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24 (10:57) from 62.104.211.66' of 62.104.211.66'	Article Number :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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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택트

크리스마스의 기운이 조용히 내려앉는 밤, 난 내가 좋아하는 채널 ZDF에서 영화 콘택트를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그 안에 오묘하게 숨어 있는 감동이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콘택트는 꼭 사이언스 픽션 영화가 아니다. 거기에는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우주론과 형이상학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위대한 헌신과 소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신앙과 믿음의 본질에 대해 조용하게 자문한다. 우리 삶의 뿌리깊은 기초들은 거의 의심 받지 않고 오랜 시간 저렇게 전설처럼 전해 내려 온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 우리가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삶. 그러나 인간 영혼은 끊임없이 우리의 시간과 공간과 삶을 넘어서고자 갈구하는 강렬한 염원이 있다. 우리에게 정착된 삶의 질서가 결코 답답하고 구태의연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과 삶을 지탱하는 저 영속적인 근거를 더욱 간절하게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피어오르는 정열이다. 유동하는 세계에 깃든 영속성, 그리고 그 영속성의 영상을 외면하지 않으며 깊은 정열과 신념으로 만나려는 인간의 용기.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저 무한한 우주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그로 인한 권태일는지 모른다. 우주의 아름다움에 감격하여 우는 주인공 엘리를 보며, 난 며칠 전 호형과 같이 유럽의 꼭대기에 올라간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해발 3474미터의 스위스 융프라우. 내 짧은 생, 일찍이 본 적 없었던 자연의 그 웅장함 앞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내 시계는 째깍거렸으나, 이미 영겁의 우주를 뚫고 흐르는 마음의 시간은 고요히 멈추어 있었다. 저 하늘은 푸르다 못해 어둠에 짙게 잠겼고, 광풍과 더불어 번쩍이는 눈보라에 눈동자는 흔들리며 젖었다. 숭고함은 미학개념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자연을 향해 불가피하게 갖게 되는 가냘픈 느낌이다. 유한한 언어가 처절하게 다 타버려 잿빛 재가 되어 버린 자리에 기어이 남아 있는 작은 불씨와 같다. 나는 지구의 한 끝점에서 영겁의 무한을 아련하게 보았지만, 엘리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과 은하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우주를 보았다. 그녀는 감격하였다. 과학자인 그녀는 그 곳에서 시인을 찾는다. 언어의 가혹한 경계 앞에서 그가 울면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란 Ich hatte keine Ahnung, 그 세계에 대해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다른 우주계의 생명체를 만난 것이 아니라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죽은 아버지를 만난다. 그녀는 다른 우주를 보면서 거기에서 그녀의 가슴 깊은 소망을 만났다. 어쩌면 꿈은 꿈꾸는 인간에게 열리는 자비로운 선물.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가 경험한 18시간의 알리바이를 밝혀내지 못한다. 그녀가 경험한 시간을 세상은 단지 1초라는 계량화된 순간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녀는 우주의 새로운 비젼을 보았지만, 처량하게도 그녀는 증명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세계는 역설적이다. 그녀의 꿈은 단지 그녀만의 꿈이 아니리라.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삶은 우리만의 고유한 꿈과 시간을 가슴에 품고 있다. 모든 삶은 어찌 보면 적막을 깨고 존재하는 기적들이다. 어쩌면 과학의 궁극적인 과제는 우리의 삶을 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것이리라.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우리의 외부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열려있는 광활한 우주를 본다. 그 밖에서 볼 때 도리어 우리의 삶은 다시 외부가 된다. 우리가 외계가 되고 우리가 기적이 된다. 우리가 밖을 만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안을 다시 만나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가 품고 있는 꿈과 소망을 다시 만나고 실현하는 것이리라.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 안으로 내밀하게 진입하지 못한다. 세상의 속절없는 시간은 매 순간마다 흐르지만, 그 세상의 시간으로 담아낼 수 없는 모든 삶의 꿈과 갈망과 실현에의 소망이 이 우주에는 엄연하게 놓여 있다. 삶은 시공 안에 있지만, 결코 시공의 그물에 붙잡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지프스와 같은 삶의 꿈과 좌절과 실현이 있었으며, 세상은 그러한 좌절과 실현의 생생한 생명의 박동들을 그저 흔들리는 들풀의 흔적으로 쓸쓸하게 간직하고 있다. 단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속삭일 수 있는 말은, 드러난 우주보다 더 새롭게 우주는 자신을 열 것이며, 우리가 살아온 삶보다 더 신선한 삶이 출현하리라는 믿음이다. [유한한 삶의 접촉에 대한 염원, 그리고 그 유한한 삶들을 알뜰하게 품고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여는 저 무한한 우주] 저 밖의 하얀 눈이 내리듯, 신이 대지에 가라 앉는 크리스마스 이브, 영화 콘택트가 나에게 던진 감동이다. Oystein Sevag l Painful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