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형이 드디어 레비나스 입문 번역을 마친 것 같다. 형의 레비나스 아키브 http://theology.co.kr/levinas 에 들어가니 역자후기가 올라와 있어서 쭈욱 읽어보았다. 가장 마지막에는 흥식이 이야기를 써 놓았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우리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낯선 타인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 간혹 가다보면 이렇게 모든 의지와 정념과 생각의 끝 너머서 많은 사라진 얼굴들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가운데에서도 우리와 아주 가까이 살다, 우리보다 훨씬 멀리 떨어지게 된, 가족 그리고 동료와의 얼굴은 새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던져준다.
성호형의 글에 의하면 흥식이는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도 흥식이는 순교 하였다. 배부르고 등따신 사람들의 안주로 씹히는 그 순교가 아니라, 정말 흥식이는 순교하였다. 남을 구하고 자신은 죽었다. 이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다. 나에게는 안주였는데 남에게는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첫 자각이다.
나는 나이는 같은데 흥식이가 나의 학번이 아니라 상당히 거리감이 있었지만, 무언가 알지 못할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헤어진 후에는 모든 이들이 헤어진 자와의 이전의 인연에 대한 회상을 의미를 두고자 할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둘 만한 공유된 경험은 없었다. 그래도 그의 죽음은 지극히 슬픈 경험이었다. 장례식 우리 모두는 울었고, 추모예배에서 설교하시는 교수님도 우셨다.
우선, 흥식이 또한, 지지리도 저주받은, 정말 바르트가 말하였듯이, 신학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몸을 울리면서 하늘의 소리를 대신해야 하는 저주받은 동족이었기에 같은 감정과 연민과 동지애를 느꼈었다. 어쩌면 흥식이는 신학을 하지 않았어도, 남을 구할 수 있는 용기와 의리가 선천적으로 마음에 묻어 있는 인간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의 소망과 바램 한 끝에 예수님에 대한 소망과 바램이 한편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의 '순교'는 그의 큰 스승의 삶과 직간접으로 연루되어 보이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죽음은 사실 삶의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영원한 침묵의 영역이다. 며칠전에 부인이 죽고 Tod(죽음)이라는 책을 써서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에버하르트 융엘이 방송국에 나왔다. 어쩌면 최소한 죽음을 가장 가까이 뼈저리게 경험해야 그 모골이 송연한 죽음에 대한 지평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침묵에 대한 잠시의 개인사적인 언급, 어쩌면 그것이 살아있는 인간의 최대한의 능력일런지 모른다. 이렇듯 살아있는 이는, 죽음은 직간접으로 경험하기도 어렵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선택하기도 대단히 어려운 영역일런지 모른다.
흥식이는 그 짧은 순간 남을 위하여 자신을 던졌다. 그리고 죽었다. 만약 우리가 정말, 정말, 신학의 길, 다른 길도 아니라, 더욱 진실해야 하고, 솔직해야 하며, 타인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우리의 마음 속에 그려야 할까. 다른 것 다 제외한다 하더라도 흥식이가 보여준 것 처럼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정말 대단히 어려운 길일런지도 모른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자. 자신을 위한 길과 타인을 위한 길 가운데 엇갈리는 경우에, 우리는 자신을 양보하자는 것. 이마저도 우리 시대에는 대단히 어려운 길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최소한 이것만은 같은 시대 신학을 공부하고 같은 시대에 우리 친구를 떠나보낸 남아있는 이들은 가슴에 남겨두어야 할 메시지라 생각한다.
타인을 위한 삶, 머리로서가 아니라 손과 발로 문대면서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쉽게 사려하지 못하는 자신없는 구절이지만, 흥식이를 생각하며,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을 생각하며, 가슴에 남겨 두어야 할 구절이라 생각한다.
흥식아! 우리가 세상에 타협할 때, 혹은 세상에 가끔 젖어 들어갈때 우리를 깨워주고, 뒤틀려진 우리 마음의 이기심과 게으름과 나약함을 언제나 지적해주는, 가시와 별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약한 존재이다. 흥식아, 우리도 순교를 입으로만 값싸게 팔지 않도록 옆에서 응시하기를 바란다. 너의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지극한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일으켜다오. 언젠가는 다시 반갑고 기쁘고 떳떳하게 너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나님의 품에서 편히 쉬기를 또한 바란다.
200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