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17 (20:05) from 129.206.82.103' of 129.206.82.103'	Article Number : 191
Geist	Access : 7700 , Lines : 779

식사준비

오늘은 화요일, 언제나 그랬듯이 공동식사가 있고 명사와의 좌담이 있으며 기숙사 식구들의 토론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유독 특별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한학기에 한번 기숙사 식구들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날이 나에게는 오늘이었기 때문이었다. 25명의 식구들, 그리고 명사와의 좌담을 참여하기 위하여 오는 몇몇의 낯선, 혹은 낯익은 친구들, 그리고 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따로 초대하는 몇몇의 친구들 해서 30-35명 분의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4시부터 라틴어 수업이 있으며, 6시부터는 교회사의 영지주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오늘 맡겨진 공동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그 두 수업을 듣지는 못하였다. 어제는 하이델베르크 역 가까이의 Handelshof라는 큰 대형매장 슈퍼와 Pennymarkt, 그리고 아시아 음식점을 돌면서 음식재료를 준비하였다. 후라이팬 위에 올리고 뜨겁게 열을 가하여 밥이나 다른 음식과 같이 어울려 먹을 수 있도록 간편이 포장되어 있는, 마치 볶음밥의 재료이지만 조금 더 다양하고 복잡한 중국식, 이탈리아식의 재료를 구입하였다. 또한 쌀을 구입하였다. 한국쌀은 비싸기도 하여서 구할 수 없었다. 1kg에 600원(1마르크) 하는 쌀인데, 10박스를 구입하였다. 1년전에 뉴렌베르크에 가서 소시지를 먹었을 때에는 그 소시지가 그 지역의 특미이자 독일에 널리 알려진 소시지인줄을 몰랐다. 그래서 유명한 뉴렌베르크 소시지도 밥에 좋을 것 같아 몇 줄을 구입하였다. 쇠고기 다시다, 간장, 깨 그리고 고추가루가 섞여 있는 통닭 소스와 같은 병을 하나 아시아음식 가게에서 구입하였다. 저번 학기까지 마지막으로 여기서 지내다 이번학기부터는 네카강 저편 기숙사에서 사는 실바나는 저번학기에 너무 바빠서 기숙사 친구들을 위하여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지 못하고 그저 핏자만을 애들을 먹였다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다. 그래서 이번학기에 기숙사 식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와 같이 음식을 준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실바나는 야채 샐러드와 케이크를 만드는 재료를 주로 알아서 구입하였다. 기숙사에는 한 30프로가 채식을 하는 친구들이라 대충 큰 사이즈의 두 양동이는 고기를 섞은 음식과 한 양동이는 고기가 없는 음식을 준비하는게 관행이었다. 그래서 6-70프로는 고기를 넣고 나머지 한 30여프로는 고기 없는 음식을 만들고자 하였고 돼지고기도 1키로그람 구입하였다. 아침에 슈베벨 교수의 보어레중을 듣고, 점심에 슈베벨교수의 Jenson 의 ST 영어세미나를 하고 나니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다 되었다. 우리는 세시부터 음식을 준비하였다. 보통 7시에 짧은 예배 7시 반에 식사 8시 반부터 명사와의 좌담이니 세시부터 준비하는 것이 그리 늦은 것은 아니지만 또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 없으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세시부터 설내발을 내었다. 수업 빼먹고 두팔 걷고 오디오 식당에 갖다 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단순하게 압축해서 오늘 제공할 음식을 표현한다면 "밥 + 야채고기소스"인데 밥이 생명이니 30여명의 밥을 하기 위하여 밥통을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모았다. 한 7개 정도가 모였으며, 쌀을 씻고 밥을 얹혔다. 복음밥 류의 밥은 질은 밥 보다는 된 밥이 좋을 것 같아서 물을 약간 적게 넣었으며 쌀을 많이 넣었다. 나중에 익혀진 대부분의 밥은 밥통의 용적을 거의 꽉 메꾸었으며 또 진 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기숙사에는 한 7개 정도의 후라이팬이 있다. 이 후라이팬도 종류가 여럿이다. 계란 후라이를 하나 하여도, 바닥에 늘어붙는 후라이팬이 있고 어떤 것은 타지 않고 잘 익는 팬이 있다. 우리 대부분의 기숙사 식구들이 선호하는 후라이팬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가장 최근에 들어온 후라이팬으로 거의 모든 음식을 소망하는 바에 따라 잘 데워주고 볶아준다. 나는 이런 후라이팬이 상당히 고가인줄은 늦게서야 알았다. 칼도 10개 이상이 있는데 좋은 칼은 대단히 고가라는 것을 백화점에 있는 식기용품들을 쇼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많은 후라이팬 작업의 과제 앞에서 그것을 찾아보았는데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이리저리 찾다가 첫 단추부터 꼬이네 하면서 징크스 이론을 머리에 떠올리게 되었다. 