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03 (19:38) from 129.206.82.103' of 129.206.82.103'	Article Number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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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기행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어김없이 세계 각지에서 모이는 에큐메니칼 기숙사에는 각국의 새로운 얼굴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이곳에 모여들었다. 우리는 토요일, 만하임에 있는 성을 방문하려 하였으나, 아주 전혀 다른 이유로 그 계획을 취소하게 되었다. 이유는 나찌즘의 복귀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데모 시위가 토요일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무정부주의를 옹호하는 그룹의 시위가 동시에 진행될 계획이었다. 나는 그 사정도 모르고 토요일 멀리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러 하이델베르크 역으로 가보니 생전 보지 못했던 많은 경찰병력이 곳곳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이야기를 듣고 신문을 보니 오늘이 심상치 않은 날이었음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주거인원은 10만명이 조금 넘지만 세계 각지의 대학생들이 모인 대학도시이자 매년 300만명이 드나드는 국제적인 휴양지인 하이델베르크 만은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하여 이러한 데모에 대하여서는 엄격하였으나, 이번 해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이들의 데모를 허용하게 되었나보다. 이곳 신문에서도 '공개적'으로는 떠들석하게 이러한 사실을 보도를 하였으며, 사설에서는 돌아갈 사람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바로 나찌옹호주의자들이라고 아주 따끔하게 지적을 할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무정부주의자는 어느 한 정책을 위하여 조직화하는 당에 대하여서도 당연히 반대의 입장을 가지는 것이며 그렇기에 나찌를 옹호하는 당과 조직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 이 두 그룹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이 일어나면 더욱 크게 일이 벌어지니, 경찰들 또한 삼엄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온갖 주위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절이 외국인인 우리 기숙사에서도 특별한 어려움은 아닌듯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델베르크 역을 통하여 만하임으로 거쳐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감 페르난도 엔스는 만하임 행 계획을 취소하고 다른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독일 친구들과 우리들은 젊은 이들이어서 그랬는지, 적어도 나찌옹호주의자들의 이러한 데모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노골적으로 옹호하거나 동의하는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고, 심지어 보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성 뒤로 수백미터 올라가는 산행 기차를 타고 산 등성이에 도착한 후 두어시간을 노랗게 물든 나무들과 낙엽을 거치며 산책을 하였다. 날씨는 조금씩 추워지고 낙엽이 이재 빨강 노랑 빛으로 자기색깔이 변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친구들과 걸으면서,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이 낯선 곳에서 다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라이프찌히에서 온 스테판이라는 친구에 대한 만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이 산을 거닐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스테판은 동독에서 온 친구이다. 이곳이 서독인지라 동독에서 온친구들이 아무리 많다 할 지라도, 그리 쉽게 만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스테판은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6학기를 보내고, 이스라엘에서 2학기를 공부하였으며 '용감하게' 서독으로 학교를 바꾸어서 이번학기부터 새롭게 여기 기숙사에 머물면서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조금 다른 인상을 받았다. 특정한 개인의 성향을 너무 일반화 한다는 오류를 감내하면서도 그 인상을 정리하자면, 동독에서 온 정서는 지극한 순박함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여기 독일 오기전에 한국에서 알게 된, 동독 막데부르크에서 온 안드레아스 트레베시우스를 만나면서 갖게 된 느낌과 비교적 같은 분위기이다. 