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2/07 (14:36) from 203.252.17.164' of 203.252.17.164'	Article Number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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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 대하여

염두섭, "영성생활의 요청", 은성, 1997. 염두섭의 <영성생활의 요청>이라는 책의 부제는 한국 기독교 개혁을 위한 10제언이다. 염두섭 씨는 40년간의 목회경력을 지닌 목회자이시기도 하다. 40여년의 목회경력과 영성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통해서 오늘의 한국교회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꼬집고 비판하고 제언을 한다. 영성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는 책으로 이해하고 처음 책을 열었지만, 읽어가면서 한국의 교회현실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너무 커서, 실은 내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을 곰곰히 보면서, 그리고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특히 교회 밖에서 교회를 향해서 비판하고 매도하는 목소리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교회 안에서 교회를 알고, 교회를 섬겼던 사람이 이렇게 단선적이고 편협한 메스를 교회와 한국의 기독교현실에 가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의 많은 교회와, 많은 신학교와, 많은 교인 그 자체가 도대체 가치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저자는 매우 배타적인 가치개념을 그 안에 해석학적으로 설정해 놓고 물량주의, 대교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판은 신학교 1학년 들어온 신학생도 다 해대는 비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성생활의 요청>이라는 저자의 책의 의도를 살펴볼 때 <영성>을 살리고 그 고귀함을 강조하려는 의지로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오늘의 현실을 다 싸잡아 비판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리가 목욕물을 버릴 때 어린 아이까지 버리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책의 후반부에서는 우리가 숙고하고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영성은 그 이념으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구체화embody 되어야 함을 회상하게 하였다. 사랑에 대한 강조, 완덕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지향하는 신앙생활을 향한 노력은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영성이 결코 현실과는 유리되지 않아야 함을 확인하게 하였다. 나는 엄두섭 씨의 저서인 {신비주의자들과 그 사상} (서울 : 은성, 1992)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었다. 이 책 <영성생활의 요청>은 본인의 삶의 다양한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전개한 내용이며 제언과 요청이니 만큼 더욱 생동감이 살아 숨쉬는 글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을 다 읽고 난후의 느낌은 모종의 씁쓸함으로 허전하게 다가왔다. 오늘의 가난한 교회의 현실, 민족의 궁핍한 현실, 그리고 중상모략으로 일관하는 한국종교지도자의 그릇된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비판의 자리도 그곳이지만, 우리가 새롭게 서야 할 자리도 그곳이다. 어떻게 출발해야 하나? 무엇을 가지고 출발해야 하나? 몇 마디 선언적이며 서늘한 <영성>에 관한 문장으로 그 난세의 국면을 탈피할 수 있나? 답답하고 착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