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교회와 신앙에 대한 위에서부터의 접근과 방법론은 일단 배제하자.) 교회는 인간 삶의 전 조건을 '상대화' 하며 그로 인하여 하느님과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인간 전 조건을 상대화 하는 것은 교회의 특수한 경험이자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신앙은 인간의 자족적인 운동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의 자리와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허락함을 의미한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종교와 신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동일한 현상에 대한 다른 태도도 가능하다. 즉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하느님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불완전함에 기생하는 가상이 아니라 엄연히 우리 인간과 세상의 구원과 진리를 추구하도록 인도하는 더 구체적이고 큰 가치라는 태도이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인간과 세상의 구원을 하느님 앞에 염원하고 추구하는 '신앙의 공동체'이며 '진리의 공동체'이다. 세상은 그의 내재적 기원을 가지고 그 자체의 희망과 절망을 논하지만, 교회는 바로 하느님이 우리 세상에 주시는 그 희망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이 주조하는 그의 내재적 가치를 상대화 할 수 있으며, 세상의 불합리한 조건을 파괴하고 새롭게 세상을 갱신할 수 있는 능력과 희망을 하느님을 통하여 얻고 실천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러므로 세상과 관련하여 대단히 윤리적인 가치를 밀접하게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개인과 사회의 구원과 온전한 성취를 향하여 달려가는 공동체이며 이는 개인과 사회의 완전한 구성체인 세계의 조화, 공동선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의 윤리적 지평을 고려하는 것은 그 교회공동체가 얼마나 세상의 구원과 진리를 추구하는 집단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에 관하여 본회퍼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에만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아주 급진적인 발언을 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여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교회공동체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지시한다. 사실 그러한 가치관과 태도가 세상의 일반적인 태도와 대립될 수도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세상이냐 교회냐 하는 선택의 상황에까지 직면하게도 된다. 그러나 신앙인이 가장 고려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즉 신앙인에게 세상의 가치는 추상적이고 객관적 가치이며, 교회의 가치는 그에게 있어 구체적이고 실질적 가치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가치는 나를 포함한 개체적 가치들이 조직화된 것을 의미하며, 교회의 가치는 나의 삶을 통하여 구현하는/되는 가치라는 점이다. 세상의 가치와 교회의 가치를 동등하게 고려할 수 있는 자리는, 신앙인에게 주어질 수 없는 사각지대와 같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가치는 신앙인의 참여를 통하여 직접 결부되고 구현되어야 할 가치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가치는 우리에게 통속적이거나 보잘 것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있어서 세상의 가치는 교회를 통해 깨닫는 가치를 통하여 새롭게 변화시키고 구현하며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구원을 향해 봉사하고 섬겨야 할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교회 공동체는 예수의 삶에서 보여준 그 사랑과 헌신의 능력 이래로 그 희망을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하고 개간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도시를 횡횡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여러 냉소적인 비판과 비난은 과거의 현실 교회가 따끔하게 받아들이고 피하면 안될 아픈 부메랑이긴 하지만, 우리 교회와 세계 교회가 앞으로 새롭게 세상의 희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도 파괴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에 대한 희망은 교회 자체를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교회의 구성원인 공동체가 진정 구원과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게 될 때에, 세상의 희망으로서의 교회라는 가치는 발현되기 때문이다. 원래 교회의 가치이자, 원래 교회의 가치였어야 할 세상의 희망으로서의 교회, 교회 안에 숨어있는 이 고귀한 가치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과제는 바로 교회의 지체인 선한 교회 공동체에 있다. 이 얼마나 어렵고, 그와 동시에 또한 가슴 벅차고 의미있는 과제인가.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 희망을 우리 교회가 믿고, 말하며, 살아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