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23 (10:04) from 129.206.82.102' of vpn102.urz.uni-heidelberg.de'	Article Number : 202
전철	Access : 5917 , Lines : 133

크리스마스에 쓰는 논문

Kandinski | Yellow-Red-Blue Sarah.. | Eden 오늘은 눈이 내렸고, 온통 하얀 세상을 보니 그간 내 마음의 앙금이 눈 녹듯 가라앉았다. 작년 겨울에도 사실 크리스마스때 독일 친구의 초대를 받았는데, 기숙사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대단한 희생 덕분에 소정의 성과는 거두었지만. 이번 겨울에는 논문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지도교수가 하버드 대학에서 현재 강의중이라, 볼 수 있는 시간이 크리스마스 전후에만 있다고 하여서 그 시간 논문 관련 준비를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자기 안에 날뛰고 있는 귀신의 소리들을 김발 말듯 한 줄로 꿰어서 매끔하게 토해내는 짓 같기도 하다. 한 줄 한 줄 결국은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 것이고 먼 과거와 내통하는 짓일런지 모른다. 논문을 쓰면서 저 도서관의 관에 시체처럼 죽어 있는 과거의 死語들을 헤아리고 쓰다듬고, 혹은 죽은 듯한 아이디어가 옷을 입으며 새로 날개달고 반짝이는 광경에 기쁨을 느끼는 것. 이런 것도 낙에 속하는 것일런지는 몰라도 이게 기쁨 아니면 무엇이 기쁨일까. 기숙사 조용하다. 다들 조용히 바쁘다. 방 구석 구석에 꼭 처박혀서 누구는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누구는 하우스아르바이트를 쓰고 누구는 논문을 쓰고 그리고 누구는 티브이를 보고. 조용한 겨울 밤이다. 며칠 후면 먼 곳에서 성현이가 오고 베를린의 신규가 오고, 대단히 기대가 된다. 크리스마스는 그간 1년간의 삶과의 대화이자 정리이다. 논문 또한 죽은 언어와 지금의 삶과의 대화이자 하나의 정리작업이다. 시간이 흐르듯 한 줄 한 줄 어느덧 논문도 꿰어지겠지. 크리스마스에 쓰는 논문이기에 속칭 소설같지 않기를 내심 바라는데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한편의 멋진 소설을 쓴다 생각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더 속 편한지 모르겠다. 한 밤, 몇 줄 논문 끄적거리고 휴식차 다시 낙서 끄적거린다.   2001년 12월 18일 홈페이지메인 전철논문 한국논문 사물의질서 연구실 방패와창 꼬람데오 新자연신학 엽서한장 토론광장 추천사이트 방명록보기 신학동네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