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wahre Geschichte des Geistes ist nicht in gelehrten Büchern aufbewahrt,
sondern in dem lebenden seelischen Organismus jedes einzelnen.<
Carl Gustav Jung, GW XI, 37
2002/05/1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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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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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상처
Near, My God Thee | Titanic
상처 입은 내용이 자주 체험됨으로써 서서히 그 자율성을 상실하여 다시금 정신의 계위啓位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총체적 정신 기능에는 분명히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꿈은 대개 상처의 재생일 뿐이므로 보상적인 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꿈은 정신의 분열된, 자율적인 부분을 되돌려주는 듯 보이지만 꿈속에 재생된 부분을 의식적으로 동화해도 상처를 결정하는 충격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판명된다.
칼 융 - 꿈의 심리학에 관한 일반적 관점 中
비행기가 추락해서 백명 이상의 생명이 삶을 마감했다. 오후에 기숙사를 잠시 들른 실바나는 독일 라디오에서 그 소식을 듣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생명은 온 세상보다 귀하다 한다. 온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생명이라 한다. 그런데 저렇게 생명은 사라지고, 그와 무관한 듯, 세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지구는 어려움 없이 자전한다. 그들 또한 몇 시간 전만 해도 하루 세끼 밥을 고민하고, 가족과 일과 직장을 염려하는 대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그 고민과 염려가 부질없는 곳으로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인데, 이 비보로 인하여 세상은 더욱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다.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가족, 그리고 이 사고와 연루된 이들의 염려와 고민은 더욱 많아지리라. 특히 이런 개인적 죽음을 그저 일반적인 사회적 맥락으로 연결시키는데 익숙한 건조한 부류들은, 심지어 월드컵 찬바람론과 결부해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는, 집단과 사회가 바라보는 의식이나 태도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개인과 끝까지 만날 수 없는 대립의 각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꿈을 꾼다. 자연에서 문명을 소망한다. 그리고 속도를 얻는다. 그 물리적 속도는 정신적 속도감각과 더불어 뒤를 바라보지 않고 나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속도감각이 선물하는 쾌락이, 예상치 못한 거센 충격 앞에 좌초 당했을 때때에, 인류는 그간 잘 헤아리지 못했던 상처당한 꿈에 대하여,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문명의 소외에 대하여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속도에 대한 소망은 다름 아닌 어떠한 힘에 대한 소망일 수도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곤 한다.
우리는 꿈을 꾼다 하지만, 언제 닥칠 지 모르는 죽음의 가능성을 저당잡힌 채 속도의 쾌락을 얻고자 하는 광폭한 악셀레이터와 같은 군상들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과 살아 있지 않다는 생명선의 차이는 개인의 역량에 의거한 차이가 아니다. 즉 추락한 비행기 날개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사라진 그들의 운명과는 달리. 우리가 이렇게 펄떡 살아 있어서 행복해야 할 덕목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자연을 가공하는 인류의 문명에 끝까지 따라붙게 되는 [문명의 불량률]의 곡선 아래에 추락하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 쳐야 할 덕목도 결코 아니다.
오늘 한 진실한 친구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내가 죽고 그들이 살았어야 하는데..] 라고 울먹이며 말한다. 어짜피 원형적 자연의 사태가 아닌, 철저한 실패율과 불량률의 공학 안에서 피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문명의 감옥에서, 진정 우리는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 불리우는 그 개인이 정작 이렇게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끄떡하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가장 슬프고 끔찍한 순간일런지 모른다. 몇 년전 더웠던 여름 할머니가 점차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두 주 동안 가까이 지켜보면서 만났던, 모든 것을 품고 잊는 죽음의 강, 빛도 그림자도 바람도 없는 측량할 수 없는 쓸쓸한 대지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감내하기 버거워서 생각을 이어가다 포기한 [대속], [희생]이라는 의미들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어쩌면 인간의 진정한 도덕은 죽음이 옷에 묻어 있는 그 이웃을 망각하지 않을 때 열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상처는 이 대지에 살고 있는 자와 살았던 자 모두를 오랫동안 아프게 거쳐가는, 실로 견딜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와 더불어 이 세상을 살다 떠난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명복을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