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11 (19:41) from 62.180.157.224' of 62.180.157.224'	Article Number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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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신앙

이젠 남부 독일도 영하로 기온이 떨어졌다. 모든 것이 추위 가운데 서 있다. 그래도 이 먼 나라에서 따뜻한 방 한 구석이나마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며칠 전 호형이 독일에 왔다. 형과 더불어 학문과 신앙과 삶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배웠다. 특히 나는 내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의 의미와, 걸어가야 할 길의 방향을 다른 눈으로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학습學習은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라 한다. 학을 지식의 배움이라고 한다면, 그동안 나는 삶을 통한 습관이 거의 없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우기만 하지 말고, 이제는 몸으로 삶으로 익혀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다. 오히려 이는 평생 가져야 할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형과 대화를 나눈 이후로, 요즘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교회는 세계의 희망, 아니 교회만이 세상의 희망이다. 그동안 절망 섞인 현실에 대해서 너무나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가 나에게 있었다. 행동은 인식보다 더 중요하다. 아무리 세상이 절망스러워도 세계에 뛰어들어가서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정과 희망을 품고 세계에 뛰어들어가는 그 자체는 어떠한 관조의 해석학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 해석에서는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지만, 그 세계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품고 내가 세계에 이미 한 발 개입하는 그 순간 해석보다 더 근본적인, 세계와의 삶에 도달하는 것이다. 차가운 해석은 세계를 죽일 뿐이다. 오히려 진정 세계를 잘 해석고자 한다면 유리벽을 가운데에 두고 해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태도인, 살아보는 일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희망할 수 없는 곳에서도 희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 가운데 후퇴할 수 없는 희망으로 저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교회가 품고 있는 그 가능성과 창조성을 두 눈 딱 감고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꿈은 꾸어본 사람만이, 그 꿈이 현실에 주는 희망을 보고 나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꾸어보지 않았던 사람도 다른 길은 존재할 것이다. 꾸어본 사람이 남긴 자취와 흔적을 통해서 그 꿈이 주는 위대한 세계를 다시금 그려보는 것이다. 신앙의 세계와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는 바로 이 꿈을 따라가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흠모하는 그 신앙이라면 어떻게 세상의 절망이 될 수 있을까. 지혜를 진실하게 추구하는 지식과 학문이라면 어떻게 사람을 현혹하고 지적인 사기를 칠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간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좌우만 둘러보다가 제 풀에 지쳐버린,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버린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배우고 늘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있어 먼데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 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또한 군자가 아니랴 형이 남긴 선현의 지혜이다. 학문을 통해서 꿈을 꾼 사람들의 그 생생한 감동을 느끼길 바라며,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꿈과 세상의 희망을 보고 올곧게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늘 배우고 익히며, 삶을 건강하게 나눌 수 있는 벗을 만나고,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그러한 벗이 되며, 세상과 남이 알아주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삶일까 생각한다. 여러모로, 약하지만 밝은 빛이 마음 안에 찾아온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