선이 모잘라서 다시 매장가서 선도 달랑달랑 구입하고, 유독 오늘 상당히 날씨도 더웠다. 한 28-30도 정도? 땀 뻘뻘흘리고 겨우겨우 설치하고 JBL 소리에 걸맞는, 내가 좋아하는 팝을 오디오에 걸고 음악을 틀으니.... 야호!!!! 정말 소리가 달랐다. JBL 소리의 특성이 사실은 어메리카니즘적인 날카로움, 경쾌함이 섞여 있어서 클레식이나 여타 고전음악보다는 팝을 듣는 데에는 아주 무난하다고 보여진다. 내가 한국 연구소에서 설치하여 들었던 소리보다 더욱 맑았고 날카로웠고 음장은 상당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볼륨을 크게 해보니 음이 뭉개지지 않고 트위터 미드, 우퍼 나름대로 따로국밥 소리를 잘 해석해내고 있었다. 클레식에는 사실 약간 거리가 먼 소리들이었으나 그 이유는 스피커의 문제를 따지기전에, 앰프라 칭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저 앰프의 문제가 있기에 그저 대소변 가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너무 신나서 그자리에서 다람쥐처럼 몇 바뀌를 돌았는지 모른다. 음악은 사치가 아니라 생각한다. 특히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헨델과 바흐의 성가, 특히 원어로 부르는 성가의 내용을 헤아리면 가사도 정말 뜻이 깊고 많은 영감을 준다. 음악을 생산한 그들은 물론 당대의 귀족이고 부족함 없이 많은 것을 누린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예술을 통하여 잘 잡히지 않는 그 신성과 성스러움, 소망, 은혜와 같은 것들을 형상화한 노력과 노고가 담겨 있는 것이다. 3주일전에는 심포니의 레퀴엠 연주가 있었다. 다름아니라, 맑스베버 어학연구소 선생님들과 다른 선생님들이 오케스트라로 구성되고 프란츠 바서만이라는 매우 친절한 선생님이 지휘를 하셨다. 이사람들은 취미가 음악이라는 것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취미가 과해도 너무 과했다. 레퀴엠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 음악회의 주제였던, 발칸반도의 전쟁이 이제는 그치기를 바라면서, 오케스트라, 아니 우리 선생님들의 연주회를 들었다. 그저 소꿉장난이 아니라, 실황도 녹음하고 벌써 시디도 몇개 제작한 발군의 실력들에 한참을 놀랐다. 바서만은 마지막 곡이 끝나고 이제는 뒤로 돌아서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아야 하는데 지휘를 다 마치고 한참을 꼬꾸라져 있었다. 한 30초가 되어서야 제대로 머리를 들고 다시 관객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그 나이와 경륜과 경험으로 보아서는 내가 잘 이해못할 감격과 놀라움 혹은 회한이 서려있는 눈물을 그 순간 흘렸던 것 같다. 학생들을 위하여 정말로 최선을 다하여 가르치는 선생님, 바서만. 밖으로 나가면서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땀으로 그냥 뒤범벅이 되었다. 하긴 한시간 반여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으니.... 바서만, 그리고 그들 그들에게 음악은 사치이기보다는 삶과 거리두기를 통하여 오히려 삶을 더욱 진실하게 이해하려는 주요한 매개일런지 모른다. 그저 소리에서 음을 끄집어내고 음에서 음악을 깁어내고 그리고 오디오와 스피커가 그들을 더욱 우리에 가깝게 해석해주고 또한 우리의 삶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경험이라... 참 새삼스럽게 놀랍다. 그러니 음악현상학도 뽕빼려 하면 평생가는 작업이 되리라. 여하간 몇바퀴 도는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선물을 받게 된 것이 너무 기쁘고 어이가 없었다. 만약 내가 시디를 친구들에게 구워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오늘 그곳을 가지 않았다면,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전혀 다른 소리를 이렇게 놀라운 스피커의 해석을 통하여 가까이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가보다. 선물은 아주 우연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그만큼 내가 무엇을 남들과 나누려 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이렇게 우연히 찾아들어 왔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라도 남들과 같이 나누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더 큰 선물을 바라는 요행의 문제만이 아니라, 잘 파악이 안되는, 이 세상의 감추어진 질서가 존재한다는 강렬한 인상을 아주 무섭게 받았기 때문이다. 똑바로 살자. 있을 때 잘 하자. 메뚜기도 한철이다. 인과응보 개과천선. 뭐 이런 것들... 나에게 선물을 준 이가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뜻밖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며 오늘은 몇자 남겼다. Link 음악의 현상학적 이해 (한신 20, 1995) 예술의 본질 2001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