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8 (08:23) from 129.206.82.102' of vpn102.urz.uni-heidelberg.de'	Article Number :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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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Schindlers List | Piano Theme 외출을 하였다. 북독일에서 딱 일주일을 채우고 돌아온 일요일 밤,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지독한 두통과 훌쩍거리는 감기 뿐,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받은 편지함 폴더에 도착한 이메일들, 그리고 신학동네 방명록에 걸려 있는, 나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듯한 사람의 글. 다시 동유럽 친구들을 만났고, 우리를 호송하는 버스의 타이어는 Rendsburg, Eiderstedt, Schleswig, Holm, Luebeck, Kiel 이름도 낮익지 않은 북독일의 구석구석을 쌩쌩 문대고 다녔다. 거기에는 바다가 가까이 있었으며, 바람과, 폭풍과 눈, 비 사이에 우리는 놀라워하기도 하였고 추워하였다. 춤과 술을 좋아하는,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동유럽 친구들을 만나고 나면,   내가 얼마나 게으른 인간형인가를 새삼 대칭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한 편으로, 정교회 친구들의 그 가락들은 왜 그렇게 태생적으로 깊고 슬플까. 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시내를 돌았던 우크라이나에서 온 Koval에게 잠시 사랑에 빠졌으며, Internationales Fest 마지막을 매듭지었던, 멕시코에서 온 Guerra Ribeiro의 삼바 춤에 연거푸 EOS Canon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리꾀르의 해석의 갈등,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 그리고 시인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라는 책과 시집은 몇 장의 CD와 함께 나와 종일 동행하였다. 허나, 관념의 모험은 첫장을 열어보지도 않았으며, 리꾀르의 당차고 거만한 글쓰기에 쉽사리 눈을 거둘 수가 없어서 현상학과 해석학 쳅터에서 겨우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황지우의 저 시집은 나를 많이 아프게 한 모종의 가시같은 글들이었다. 난, 버스에서 황지우를 읽었으며 침대에서 리꾀르를 읽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이 신학이 참 답답하다는 저주같은 상상이 문득 버스 밖의 상공에 연기를 몰며 출현하였으며, 정말 잃어버린 내 유년의 언어들이 많았구나 하는 자책에, 가여운 내 자신을 쓰다듬기도 하였다. 아래로 꺾여진 욕심의 곡선을 분명하게 보았고, 그 욕심의 상실과 더불어 앙상하게 파편화된 내 고귀한 열정들의 흔적도 다시 보았다. 비바람에 뉘여진 짚단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 그토록 고단하지만 않다면, 다시 세우고 싶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뜻하지 않게 얻게 되는 이 당황스러움들. 뜨거움도 차가움도 없었던 - 아니 거세당했던 - 내 앙상한 과거의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한다니. 그리고 지금의 나와 텃세를 벌이려 한다니. 마다카스카에서 온 에릭은 나를 알코홀리커라고 종일 놀려댔으며, 리투아니아에서 온 라우라는 세상에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였다. 브라질에서 온 약한 여인 페르난다는 브라질의 가난과 민중들의 아픔에 분노하였다, - 어쩌면 독일에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우리는 독일 각지에 탄탄하게 또아리를 트고 있는 엄청난 디아코니아 조직들에 감탄하였으며, 그 와중에 호텔의 스팀온도가 내 소망의 반절도 안되어서 나는 종일 투덜거렸고, 감기에 걸렸다. 1주일의 조직적인 탐방이 건네준 성과로서, 독일어 루터성경 신약을 듣고 볼 수 있는 22여시간의 DVD도 Holm의 Bibelzentrum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WCC 전 총무 필립포터와 북독일 비숍 부인도 만났다. 세상의 햇살이 더욱 생생할 때 다시 만날 수 있는, 혹은 이제 영원히 다시 못만날 몇몇의 친구들과 헤어짐을 건네던 토요일 오전 Rendsburg 하우프트반호프 역을 뒤로 하고 목의 퓨즈가 떨어져서 웅웅 발음도 내지 못하지만 킬에 사는 친구와 형, 형수를 만났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에 차창에 기대어 곯아떨어진 나를 실어 나르는 ICE는 7시간을 달려 교회에 나를 도착시켰다. 여행은 외출이지만, 그러나, 나를 향한 외출이기도 하다. 세상에 깃든 황홀한 광경에 내 마음에 깃든 그와 같은 것이 다시 공명을 얻고, 세상의 지독한 슬픔에 나 또한 거기에 반응하는 것, 외출이란, 여행이란, 어쩌면, 저 흐르는 세상의 시간성과 연결되면서 시간과 관련없는 마음의 풍경이 자기 자리를 연속적으로 매듭지어 가는 것, 이제 조금 쉬어야겠다. 퉁퉁 부은 감기와 목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안에 의미를 얻지 못한 채 쓰러진 귀한 욕심들의 볏집단들을 다시 세워 묶을 수 있도록, 2002년 3월 4일 홈페이지메인 전철논문 한국논문 사물의질서 연구실 방패와창 꼬람데오 新자연신학 엽서한장 토론광장 추천사이트 방명록보기 신학동네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