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화 Das Experiment가 있다. 그것은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범죄자와 간수 그룹을 각각 일상인으로부터 모집하여 그들의 행동 변화를 파악하고자 하는 실험이었다. 이는 단지 실험이었는데, 실험의 내용이 형식마저도 파괴하여 결국은 두 그룹 사이의 갈등과 죽음의 파국을 일으킨, 독일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영화였다.
오늘 세계를 뒤바꿀 또 하나의 실험이 한국에서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되었고, 독일의 톱기사로 시시각각 보고되었다. 우리에게 엄청난 파장을 준 돌리 복제는 그저 이 실험의 모델일 뿐이었다는 비교를 독일의 저명 일간지가 제목으로 뽑을 정도면, 이 실험의 성공이 얼마나 큰 뉴스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로 한국 연구진이 인간의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했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발전된 인간 배아 복제세포들을 세계를 향해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의 성과를 통하여 이전의 방식인 동물 세포를 응용하여 인간에게 복제할 때 얻게 되는 생리적 거부반응이나 윤리적인 문제는 극복하였으나, 연구에 필요한 난자 배아의 추출로 인하여 결국 인간의 생명을 죽인다는 생명 존엄성에 관한 논란을 새롭게 끌어들인다.
독일 언론과 방송의 입장은 워낙 수습할 수 없는 메가톤급 뉴스라 비교적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나, 배아연구가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된 독일의 원칙에 입각하여 한국의 새로운 연구에 많은 우려를 갖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줄기세포의 배양은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연구와 실용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고 향후 어느정도 논의의 시간은 남아 있으리라 보인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언급하며 이러한 논쟁에 자존심을 건 이상스러운 기싸움을 하기 보다는, 정말 진지하게 생명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면에서는 병상에서 죽어가는 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그 진정성은 목사나 신학자들보다는 훨씬 의사가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경직된 기독교 신학적 신념체계로 이러한 문제들을 접근하는 몰상식한 경우를 아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해지거나 단절되는 자리에서 요구되는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찾는 모습과, 꼭두각시 하느님deus ex machina을 요구하는 모습과의 차이를 나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 그만큼 소위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하는 종교의 태도와 신학적 진술이 오늘날 너무 가벼워져서 그 가치가 바닥으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은 긍정보다는 쉽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실험과 적용은 확률적으로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으며, 윤리적인 폐혜도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인간복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첨예한 문제들을 긍정하면서 신학이 과학과 같이 나아가는 과정이 더더욱 버겁고 어려운 길이다. 여기에는 과학이 끊임없는 실패를 자신의 성공을 위한 재료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울런지 몰라도, 전능과 영원의 컴플랙스에 사로잡힌 신학에 있어서 실패는 치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가진 신학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인간에게는 얼마든지 반인간적인 결과를 양산할 수도 있다.
오늘 한국의 열악한 상황에서 과학자가 이룩한 과학적 업적과 쾌거는 이후 연구성과의 지속적인 실현 이후의 가공할만한 영향력, 그리고 생명윤리를 둘러싼 기독교와 신학의 간섭과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큰 논쟁의 도화선으로 오히려 번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과학적 실험과 발견을 신의 전능함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관점은, 상당히 나이브한 태도이다. 차라리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과학의 태도와는 달리 미래를 고민하고 점쳐야 하는 종교와 신학의 번잡한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 더 인간적일 수도 있다.
예측불가능한 세계에 관한 부정신학적인 태도가 아닌, 신학 또한 세상을 향한 하나의 가설이며, 기독교 또한 결코 도그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출현하는 세상의 현실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는 부정신학적 태도보다 훨씬 어려우며 공부와 인내가 요구되는 좁은 길일 수 있다.
인간복제 연구가 금지되어 있는 독일과 독일 기독교의 한국의 실험에 대한 입장, 이러한 생명공학에 대하여 언급하는 한국 기독교와 신학의 입장, 그리고 이러한 실험이 앞으로 수년, 수십년에 거쳐서 어떻게 의학적으로 활용되며, 구체적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섯부른 도그마를 무기 삼아 생명을 살려내려는 인간의 신념과 열정을 값싸게 재단하는 것보다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또한 인간의 영혼과 정체성의 정의에 관한 신학 철학적인 연구가 중요한 과제로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유용한 모델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세계를 뒤흔든 이 새로운 실험이 영화 Das Experiment와 같은 종국적 결말로 마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그리고 오늘의 연구성과가 쓸쓸하게 병상에서 생의 그림자와 씨름하는 이와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