혹은 몇년 전 우연히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40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하지만 풋풋하고 신선한 인상을 받을 때의 그 느낌이 떠오르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만난 동구라파 몇몇 친구들의 얼굴 또한 떠오르게 만들었다. 느낌은 자아의 정체성이 자기와 다른 또 다른 영혼과의 마찰 혹은 교감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장과 같은 것인지라 그 느낌의 추이에 주목해보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 타자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주요한 기여가 된다. 독일 친구이지만 어딘가 한 구석이 다른 듯한 인상과 느낌의 이유를 잘 헤아리지 못하다가 그가 라이프찌히에서 왔다는 자기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나는 이유를 어렴풋 하게나마 헤아리게 되었다. 그 '이유'의 근원을 나는 가슴에 염두해 두면서 솔직하게 물어보아도 되냐 하면서 그에게 용기를 내어 질문을 하였다. 정작 동독에서 이렇게 서독으로 오고 서독친구들과의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 친구는 대답을 많이 머뭇거렸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쉽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을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대답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어서 나는 조금은 씁쓸하였으며 만약 내가 통일이 되어 북한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들게 되었다. 한참 쌓인 눈을 밟듯이 소복히 쌓여진 낙엽을 신발로 헤치면서 들리는 소리가 정겨워서 한참을 신발로 낙엽과의 마찰소리를 즐겨 일으키다보니 우리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우리는 예배를 드렸다. 에큐메니칼 한 삶을 이제 앞으로 여기서 살아가는데 정말 그 뜻을 깊이 알 수 있도록 헤아릴 수 있도록 하는 바램을 마음에 품으면서 예배를 드렸으며 자신이 준비한 모국의 소중한 구절을 다시 모아서 벽 한켠에 장식을 하였다. 후에 각자가 준비한 음식을 준비하고 한 테이블에 놓고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고기와 야채 셀러드 양념이 한꺼번에 패킹으로 제공되는 것을 요리하여 복음밥 비슷하게 만들었으며 유일한 밥이어서인지 그래도 많은 친구들이 먹어서 다행히 다 동이 나버렸다. 2주 후에는 이 방법으로 기숙사 식구들을 위한 식사를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게임을 하였으며 즐겁게 놀다보니 하루가 금방 지났다. 언제 서먹한 친구들이었나 하고 의아해 할 정도로 같이 한 길을 걸어가고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며 식사를 손수 하고 몸을 부대끼며 놀다보니 우리도 모르는 그 사귐과 연대의 영에 이끌리어 벌써 낯선 감정은 사라지게 되었다. 일요일은 스트라스부르크 행을 위하여 아침 8시에 모여야만 했다. 다행히 서머타임이 해제가 되어 새벽 3시에 2시로 시간을 맞추니 1시간의 여유가 있었는지 정시에 모두들 모였으며 각자의 차에 적당히 나누어 타고 스트라스브르크로 가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크는 이전에는 독일에도 속하였고 또 프랑스에도 속한 자유지대이기도 하면서도 역사가운데 이 두 나라 사이에서 국적을 많이 바꾼 이력이 있다. 우리가 읽은 국어 교과서의 마지막 수업은 바로 이 역사의 한켠에서 일어난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이기도 하다. 지금은 명백히 프랑스의 소속이지만 독일어도 사용되고 있으며 독일화폐 마르크도 사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두어시간을 가니 어려운 불어로 모든 간판이 채색된 프랑스의 한 아름다운 도시 스트라스부르크를 어느덧 만나게 되었다. 비자도 필요 없으며 특별한 요구가 필요없는 이 두 국경 사이를 지나면서 같은 차에 타고 있었언 사감 패르난도 엔스는 이런게 에큐메니칼한 것들이라면서 한 마디 하였다. 차 안에서 패르난도 엔스와 부인 레나테 그리고 달랑 나 이렇게 셋만 있어서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간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바쁜 나머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못한 이유에서 아쉬웠었는데 나는 그의 신학적 사유도 궁금하고 하여 이런 저런 질문도 하고 그랬다. 폰라트 타궁의 같은 그룹 Biblische Theology에 패르난도도 있었는데, 내가 잠시 야스만의 특강을 위하여 자리를 비우고 있었을 때,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 즉, 야노프스키와 슈베벨의 가벼운 설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요지인 즉 조직신학자 슈베벨의 질문에 야노프스키는 대답을 온전히 건네주지 않았으며 단지 혼자 잘 찾아보라는 식의 별로 진지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사실 야노프스키의 명성을 누가 쉽게 깰 수 있을까마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무리 명성이 있다 하더라도 자세가 별로 신뢰가 가지 않으면 그 명성의 빛이 쉬이 사그라지기 마련일 것이다. 