수업을 듣고 온 라파엘에게 물어보니, 2층에 있다고 하여서 달려가니 거기 주방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그 팬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내려와서 식당에서 셀러드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는 실바나에게 자랑을 하였다. 있을 때에는 별 감흥이 없다가 뭐든지 잊어버리다 찾게 되면 그 기쁨이 사실 대단히 큰 이유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해라 라는 말이 정말 진리인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까페에 중화반점 노래가 올라왔는데, 정말 그렇게 신나게 볶았다. 물론 모든 재료를 일일히 구입해서 씻고 깎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포장이 되어서 얼려진 것을 후라이팬에 볶는 작업만 하였으나 타지도 않게 그리고 국처럼 끓이지 않으면서 음식을 볶아내는 것은 순간순간 불의 힘과 음식의 반응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양념을 먼저 넣고 볶으면 음식물이 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행히 음식 만들기 전에 알게 되어서 하마터라면 다시다와 간장과 깨를 넣고 볶아서 쉽게 태울 뻔 하다가 다행히 그 많은 양을 잘 볶았다. 그리고 고기를 잘개 썰고 그 고기들도 후라이팬에 볶아서 다 볶은 후 통닭용 소스라 하는, 고추가루가 섞인 양념을 붓고 간장도 넣고 다시다도 넣고 깨도 넣어서 양념에 절은 고기로 만들어 버렸다. 7개의 밥통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한꺼번에 나는 모습을 친구들이 옆에서 보면서 놀라워하는 이유는 뻔하다. 기껏해야 기숙사에서 한두개 보이는 밥통도 신기해 하며 도대체 어떻게 작동되냐 몇분 걸리냐 하는 질문을 받기가 일쑤 였는데 저 많은 밥통들에서 기관차처럼 증기를 뽑아내고 있으니 코믹한 장관이었을 것이다. 밥통의 밥을 그 소스와 함께 비비는 것이다. 너무 된 밥은 후라이팬에 같이 볶아서 부드럽게 하고 하여 약 8키로그람의 밥을 세 양동이에 나누었다. 두 양동이는 고기가 들어가고, 한 양동이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하여 고기가 안들어가고. 간을 맞추어서 적당히 통닭소스 및 간장과 소금을 넣었다. 원래 후라이판 소스는 양념이 되어 있어서 그리 특별하게 양념을 새로 할 필요는 없었으며 신겁고 짠 것만 조절하여도 맛이 좋았다. 특히 밥을 되게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깨를 넣고 섞었다. 희미한 생각만 가지고 이렇게 음식을 시도한 적은 처음이었으나 맛이 그래도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순간, 오늘 와서 밥먹으라고 초대한 마리아는 저녁에는 약속이 있다고 굳이 그 말을 하기 위하여 한 시간 전에 기숙사에 들렸다. 착한 마리아. 실바나는 셀러드를 만들고 케익 또한 준비하였다. 실바나도 설명서를 따라 처음으로 케익을 만드는 경험인지라 맛이 어떻게 될 지는 장담을 못하는 판이었다. 남은 구석의 바나나 조각도 줏어먹고, 잘 볶아진 밥과 고기도 이리저리 챙겨먹고 하니 조금씩 배가 불러왔다. 시간은 7시가 되어 종이 울리고 우리는 음식준비한다는 핑계로 앞으로 30분 남은 시간을 잘 맞추어서 마지막으로 뉴렌베르크 소시지를 굽고 모든 음식을 약간씩 데워서 식당 테이블에 옮겼다. 갖가지 야채와 고기가 볶아진 소스와 밥이 담겨 있는 세 양동이. 배추 위에 잘 정리된 뉴렌베르크 소시지와 그 옆의 노란 센프 소스. 밥이 싱겁다고 여기는 친구들을 위하여 준비한 소금과 섞어 볶은 김. 그리고 야채 셀러드. 그리고 마지막에 후식으로 나오는 케익. 옆 예배실에서 예배는 끝나고 우루루 식당으로 들어온다. 1주일의 기숙사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 전혀 새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화요일 7시 30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 모였고 우리는 간단히 음식 소개를 하였다. 보험(Krankenversicherung) 다 들었냐 물어보면서, 한국음식도, 루마니아 음식도 아닌 이상한, 태어나서 우리가 처음 만들어본 음식이라고 하면서, 소금 대신에 김 뿌려서 먹으라 하면서 웃으면서, 음식소개를 하였고 신나게 음식 먹기전에 부르는 노래를 기숙사가 떠나갈 만큼 크게 불렀다.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개강 둘째 주이기도 하여서 친구들이 다 오늘이 아니라 학기말에 음식 준비한다는 등록을 하였고 나만 혼자 오늘 비어있는 자리에 이름을 써서 혼자 어떻게 준비할까 염려가 되었는데 실바나가 도와주고, 또한 밥만 할려고 하다 우연히 가게에서 뉴렌베르크 소시지가 생각이 나고 샐러드가 생각이 나서 우연에 우연을 거쳐 음식을 준비하였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대단히 완성도가 높은 하나의 좋은 음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맛도 대단히 좋았다. 