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7 (21:06) from 84.173.193.116' of 84.173.193.116'	Article Number :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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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에 대하여

"Writing was an invention which took about two thousand years to make its effect felt." "저서란 그 영향력이 감지될 때까지 약 이천년이 걸리는 발명품이지요." - Lucien Price, Dialogues of Alfred North Whitehead, 149. 백두의 말이다.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폭 넓은 스케일로 저서와 글의 의미를 헤아린다. 사실 효능Effect란 전적으로 객체적이다. 우리의 모든 감동은 사실 누가 남겨놓은 것에 대한 감동이며, 우리의 체험은 결국은 타자를 향해, 타자에 의해 객체화 되는 것들이다. 감동과 체험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 자신으로 귀속될 수 없다. 저서도 마찬가지. 글도 마찬가지. 오늘은 내일을 위해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오늘은 내일을 위해 기여된다. 인격, 사유, 글, 생명, 이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사상은 백두가 말했듯이 그 영향력이 감지될 때까지는 이 천년이 걸린다고 한다. 플라톤은 인기가 있었고 운이 있어서 몇천년 후에 자신의 이름이나 잃지 않았지만, 이 영향력의 주인이 누구였는가를 따지는 것도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그 영향력을 나는 느끼고, 그것은 나를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 영향력의 주인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2천년동안의 영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체험하고 경험하고 만들어 나아가는 이 고유한 삶의 자욱들이 남에게 좋은 영향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 말이다. 그 영향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내 생이 확인하려는 욕심도 거두고 말이다. 이것은 강박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 속에서 내가 모르는 익명의 존재에게 최소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태도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향력은 전적으로 타자와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기에 그 모든 영향력의 기원을 나의 것으로만 규정하고 나의 것으로 환원하고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생각도 환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백두의 부인은 남편의 뜻을 따라 출판되지 않은 모든 작품과 소고를 다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백두는 살아있을 때에 자신의 장례식과 묘지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례식도 없이 그는 화장을 하여 그가 평생 고민했던 자연으로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자식을 세계대전에서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백두에게 있어서 생명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저 무상하지만 영원한 운동성으로 타오르는 자연의 문제는 그의 심혼을 파고 든 핵심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는 명료한 수학적 사고로 자신의 학문적 삶을 시작하였지만, 그의 말년에는 생명의 문제, 문명과 아름다움의 문제, 자연의 문제, 그리고 영원한 삶이라는 매우 내밀하고 종교적인 문제에 심층적으로 헌신했다. 그리고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인생의 황혼을 맞이했던 것 같다. 어제는 아버지를 꿈에서 보았다. 아마 백두도 무상한 자연 너머에 있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 것이다. 살아있는 두 눈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자연의 무상함과 소멸을 넘어 그 영원한 시간 안에서 백두도 그 아들을 다시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그 영원한 시간 안에서의 만남과 기쁨에 비해 우리의 흐르는 시간은 대단히 짧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그에게 2천년의 시간도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같은 속인에게 2천년은 너무나도 길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의 생 안에서 우리 삶의 모든 영향력을 우리 자신이 확인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어리석고 가여운 생각인지는 하고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저 글을 읽으면서 들었다. 백두는 저 말을 1940년 11월 2일 남기고 떠났으니 백년도 안된 '짧은' 과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에게 큰 영향력을 준 말이기도 하고, 또한 나 자신이 내 짧은 생에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