적어도 한 개인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리고 명성 또한 어떠한 일반적인 층위의 사회적 관념일 뿐이지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언제든지 상대화 될 수 있으며 그 의미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야노프스키 교수를 몰랐을 때 슈베벨 교수는 알고 있었으며 또한 아무리 야노프스키의 구약신학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한 개인인 나에게는 슈베벨 교수가 더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를 지도한 리츨교수님의 신학적인 분위기와 여러 성향을 질문하다가 독일의 전통적인 신학논리의 도식으로는 구분이 조금 어려운 리츨의 언어에 대한 이해를 헤아릴 수 있었다. 즉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의 두 전통적 도식으로는 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라 할 수 있는데, 요는 리츨은 비튜겐슈타인의 언어이론과의 깊은 대화를 통하여 어떠한 표명된 언어가 진리를 담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맥락, 즉 그 언어를 통하여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느냐, 아니면 언어를 표명하게 하는 연결고리를 어떻게 추출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진리론과 관련한 문제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또한 이는 종교간의 대화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조명할 수 있는 자그마한 하나의 키로 역할 할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 종교시스템이 구축해놓은 '드러난 언어'에 대한 분석과 다른 종교언어의 분석 및 종합을 통하여 '종교다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작업과 동시에 어떠한 고백과 신조와 언어가 생성되게 되는 그 영향사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즉 '드러나게 하는 언어'에 대한 탐구를 동시에 수반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고백,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는 같은 자음 모음으로 구성된 언어들이 있으나 이 언어의 뿌리와 동기와 근원은 결코 동일할 수 없으며 또다른 부수적인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언어와 진리의 연결고리와 매개에 관련하여 대화를 고려해본다면 하버마스 식의 '대화'적 작업이 진리를 여하간에 유도해내고 추출해 낼 수 있다는 가설과 비교적 비판적 거리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이며, 또한 계시론적 언어이해에 대하여서도 당연히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또한 일반적인 자연신학적 바탕과도 또한 분위기가 사뭇 다른 면도 보였다. 특히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선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패르난도 엔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식론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신학적 사유와 활동의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언어는 자신의 컨텍스트와 고백의 세계에서 표현된 하나의 전리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고백을 객관적인 고백으로 등치해 놓거나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전리품의 기원에 대한 고려 없이 객관적인 비교와 무정부적인 화해는 도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단은 리츨의 언어이해로 보인다. 이는 한국의 종교다원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대단히 중요한 고려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의 종교다원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지점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검토되며 이미 어느 부분은 정리가 된 내용이기도 하다. 다만 리츨은 정교한 학문적 논의의 체계에서 언어의 문제를 세심하게 접근했으리라고 추측해보았다. 종교다원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우리 한국신학의 현실이다. 