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13 (20:54) from 145.254.224.26' of 145.254.224.26'	Article Number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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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그리는 그림

박지원이 쓴 연암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인조 때의 화가인 이징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술이다. 이 화가가 어렸을 때 누대에 올라 그림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다. 아마도 집을 나와 며칠을 그림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한다. 집에서는 그 자식을 찾아다녔을 테고 3일만에 결국 자식을 찾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반가움 보다는 분이 나고 화가 나서 회초리로 때렸다고 한다. 당연히 어린 이징은 회초리를 맞으면서 아픔을 느꼈을 터이겠다. 그런데 이징은 울면서 그 떨어지는 눈물로 새를 그리고 있었다 한다. 이 짧은 단편은 나에게 참 감동을 주었다. 자기가 회초리를 맞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자기 자신을 잃고 그 기예와 공부에 힘을 쓰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작은 기예라 하더라도 이러하다면, 큰 도를 닦는 경우에는 자기버림이라고 하는 것, 혹은 도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 던지는 것이 요구되는가를 말하고 있다 생각한다. 어찌보면 공부는 이렇게 모든 것을 던져도 그 진리가 말하는 핵심에 도달하고 육박하기가 어려운 대단히 힘든 길일 수도 있겠다. 더군다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기 위하여 이리 저리 매장을 돌아다니는 태도와 같이 공부와 학문의 길을 걸어간다면 말이다.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지식과 의식세계의 확장을 위하여 모든 것을 저돌적으로 던지고 거칠게 나아가는 태도 또한 경계해야 할 태도라는 판단을 하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가끔 독일 친구들 가운데에는 공부하는 기계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 친구들의 속마음을 내가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자유롭지만 그 개인적 자유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위를 넘어서지 못하면 혹독하게 댓가를 요구하는 독일 학제의 시스템이 주는 그 스트레스에 쩔어서 공부하는 기계로 속편하게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며칠 전에 김용옥이 문화일보 기자로 쓴 기사가 생각났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지만 지금 남아 있는 화두는 [심미적 질]aesthetic quality이다. 심미성, 예술성, 그리고 조화로움이라는 태도는 김용옥 선생이 끌어들인 맥락, 즉 글쓰기의  심미적 질을 담보하는 차원 뿐만이 아니라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라 생각되었다. 심미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몽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함과 진리를 그 뿌리로 한 조화로움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심미성은 진리에 대한 뿌리 깊은 확고함이 현실 가운데 어떻게 조화롭게 예술적으로 구현되느냐에 결정적으로 관련된다. 마치 좋은 재료와 기술을 가지고 준비한 음식에 양념이나 향신료가 제일 마지막에 첨가될 때, 이는 아주 미미한 양이지만 그 음식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화가 이징 처럼 자신을 잊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기예와 학문과 깨달음을 향한 혼신의 태도, 또한 심미적 질이라는 조화와 예술적 감각의 체현, 이런 두 중요한 요소는 학문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떠올라, 벌써 태양이 지려는 이 하오에 잠시 단상을 남겨본다. Oystein Sevag l Rio Amaz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