특히 한국 통닭소스와는 다르지만, 익힌 닭과 같이 먹으면 대단히 맛이 있다고 알려진 소스가 밥과 야채와 잘 어울린 것 같았고 밥을 되게 하여서 밥알이 으깨지지 않으면서 솔솔한 맛을 유지하였고 고기도 최대한 잘 볶아서 잘 씹히는 맛을 잃지 않게 하였던 것이 주요한 요인인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한국은 유독 쌀과 같이 일생을 보내는 음식생활을 가지고 있어서 쌀과 관련된 맛 감각은 여타의 나라보다는 대단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친구들도 쌀을 많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많이 먹는 경우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맨날 밥벌레로 사는 나도 우리가 준비한 음식이 맛이 있으니 밥에 관한한 혓바닥 감각이 비교적 발달되지 않은 다른 친구들도 대단히 맛이 있으리라 보였고, 얼핏 보니까 빈소리가 아니라 정말 맛있다면서 우리를 위로하였다. 다행히 세 양동이 음식이 거의 동이 나버려서 너무 기뻤다. 또한 실바나가 준비한 셀러드, 그리고 케이크 색깔이 빨간하여 꼭 불량식품과 같이 보여서 실바나는 SF 사이언스픽션 케익이라고 자칭 나자빠지면서 이름을 붙인 그 케이크도 대단히 맛이 좋았다. 물론 씹히는 귤과 바나나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렇게 화요일 공동식사의 음식이 맛이 없는 경우나 정성을 들이지 않은 표가 나는 경우도 분명히 있고 또한 그 대체적인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저번에 실바나와 다른친구가 그냥 핏자를 사서 렌지에 데워서 공동식사에 제공하니, 대부분 예의적으로 음식을 준비한 이들에게 보내는 인사로서 식탁을 한 30초 정도 큰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치는데 그 인사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무의식적인 평가라는 것도 엄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번이나 크게 식탁 두드리는 소리를 우리는 들었다. 먹는 도중에도 실바나에게 아직까지 음식 먹다 친구들이 죽지 않았다고 말하며 안도스러워 하곤 하였다. 친구들이 잘 먹어서 너무 우리는 행복했다.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하여, 주인들이 손님들을 위하여, 교회 집사님들이 교인들을 위하여 준비한 음식에는 이러한 마음이 있었겠구나 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실은 이번 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학교로 돌아오려니 어느 여 집사님께서 나에게 쌀 한 푸대와 예배 후 공동식사때 같이 맛있게 먹은 해물탕 상당한 양, 그리고 어디에서 준비하신 커피를 나에게 조용히 건네주셨다. 나는 감동을 받고,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시간도 없이 집사님은 저쪽으로 가셨다. 그 순간 짧은 경험이었으나 나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게 되었다. 교회라는 조직의 존재이유를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눈에서 보면 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힘쓰는 일종의 복지 기관으로서의 교회, 혹은 여느 이익조직과도 유사하게 특정한 목적과 이익을 성취하고자 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 혹은 모든 시공간은 특정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는 하나의 관념과 생각이 육화될 수 밖에 없는 '수용자'의 장field이고 거기에 교회라는 장이 시공을 거쳐 지속된다고 보는 우연적 계기와 의미에서의 교회 아니면 정말 하나님 나라의 하부조직으로서 세상과의 긴장과 갈등 혹은 혁명을 위하여 존재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회조직'인 교회 등등... 적어도 그 순간 나는, 교회는 사실 계량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사회역사적 분석으로도 잘 해명이 안되는 아주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기에 섯부르게 외피에 대한 분석과 해명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이해해서는 안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회는 교회로서 존재해야 하지만 교회를 교회로서 이해해야 할 과제도 우리에게는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기숙사의 생활 한학기 가운데 하루 큰 거사로서, 아니면 모종의 스트레스로서, 아니면 의무감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 '식사준비'를 오늘 어느 학기와는 달리 온전히 준비하고 온전히 참여하고 같이 경험하면서 나눔과 사귐과 에큐메니칼한 연대의 의미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되었다. 아주 외형적으로만 말한다면, 기숙사에서 주는 7만원(120마르크)의 음식을 구입하여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하는 사건인지도 모르나 그 외피의 사건을 넘어서서 내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과 체험이 이루어지고 작동된다는 것이다. 사실 삶이라는 것도 어쩌면 밖을 보는 눈과 안을 보는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내 주관적인 생각과 관련해서도 관념과 감각이라는 것이 그리고 이 두 세계라는 것이 결코 단순하고 만만하게 지평융합이 되지는 않는 것들이라 보여진다. 