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겨울학기 시작. 이번 학기는 논문과 연구에 관련하여 정말 중요한 학기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 정신에서 명멸하는 불꽃, 지적인 갈증과 지혜에 대한 열망 때문에 강의실에서 엄청난 위용과 스케일로 발화되는 다양한 세미나와 강의를 일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욕망마저도 내가 참아야 하는가,라는 억울함 혹은 분노와 함께 몇몇 세미나와 강의 참여의 면죄부를 내 마음으로부터 받급받아 듣고 있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Barths Trinitätslehre in KD I/1
바르트의 언어의 그 깊이와 성서적 사고의 폭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바르트를 이해못하는 이유는 바르트의 비합리적 세계관과 진부한 언어 때문이 아니라, 바르트가 보는 그 신앙의 대해와의 접촉과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약 2년전부터 가졌다. 기회가 되어 이번 학기에는 세미나를 참여한다. 무조건 읽고 듣는게 나의 참여 동기의 전부이다.
바르트 밖에서는 전혀 바르트를 볼 수 없다. 그 안에 들어가서 녹아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바르트는 개신교신학의 아퀴나스이다. 나는 지도교수의 바르트에 대한 해석과 관점을 존중한다. 지도교수에 있어서 바르트와 백두는 차원이 다를 뿐 서로가 틀리고 맞고를 따져야 하는 챔피온쉽 경쟁관계가 아니다. 늦은 면이 있지만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의 깊은 원천과 그 영감을 헤아리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신정론 Theodizee Dr. theol. Alexander Dietz
본격적으로 신정론의 문제를 검토한다. 플라톤부터 아퀴나스, 그리고 칸트, 헤겔, 스피노자, 하이델베르크의 조직신학교수인 헬레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신정론에 대한 가설들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백두의 신정론이 시대적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른 모든 신정론의 논의와 관점을 총체적으로 포괄해 내는 관점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미나를 통해서 각자의 사상가들이 자신의 독특한 관점에서 한 주제를 어떻게 포섭하고 해석해 들어가는지를 헤아리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 Kierkegaards Schrift "Der Begriff Angst" Prof. Dr. Heimo Hofmeister
호프마이스터 교수의 날카로움과 지적인 명민함, 그리고 따뜻함, 레토릭, 이 모두에 나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세미나에서 교수에게 무장해제 당하는 경험은 부끄럽지만, 대단히 행복한 경험이다. 그것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 그 세미나를 꽉 채우는 약 40여명의 학생들도 동의할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한 주제에 대한 사고와 논의의 뿌리까지 검토한 경우 학생들의 질문의 지위와 의미, 그리고 그 '진도'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질문들이 어느 정도의 것들인지를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에 걸맞게 대응을 하고 설명을 한다.
어찌 이 세미나는 키에르케고르의 문제제기에 대한 검토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곁가지로 대학이란 무엇인가,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학문적 소통이란 무엇인가, 라는 여타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한 학기에 두번 정도 '과외'로 학생들끼리의 미팅이 있다. 교수의 세미나를 돌리는 독특한 방식이다. 강의실공동체가 아니라 학문공동체를 도모하고 그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수의 제안이다.
내가 세미나 추천을 하여 세미나를 같이 듣는 야니와 텍스트를 정독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불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누군가는 말하였다. 그러나 그 불안의 실체와 그 불안이 어디에 정확하게 잇대어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프로그램일 것이다. 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던 키에르케고르를 만나 나의 존재론적 불안감의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하나 받아 문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철학자의 신 Der Gott der Philosophen Prof. Dr. phil. Jens Halfwassen
초기에 얀스 교수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이 교수의 강의의 파괴력과 폭과 깊이는 대단하다. 이 교수는 고대철학과 신플라톤주의를 전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과와 관련성도 대단히 주목해왔던 교수이다. 약 20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꽉 채우고 있다. 약 30프로 정도가 노인들이시다. 정력들이 대단하시다.
고대철학과 신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적 사고의 그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다. 신화, 신학, 철학이 어떻게 서로 합종연횡을 이루며 각각의 아이디어는 서로 어떻게 지평융합되어 들어갔는지를 아주 조밀하게 추적해 들어간다. 서구사상의 시원인 희랍사상을 폭넓게, 그리고 고전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한 시간들이다.
특히 백두의 창조성과 신과의 관계를 희랍사상과 고전과의 관계에서 조명하는 것은 개인적인 주요 관전 포인트이다. 나는 고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 이러한 한계를 자각하면서, 고전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수업 끝나고 나올 때마다 머리 하얀 노인들은 입에 침을 바르지도 않고 그렇게 격찬을 한다.
정확한 해석, 개념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해석, 그리고 그러한 풍부한 시각을 바탕으로 강의에 한 두번, 아주 짧고 날카롭게 현대문명의 고민을 꼬집어 내는 위트에 사람들은 떼굴떼굴 굴복당한다. 그것은 노인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젊은 학생들, 그리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수요일 목요일 딱 한시간씩 시간이 나누어져 있어서 덕분에 수업을 듣기 위해 이틀 분주해야 한다.
창조론과 종말론에 관한 세계상 Welt-Bilder in Schöpfungstheologie und Eschatologie Prof. Dr. theol. Jürgen Hübner
위르겐 휘브너 교수의 수업이다. 이분의 책은 몇권 구했으며 과학과 신학에 대한 상당히 본격적인 작업을 수십년동안 해오신 분이다. 지금은 세미나 초기이기 때문에 그 분의 구체적인 관점과 목소리를 듣지는 못하였다. 세미나는 창조론과 종말론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되는데 각 시대마다 창조와 종말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텍스트와 예술작품에 '표상화' 되어있는지를 검토하는 세미나가 될 것 같아서 약간은(?) 아쉽다. 창조론과 종말론이 무엇인지를 실질적으로 헤아리고자 하는 나에게 있어서 예술작품과 문학텍스트에 나타난 시대상을 헤아리는 해석학적 도상학적 작업은 상당히 귀족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왜 독일에서 하늘Himmel이라는 관념이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가 되었는지를 나는 처음에는 이해를 잘 못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하늘이라는 관념을 갖게 된 기원은 너무나 오래전부터이며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관념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하늘나라'가 될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분명히 고통 속에서도 할머니의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늘나라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어떠한 차원인가? 거기에는 누가 사는가? 라는 소위 물상화된 질문이 아니라 인간만이 고양된 방식으로 품을 수 있는 심오한 열망, 그리움, 그리고 적막한 절규와 같은 것들이 '하늘'에 대한 관심에 스며 있다.
사실 교수도 연로하시고, 또한 창조와 종말에 대한 불가지론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할 생각이 들만큼 그 개념의 실질적인 함의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으시다. 창조와 종말에 대해서 토마스아퀴나스나 바르트라 하더라도 그들이 다 알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서설적이며 서론적인 것일 뿐이다. 그만큼 어렵고, 한편으로는 슬픈 주제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다 수업 초기라 생각을 하고 좋게 넘어가고 있다.
너무 늦게 바람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유와 정신의 운동, 그리고 그 체험이 주는 생생한 느낌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렇게 혜택받은 지적 향연의 시간은 점점 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자각을 갖는다. 그것은 아쉽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점점 더 나의 시야에 가까이 다가오는 저 생생하고 푸른 삶의 지평선을 헤아리며 또 다른 생의 체험에 대한 기대도 갖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