이는 종교다원의 현실을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학의 교회론, 십자가론, 조직신학적 여러 다양한 주제가 종교다원의 현실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 수 있도록 그 기반을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론이 종교다원론에 대한 논의를 하나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교다원의 현실과의 접맥과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반면, 종교다원의 언급을 아무리 많이 하여도 현실과의 긴밀한 유착과는 유리된 공허한 기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리츨은 이미 칼 바르트로부터 직접 수업을 들었으나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인본주의의 악마라는 이상한 악명을 얻게 된 살아있는 리츨의 할아버지 자유주의 신학의 풍토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가족적 운명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바르트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지금도 비판적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여기에서 매우 탁월한 사회학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듯한 리콜라우스 루만의 조직이론, 그리고 조금 더 멀리 틸리히의 상징이론이 더욱 리츨의 신학세계에 더 가까이 있어 보인다. 앞으로 리츨의 신학도 한번 꼭 조금이라도 접해보고 싶은 동기를 유발받게 된 것, 리츨 밑에서 공부한 패르난도와 대화한 후 얻게 된 귀중한 성과이다. 두어시간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리는 스트라스부르크를 도착하였으며 시내를 가로질러 대성당을 만나게 되었다. 조그마한 하이델베르크의 성령교회를 보아도 황지우 선생님은 그 교회의 건물을 미학적인 맥락과 전통에서 십여분 설명하셨는데, 그보다 더 역사적으로 미학적으로 의미가 깊은 이 스트라스부르크 대성당을 나의 경험과 안목과 준비의 부족으로 그저 직감적으로 훌륭하다는 것만 판단하게 되어서 매우 아쉬웠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여행에 오기전에 그 유적과 문물의 의미를 조금 선지식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다짐은 많이 했으나 이번 여행에도 그 준비를 하지 못하고 그저 맞닥뜨리게 되었다. 중세의 음험한 위용을 자랑하는 쾰른 성당보다는 훨씬 밝아보였다. 비오는 날 밤에 만난, 독수리 요새와 같은 시커먼 쾰른성당을 만났을 때의 그 정수리가 열리는 충격은 지금도 어디로 도망가지 않았다. 심지어 낮에 보아도 인간을 압도하는 위용은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베를린의 배를리너 돔을 보았을 때 느낀 그 크기와 음산함, 그리고 금빛 내부의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화려함은 정신을 잃게 만들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빛바랜 하늘색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니면 연한 녹색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수백년 오래되어 색이 다 바랠 대로 바랜 성당의 꼭대기의 도마뱀 색깔 녹색 지붕을 보면 너무나도 나는 혐오스럽고 끔찍한 공포를 느껴서 규칙적으로 장식하는 베를린 마천루의 도마뱀 꼭대기들을 보고다니라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다행히 스트라스부르크의 대 성당은 독수리도 아니었으며 도마뱀도 아니었다. 안에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 커다란 천문시계가 조명을 받아 비추이고 있었으며 12시 30분이 되면 그 천문시계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많은 인파들이 있었다. 드디어 30분 정도를 기다리니 인형들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꼭대기의 닭이 울면서 시간을 알렸다. 아... 정작 12번의 종을 울리는 이는 바로 뼈가 앙상한 해골 인간이었다. 나는 정말 그 순간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래, 시간은 무엇일까. 삶보다 더 오래된 끈질 긴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보다 더 오래되며 삶과 죽음을 모두 관통하면서 지금 이렇게 흐르는 시간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지극히 심각한 생각이 들었다. 시계의 분초도 시간이 아니며 그렇다고 우리의 무한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삶과 죽음과는 교감을 가지지 않는 영원 또한 시간이 아니다. 적어도 그 순간에 나는 이 시간과 거리를 두고 시간을 생각하는 듯한 아연한 경험을 하였다. 시간.... 내가 죽어도 이 시간은 흐르겠지. 세상이 멸망해도 이 시간은 흐르겠지. 신비로서의 시간, 비밀로서의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을 나는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안의 내부를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많은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의 행렬, 그리고 간간히 흐르는 성당 내부의 오르간의 연주. 