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2/07 (14:38) from 203.252.17.164' of 203.252.17.164'	Article Number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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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contemplation으로 표기되는 관상은 개신교 보다는 카톨릭에 어울리는 듯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제의를 중시하는 카톨릭의 전통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부정하고 말씀을 중시하는 개신교의 새로운 궤를 그었다고 할 때 침잠과 침묵을 근간으로 하는 관상은 매우 오해되기 쉬운 대상이며, 그리고 실질적으로 개신교의 전통에서는 가히 쉽게 교감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쉬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관상에 대한 개신교의 자료를 찾지 못하였기에 카톨릭의 그 풍부한(?) 자료에 잇대어 독서를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라는 책에서 나오는 관상을 둘러싼 다양한 접근과 해석은 우리가 단순히 한 마디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관상'에 대한 깊이 없는 바라봄을 넘어서서 정말 관상의 깊고도 중요한 의미를 다양하게 건져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글은 더욱 예각화되어 끝없는 리듬을 가지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놓치게 하지 않는다. 특히 무엇인가 뿌연했던 관상에 대한 이해가 더욱 선명해지면서 '아! 그렇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할 정도의 새로운 지평을 이 책은 뿜어주고 있다. 진정 "관상 기도는 하느님이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이다. 그 큰 세계에 대한 깊은 안목 없이 관상이 맹목적인 침묵으로, 그리고 말없음이 말할 필요없음으로 오해되어져 온 나의 경험을 다시 꼬집어 내어 주었다. 이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요, 타성화된 습관을 넘어서서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요, 나보다 더욱 깊이 있는 나를 본격적으로 맞대면하는 길임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관상 기도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삶과 나의 신앙생활을 단련하고 훈련하는 노력의 차원임을 발견하게 하였다. 우리가 피곤할 때에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리가 좋을 때에만 호출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이러한 방식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훈련으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에 기인할 것이다. 기도는 기쁨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훈련으로서의 의미를 이 책은 더욱 강조한다. 거룩과 성스러움과 높은 분과의 대화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나는 다시 깨닫게 되었다. 종은 종치는 자의 힘만큼 울리듯이 내가 얼마나 진지하고 솔직하고 내성적으로 깊은 훈련에 도달해야 진정한 그 큰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를 묻게 한 대목이었다. 이 책은 기도와 관상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풍부한 경험사례와 제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기도의 내용이 중요할 뿐 기도의 방법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개신교 서클의 분위기를 어느정도 돌파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제의와 말씀 사이의 갈등과 길항관계는 우리시대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 조화롭게 얼구어 나아가야할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다. 카톨릭 전통은 인간의 의식에 대한 매우 깊은 조명과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심층심리학과 분석심리학과 대화하여도 결코 부족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인간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독법과 구조를 이들은 지니고 있다. 밑둥에 고여있는 무의식의 단편을 하나 둘씩 건져내어 의미를 되새기고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이론과 사변에만 머무른 분석심리학적인 사고방식을 더욱 풍부하게 신앙생활과 인간의식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단초를 마련하게 하였다.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다. 그것은 책에 대한 아쉬움보다 책을 읽는 우리 개신교 전통에 대한 아쉬움이다. 도대체 영성 영성 말은 많이 하지만 영성에 대한 폭넓고 본격적인 고찰과 축적의 양식이 부재한 개신교는 언제까지 우리의 고유한 독법이 없이 영성의 문제를 방치해야만 하는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카톨릭의 역할이니 개신교는 부담감 없이 카톨릭의 풍부한 축적을 끌어다 쓰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한계는 있다. 개신교 전통의 독자적인 신앙생활의 양태, 예배, 기도, 설교, 신앙공동체의 만남 등등 더욱 더 구체적인 사안들 앞에서 적용되고 조율될 수 있는 우리의 관상 기도 입문서, 영성 이해 입문서가 하루 빨리, 우리의 손으로 쓰여질 수 있기만을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