며칠전 선생님 댁에 놀러가서 만난 책 Gott, der Mensch and die Wissenschaft. 신, 인간 그리고 과학을 통하여 과학과 신학에 대하여 신선한 생각들을 많이 얻게 되었다. "과학자는 감각을 통하여 외면의 세계를 바라본다. 신학자는 관념을 통하여 내면의 세계를 바라본다." 뭐 이런 생각도 들게 되었다. 어느 순간보다 감각과 관념을 매개로 하여 그 차이에 대한 경험을 이번 주에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오늘 세미나 시간에도 내 앞에 있는 친구들 얼굴과 그 뒤에 꼽혀 있는 장서들의 풍경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나의 눈과 나라는 고도의 유기체 덩어리의 운동을 통하여 저 밖의 풍경이 이렇게 섬세하고도 정확하게 내 정신에 닿고 전달이 되는지 도대체 너무나도 신기한 것이었다. 나의 눈이 존재하는 것과 눈을 통하여 밖의 세계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런지도 모른다. 눈에 대해서, 시각에 대해서, 그리고 말 그대로 드러난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그 드러난 세계로 절대로 와해되거나 환원되지 않은 삶의 내밀한 고귀성과 가치에 대하여 정신을 골똘히 연필 깎는 칼로 깎아내지 않을 수 없다. 긴 오늘 하루는 지났다. 기숙사에서 시끄럽게 같이 음식을 준비하였던 실바나는 잠시 방에 있다 네카강 건너편 기숙사로 다시 갔으며, 맛있게 음식을 먹고 웃고 즐겼던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식당에 있지 않다.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자거나 혹은 음악을 듣겠지. 오늘의 주제 AIDS에 관한 강의를 하였던 명사는 다시 자기의 갈 곳으로 갔으며, 저 밤은 조용히 모든 것을 품에 안고 유유히 흐른다. 예수, 다른 눈으로 보면 그저 개죽음도 아닌 쓸쓸한 이름모를 사망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초월과 닿아 있는, 전혀 다른 세상의 빛을 전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고 인류를 대속한 유일하면서 영원한 사건이기도 하다. 거리에 부랑자의 서글픈, 혹은 무서운 눈빛에는 우리가 전혀 헤아리지 못할 한 고유한 삶의 비밀과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 있다. 그 역사는 사실 개인에게만 영원히 존재할 뿐 모두에게는 잊혀질런지도 모르는 그러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그저 동그란 물과 흙과 공기가 미지근하게 공존하는 별일런지도 모른다. 밤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땅과 도시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이들이 자그마한 등불에 의지하여 밤을 지새우든지 아니면 시체처럼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는 그런 집단 수용소로 보일런지 모르겠으나, 그 집, 한 가족 가족에는 세상 모든 것으로도 전혀 바꿀 수 없는 대단히 소중한 삶과 개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평화는 바로 타인의 외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헤아리기 대단히 어려운 타인의 고유한 삶이 엄연히 존재함을 고백할 때 가능한, 고귀한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나에게 소중하듯 너도 너에게 소중하고 너 또한 나에게도 소중해지길 바라는 대단히 보편적인 소망에서 출현하는 우주적 관념일런지도 모른다. 같은 별에서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경험하고 또한 분명히 시간의 영겁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희미하게 흩어질 우리들의 기쁨과 웃음과 경험들일 지언정, 존재하지 않고 사라질 우리의 경험이언정 지금 여기에서 서로 나누어지고 공유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단히 고귀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같은 음식을 먹었고 같은 시간을 나누었어도 서로의 독특한 위장과 영혼을 거쳐 전혀 다르게 배설이 되고 각자의 중심을 거쳐서 오늘의 경험은 전혀 새로운 의미들을 열어내겠지. 공동체의 삶은 우리가 얼마나 같아질수 있느냐를 문제 삼으면서도 이 특정한 시공을 공유하는 공동의 체험 또한 얼마나 독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느냐를 드러내는 대단히 이색적인 삶일런지도 모른다. 식사준비, 관념과 감각의 이원론, 교회와 기숙사 등등에 관련하여 내 독백이 많았다. 여기서 그만 해야겠다. 그럼 모두들 편히 자고 다시 새롭게 내일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2001년 11월 6일 화요일 식사를 잘 준비하고 친구들과 잘 먹고 오늘, 대단히 긴 하루를 마친 후 소감을 남김.     Jason Becker, Higher 홈페이지메인 전철논문 한국논문 사물의질서 연구실 방패와창 꼬람데오 新자연신학 엽서한장 토론광장 추천사이트 방명록보기 신학동네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