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2/07 (14:41) from 203.252.17.164' of 203.252.17.164'	Article Number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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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에 대하여

정대식, 영성생활, 도서출판 크리스찬 서원, 그 거룩한 언어가 없이는 나는 하느님 앞에 결코 서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서원이 없이 내가 여기 있을 수 없고, 서원을 이루려는 나의 신앙과 정열 없이 나는 신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도서출판 크리스찬에서 나온 정대식의 {영성생활}이라는 책을 통하여 서원의 고귀한 의미를 짚어준 이번 계기는 나에게 한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원의 내용을 확 열어본다면,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성취하기에는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많은 훈련이 필요한 내용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처럼 어느 누가 정결과 가난과 순명을 오늘의 척박한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는가.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인 것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이 삼대 서원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그 서원은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그만큼 수도자와 성직자의 길이 외롭고 힘든 줄을 타는 줄타기와 같은 고행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카톨릭의 전통에서 매우 강조되는 정결 또한 개신교 서클에 있는 본인에게도 매우 새로운 의미를 던져 주었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섬세한 촉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육욕과 정욕에 팔려 있는 서글픈 자화상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은가. 실로 정결은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새로운 차원의 사랑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질그릇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신학의 길이 결코 하나의 헤프닝도, 그리고 수동적으로 나아가야 할 국면이 아님을 서늘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Sexuality와 Spirituality의 깊은 형이상학적 교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심 속에서 저자의 플라토니즘적인 정결 이해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한 번쯤은 의심해 볼 수가 있으리라 여겨본다. 어쩌면 개신교의 전통은 똥물이 다 튀는 진흙탕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처절한 현장 안에서 누룩이 되고 자양분이 되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고결한 정결 이해가 갖고 있는 약점도 나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결에 대한 형이상학적 조명이 아니라 개인의 신학적 실존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진실로 귀담아 들어야 할 절실한 구절이라고 여겨본다. 현실과는 거리를 두는 카톨릭의 전통과는 달리 개신교의 전통으로서 현실에 침윤하여, 현실 안에서 현실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터인데 쓴 패배의 잔을 맛본 신학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가. 악마야 물러가라! 우리의 영혼을 결정적으로 파괴하는 유혹이 물질의 문제이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얼마나 물질을 갈망하는가. 말씀은 빵을 넘어선다고 하지만 빵에 대해서 단호하게 유혹을 뿌리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성직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비판의 화살을 나에게로 돌려서, 진정 하나님의 마음이 되고 투명한 영혼이 되고 삶의 깊은 비의를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맘과 몸이 가난해져야 함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촉구하고 자성해 본다. 실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자의 권리이자 의무는 순명일 것이다. 나의 모든 의지를 끊고 오직 당신 앞에 무릎꿇고 나아가야 하는 것, 어찌 쉬울 수가 있는가. 저자도 지적하였듯이 아담 이후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예언자, 교회 책임자, 그리고 일반 신앙인들이 순명을 거역함으로서 부정적 삶의 결과를 초래했는가. 유혹은 딴 곳에 있지 않다. 초발심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자신 앞에 주어진 과제와 순명을 망각하고 자신의 입장에 따라 현실과 하나님을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정대식의 {영성생활}은 한국인의 영성의 체취가 물씬 풍겨진 글이었고, 세상 풍파와 거센 현실 안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올바른 성직자의 길을 걷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흔적이 그대로 스며나오는 글이었다. 하나님, 진정 당신의 길을 따라가는데 낙오하지 않고 실족하지 않으며, 오직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온 삶을 헌신하도록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