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를 왔다. 거기에는 매트리스가 있었고, 쿠션이 너무 있었다. 같이 방을 보러 온 친구 파비앙은 집에 남아있는 여분의 매트리스를 빌려 주었다. 나는 파비앙의 매트리스를 이곳을 떠날 때까지 쓰기로 하였고, 처음 이사올 때 있었던 매트리스는 혹여나 집에서 거할 손님용으로 쓰기 위하여 커버를 빨았다. 그런데 세탁기 안에서 한번 돌고 나온 매트리스는 휴지조각처럼 변했고, 게다가 커버 안 보온 성분의 재질들이 아주 줄어들어 버렸다. 끙끙대어 매트리스 커버를 다시 씌웠지만, 결국 3분의 2만 매트리스를 커버할 수 밖에 없었다.
빨아야 하지 않을 매트리스 커버를 세탁기로 돌린 것이 나의 실수였다. 매트리스 커버에는 빨면 안되고 다려도 안된다는 표시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매트리스를 구하였다. 어짜피 이 집을 나가기 위해서는 원래대로 매트리스를 보존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에 대해서 생각한다. 실수는 보통 어리숙한 판단이나 행동의 결과이다. 실수는 시간과 시점의 이동으로 인해 야기된 또 다른 '선고'이다. 그 실수는 타인이 나에게 판결하는 것이기도 하겠고, 타인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나에게 판결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타인의 실수는 되도록이면 넉넉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왜냐하면 실수를 한 그 타인은 바로 그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인의 실수에 대한 주목 보다는 그 타인이 실수를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그러한 실수를 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만약에 타인이 실수를 자신의 중요한 도약의 자양분으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그 실수는 타인에게 큰 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실수는 어떻게 헤아릴까. 작은 실수부터 큰 실수까지 하루 종일 내 행동 가운데 실수를 꼬리표처럼 달고다니는 것이 인생의 과정 아닐까. 한편으로는 억울한 실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매트리스를 이전에 사용했던 사람이 깔끔하게 다루었으면 나는 그 매트리스 커버를 세탁하려는 마음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커버를 세탁하는 실수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실수를 행동의 인과에 기반한 억울함의 문제로 접근하면, 그것은 과학적인 이해가 될런지는 몰라도 지혜로운 태도는 아닐 수도 있겠다. 오히려 실수를 하나의 중요한 싸인들로 이해하고 그 이유를 밖의 인과론적 관계에서 찾는 것 보다는, 안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의 근원을 헤아리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일상에서의 실수는 정말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실수가 실정법에 위반될 만큼 개인과 주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한다.
모교에서 아주 큰 사고가 일어났었다. 대학생이 운전연습을 하다가 한 동료 여학생의 생명을 앗아갔고 몇몇 친구들도 아주 크게 다쳤다. 그 사고를 낸 학생의 운전연습의 동기는 어쩌면 아주 작은 실수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아주 큰 실수가 되었다.
아주 작은 실수의 가능성이 큰 실수를 야기시키는 경우나 그 역의 경우는 사실은 비일비재하고 허다한 일상의 사건일런지도 모른다. 한 친구는 적지 않은 시간을 그냥 감기기운으로 생각해서 그 몸의 징후를 그냥 방치한 실수로 하체마비가 되어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실수의 인과론에 관한 문제를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나. 인간이 살아온 경험과 그에 대한 쌓여진 기억은 각각의 실수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현실화 되는지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수를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은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인과론적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를 예측함에 있어서 지극히 투박하고 거친 예상과 결론을 낼 뿐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오늘날의 사고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저 생생하게 움직이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다 담아내고 열어낼 수 있는 만능키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나의 구체적인 이 작은 행동이, 지금 구현된 삶의 총체적 사건 그물들과의 결합과 관련 속에서 총체적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고, 거기에서 내 실수는 작은 실수도 될 수 있으며 큰 실수도 될 수 있다. 내가 잘한다고 해서 큰 실수가 배제되는 것도 아니며, 내가 못한다고 해서 큰 실수를 꼭 저지른다고 말할 수도 없는 부분이 삶에 있을 것이다.
작은 실수와 큰 실수에 대한 평가는 의미의 총체성에 대한 집착의 산물일런지도 모른다. 법은 사회적 총체성에 의거한, 한 개인에 대한 가치평가이자 규정이다. 신앙의 세계에서의 실수, 죄, 사고는 이러한 사회적 의미의 총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판단과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또 동일시 될 수도 없다.
말이 많았다. 매트리스를 세탁한 것은 나의 실수였다. 그것은 법적인 실수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도덕적 실수 거리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작은 실수는, 주목받지 못하고 말 되어지지 못했던 그간의 내 인생의 또 다른 많은 작은 실수들에 대해 충분한 암시와 은유들을 건네주고 있다.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지는 못하겠으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간의 내 신앙의 태도와 어떠한 결여에 대해서도 건들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