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24 (06:09) from 84.173.149.248' of 84.173.149.248'	Article Number :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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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을 넘어

몇년 전인가, CNN을 보는 도중이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으로 박히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9월 11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 침공하는 소식을 바이에른 여행 도중 버스 안에서 라디오로 듣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 눈은 기뻤으나 마음이 참 힘들었던 것 같다. 다시 하이델베르크에 돌아오니 집에 놓여있는 티브이박스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세월은 흐르고, 김선일 씨도 죽고, 이제는 이십여명의 한국분들이 인질로 잡혔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인질 한명이 죽었다는 소식. 그리고 짤막한 한국 인질 기사. 어찌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미묘하고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만약 그들이 위험한 곳을 가지 않았다면, 만약 한국이 파병을 안했다면, 만약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을 건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먹고, 자고, 싸면서 세상 안에서 살아간다. 그것 자체는 단순하며,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그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우리는 가벼운 마찰부터 극심한 국가와 민족간의 갈등의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이러한 생명이 오고가는 극심한 갈등의 현실은, 미국과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먼 나라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의 문제가 되었다. 물론 몇년 전의 기억을 헤아려본다. 버스 안에서 귀에 꼽은 라디오로 이라크 침공 소식을 들었을 때.  창밖의 저 화사한 햇살이 이제 생의 마지막 경험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헤아려 보는 것은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것들이었다. 허나 그것은 어찌 보면 관념적 고통이다. 하지만 탈레반의 인질로 잡혀 있는 이십여 명의 한국인이 나의 가까운 이들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매우 진한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내가 한국인이라는 존재감 하나만으로 고통의 짐은 몇년 전의 그것들에 비해 더 크다. 게다가 잡혀있는 인질들은 한국 교회의 기독교인들이다.   헤아려보면,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두 팔이 짤려버린 그 아이를 보는 아버지의 고통은 마치 내가 한국인이라는 존재감으로 인해 이렇게 갖게 되는 불안과 힘겨움을 훨씬 넘어선 것들이었을 터이다. 인간은 자신의 가까운 것들에 대해 감각적으로 공명한다. 비교적 먼 것들에 대해는 관념적으로 대면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 것들을 관념적으로 대면하는 그 대상의 내면에도 여전히 감각적 고통이 엄연히 존재한다. 민족과 국가의 갈등이든, 결국은 각자의 감각적 존재감만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자행되는 상대방에 대한 폭력일런지도 모른다. 그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것에 대한 친화력, 먼 것들에 대한 감각적 무상함, 그리고 관념화. 먼 사막에 잡힌 20명의 인질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매우 큰 감각적 존재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탈레반인에게는 그저 잡혀가고 죽어간 수많은 동료들에 비해 그저 무상한 낯선 동양인 인질들일 뿐이다. 이러한 인간의 감각적 자기중심성은 이미 현존하는 갈등의 고리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떠한 방식의 대안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폭력을 자행한 자들의 그 잔인한 감각적 자아애는, 폭력의 희생자들의 저항과 생존을 위한 자기중심성보다 더욱 비난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어짜피 세상은 더 힘이 있는 자와 그 힘에 고통당하는 자가 자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각의 중심성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 타인의 내면적 감각의 중심성으로 초월되어야 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러한 타인의 생생한 내면을 우리의 방식으로 공명하지 않고 그저 관념화 하는 순간 그것은 근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감각은 타인의 그 내면의 세계에 지극히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픈 만큼 타인도 그렇게 아플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소리이기도 하다. 대지에 존재하는 전쟁과 고통의 극복은, 천형처럼 주어진 나의 에로스적 중심성을 저 밖의 세상으로 끊임없이 넓혀갈 때 이루어진다. 한 개인의 저 밖을 향한 그 지향은 궁극적으로는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과 대면될 것이다. 예수가 그러지 않았을까. 예수의 감각은 아마 피조세계 내면의 중심성을 향해 나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그렇게 진하게 사랑했고 강렬하게 투쟁했던 것 아니었을까. 저 밖을 향한 지향의 화살은 막강한 권력과 힘의 성벽에 부딪히며 부러질 것이다. 물론 이 지향은 권력을 단숨에 파괴할 수는 없으나, 그 권력의 파괴는 도대체 아가페적 지향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패권과 힘에 대한 또다른 힘의 대적은 파괴가 아니라 힘의 강화이다. 그것이 선교이든, 폭력이든, 전쟁이든.    아프카니스탄, 여전히 거기에는 눈물이 있다. 한국 인질들의 무사귀환, 아픔과 고통의 사막인 아프카니스탄의 평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지가 진실로 사랑과 화해의 햇살이 임하길 바란다. 그 대지를 위해 나부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