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15 (04:50) from 80.139.170.150' of 80.139.170.150'	Article Number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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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사랑하는 아이들

1. 봄이 대지에 곱게 찾아왔다. 우리 아이들은 이 싱그러운 봄이 참 좋은가보다. 사각 회색벽의 공간에서 드리는 예비가 답답했나보다. 그래서 몇 주간은 야외에서 아이들과 예배와 놀이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날씨가 싱그러운 몇 주전에는 아예 어린이들이 서로 담합해서 교회 앞의 화창한 공원에서 예배를 드리자는 땡깡을 선생님에게 놓았다. 교회 앞에 아름답고 큰 공원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어른들을 위한 휴식처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반할만한 놀이기구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서의 한 시간을 보내고 먼지투성이로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아이 모두들 투덜거렸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라크 전쟁에 관한 충격적인 장면이 티브이에서 연일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이 그 충격적인 장면에 노출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티브이의 잔인한 전쟁장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이 이해하기 힘든 풍경들에 대해서 어떻게든 적절한 생각과 신앙의 방향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으로 인하여 어른들이 어떻게 전쟁에 대하여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인도해야 할 지를 이곳에서는 많이 고민하곤 했다.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아이들이 거하는 마음의 세계는 여전히 따뜻하고 천진한 동심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관심사는 주로 먹는 것과, 노는 것, 학교에서의 친구들과의 생일파티 혹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었다. 2. 몇 주 동안은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고 놀이기구가 있는 교회의 마당에서 자유롭게 논다. 아이들은 시소를 타고, 그네를 타고, 움직이는 기구를 타면서 유랑민 처럼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결국 정착하는 놀이의 왕국은 흙이다. 아이들은 흙을 가지고 케익을 만든다. 우선 아이들은 꽃잎 사냥을 나간다. 주위의 이쁜 형형색색의 꽃잎들을 따 모으면 색이 5-6가지가 된다. 마치 밀가루를 반죽하듯 흙을 잘 빻고, 고루 섞어서 빈대떡과 같은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다 꽃잎을 나름대로 이쁘게 장식한다. 이 케익을 만들 때 그들 사이에는 역할이 적절하게 분배가 된다. 그들 사이에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으며, 밖에서 소위 꽃잎 사냥을 하는 부모의 자식들이 있다. 하긴, 아이들에게 교회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은 케익이다. 또한 아이들이 흙으로 자주 만드는 것은, 빈 화분 같은 것으로 찍어내는 흙탑이다.  깊은 곳에 있는, 수분을 머금은 진한 회색의 흙을 삽으로 퍼서 잘 다지고, 빈 화분에 차곡차곡 채어 쟁여 넣은 후, 나중에 바닥에 화분을 뒤집어 누른 후 슬며시 화분만 빼 올린다. 그러면 화분의 형태를 띈 탑이 나온다. 몇 개의 탑을 수도 없이 계속 뽑아내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그냥 이유 없이 정성스레 만든 탑을 순식간에 부수어 버리기도 한다. 언니들이 주로 만들고 두세살 아기들이 주로 부순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자기 쪽으로 오라고 불렀다. 머리에는 나뭇잎으로 만든 이쁜 머리관을 내 머리에 씌우고 그들은 무조건 나를 따라오라고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따라 가는데, 순간 모래가 많은 그곳을 지나가기 위하여 발을 내밀던 중, 내 한쪽 발이 한 40센티 정도 깊이에 푹 빠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깔깔대면서 좋아했다. 알고 보니까, 케익과 탑을 만들기 위하여 흙을 파 놓은 그 구덩이를 다시 이용하여, 그 위에 나무 잔가지와 잎새를 올리고, 종이를 얹힌 후 흙으로 위장을 한 함정과 같은 곳이었다. 선생님을 인생의 함정에 빠트린 아이들은 뭣이 그렇게 통쾌한지 깔깔대고 웃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흙으로 무엇을 빚어내고 만지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손은 더러워지고, 머리에 모래가 벼룩처럼 깊이 박히고, 신발에는 흙이 꽉 차는데 그 모든 사후 처리의 몫은 부모님이다. 오직 아이들에게 번거로운 것은 흙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없다는 사실일 뿐, 흙과의 놀이 이후의 뒷처리가 아니다. 3.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엘리어트가 4월을 지나는 우리에게 남긴 서늘한 구절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인간이 원초적으로는 자연의 흙에서 왔으며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이들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어떤 곳에서는 자연을 훨씬 거스르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곳 또래의 아이들은 이 시대의 어른들이 주는 상처와 공포에 두려워하며 떨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만약 어른들이 그들 또한 흙을 좋아하였고, 꽃을 사랑하였으며, 달콤한 케이크에 침을 삼켰던 그들의 유년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었다면, 저렇게 귀한 생명과 그 모태인 자연을 저당잡아 욕심을 채우려는 악마의 유혹에 그들이 쉽게 굴복할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 더러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은 우리로부터 안타깝게 사라졌다. 성서의 에덴동산이 폭격을 맞았고, 인류가 지켜낸 칠 천년 슈메르 고대문명은 단숨에 파괴 되었고 약탈되었다. 자연은 엄청난 속도로 오염이 되어가고 있으며, 어른들의 기술로 빚어낸 터지지 않은 금속 불발탄이 그 주위 사람들의 다리와 심장을 노리고 있다. 또한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이 만들어낸 이토록 처참하고 냉혹한 현실로 인해 전쟁을 지켜보는 많은 현대인들은 가슴에 진한 멍과 고통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는 아득한 과거의 황량한 시절로 다시 추락하고 있으며 깊은 곳으로 우울하게 퇴락하고 있다. 4. 자연적 교감을 상실한 이 문명이 잉태한 종양을 우리는 몸에 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의 건강을 진단하는 척도는 아쉽게도 미국이나 이라크나 혹은 어른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바로 우리가 지금 형성하는 문명이 저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될 수 있는가가 그의 유일한 기준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 종양과 같은 전쟁의 가장 끔찍한 비극은 어른들의 아이들을 향한 잔혹한 시련과 고통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전쟁은 어른들의 어린이들에 대한 무참한 폭력인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라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하였다. 흙을 사랑하고 자연에서 행복감을 갖는 아이들의 저 감수성에 상처를 가하지 않는 것, 이는 이 시대의 아이들을 향한 과제이다. 흙을 사랑하는 이 아이들의 삶이 더 이어질 수록 이토록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미소 또한 더 영롱하게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것, 이보다 더 큰 우리의 소망은 없을 것이다. 박성순 | 흙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