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전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글로 감동을 깨고 훼손하고 싶지 않을 만큼 영화에 대한 감동이 컸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이었다. 오늘도 바로 그 때와 같은 큰 감동의 궤적이 마음에 남아 있다. 분명히 글은 감동을 투박하게 담아냄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 감동은 시간 속에서 소멸하고 인상 또한 기억력에서 흩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향수라는 책을 읽지 못했다. 사랑하는 동생의 서재에서 쥐스킨트의 여러 책을 보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다. 몇 년이 지난 후, 이렇게 늦게 영화로 향수(das Parfum)라는 소설을 다시 영상으로 읽게 된다. 향수는 오늘 독일 전역에 개봉되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로 점차 권역을 확대한다고 한다.
향수라는 영화는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온 원 소설을 바탕으로 독일영화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5천만 유로이니 곱하기 1200을 하면 600억여 원이 된다. 그리고 극장에는 오늘 개봉되었으나 이미 몇몇 저널에서는 극찬의 평가가 있었다.
영화 향수를 보고 여기에 인상과 기록을 남긴다.
이 영화는 냄새에 고도로 민감한 천재적인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탄생과 열정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인간의 냄새와 향기에 대한 열정과 고뇌와 광기 자체로도 우리에게는 흥미롭지만, 향기를 둘러싼 모든 심미적이며 예술적인 의미가 아주 다양하게 응축되어 있다.
모든 영화 텍스트는 그 핵심의 메시지가 매복되어 있다. 영화 타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던 메시지는 '음악은 영혼의 문법'Musik ist die Grammatik der Seele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왜 그렇게 냄새에 집착하는지를 자신의 스승에게 해명하면서, 모든 삶의 영혼적인 것은 냄새라는 말을 던졌다.
그르누이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하여 모든 것을 던진다. 그의 비상한 후각은 수 킬로미터 밖의 냄새의 발원지를 정확하게 집어내며, 향기의 성분이 몇가지인지를 순식간에 파악해 낸다. 적어도 그르누이가 꿈꾸는, 지상 최고의 냄새와 향기에 대한 취향과 감각력과 열정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최고의 향기를 만들기 위하여 모든 자연의 재료 보다는 인간의 몸을 향기의 숙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살인을 감행한다. 최고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나 도시를 뒤흔든 그의 살인의 행각은 결국 꼬리가 잡혔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지상 최고의 향수는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려는 수많은 군중과 신부를 사랑으로 현혹시켰으며, 그 신비로운 향수로 인하여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과 정렬의 가장 고양된 체험을 갖게 된다.
그는 다시 풀려났고 자신이 태어난 그 지저분하고 축축한 냄새가 나는 파리 허름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머리에 뿌린 그 향수의 신비로움과 사랑으로 인하여 그곳에 있었던 부랑자들에 의해 죽고 만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 소설과 영화화 사이의 대비를 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 자체만으로도 나는 원작의 그 탁월한 상상력과 예술적 완성도를 추측할 수 있으며 또한 영상이 주는 감동도 대단하였다.
이 영화에는 그르누이의 놀라운 열정, 죽음과 사랑이라는 두 불꽃이 심연에서는 같은 것임을 암시하는 멜랑꼴리가 있었다. 사랑의 향기는 죽음의 시체와 동류였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열망과 죽음의 검은 레퀴엠이 그 영화 어디에선가 아주 강렬하게 내통하고 있었다.
여전히 노예의 도시였던 1700년대 파리의 음산함, 악취를 물씬 풍기는 회색 도시의 그 컴컴한 골목, 그리고 향기의 기술성과 상업성이 극도로 응축된 향수를 둘러싼 상업문화의 단면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었다. 게다가 베를린 필하모니의, 영상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모아주는 서정적 선율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는 매독에 걸린 여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쩌면 자신이 태어난 그 축축하고 불쾌한 냄새에 의해 그의 후각은 극도로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그는 가장 최고의 고양된 사랑의 향기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던졌고, 그가 스물다섯의 여인들을 살해해서까지 채취해 내었던 사랑의 향기는 사람을 매혹시켰다.
그의 사랑의 향기는 모든 것을 완성시켰지만 결국 그는 그 향기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먹히고 만다. 불우함이 열정을 만들었고 그 사랑의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였지만 그는 그 불우한 자리로 돌아가 소멸한다.
나는 사랑의 향기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향기는 비극의 정조를 기원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 향수에는 그르누이와 같은 극단적 열정과 그로 인한 살인의 마성과 향기까지도 녹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인간의 소망과 사랑이 주는 감각의 체험은 지극히 강렬한 것이며 그것은 삶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영화에서는 사랑의 향기가 '향수'로 인해서 직유가 되었지만 나는 그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사랑의 향기'라는 은유를 조금씩 더 가까이 내 삶에서 음미하고 고민할 것이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경험하였던 사랑의 향기는 여전히 내 영혼의 혈액에 고요히 흐른다. 그것은 강렬한 경험이었으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각인된 향기들과도 같다.
영화는 끝났으며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영화 향수는 광기의 살인자의 성장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매혹스럽고 은유적이며 예술성이 짙은 영화이다. 더 나아가서 영화는 인생에 있어서 매우 궁극적일 수 있는 '사랑의 향기'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스며들었던 그러한 향기의 기억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새벽이 넘어가도 잠을 청할 수 없는 이유가 어쩌면 그러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혹은 향수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