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앙은 저번 주 금요일 시청에서 결혼서약을 하였다. 저녁 에큐메니칼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토요일 교회에서 결혼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토요일 밤의 긴 시간을 친척, 친구, 가족과 더불어 그 기쁨을 나누었다.
결혼은 참 묘한 것 같다. 인간동물의 본능적 결합으로부터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에 이르기까지 결혼을 둘러싼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비앙 & 카트린의 결혼은 충분히 그 자체로 아름답고 기뻤으며, 또한 가족과 친구들 모두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결혼의 시간을 나누었다.
신학을 공부하던 학부시절이었을까. 채플실이 그냥 좋았다. 설교보다는 음악과 찬양이 좋았던 것 같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임마누엘 합창단의 찬양이었을 것이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단지 수십여명의 목청이 모여진 소리가 아니라 거기에는 단순히 논리화 할 수 없는 어떠한 누미노제, 정감, 아름다움, 미학적 공명, 그리고 신성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것들이 얽혀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총체적인 감동에 의거한 인상이었다.
그러한 '예술체험'을 계기로, 그러한 심미적 깊이, 그리고 복잡한 체계들의 결합이 어떻게 저러한 감동을 주는지를 공부의 과정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했었다. 아마 그러한 갈증으로 인해 거칠고 교리적인 일부 신학적 도그마나 단조롭고 창백한 선율의 몇몇 철학적 관점에 큰 만족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백두의 제목 [과정과 실재]가 눈에 확 뜨인 이유도 그러한 갈증을 적시는 새로운 생생한 이념과 세계관, 그리고 심미적 논리가 거기 어디엔가 적혀 있었을 거라는 나의 근거 없는 직관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그 선택은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파비앙 결혼식에 참여하는 나는 잊혀졌던 오래된 순간의 채플실로 다시 돌아갔다. 교회는 이색적이었다. 보통 파이프오르간은 뒤에 설치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당히 앞에 있었으며 성가대는 설교단 뒤에 높이 있었다. 찬송은 아름다웠고 모두 그 선율과 기쁨과 따뜻함이 결혼식을 감싼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임은 분명했다. 삶과 인생은 그렇게 단 하나의 건조하고 거친 관점으로 분해될 수 없는 그 자체로 존귀한 것 같았다. 그것이 생명의 탄생이든, 결혼이든, 인생의 쓴 역경이든, 모든 것이 사라지는 죽음이든 말이다. 인생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대 전제는 그렇게 멀고 추상적인 관념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결혼식을 마치고 같이 성찬을 하였다. 성찬이 끝난 후 밖에서 인사를 나누고 저녁에는 가족과 친지 친우들이 모여 저녁식사와 소위 피로연을 하였다. 파비앙의 엄마아빠는 그간의 파비앙과 카트린의 역사가 담긴 수십페이지짜리 신문을 직접 만들었고 프로젝터로 화면에 쏘면서 내용을 같이 나누었다. 태어난 때의 몸무게, 코흘리게 시절의 그 사진들, 대학시절 카트린과의 만남, 그리고 며칠 전 총각파티의 그 사진과 기억까지. 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특별판 호외 기사를 화면으로 잘 보았고 신문으로 구입도 하였다.
인상적인 것을 몇 가지 기록한다면, 친구와 친척들의 파비앙 카트린에 관련된 기록과 사진을 바탕으로 자료를 만들어서 혹은 액자를 만들어서 선물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파비앙은 보이스카웃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었다. 그 담당 선생님은 파비앙에 관련된 사진과 역사를 어떻게 다 모았는지 자료로 만들어서 선물해 주었다. 그것은 아마 큰 선물일 것이다. 당일 참여한 분들의 사진을 다 찍어 당일 작성한 방명록 한편에 인화된 사진을 이후 붙이는 선물도 큰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에는 우리의 이름들이 있었다. 파비앙이 아기자기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준비한 것 같았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가족, 친척, 유년 김나지움친구, 대학친구 등등 각기 만남의 의미에 걸맞게 나누어서 오히려 서로간에도 낯설지 않았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파비앙이 원하는 결혼선물 목록을 전국각지의 Kaufhof 백화점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어서 그를 통하여 구입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준비한 선물이 놓여있는 테이블에는 백화점에서 포장해 준 같은 색의 초록 포장지로 싸인 선물들이 많이 보였다.
가스가 담겨있는 풍선 아래에 불꽃놀이용 심을 달아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심에 불을 붙이고 풍선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수십개의 풍선이 점점 올라가면서 불꽃들은 별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한 11시쯤 되어서 춤을 추었다. 첫 테잎은 파비앙과 카트린의 춤. 그리고 파비앙과 카트린 엄마, 카트린과 파비앙 아빠와의 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춘다.
결혼은 큰 의미를 지닌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식은 어떠한 형식과 의식을 넘어서서, 정말로 결혼의 그 의미와 기쁨을 헤아리고 나누는 절차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식은 알차고 인간적이며 심미적인, 그리고 그 의미에 충실한 예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이 개성적이듯, 결혼식 또한 그 결혼당사자의 개성에 따라 자유롭고 독특하게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도 오히려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 가지 정말 인상적인 기억을 하나 기록하고자 한다. 결혼식 종일 내 뒤에 앉아있는 한 여자가 울었다. 사실 예식과 성가는 너무 아름다워서 나의 마음에도 감동과 기쁨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그 동료는 너무 긴 시간을 적지 않은 소리로 울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는 그녀의 울음이 예식의 아름다움으로 인한 이유와는 다른 어떤 것에 기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였다. 나중에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관련링크
파비앙 가는 날 (2006.09.23)
알렉스의 결혼식 (2006.08.04)
친구의 결혼(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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