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꿈이 없어도 살아지곤 할 것이다. 그러나 꿈이 없다면 그 인생은 매우 지치거나 힘들지 않을까. 꿈이라고 하는 것이 또한 아주 선명하고 구체적인 형상으로 존재해야만 할 필요도 없다. 꿈은 꼭 의식적이거나 명료한 그림만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그것은 인생을 추동하는 힘과 동력, 혹은 내일이 오늘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소박한 소망일 수도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살아있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이 '정지'된 것이며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방식의 꿈과 동력은 거할 처소가 없다.
이런 면에서 인생의 근원에는 양으로든 음으로든 꿈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을 더 첨가해보면,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 자살을 소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삶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생의 '원 형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대한 부정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은 좋던 싫던 어떠한 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살아있다는 것의 조건이 물리적이고 생물적인 것에만 정말 머물러 있는 경우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꿈'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다. 그냥 '몸'이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인생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운동을 마치고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많은 꿈을 실현하고 죽음을 맞이하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이, 실현되는 순간, 또 실현의 손아귀를 빠져나가서 새로운 꿈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꿈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현실적인 삶 가운데 어느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꿈은 현실에서 단 한번도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꿈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한 이데아로서의 꿈이 아닌, 구체적인 꿈에 대한 생각들을 해본다. 몇 개월 전에 본 영화가 생각난다. 레퀴엠. 소위 '귀신 들린' 여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의 꿈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녀의 꿈은 참 소중한 것이고 절실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간질질환을 갖고 있으면서도 결국 그녀는 대학에 입학했고, 첫학기 수업리포트를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성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엔' 그녀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엑소시즘의 과정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녀에게는 아주 구체적인 꿈이 있었고,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그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게 그녀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녀의 꿈은, 기만적이지도 않았고, 상식을 벗어난 것도 아니었으며, 타인의 의미를 훼손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꿈을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이해를 가져야 할까.
꿈은 결국 조미료와 같은 인생의 '공갈'이기 때문에, 없어도 좋고, 있으면 더욱 재미있게 인생을 살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보면 꿈이라고 하는 것은 허망하거나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인생이 주는 환상은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할 수 있고, 했어야만 하는 것들도 있긴 하겠지만, 우리는 어쩌면 단지, 태어났고,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실질적인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훨씬 쓸쓸한, 다른 한편으로는, 허망한 시간이 인생일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죽으면 결국 한평도 안되는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가 영원하게만 생각해왔던 우리의 살과 뼈와 기억 또한 자연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것이 인생일런지도 모른다.
다른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의 꿈의 좌절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게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도 있지 않을까. 즉 그녀의 교육자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후대를 위한 그러한 열정과 신념을 가진 이들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인격적 대면과 장치를 더욱 잘 갖추는 노력도 중요한 하나의 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꿈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한다. 그녀의 꿈의 좌절이 그녀의 후배와 후대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기여되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 전태일의 죽음을 헤아려본다. 그 젊은 시절의 노동자로서의 좌절과 고뇌, 어느 누구보다 삶의 끝까지 가본 그의 사투와 처절한 분신, 재로 변한 그의 삶으로 인하여 많은 후대 사람들은 진정 우리가 사는 노동과 인생의 의미를 반성적으로 되돌아 보게 되었다. 결국은 한 사람의 절실한 꿈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좌절을 통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되는 경우가 우리 삶에 아주 뿌리 깊게 통용되고 있다. 성서속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 이들이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신앙의 경험을 통해서 계속 전승되고 있음을 우리는 또한 목도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꿈'을 꾸고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 허나 그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삶을 떠난 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 내 주관적인 생각이자 판단이다. 그리고 그 실현되지 못한 꿈은 매우 '아까운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러한 좌절된 꿈은 이 현실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치로 복원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다시 새롭게 실현되어야 할 꿈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살아간다. 거룩한 꿈이든 그렇지 않은 꿈이든. 그러나 그것이 한갖 살아있는 생명이 덧붙혀 얻게 되는 '환영'으로 아주 값싸게 처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물며 허공을 배회하는 먼지 하나에도 꿈이 스며있는 것은 아닐까.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멸한 수많은 사물화된 생명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 당대의 환경에 촘촘하게 스며있다.
내가 감수성을 가지고 그들이 실현하지 못한 채 마른 눈물로 남아있는 저 수많은 자연과 사물들을 헤아리면서, 그들이 생생하게 가졌었던 그 꿈의 시간들을 헤아리면서, 그리고 그러한 절박한 꿈들을 내 삶에서 기꺼이 공명하고 구현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태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은 실현되면 현실로 실현된다. 그러나 꿈의 좌절은 침묵으로 실현된다. 내 주위의 모든 침묵은 이런 의미에서 좌절된 꿈의 기록들이다. 그 고귀한 그러나 잊혀진 꿈들을 헤아리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실현되지 못한 수많은, 가련한, 꿈들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