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휴먼타큐 사랑 2부 안녕 아빠를 보다.
말과 뜻은 다르다. 뜻은 말로 구현되지만
말 자체가 뜻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다.
결국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그 슬픈 길목에 아버지는 귀여운 자식들과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인간의 모든 말들을 다 모아놓고
거기에서 근원어를 찾으라고 한다면,
모든 말의 뿌리가 담긴 말을 찾으라 한다면,
바로 사랑한다, 라는 말이 아닐까.
인간은 잠시 피다가 지는 꽃과 같다.
어찌 보면 대지는 그 사랑과 의지로
우리 생명을 잉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생명으로서 존재하는 우리는
사실은 대지의 사랑에 의해 빚어진
작품들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명이 다 하고
생의 열정이 소진되면
우리는 우리를 잉태하였던
대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종의 존재의
신비로운 본성에 대한 감격과
탄성과 고마움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며, 오히려 정말
우리를 우리이게끔 한 이 대지의
본성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입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근거를 보고 고백하며
그 근거의 본질에 공명함을 말한다.
사랑은 우리의 입에서 나온 것이지만
우리의 입과 존재를 관통하는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은 왜 눈물을 흘릴까.
희노애락의 정서가 눈물샘을 자극해서인가?
눈물의 뜻을 묻는데 눈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대답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답의 순서는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영혼', '주체',
이런 단어가 얼마나 삭막한지는
우리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저 삭막한 단어가 아니어도 좋다.
내 안의 그 나, 혹은 내 안의 그 심연은
여전히 저 밖의 환경과 반응한다는 것이다.
참 놀라운 일이다.
만약 내 안에 그 나가 신성적인 것이라면
신은 이미 어떻게든 물리적 환경에 이렇게
놀랍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눈에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그 안의 심연의 중심이
무엇에 동조하고 반응하고
표현을 함을 뜻한다.
한 사람이 울고 있을 때
눈물만 본다면 그는 진정한
울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눈물을 흘리는 영혼의
움직임을 봐야 하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날 고통 가운데 의식을
잃어가는 이준호 님의 귀에
사랑하는 두 자식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아빠 사랑해요..."
모든 호흡과 신체의 물리적 기능이
점점 정지해져 가지만
이준호 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것은 생명이 흩어져가도 자신의 원천인 그 사랑,
그리고 자신의 분신이자 아끼는 가족이 아버지에게 던지는
사랑의 고백에 공명하고 반응함을 뜻한다.
어찌 보면 존재 자체가 사랑일런지도 모른다.
물리학적 설명은 생의 물리적 구조나
존재양식을 기껏 기술할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생과 존재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 속에서
그 근원이 사랑이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더 지혜로운 답이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은 말을 넘어선 뜻이며
그것은 우리 생을 이렇게 잉태하게 하는
이 자연과 우주의 뜻과도 같은 것이다.
저녁에 먹은 짜장면이 "맛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감각과 미각, 혹은 문화적 코드 안에서
이루어진 유효한 진술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부 관련된 영역에 국한된 진술이나 뜻의 표현이 아니라
나의 인격과 존재 모두를 온전히 던지면서
발화되는 진실한 고백이자 탄성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말을 넘어선 뜻이며,
존재의 일부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에 대한 표현이자
고백이며 탄성과도 같은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사라져가는 생의 아픔 가운데 있었던 이준호님은,
어느 누구보다 그의 가족에게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하였고,
죽음보다 더 크고 깊은 사랑의 씨앗을 수많은 이의 마음에 뿌리고,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을 남기고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방송에 나왔던 이준호 님의 그 두 눈망울과 얼굴
그리고 가족에게 온 마음을 다해 건네었던
"사랑한다"는 말들이 내 눈과 귀에 선하다.
이준호 님의 "사랑한다"는,
매우 슬펐지만 아름다운 그 말에 감사 드리고
은희님, 그리고 귀여운 규빈이와 영훈이
아버지가 건네준 사랑의 그 진실한 힘으로
기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