또 한 구석을 차지하는 모습은 바로 십자가에 메달려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그는 배의 근육이 분명하였으며 발에는 정말 못이 분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대단히 진지하였지만 피곤하였다. 나는 우리를 인도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무관심한 채 기둥 아래에 앉아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가까이서 돌로 다시 드러난 예수의 얼굴을 다시 보니 도대체 예수는 저렇게 죽음 마저도 감내할 정도로 정말 진지하면서도 그의 소중하고 숭고한 뜻을 위하여 신실하게 살다가 간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책과 상상의 동원보다 더욱 리얼하게 느꼈다. 예수의 상은 여러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나 오늘 내가 느낀 예수의 상과 삶은, 대단히 정치적이지도 대단히 교조적이지도 않은, 어쩌면 순박하기도 하며 어쩌면 대단히 지고하기도 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여우와 같지 않고 어리석어서 자기의 죽음마저도 피하지 않고 그저 저렇게 십자가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청년으로 보였다. 내가 가지지 않은 모든 것을 그는 갖고 있었다. 이제 나도 예수와 같은 나이가 되어가는데 그를 알고 공부하고 헤아리고자 노력하면서도 대단히 용기가 없으며 지고한 뜻도 품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한 짧은 생을 살다 간 예수의 모습이 대단히 안타깝기도 하고 대단히 위대하게 보였다. 그가 생각한 타인에 대한 시선과 안목과 열정은 얼마나 높고 크고 깊었을까. 내가 그와 동시대에 살지 못하였기에 그와 직접 대화하지 못하였기에 생생한 감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나 저 십자가에 큰 대못에 박혀 있는 젊은 사람을 보고 어렴풋이 그 감이 밀려들었다.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직접 피땀흘려 조각한 이의 뜻과, 후대의 해석이 어울려 고이 묻어 있었고 다시 해석되고 있었다. 어찌 그 캄캄한 입구 그리고 노란 조명에 비추인 스테인드 글라스와 갖가지 조각상,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이 이렇게 마음을 감동적이면서도 약간은 울적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밖에 나오니 마음이 조금은 밝아지게 되었다. 우리는 시내를 돌아보았다. 캐밥도 먹고, 유람선을 타고 강을 따라 시내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피곤하여 가끔 유람선의 창가에 기대어 잠도 청하기도 하였다. 문학과 예술의 혼이 발달한 프랑스인들의 얼굴 선은 철학과 기술의 혼이 비교적 탄탄하게 깃듯 독일인들과는 매우 다르다. 왜 독일인들이 세칭 감자이고 철학자들인지 약간의 감을 얻게 한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얼굴 윤곽은 대단히 감성적이면서 상대적으로 독일인들보다는 빼어난 면모를 형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 전반적으로 그렇게 나는 느꼈다. 감성의 차이가 골상학적인 차이를 당연히 확보하리라는 것은 정신현상학을 동원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유추 가능한 상상이다. 옆에 실바나가 그런다. 유럽에서 가장 모던한 전철이 스트라스부륵에 있다고. 마치 캡슐 서너개를 연결한 듯한 정말 이쁜 지상전철이 땡땡거리면서 전철 위의 전선을 안테나와 같은 접촉기로 계속 전기를 수혈받으면서 도로 중심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프랑스어를 독일어보다 더 잘하는 라파엘은 스트라스부르크를 통하여 프랑스를 잘 이해하는 것은 조금 어렵고 파리에 한번 가보는 것이 좋으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시내에는 이상하게시리 흑인 아저씨들이 라이터와 혁대와 모자를 팔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그 앞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에 말을 걸고 농담도 하면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소냐는 어이 여보!you are my wife! 하는 아주 무례한 말까지 듣게 되었다. 아프리카를 지배한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의 비극은 여전히 완전히 가시지 않은 걸로 보인다. 물론 프랑스에서 일하는 흑인들이 분명 현재 고초당하는 아프리카인들보다는 훨씬 기득권들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얼굴로 그리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다리에 기대어 그리고 가로등에 기대어 물건을 파는 그 검은 피부의 사람들의 모습에 쉽게 책임 못질 동정을 느꼈다. 라파엘의 마음도 심히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궁금한 질문은 아예 물어보지도 못하였다. 약간은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한, 약간은 생기가 있는, 약간은 카오스적인, 약간은 방만한 사회인 듯한, 약간은 잘 빠진 또 다른 사회를 보고 어렴풋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어렴풋이. 