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8 (08:13) from 129.206.82.102' of vpn102.urz.uni-heidelberg.de'	Article Number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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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면허증, 의료보험, 그리고 샴푸

오늘은 짧게는 며칠동안 길게는 1년 이상 미루었던 일들을 온종일 오후 한꺼번에 부산하게 처리하였던 하루였다. 친구가 선물한 펜과 잉크로 쓴 편지를 다시 우체국에 가서 그 친구에게 붙이고, 오늘 만날 죌레의 저서를 서점에서 구입하고, 1년 넘게 방치된 면허증을 찾아서 독일면허증으로 바꾸기 위하여 비자연장한 이후 1년만에 시청을 들렀으며, 의료보험 인상에 관하여 통보된 편지를 들고 AOK에 가서 서류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백화점에 들러서 샴푸와 로숀과 크림, 그리고 향이 있는 촛불들과 받침대를 골라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들어오는 데 공기는 약간 무겁고 차갑지만 햇살은 시내 전체에 내려앉고 있었다. 기숙사의 커튼을 확 젖히니 저 멀리 보이는 성에 조용히 내려앉는 노란 햇살들이 오후 세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그간 미룬 빨래를 해야겠다. 일주일에 세번 세탁기 코인을 구입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는데, 에큐메니칼 연구소 비서가 출근하지 않은 덕분에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나탈리를 통해서 오늘 코인을 10개 구입할 수 있었다. 나탈리는 이번에 6년의 마기스터과정을 졸업한다. 졸업시험 두번 떨어지면 그간의 공이 완전히 허사가 되어버리는 공포 때문인지, 여하간 몇 달 전부터 아주 쩔쩔매면서, 혹은 열심히 졸업시험 맞이 공부를 그렇게 하고 있다. 1차시험 합격했다고 와인을 나눈 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최종시험이 별로 남지 않아서 친구도 걱정과 긴장이 한층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빨래를 돌리고 기숙사를 청소해야겠다. 논문도 논문이지만,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며, 쇼핑을 하고, 마치 인도의 어느 번잡한 시장통과 같은 Hauptstrasse를 걷다보면 살아 움직이는 삶과 생명의 그 약동에 생생한 기운을 절로 얻게 된다. 오랫만에 만난 상쾌한 햇살이었고, 조금씩 다가오는 봄을 조용하게 맞이하는 기운들이었다. 2002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