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ben




>Die wahre Geschichte des Geistes ist nicht in gelehrten Büchern aufbewahrt,
sondern in dem lebenden seelischen Organismus jedes einzelnen.<
Carl Gustav Jung, GW XI, 37


2007/06/05 (10:01) from 84.173.185.161' of 84.173.185.161' Article Number :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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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공명 사이





신학은 실재의 형태에 관한 도상학적 분석의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생과 실재의 본질에 공명하고 체험하는 학문이다. 신학의 이러한 체험성과 궁극성의 의미에서 신학은 예술론적인 정조를 지닌다.

인적이 드문 작은 연못 하나도 복잡한 생태적 공간이다. 하물며 우리 생이 약동하고 있는 이 연못은 얼마나 복잡다단한 생태적 공간인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목회와 신학은 바로 이러한 생태적 환경을 가장 포괄적으로 진단하고 성찰하며 치유하는 영적인 의료행위라고 나는 생각하고 믿는다. 여기에서의 생태는 자연환경의 문제를 넘어선 포괄적 맥락이다.  

의사가 환자의 외관을 보고 그의 아픈 곳을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치료하듯, 목회와 신학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복잡다단한 생태적 환경이 처한 현실을 통전적으로 진단하여 그 건강함을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중요한 시선이다. 미시적으로는 교회의 건강을 보존하며, 거시적으로는 바로 그 건강한 교회가 사회의 건강을 독려하도록 하는 과제가 있다.

생에 대한 해석은 생에 대한 사랑과는 다르다. 물론 더 알면 잘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 더 잘 알면 더 잘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더 잘 사랑한다는 것과 직결되어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더 잘 알면 보이고 더 잘 보이면 보이면 사랑한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을 헤아려보면 그 멘트는 나에게는 통속적이기만 하다.

오히려 온 존재를 기울여 나를 던지려 할 때 그 지식은 저 밖의 것과의 근원적 체험 까지도 반성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지식은 브레이크가 없는 즉물적 본능과 동류이기도 하다. 체험하기 위하여 반성하는데, 체험까지도 반성해버린다. 이것이 지식의 능동성이 갖는 한계이다.

사변과 지식은 밖의 그 무엇을 대상으로 삼거나 혹은 소유하는 행위*에서 한치 앞으로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생명의 덫일 수 있음을 자각하자. 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사변과 이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욕심은 영원히 허용될 수 없다. 실재는 영원하며 인생은 짧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내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만, 이 사변과 이해의 지평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이 소망도 헛된 것일 수 있다. 내 생이 내일 마감이 될 지는 어느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며칠전 지인의 죽음은 내면에 존재하는 내 생의 연속성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최소한 생을 대상화하는 이론적 행위가 갖고 있는 그 한계를 바라보며, 우리 복잡다단한 삶을 생태적으로 바라보고 또한 그 생태적 공명 속에서 환경의 청정을 위해 나의 작은 자리에서부터 잘 가꾸는 것이 앞으로 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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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 besteht nicht aus Taetigkeiten, die ein Etwas zum Gegenstand haben." Martin Buber, Ich und Du, 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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