우리는 시내를 다 돌고 다시 저녁에 주차장으로 모여서 알사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프랑스 국경쪽에 있는 곳인데, 일품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예약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가는 차를 실바나와 같이 타게 되어서 이곳을 떠난 실바나와 패르난도 앤스와 레나테는 음식점에 도달하는 그 순간 까지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음식점에 도착하여 우리는 핏자와 같은 빈대떡 위의 고기, 그리고 치즈가 첨가된 것, 그리고 활활 타는 알코올 불을 그 빈대떡에 부어서 먹는 여러 메뉴가 나왔다. 친구들은 좋은데, 그리고 나도 색다른 맛이라 좋은데, 여전히 빵보다는 밥이 편해서 그들만큼의 일품의 강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다. 정말 인이 무서운 것이다. 그 와중에 패르난도 앤스가 내 앞자리에 앉게 되어서 다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스트라스부륵은 종교개혁에 아주 유명한 역할을 하였던 한 인물이 있었다 한다. (나는 그 이름을 지금 까먹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기억이 떠오르겠지) 종교개혁 당시 캘빈과 루터의 독특한 두 사상을 중재하면서 같이 연대하고 독일의 루터와 스위스의 캘빈의 거점과 더불어서 자유지대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개혁의 깃발을 들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바쳤다는 이의 역사를 듣고, 오전중에 보았던 지극히 큰 뜻을 위하여 자신을 바쳤던 예수에 대한 우울한 인상이 같이 어울려,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다. 한국의 교회상황 NCC에서도 패르난도 엔스가 적극적으로 플랜을 짠 WCC의 10년 과제인 폭력극복운동의 주제를 위하여 논문발표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대단히 기뻐하였다. 사실 나는 이 10년과제의 이야기를 딱 듣고 느낀 인상은, 도대체 창조질서의보전이라는 자연친화적인 문제제기에서 왜 이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전쟁과 폭력의 문제를 우리가 다루어야만 하는가, 혹시 이것은 잘못 방향잡혀진 테마가 아닌가 생각을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주제만큼 지금 전지구적으로 우리의 뼈아픈 현실을 돌보게 하는 주제가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매일 전쟁 때문에 지금도 죽어가고 있으며 심각한 폭력의 파국이 진행되고 있으니, 게다가 테러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우리 이 땅이 다시 폭력과 갈등의 그늘에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패르난도는 일리가 있는 말을 하였다. 그것은 폭력이라는 주제를 오래 고민하고 고려하였기 때문에 내가 일리있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 기독교 하면 평화 그리고 조화를 대부분 상상하는데 이는 대단히 생각하기 어려운 상상이며, 이 상상을 직접 현실속에서 구현해 내기에는 대단히 복잡한 변수들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평화에 대한 고민보다 폭력에 대한 고민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며 더 선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폭력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 정답일런지 모른다. 지금 진행이 1-2년차 되고 있고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조금씩 문제제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도 이렇게 조금씩 더욱 문제의 초점이 분명해진다는 이야기 속에서 안도감과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패르난도는 폭력극복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하이델베르크 대학 신학부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이와 관련하여 책도 한권 편집하고 출간하였다. 그리고 패르난도의 부인인 레나테의 아버지인 슈나이스 목사님이 한신을 세우신 장공 김재준 목사님 추모행사 때문에 한국에 지금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슈나이스 목사님이 구상하고 활동하는 독일 일본 한국 심포지움에는 다음 주제가 폭력극복에 대하여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또한 튀빙엔의 큐셀과 베를린 비숍 볼프강 후버의 토론에서의 갈등의 이유를 대충 짐작하였으나 실재 에큐메니칼한 현장에서 뛰는 패르난도의 감을 통하여 분명한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윤리Weltethos는 자기의 정체성 마저도 상실한 공허한 논의가 되어서는 안되고,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더욱 사려깊은 노력이 되어야 함을 나도 동의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한 알의 밀알이 열매가 되어"라는 티를 입고 있었다. 