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24 (08:24) from 129.206.82.102' of 129.206.82.102'	Article Number :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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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오늘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제처럼, 6시를 채우는가보다. 벌써 새벽이 왔다. 이제 내가 거하는 타향은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몇년 전 티브이에서 방영되었다는 거짓말의 짤막한 대화들과 음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 새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아픈 사랑을 알게 되었다. 아직 동영상은 보지는 못였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하였다. 그러나 성우는 이미 한 가정이 있는 준희와 그의 삶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성우를 보낸다. 성당의 고백실에서 준희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고백이 여전히 유폐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우의 그 거짓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은 사랑조차도 준희의 또 다른 아픔으로 전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그녀의 아픈 배려이다. 그녀는 헤어지고 준희와의 사랑을 고백하였던 그 하늘을 다시 향해 보내는 마음마저도 그가 모르면 어떡하냐며 운다. 예술은 저편 타인의 낯선 경험을, 순간 나의 감정으로 교차하게 한다. 거짓말은 그 작가의 예술적 안목, 그리고 아픈 사랑에 대한 지극한 개인사적인 문제의식이 고귀하게도 얽혀 있다. 그러나 사랑은 애시당초 아프고, 게다가 슬픔과 동족임을 두 눈 딱 감은 채 건들어버린 것 같다. 나는 성우와 준희 사이의 물리적 감각과 맞물린 아픔이, 정신성의 지극한 슬픔으로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에도 놀랐다. 그러나 더욱 나를 가쁘게 몰고 갔던 이유는, 지상의 모든 사랑에는 이러한 슬픈 정조가 아련하게나마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감이다. 사랑을 모른다는 겸손은 지나친 교만일런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랑은 슬프다는 것도 지나친 주장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어울리는 봄과 모든 것이 사라지는 가을을 같이 경험한다. 우리는 초록의 대지에 놀라워하고 또한 낙엽을 밟는다. 사랑과 가족 사이에서, 무엇이 근본적인 대전제인지를 어렵게 찾아가는 준희의 여정은 매우 원형적인 인류의 사랑에 대한 번뇌일런지 모른다. 사랑을 다시 경험하지 못하리라는 원칙마저도 산산히 조각나버린 성우의 삶의 새로운 햇살은, 사랑이라는 정체모를 것들 앞에 우리들이 상당히 가까이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랑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 이는 지극히 육신적이기에 대단히 슬프다. 나는 왜 육신적인 것이 슬픈지 아직 잘 모르겠다. 정신은 고통의 주름 마저도 무한대의 접경으로 팽창되기에 거기에는 아픔이 없다. 그저 무채색이거나, 아니면 아포리아일 뿐이다. 대지의 인간을 경험했던 신 또한 슬픈 인간의 비의를 지극히 가까이 하였고 나누었고 눈물을 흘렸다. 아플 이유가 없는 신이 우리와 더불어 아파했다. 형이상학은 관념의 사치가 아니라 절박한 구원의 전략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누님이 어제 보냈다. 거짓말의 언어는 바로 이 주장과 가까이 연루되어 있다. 봄, 마음, 설레임, 가족, 세상사람들, 결혼, 그리고 아픔, 슬픔,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 마치 슬픈 영혼의 긴장된 현에서 울리는, 생각보다 심각한, 그리고 잘 헤아리지 못할 아련한 언어의 구석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많건 적건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 성우의 에스프리와 교접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픈 사랑보다, 대부분의 사랑이 아프다는 사실. 이 명제 앞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떳떳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컴플랙스에 일찌감치 침잠된 이야기를 말하고 싶지 않다. 신의 멱살을 쥐어 세상에 쉬이 끌어들이고 싶진 않다. 아직 종교에 치이거나 신을 유혹할 때는 아니기에. 어찌하면 이렇게 지극히 세상의 사랑은 아픈 안개 가운데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 성우의 말 따라 정말 우리의 이데아가 옷을 입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있는 것일까. 성우는 실로 순수하였으며 아름다운 경건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대단히 깊은 시선과 감성으로 사랑의 변경과 그것이 일으키는 작은 실루엣들을 놓치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원형적인 사랑은 왜 이렇게 고단하고 아플 수 밖에 없었을까. 이렇듯 모든 비범한 사랑은 결국 이렇게 남아있는 자에게, 누군가를 위한 거짓말을 남기고 자기 자리로 아스라히 돌아가는 것일까. 2001/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