한국어로 된 구절과 씨앗이 형상화된 그림에 궁금함을 느낀 레나테가 질문을 하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이 티를 입게 된 동기를 말하였다. 벌써 이 티의 사연과 레나테는 인연이 있는데 말이다. 몇년 전 성남외국인노동자교회에서 중국인 노동자들과 더분 교인수련회의 일환으로 해변가에서 물놀이 야유회가 있었으며 친구 흥식이는 거기에서 우연히 물에 빠진 청년들을 보고 거기에 의승이와 함께 뛰어들어 그 청년을 구하였다. 그러나 다시 백사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깊은 바다한 가운데 위에서 튜브로 몸을 몇시간 의지 하다가 결국 흥식이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 죽은 흥식이는 다시 화장이 되어 한신의 교정에 뿌려졌고, 그를 회상하는 비석과 모임, 그리고 티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는 "한 알의 밀알이 열매가 되어"라는 문구와 씨앗과 열매를 형상하는 그림의 그 티를 입었던 것이다. 레나테의 아버지 슈나이스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도암교회는 성남주민교회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교회이기에 레나테도 성남주민교회, 그리고 외국인노동자 교회와 인연이 있고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한 친구는 죽었고, 다른 한 친구는 살아서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레나테와 패르난도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감동이었을까, 충격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말을 하는 나는 그저 담담했는데. 채교수님 설교하면서 운 이야기, 우리 의승이는 지금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 한알의 밀알이 사과가 될지 배가 될 지는 모른다고 딴지 거는 이야기를 나는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 했는데. 오늘 하루 슬픔은 성당에서의 인상만으로 충분해서 그랬던 것일까. 오랫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듣다가 패르난도와 레나테는 독일의 부끄러운 현실, 개인주의화된 사회의 현실을 말하고 한국의 그러한 점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모르겠다. 정말 독일이 한국에서 이러한 공동체적인 삶을 근간으로 한 이러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흥식이의 그 희생과 사랑의 정신은 독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외에도 무엇을 말하였지. 아, 한국의 엄청난 신학교의 현실과 NCCK와 한기총의 갈등의 현실, 그리고 김재준 목사님이 초기에 겪었던 이단시비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여러 오해들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하였다. 또한 우리가 대학에 있는 이유로 한국의 대학카스트문제에 대하여 말을 하였다. 패르난도 엔스는 아직 한국에 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지도교수인 리츨은 한국에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앤스는 꼭 한번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 대해서도 한번 꼭 보는 것이 독일의 신학자들이나 신학전통에서도 매우 색다르고 소중한 경험이 되리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마치 내가 여기에서 지금 이 소중한 에큐메니칼한 경험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차이는 진정 본질의 의미를 묻게 하는 신비한 지점이다. 차이는 사실 그 내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계사의 신비 처럼 우리에게 물어야 할 것을 묻게 하고 궁금해야 할 것을 궁금하게 만드는 묘한 영역이다. 외국인과 한국인 서독인과 동독인 계시와 자연 프랑스와 독일 시간과 영원 예수 그리고 흥식이와 나 정통과 이단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 독일교회와 한국교회 짧은 기행이었으나 오늘 하루는 지극히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물음을 갖게 한 시간이었다. 가을의 주말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다른 문화와 생각들을 만나면서 내가 다시 새로워진다. 더욱 헤아려야 할 생각도 많아지고 또한 더욱 조용해진다. 처음 만난 프랑스, 그리고 스트라스부르크 이 하루의 따뜻한 감동이 식지 않고 오래 남길 바라면서 여기에 전리품으로서 몇 마디 남겨본다. 2001년 10월 29일 오펜바흐의 자끄린느의 눈물 홈페이지메인 전철논문 한국논문 사물의질서 연구실 방패와창 꼬람데오 新자연신학 엽서한장 토론광장 추천사이트 방명록보기 신학동네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